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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남 전 의원의 첫 장편소설 <두브로브니크에서 만난 사람>
 신기남 전 의원의 첫 장편소설 <두브로브니크에서 만난 사람>
ⓒ 솔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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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가 가벼워졌다... 정통문학 되살아나야"

- 소설의 위기라고 했는데 <82년생 김지영> 같은 소설은 '바로 여기'에 있는 우리들의 문제, 특히 여성문제를 다루어 큰 공감을 얻었다. 물론 과거에 인기를 얻었던 역사소설 등 대하소설들은 퇴조한 느낌이 있긴 하다. 사람들이 거대서사에는 공감을 잘 못하는 것 같다.
"요즘 시대에 그런 게 있지만 그게 바람직한 분위기가 아니라고 본다. 우리 문화가 좀 가벼워졌다. 교육도 그렇다. 중고등학교에서 글짓기 대회, 그림 그리기 대회가 없다. 이러니 어떻게 문학가가 길러지겠나? 젊은이들은 클래식 음악도 잘 안 듣는다. 이것이 시대적 조류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무조건 인정할 수 없다.

나는 문화를 많이 중시하는 정치인이었다. 대대적인 문화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경제적으로는 엄청난 선진국이 됐다. 먹고 살고, 부자가 되려고 얼마나 노력했나? 경제적으로는 엄청 성공했다. OECD에서도 상위권이다. 그래도 힘들다고 불평하지만 우리 과거를 생각하거나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현재까지는 경제적으로 엄청 성공했고, 앞으로도 희망이 있다.

그러나 나는 문화선진국이야말로 진짜 선진국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서유럽과 일본을 따라잡았다고 보지만 그들에게 현저히 뒤지는 것이 문화적인 면이다. 그 하나의 예가 책 소비량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거다. '소설의 위기'라고 할 정도로 위축되고, 그동안 하나의 흐름이었다. 그동안 경제적으로 부자가 되는 데 온 신경을 다 썼다. 국가정책도 거기에 몰두해 있었다. 하지만 문화정책은 거의 없었다.

이제는 어느 만큼 부자가 됐으니 이제는 정부나 사회에서 문화정책을 써야 한다. 문화정책에는 투자와 홍보가 필요한데 그것을 정부가 해야 한다. 그래서 정통문학 같은 것들이 다시 되살아나야 한다. 정부가 문화정책을 대대적으로 펴야 한다고 옛날부터 주장했는데 정부의 문화 투자 비율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대규모 SOC 투자는 대단하게 하면서 말이다. 사실 문화야말로 가장 적게 투자해 가장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거다. 문화인들이 지금 비명을 지르고 있다. 문화인으로 행세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 현재도 대통령 직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어서 그런 고민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문화선진국이야말로 진정한 선진국인데. 우리나라는 경제적 수준에 비하면 문화투자가 턱없이 부족한 나라다. 문화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도서관 운동, 즉 도서관을 육성하는 것이다. 21세기 도서관은 과거와 다르다. 과거처럼 책을 빌려주고 공부하는 곳이 아니다. 책만 보는 게 아니라 그 지역사회 문화의 중심지(center)다. 모든 사람이 모여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문화적인 복지시설이라고 보면 된다.

21세기의 도서관은 사회적 약자나 정보취약층 등을 위한 복지시설이다. 요즘 정보시대인데 정보없이 경쟁력이 있을 수 있나? 그런데 정보의 불균형이나 불평등이 심각하다. 그런 사람들에게 정보를 안겨주고, 문화에 접근해서 인지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게 공공시설로서 도서관의 역할이다.

난 18년 전부터 도서관과 인연을 맺었다. 국회의원을 하면서 한국도서관협회 회장을 두 번이나 했다. 한국에서 세계도서관정보대회도 개최했다. 12년 전 노무현 대통령 때 도서관위원회를 만드는 데 앞장섰다. 대통령이 책임지고 도서관 정책을 해야 한다면서 대통령 직속기구로 만들었다.

그런데 위원회를 만들어놓고 7개월 만에 정권이 이명박 대통령으로 교체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 때 만든 위원회 중에 '경제'자가 들어간 것만 빼고 다 없애라고 해서 위원회가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 도서관인들이 나가서 투쟁하고 항거해서 없애지는 못했는데 그 대신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때 위원회를 극도로 위축시켰다. 위원회 사무실도, 조직도, 예산도 없이 쫓겨났다. 지난 10년간 그렇게 지냈는데 존속한 것만 해도 다행이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나보고 맡아 달라고 하더라. 내가 정치 안 하는 거 알고 청와대 누구를 통해서 연락이 왔다. 이게 월급도 없고, 봉사하는 자리지만 할 일은 많다. 위원장 밑에 11명의 장관이 있다. 처음 이걸 부총리급으로 설계했기 때문이다. 작년 4월에 위원장으로 위촉받아 거의 1년간 위원회를 살리는 일을 해왔다. 빼앗긴 사무실도 국립중앙도서관에 얻었고, 예산도 좀 탔다. 그리고 법으로 만들 수 있는 사무국도 거의 다 구성해 가고 있다.

법으로 사무국을 두게 돼 있는데 지난 10년간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안 만들었다. 참 이상하다. 정부가 위법 상태를 저지르고 있는 거다. 그게 통하는 게 우리나라다. 그래서 작년부터 사무국 구성 작업을 해왔다. 사무실을 도로 찾고, 사무국을 구성하고, 예산을 배정받고 비로소 대통령위원회다운 위원회를 만들어가고 있다.

도서관을 일으키는 것이 문화선진국을 만드는 첩경이다. 문화예산이 적으니 우리 도서관이 어렵다. 언론에서 도서관이 중요하다고 보도하지만 현장 부서에 예산과 인원을 투입하는 게 미흡하다. 학교 도서관이 엉망이다. 양호교사나 영양교사들은 다 있지만 초·중·고등학교에 사서교사가 있는 곳이 10%도 안 된다. 대학도서관도 굉장히 어렵다. 등록금이 동결되면서 대학 형편이 어려워졌는데 가장 먼저 줄이는 게 도서관이다. 그게 우리나라 현실이다. 이건 국가경쟁력의 문제다."

"크로아티아에 가면 미술관과 와이너리는 꼭 가야"

- 소설 속 여주인공('유지')이 남자주인공이 쓴 소설을 평가하면서 "유고슬라비아 내전을 세밀하게 파헤치면서 국제정세와 역사의식을 설명"한다고 했는데 이것이 이 소설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이 그거다."

- 발칸반도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나는 역사를, 역사책을 좋아한다. 특히 유럽사 책을 많이 봤다. 세계사가 서부유럽 중심으로 편향되면서 발칸이 소외돼 있었다. 그래서 그 지역을 더 많이 알아야겠다는 호기심이 있었다.

아시아와 연결된 동부는 옛날에 (서부유럽보다) 문화가 더 찬란했다. 터키나 그리스 등은 문화선진국이었다. (서부)유럽에 비하면 발칸은 더 선진국이었다. 동유럽이 콘스탄티노풀(터키 이스탄불의 로마시대 명칭)에 있었다. 서유럽은 게르만 야만족에 망했지만 동유럽은 천 년 동안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며 유지됐다. 동방과 서방의 문화를 혼합하면서. 그래서 (발칸반도가) 더 중요한데 우리나라에는 소외돼 있더라. 흥미도 느꼈지만 많이 알려야겠다는 책임감도 느꼈다.

내가 유고슬라비아를 맨처음 접한 거는 1990년대 영국에 유학 가 있을 때다. 그때는 틈만 나면 유럽을 돌아다녔다. 1993년, 1994년 그때는 마침 철의 장막이 걷히고 체코, 헝가리, 동독이 다 열릴 때다. 직접 차를 몰고 돌아다녔는데 감격스럽더라. 그런데 어디에서 막혔냐 하면 유고슬라비아에서 막혔다.

동구권 중에서도 유고슬라비아는 가장 발달한 나라였다. 거기는 철의 장막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관광객들도 많이 가는 개방된 나라였다. 그래서 문제없이 들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헝가리를 경유해서 들어가려고 했는데 국경에서 막혔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까 다른 나라들은 다 철의 장막이 걷혀가는데 거기는 전쟁을 한다고 했다. 알고 보니 당시 한창 보스니아 내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소설 속에도 유지(여주인공)의 가족이 여행하다가 당시 내가 당한 것과 똑같은 상황이 나온다. 그때 경험이 그쪽에 흥미를 가지는 데 보탬이 됐다. 늘 그때 생각이 난다."

- 소설의 제목이 된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에는 당연히 가봤을 것 같은데.
"물론이다. 이걸 쓰려고 2013년, 2014년 즈음에 카메라를 들고 답사까지 갔다. 차를 몰고 다녔다. 내가 다닌 호텔, 음식점 등이 다 소설에 그대로 나온다. 내가 그 장소들을 다 적어왔다.

크로아티아 관광을 국내에서 처음 시도했던 한 여행사에서 내 책을 보고 최근 연락이 왔다. 문학기행을 기획하고 싶다고. 소설 속 남녀가 다녔던 그대로의 코스를 밟고 싶다면서 나보고 안내 좀 해 달라고 했다. 요즘 미술여행, 음악여행은 있는데 책을 따라 하는 여행은 없다는 거다. 그래서 이 책이 딱이라고 했다. 남녀 주인공이 먹은 음식점에서 먹고, 그들이 묵은 호텔에서 묵겠다고 했다.

우리나라 여행문화를 바꿔주고 싶다. 우리나라는 저가 위주의 관광이 많다. 바쁘게 경치 보고, 음식 먹고, 막 돌아다니는 여행은 여행의 진미가 아니다. 우리도 이제는 그런 데서 벗어날 때가 됐다. 그래서 가겠다고 했다.

요즘 크로아티아가 여행지로 굉장히 인기가 있다. 가더라도 그냥 경치나 보고 올 게 아니라 미리 공부 좀 하고 가야 한다. 역사공부, 지리공부, 문화공부 등... 그게 여행의 본질 아닌가? 나는 소설에 나오는 메슈트로비치 미술관을 꼭 데려 가려고 한다. 거기 가는 국내 여행사는 없는데 거기는 꼭 가야 한다.

그리고 와이너리도 한 군데 정도 가야 한다. 크로아티아가 와인으로 유명하다. 크로아티아 와인은 세계적인 와인이다. 생산량이 적어 전부 국내에서 소비하기 때문에 수출을 안 한다. 통계를 보면 1인당 와인 소비량 1위가 크로아티아다. 로마의 전통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와인 없는 유럽이 있을 수 있나? 문화, 예술 없는 유럽이 있을 수 있나? 그래서 거기에 가면 미술관과 와이너리는 꼭 가야 한다."
  
신기남 전 의원.
 신기남 전 의원.
ⓒ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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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반도의 비극은 어디에서 왔냐 하면...

- 발칸반도는 민족과 종교, 이념 등의 갈등으로 인해 오랫동안 혼란스러웠다. 오죽했으면 "유럽의 화약고"라는 별명이 붙었겠나? 소설의 주요 소재인 유고슬라비아의 비극은 어디에서 왔다고 보는가?
"우선 유고슬라비아가 비극적이고 좀 뒤떨어진다는 선입관부터 바꾸고 싶다. 그렇지 않다. 서유럽이 무지몽매한 나라였을 때 이미 거기는 찬란한 동쪽으로부터의 문화를 꽃피웠다. 동로마문명을 꽃피웠던 세계 최고의 지역이었다. 동로마가 망한 게 1453년이다. 그러니까 서유럽의 르네상스시대까지 있었다. 터키 등 동방의 문화가 얼마나 찬란했나? 이슬람 문명이 대단한 문명이다.

그런데 서양은 그것을 자꾸만 평가절하했다. 대단치 않는 문명인 것처럼 말이다.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 못하는 거다. 문명으로 보면 발칸반도가 서유럽보다 훨씬 선진국이었고, 대단한 문화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중간에 전쟁이 많았다. 14세기, 15세기 이후에 일어난 전쟁 때문에 다사다난했다. 동방에서 서방으로 가는 통로에 있어서 마주쳤다. 우선 종교가 마주쳤다. 이슬람과 크리스찬교가 마주쳤다. 크리스찬교도 개신교와 기독교, 동방정교(동로마)가 있는데 완전히 다르다. 얼마나 서로를 적대하고 싸웠는지 모른다. 같은 크리스찬교가 아니다. 거기가 세 종교의 접합점이다.

그리고 민족도 마주쳤다. 민족이 동쪽에서도 오고, 북쪽에서도 내려왔다. 동쪽에서는 이슬람족이 왔고, 북쪽에서는 슬라브족이 내려왔다. 서쪽에는 라틴족이 있었고. 거기가 그러한 민족들의 접점이었다.

종교적, 문화적, 민족적 접점이 15세기, 16세기 이후에 이루어지면서 전쟁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여러 민족이 중간지역에 모이게 됐다. 그러다 보니 더 복잡해지고 전쟁도 많아졌다. 그 다음부터는 '화약고' 비슷하게 돼 갔다. 내 책에도 많이 나오지만 발칸에 사는 크리스찬들은 자기들이 이슬람교를 막아낸 방파제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특히 세르비아 사람들이 그렇다. 세르비아가 이슬람세력을 막아주지 않았더라면 서구가 다 이슬람화됐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특히 슬라브족이 북쪽에서 내려옴에 따라 민족적인 갈등이 일어났다. 민족이라는 게 항상 문제다. 내가 책에서도 민족주의를 굉장히 많이 비판했다. 민족이라는 집단이 형성되면 이기적이고, 투쟁적이게 된다. 민족주의 시대가 17~18세기에 왔다. 동쪽에서는 이슬람족이, 북쪽에서는 슬라브족이 내려왔고, 서쪽에는 원래 라틴족이 있었다. 이게 합쳐져서 민족주의가 형성돼 서로 싸웠다. 대개 종교는 공통되지만 그로 인해 어려워졌다.

또 하나 빠트릴 수 없는 게 있다. 강대국들이 발칸반도에 있는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를 공격하고 지배하기 시작했다. 서쪽에서는 게르만족이 강대국이 됐다. 특히 신성로마제국이라고 할 정도로 오스트리아가 굉장히 강성했다. 또 북쪽에서 내려온 러시아 슬라브족이 강대국이 됐다. 오스트리아가 원래도 강대국이었는데 19세기 이후에는 독일이 붙었다. 오스트리아와 독일이 합쳐진 게르만족은 더 강해졌다. 바다 건너서는 라틴족이 강했다. 이들이 발칸반도로 쳐들어오니 동쪽의 오스만 터키가 가만 있나? 서방으로 진출하려고 하고, 과거에 점령했던 지역을 지키려고 했다.

이러한 강대국들의 세력 다툼으로 인해 거기에 있던 조그만한 민족들이 지배를 당하면서 고통을 받았다. 세르비아, 크로아티아는 오스트리아와 오스만 터키 양쪽으로부터 공격받았다. 서방에 있는 나라들은 16~17세기를 지나면서 프랑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 거대한 제국을 이뤘다. 그 나라들은 커졌지만 발칸반도에 있는 조그만 민족들은 커지지 않았다. 여기 저기서 얻어터지고, 게르만족과 이슬람족, 이태리 등의 식민지 생활을 오래 했다. 18~19세기에 외세에 의해 전쟁을 많이 치렀다.

게르만족과 슬라브족, 이슬람족이 자기 식민지로 만들려고 발칸반도에서 영토쟁탈전을 벌였다. 발칸반도에서 전쟁을 한 거는 대부분이 발칸 민족 자신이 아니라 강대국들이 와서 쟁탈전을 벌인 게 많다. 슬라브족, 게르만족, 이슬람족 3대세력이 서로 판도를 확정하기 위해 발칸에서 싸운 거다. 그래서 발칸 사람은 이리저리 자기 이익도 아닌데 전쟁을 많이 겪게 됐다. 이렇게 종교, 민족의 접합점이 발칸이고, 거기다 강대국들이 영토확장정책을 펴서 강대국들끼리 만난 게 발칸이다. 역사적으로 강대국들이 만나는 접점이 발칸이다 보니 화약고가 안 될 수가 없다.

국경선이 들락날락 하니까 많은 민족이 섞이게 됐다. 세르비아 안에 알바니아인들이 살고, 크로아티아 안에 세르비아인들이 살고. 이렇게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알바니아에 여러 민족이 살게 된 거다. 그러니 한 나라 내부에서도 싸웠다. 보스니아 같은 곳은 완전히 민족이 짬뽕이다. 보스니아 안에는 보스니아 사람들뿐 아니라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사람들도 많이 살고, 무슬림도 많이 살고 있다. 그래서 크로아티아도 보스니아 내 자기 민족을 보호하려고, 세르비아도 보스니아 내 자기 민족을 지원하려고, 터키나 알바니아 등 이슬람국가들도 무슬림을 보호하려고 하다 보니 내란이 벌어진 거다.

2차 세계대전 후에 그것을 통합국가로 만든 사람이 티토다. '민족, 종교 가지고 싸우지 말고 우리끼리 뭉쳐서 살자'는 거다. 티토가 워낙 영웅적인 사람이어서 그거를 할 수 있었다. 1945년부터 1980년까지 35년간 철권 정치를 하면서 동시에 6개 나라를 강제로 묶어서 살게 했다. 그때가 평온했다면 평온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티토가 죽으니 이걸 유지할 영웅이 없었다. 그동안 막혀 있던 민족자립이 또 터지기 시작했다. 그런 움직임이 1990년대에 나왔고, 서로 싸우게 됐다."

카라지치·믈라디치·갈리치 대 프랄랴크

- 소설 속 여주인공은 그 원인을 "강대국들의 간섭"과 "민족이나 종교, 이념을 내세우는 가짜 지도자의 선동"이라고 진단했는데.
"거기에다 지리적 위치가 추가돼야 한다. 특히 내가 책에서 '가짜 지도자' 얘기를 했다. 민족, 종교끼리 화합하게 만들어서 전쟁을 피하고 평화롭게 살게 하는 게 정치가의 사명이다. 그런데 정치가의 야심은 끝이 없다. 이것은 정치가의 속성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국내에서 권력을 잡으면 민족이나 종교를 이용한다. 특히 민족감정을 엄청나게 자극하면서 상대 민족에 대한 적대심을 부추긴다. '우리가 나서야 한다', '우리것을 지키고 확장해야 한다'고 하면 대중들은 그것을 따라가게 돼 있다. 민중들의 심리를 이용하는 포퓰리즘이다.

민족주의의 대표 히틀러도 그랬다. 문명국이라던 독일도 그랬는데 하물며 이쪽이야 더 하다. 히틀러도, 유고슬라비아의 민족·종교 지도자들도 '가짜 지도자'다. 그래서 '평화의 지도자'가 나와야 하는데 그것은 역사적으로 참극을 겪고 반성해야 나오는 것 같다. 독일도 20세기 중반까지 그랬다가 이제야 깨달은 거다. 요즘 독일은 나치스를 찬양하면 처벌한다고 그러던데 과거에서 교훈을 얻은 거다.

선동적인 포퓰리즘으로 군중을 선동하는 가짜지도자들이 유고슬로비아 내전을 일으킨 책임이 크다. 거기에다 서방국들이 각자 자기 이익을 위해 투쟁을 조장하고 자기에게 유리한 민족을 지원했다. 뒤에서 러시아는 세르비아를 지원하고, 서방은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를 지원하고, 이슬람족은 보스니아 내 무슬림들을 지원하고.

편협한 민족주의자가 아닌 진정한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민족주의를 가지고 되겠나? 민족을 무조건 부정할 수는 없지만 화합적, 평화적인 민족주의, 더 나아가 시민주의로 가야 한다. 민족끼리 적대적 감정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세계사의 교훈이다. 민족, 종교끼리 서로 교류하고 돕고 평화를 유지하는 시민주의로 가야 한다. 이제 민족주의 시대는 지나가야 한다.  파괴적, 분쟁적 민족주의로 가서는 안 되고 (최소한) 개방적 민족주의로 가야 한다. 정치가들이 포퓰리즘을 이용해 국민들에게 편협한 민족주의를 강조해서는 안 된다."

- 소설 속에 나오는 발칸반도의 지도자들 가운데 카라지치·믈라디치·갈리치 대 슬로보단 프랄랴크는 극적으로 대비되는 인물들이다. 전자는 도망다니다가 도피했고, 전범 재판에서도 사실을 부정하거나 자신의 책임은 없다고 주장한 반면, 후자는 오히려 스스로 재판소에 출두했고, 자신이 지휘하는 부대에서 일부 일탈행위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다만 프랄랴크는 '크로아티아계와 이슬람계라는 두 민족간에 벌어진 필연적인 전쟁이었고, 자신은 크로아티아 민족을 지키기 위한 임무를 수행했을 뿐이다'라며 자신이 전범이라는 것을 강하게 부정했다. 소설 속 남자주인공은 전자와 후자 가운데 후자에 더 공감하는 편인 것 같던데 어떤가?
"그렇게 나온다. 나 스스로도 그렇다. 프랄랴크도 잘못한 건 사실이고 처벌을 받았다. 그런데 (프랄랴크의 잘못에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고, 인간적으로 이해할 측면이 있다. 그래서 프랄랴크를 주인공으로 한 거다. 내가 카라지치(세르비아계 스릅스카공화국의 대통령으로 보스니아 무슬림을 학살한 죄로 징역 40년을 선고받음)나 믈라디치(스릅스카공화국의 참모총장으로 사라예보 포격, 스레브레니카 학살 등을 주도해 '발칸의 도살자'로 불림)를 주인공으로 할 생각은 없었다. 그들은 이론의 여지가 없고 반성하는 기미도 없었다. 카라지치는 10년 동안 도망 다녔다.

프랄랴크는 우선 문화인이고 영화감독이다. 원래 자기가 하려고 한 것도 아니고 추대돼서 한 거다. 다만 지휘자 책임, 지도자 책임이 인정됐다. 밑에 있는 사람이 했다고 해서 '나는 몰라라' 하는 게 허용이 안 됐다. 국제유고전범재판의 특징 중 하나가 '지휘자 책임론'이 주장된 거다. 세계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 그렇게 한 거다. 이것은 위대한 법률적 발전이라고 본다. 앞으로 전쟁 중에 잔악행위를 할 때 부하가 했다고 해서 '나는 모른다', 설사 모른다고 해도 용서가 안 된다는 하나의 판례가 나온 거다. 이것은 획기적인 판례다.

그래도 프랄랴크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20년으로 비교적 약했다. 프랄랴크는 10여년간 재판을 해서 석방될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끝까지 자기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독배를 들이켰다. 인간적으로 보면 프랄랴크가 동정적인 면이 많다. 프랄랴크는 크로아티아에서 영웅이다. 전범재판소로부터 호출을 당했을 때 스스로 비행기를 타고 갔다. 다른 사람 같으면 안 갔다.

보스니아 사람이지만 크로아티아에 피신해 있었고 크로아티아에서 보호해주고 있었다. 카라지치나 믈라디치는 세르비아 정부가 보호하지 않았다. 숨어 있던 카라지치와 믈라디치를 적발한 것은 세르비아 신정부였다. 밀로세비치가 무너지고 정권이 바뀌면서 신정부가 반성한 거다. 유럽연합에서도 'EU에 가입하려면 카라지치와 믈라디치를 잡아내라'고 했다. 그래서 세르비아 신정부가 잡아낸 거다.

하지만 프랄랴크는 크로아티아 정부가 두둔했다. 프랄랴크는 자진해서 여섯 명의 동료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같이 갔다. 자그레브 공항에 크로아티아 군중이 나와서 용감하다고 환호했다. 프랄랴크는 '나는 저들이 쳐들어와서 우리 민족을 보호하기 위해 싸웠을 뿐이다, 이건 전쟁이다'고 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포격 등 잔혹행위가 벌어졌기 때문에 지휘자 책임을 져야 했다. 

프랄랴크는 재판소에 가서도 '나는 모른다'고 회피하지는 않았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면서도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주장했다. 십 몇 년간 재판하면서 재판장과 논쟁했다. 그렇게 논쟁하니까 크로아티아에서는 영웅이었다. 자존심도 있었겠지만 영웅심리 때문에 독배를 마시는 것까지 간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곧 석방될 수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비장한 결단을 내려서 크로아티아에서는 지금도 영웅이다.

그러니 카라지치나 믈라디치와는 굉장히 다르다. 나도 동정이 가더라. 그렇다고 내가 국제유고전범재판소에서 지휘자 책임론을 인정해 그에게 20년 선고한 것을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앞으로 경종을 울려주기 위해서 피치못하게 해야 할 일이었다. 다만 다른 전범들과는 다른 점이 있어서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거다."

프랄랴크 20년 선고 "역사적 책임의 총량이 다르다"

- 다른 배석 판사들은 징역 40년을 주장했지만 재판장이었던 남자주인공은 최종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이러한 양형의 이유로 "역사적 책임의 총량이 다르다"라고 설명했다. 그의 해명이 합당하다고 보나?
"그건 내 창작이다. 권오곤이 한 게 아니다. 프랄랴크는 권오곤이 재판한 게 아니다. 나도 가만히 생각해봤다. 왜 프랄랴크가 카라지치나 믈라디치에 비해 가벼운 처벌을 받았을까? 물론 나쁜 짓을 덜 했기도 하지만 동정적인 여론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배석 판사가 40년을 주장했다는 것도 내 창작이다. 남자주인공이 프랄랴크에 경도하는 기색이 있다. 나도 프랄랴크를 동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설에는 자유심증주의라는 게 나온다. 그게 판사들의 고민이다. 차별없이 재판하고 선고해야 하는데 그게 판사에게 주어진 특권이다. 자기가 봐서 덜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면 형량을 줄여주는 거다. 프랄랴크는 어느 날 재판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가 쓴 논문을 읽다가 재판을 끝낸 날도 있었다. 재판장과 그렇게 논쟁하고, 크로아티아가 어떤 나라인지를 설명했다. 그런 것들을 듣다 보면 판사도 동정이 갈 수 있다."

- 소설에도 나오지만 프랄랴크가 징역 20년을 선고받은 직후 독약을 마시고 자살한 것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다.
"굉장히 유명한 사건이다. 당시 전 세계에 방영됐다. 지금도 유투브에 나온다. 전 세계에 쇼크였다. 역사적으로 그런 예가 없을 거다. 그래서 대대적인 색출작업이 벌어졌다. '어떻게 이런 일 가능하냐?' 알아보니까 재판하러 들어오는데 쇠(금속) 검사만 했다. 약 먹는 환자들이 많으니까 약을 가져오는 것도 허용됐다. 금속이 아니면 세밀하게 검사를 안 한 거다. 그리고 독약을 가져올 거라 상상을 못했다.

그러면 그 청산가리를 어떻게 입수할 수 있었나? (감시가) 좀 느슨했던 것 같다. 재판받는 데가 어수선했고,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서 비공식으로 감옥에 (청산가리 등을) 들여올 수 있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래서 헤이그에서는 굉장히 논란이 많았다. 독약이 반입된 거는 자기들 책임 아닌가? 헤이그 경찰이 난리났다.

프랄랴크는 크로아티아에서는 영웅이었다. 시민들이 촛불집회도 하고, 크로아티아 대통령이 나와서 '우리 프랄랴크 장군 어쩌구' 하는 연설도 했다. 민족주의가 아직도 있는 거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지금의 평화는 잠정적인 평화, 가식적인 평화일지도 모른다. 강대국들이 억지로 휴전시켜서 휴전된 거여서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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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신기남, #두브로브니크에서 만난 사람, #프랄랴크, #유고슬라비아, #국제유고전범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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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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