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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운동 100주년인 1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길에서 유관순 열사 후배인 이화여자고등학교 학생과 교사들이 독립운동가들의 애국애족 정신과 그날을 기억하며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
 3.1운동 100주년인 3월 1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길에서 유관순 열사 후배인 이화여자고등학교 학생과 교사들이 독립운동가들의 애국애족 정신과 그날을 기억하며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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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 기념의 열기가 국내외적으로 뜨겁다. 만세시위를 재현한 시가 행진, 대한독립 만세를 삼창하는 외침도, 독립선언서를 릴레이로 낭독하는 흐름이 국내외에서 이어지고 있다.

올해는 삼일절이 아니라 삼월절이라고 해도 될 만큼, 3월 하순으로 접어든 지금까지도 그 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 유관순과 200만 시위대가 주도했던 1919년 항일운동의 열기가 100년 만에 재현되고 있으니, 3.1운동 100주년이라는 말을 실감하고도 남을 만하다.

이런 가운데, 한켠에서는 못마땅해 하는 표정들이 역력하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반응이 그런 표정들을 압축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지난 14일 한국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그는 "해방 후에 반민특위로 인해서 국민이 무척 분열했던 것 모두 기억하실 것"이라면서 친일청산 기구인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국론 분열의 원인으로 폄하했다.

3.1운동 100주년의 열기를 2주 이상 느낀 뒤에 나온 발언이 고작 '반민특의는 국론 분열'이라는 한마디였다. 아무도 없는 데서 독백으로 하는 말도 아니고 제1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꺼낸 발언이니, 3.1운동 100주년 열기에 소금을 뿌리는 행동이나 다름없다.

지만원·김진태·김순례 등의 '5.18 망언'에 대한 국민적 지탄이 뜨겁던 지난 2월 9일, 나 원내대표는 "일부 의원들의 발언은 당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면서도 "다만,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존재할 수 있다"라는 말로 이들을 두둔하는 듯한 여운을 남겼다. 지난 14일의 발언으로 확실해진 것은 그가 친일청산 문제에 대해서까지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문재인 대통령을 두고 '김정은 수석대변인'에 비유할 때는 국회의사당 안에 있었다. 반면, 반민특위를 모독할 때는 한국당 당사에 있었다. 문 대통령을 모독하는 발언은 헌법상의 면책특권이 허용되는 곳에서 하고, 친일청산의 가치를 모독하는 발언은 면책특권이 인정되지 않는 곳에서 했던 것이다.

대통령을 모독하는 발언은 자기 신변에 위험하지만, 친일청산 가치를 부정하는 발언은 위험할 것 없다고 판단했던 걸까. 친일청산의 가치를 부정하는 게 얼마나 반역사적이고 심각하며 위험한 일인지 인식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100년전 이완용의 '시의적절한 경고'
 
 1919년 4월 5일자 <매일신보>에 실린 이완용의 경고문. 왼쪽 끝에 ‘백작 이완용 근고(삼가 고함)’라고 적혀 있다.
 1919년 4월 5일자 <매일신보>에 실린 이완용의 경고문. 왼쪽 끝에 ‘백작 이완용 근고(삼가 고함)’라고 적혀 있다.
ⓒ 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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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유사한 일이 100년 전 이맘때에도 있었다. 3.1운동 때는 친일 보수파 대표인 이완용 백작이 국민들의 속을 긁어놨다. 만세시위가 3월을 넘어 4월에도 계속되자, 그는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었다. 그래서 참지 못하고 망언을 내뱉었다. 3.1운동 열기가 한창 뜨겁던 그해 4월 5일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적의(適宜)의 경고'라는 글을 실었다.

'시의적절한 경고'라는 뜻을 가진 이 기고문을 통해 이완용은 전국적 시위 열기에 소금을 뿌리고자 했다. 그는 만세시위를 '몰지각한 망동'으로 폄훼했다. 농번기가 임박했으니 일터로 복귀하라고 촉구했다. 경고문 속에 담긴 생경한 한자어들을 지금의 언어로 바꾸면 아래와 같다.
 
"처음에 무지하고 몰지각한 아이들이 망동하고, 그 후에 각 지방에서 뜬소문을 듣고 함께 움직여 치안을 방해하는지라. 농사철이 임박하니 마음을 가라앉히고 본업에 종사하면 안락이 있을 것이고, 남을 따라 망동하면 사상(死傷)이 앞에 있을 것이다. 이것이 생중구사(生中求死) 아닌가?"
    
당시 '사중구생'(死中求生)란 속담이 회자되고 있었다. 죽을 고비에서 살 길을 모색한다는 의미로, 위험을 타개할 목적으로 모험을 시도할 때 쓰이던 말이다. 이완용은 이 사중구생을 뒤집어 '생중구사'란 말을 썼다. '남들을 따라 만세를 부르는 것은 멀쩡히 잘살던 사람이 죽을 길을 찾아나서는 것'이라는 의미로 3.1운동을 생중구사로 폄하했다.

계속되는 경고... "일한합병의 의의를 깨트리지 말아야" 
 
 이완용.
 이완용.
ⓒ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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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의 경고는 계속됐다. 4월 9일 치 <매일신보>에서는 "지성이면 감천하신다 하니, 여러분이 느낄 때까지 위협을 불구하고 또 이처럼 경고한다"라고 말했다. '위협을 불구하고'라는 표현에서 당시 민중의 분위기가 어땠는지 가늠할 수 있다. 그런 위협을 느끼면서도 공개적인 경고의 글을 또다시 내보냈다.

만세운동의 열기는 두 달간 이어졌다. 일제 기마헌병들의 무력 진압으로 인해 5월 하순부터는 저항의 열기가 약해지기 시작했다. 이때 이완용이 다시 '등판'했다. 5월 29일 치 <매일신보>에서 그는 시위가 약해진 것을 치하했다. 민중의 자발적 후퇴가 아니라 일본군의 강제 진압으로 시위가 수그러든 것을 두고 칭찬했던 것이다. 그런 뒤 1910년 '일한합병(日韓合倂)'의 의의를 깨트리지 말아야 한다면서 아래와 같은 망언들을 늘어놨다.
 
"한합병으로 말하면, 당시 안으로는 구한국의 사세(事勢)와 밖으로는 국제관계로 천사만량(千思萬量, 천 번을 생각하고 만 번을 헤아림)할지라도, 역사적으로 자연스러운 운명과 세계적 대세에 부합하여 동양평화가 확보되는 것이 조선민족의 유일한 활로이기에 단행됨이요."
 
조선이 일본의 지배를 받는 게 역사적으로 자연스럽고 세계적 대세에 부합하며 동양평화에 유리하므로, 이것이야말로 조선민족의 유일한 활로라는 망언을 내뱉었다. 유일한 활로라는 판단 하에 '일한합병'이 단행될 수 있었다고 그는 강변했다. 그러면서, 항일에 나서는 것은 화합을 깨고 평화를 깨는 일이라고 단언했다.
 
"만약 의연히 앞뒤의 이해관계를 분간하지 못하고 경거망동하는 무리가 생기면, 이는 조선민족을 멸망케 하며 동양평화를 파괴하려는 우리의 적으로 봄이 옳다."
   
그는 '항일은 국론 분열'이라는 취지의 주장도 펼쳤다.
 
"상천도 (중략) 공동존립과 공동이해를 위해 두 땅의 분립을 불허하실지니 우리 조선인은 반드시 일한합병의 의의와 정신이 유효하게 실현할 방면을 향해 노력함이 우리의 장래 행복을 설계하는 최선의 방책인 줄을 깊이 믿으라."
 
하늘도 한일 두 민족의 분립을 불허할 것이라는 단언이다. 그는 두 땅의 분립은 공동 존립과 공동 이해를 저해하는 일이라는 논리를 펼쳤다. 항일은 한 나라가 된 두 민족의 분열을 초래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가 말한 '국론 분열'의 국(國)은 '일본+조선'이었던 것이다.

1905년 을사늑약 때 외교권을 넘기고 1910년 경술국치 때 국권을 넘긴 이완용 입장에서 볼 때, 3.1운동은 자신의 업적에 재를 뿌리는 일이었다. 자신의 기득권을 흔드는 일이요, 자신의 안위를 위협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매일신보> 기고문을 통해 3.1운동에 소금을 뿌린 것이다.

한쪽에서는 항일운동 재현... 다른 한쪽에선 친일청산 부정
 
비상의원총회 소집한 나경원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의원총회에 참석해 선거법 패스트트랙과 공수처 설치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 비상의원총회 소집한 나경원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의원총회에 참석해 선거법 패스트트랙과 공수처 설치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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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이 흐른 2019년, 많은 국민들이 1919년 반일운동을 재현하는 가운데, 한쪽에서는 친일청산의 가치를 부정하고 있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이런 말을 해도 될 만큼, 이 나라에서 친일청산의 가치는 홀대받고 있다.

제1야당 원내대표의 입에서 친일청산의 가치를 부정하는 발언이 나온 것은, 3.1운동의 목표가 아직도 여전히 달성되지 못했음을 뜻한다. 친일을 하고, 동족을 괴롭히고도, 이 땅에서 누구 하나 제대로 처벌을 받지 않았다. 그러니 반민특위의 친일청산 노력을 부정하는 망언을 면책특권도 없는 곳에서 마음대로 내뱉을 수 있는 것이다.

항일과 친일청산의 측면에서 우리 민족이 해방 직후는 물론이고 1919년 단계에서도 크게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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