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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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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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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인권위가 형법의 낙태죄 조항이 위헌이라는 의견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자신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임신의 중단을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결정할 권리가 있고 국가는 이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최영애)는 지난 15일 헌법재판소에서 심리중인 낙태죄(형법 269조 1항 및 270조 1항)에 관한 헌법소원 사건과 관련해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는 것은 여성의 자기결정권, 건강권, 생명권, 재생산권 등 기본권을 침해하고 형사정책적으로도 정당성이 부족하다는 의견을 제출했다고 17일 밝혔다.

"낙태는 자신의 판단에 따라 결정할 권리"

인권위원회는 결정문에서 "민주 국가에서 임신을 국가가 강제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임신의 중단, 즉 낙태 역시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결정할 권리가 있다"고 전제했다.

출산과 양육으로 인해 수많은 여성이 노동이나 학업을 중단하는 현실을 지적한 인권위는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서 복잡하고 다양한 맥락들(자신의 직업, 경력, 건강, 파트너와의 관계, 양육환경 등)을 가장 종합적으로 잘 고려할 수 있는 것은 그 상황의 당사자인 여성이며, 그 여성의 판단이 실행될 수 있는 차원의 자기결정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출산은 여성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안임에도, 여성 스스로 임신 중단 여부를 결정할 자유를 박탈하는 낙태죄는 경제적․사회적 사안에 관하여 공권력으로부터 간섭 받지 않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을 전혀 인정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낙태를 처벌하는 것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안전하지 않은 방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생명 위협"

인권위는 낙태죄가 여성의 건강권 및 생명권도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형법의 낙태죄가 낙태를 전면 금지하고 있고, 모자보건법 상의 낙태 허용 사유도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을 지적한 인권위는 "낙태가 불법인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낙태는 안전하지 않은 방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여성의 건강뿐 아니라 생명까지 위협하고 있는 바, 낙태죄의 존치는 국가가 여성의 건강권과 생명권 보호 의무를 방기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2018년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가 한국 정부에 낸 최종 권고문에서 안전하지 않은 여성의 임신중절이 모성 사망과 질병의 주요 원인이라는 관점에서 낙태를 합법화, 비범죄화 하고 처벌조항을 삭제할 것을 주문한 일, 세계보건기구(WHO)가 "안전한 임신중절을 시기적절하게 받는 것을 방해하는 절차적·제도적 장벽들은 철폐되어야 한다"고 선언한 일 등을 인용한 인권위는 "국가는 이러한 권고의 충실한 이행을 통해 실질적인 여성의 건강권과 생명권 보장 책임을 완수하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낙태죄가 '자녀 수, 출산 간격과 시기를 자유롭게 결정하고 이를 위한 정보와 수단을 얻을 수 있는 권리'인 재생산권도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여성차별철폐협약 16조 1. (e)항이 재생산권을 동등하게 보장할 의무를 당사국에 부과하고 있고, 비준된 국제법규에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부여하는 헌법 6조에 근거, "낙태죄 조항은 이러한 재생산 권리를 모두 부인하면서 소극적인 국가의 재생산 보장 책임을 용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낙태죄로 낙태율 줄었다고 보기 어렵고, 협박 보복 수단으로 악용"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검은 시위'의 피켓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검은 시위"의 피켓
ⓒ 이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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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태죄가 형사정책적으로도 정당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결정에 포함됐다. 인권위는 "2018년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에서 임신 경험 여성의 19.9%가 학업이나 직장 등 이유로 낙태한 것으로 조사되었고, 이전 조사 등에서 연간 17만 건의 낙태수술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고된 바, 낙태죄로 인해 낙태율이 줄어들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오히려 낙태죄는 상대 남성이 여성에게 관계 유지나 금전을 요구하며 이를 거절할 경우 낙태 사실을 고발하겠다는 협박이나 보복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어 낙태를 형사 처벌하는 것은 적정한 방법이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낙태를 형사 처벌하지 않는 것이 바로 낙태의 합법화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고, 동의없는 낙태 등 문제들은 의료법 개정 등 다른 방식으로 해결이 가능하며, 사회적 논의를 통해 조화로운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음에도 낙태죄 조항은 생산적인 논의를 가로막고 있다"고 인권위는 지적했다.

헌재는 지난 2012년 재판관 4 대 4 의견으로 낙태죄에 합헌 결정을 내렸다. 당시 인권위는 의견을 제출하지 않았지만, 2017년 다시 제기된 헌법소원사건에 대해서는 인권위가 이번에 적극적으로 위헌 의견을 낸 것이다.

이르면 다음달 중으로 예상되는 헌재 결정에 인권위의 의견이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은 국가인권위가 이번 결정을 검토하는 데에 판단 기준이 된 헌법과 국제규약의 주요 대목이다. 

헌법 10조 :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헌법 12조 :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헌법 36조 :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하며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세계인권선언 3조 : "모든 사람은 생명과 신체의 자유와 안전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여성차별철폐협약 16조 1. (e) : "자녀의 수 및 출산 간격을 자유롭고 책임감 있게 결정할 동일한 권리와 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정보, 교육 및 제 수단의 혜택을 받을 동일한 권리"

 

태그:#낙태죄, #국가인권위, #헌재, #헌법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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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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