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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남 전 의원.
 신기남 전 의원.
ⓒ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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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한때 '천신정'(열린우리당의 창당 주역인 천정배, 신기남, 정동영 그룹을 가리키는 용어)의 일원으로서 권력을 누리기도 했던 신기남 전 의원(현 대통령 직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장)에게 두 번 놀랐다. 한 번은 오래 전 사석에서 자신이 가수인 형의 노래를 수십 곡 작사해주었다고 고백했을 때고, 다른 한 번은 최근 '신영'이라는 필명으로 첫 장편소설을 내고 소설가로 데뷔했다고 연락해 왔을 때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건대 그가 썼다는 소설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수준 있는 문학작품만을 엄선해서 낸다는 유명출판사에서 그의 소설이 나왔다는 사실도 기자를 자극하지 못했다. 어쩌면 이제는 한물간 정치인의 호사로운 취미생활 정도로만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그의 소설을 집어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한물간 정치인의 호사스러운 취미생활'이라고 생각한 것은 정말 큰 착각이었다. 소설의 문장이나 구성, 기법 등도 만만치 않았지만 가장 돋보이는 것은 '발칸반도'라는 소설의 소재이자 배경이었다.

첫 장편소설, 변호사·정치가에 이은 인생 3막

그의 첫 장편소설 <두브로브니크에서 만난 사람>(솔출판사)은 크로아티아 등 발칸반도를 배경으로 두 남녀('준선'과 '유지)가 우연히 만나 여행하는 것이 큰 뼈대를 이룬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여행소설이나 연애소설이 아니다. 두 남녀가 여행하는 곳들이 모두 발칸반도의 아픈 역사나 찬란한 문화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그는 로마 등 먼 과거와 유고슬라비아 등 가까운 현재를 교차하면서 발칸반도의 역사를 보여준다. 그래서 디오클레티아누스(로마 황제)로 시작해 메슈트로비치(크로아티아 출신 조각가)를 거쳐 티토·미하일로비치·밀로셰비치·프랄랴크·카라지치 등 유고 현대사의 쟁쟁한 지도자들이 등장한다. 발칸반도에 관한 역사교양소설로 읽히는 이유다.

특히 서유럽 중심의 세계사에 기울어져 있는 우리로서는 국제유고전범 재판을 묘사한 대목은 참으로 논쟁적이면서 새롭다. 국제유고전범 재판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은 직후 독약을 마시고 자살한 프랄랴크, '발칸의 도살자'라는 악명을 얻었지만 내부 강경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유고 내전의 보스니아 전쟁을 끝낸 협상(데이턴협정)에 나선 밀로셰비치 등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다.

티토의 연인 즈텐카 밀로티치와 밀로셰비치의 연인인 미라 마르코비치(베라 밀레티치의 딸) 등 밀레티치가의 세 여인에 관한 얘기를 삽입하고, 범세르비아주의를 추구하는 미하일로비치와 유고 통합주의자인 티토의 가상 대화를 극화한 점도 역사적 재미를 높인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남자주인공에 있다. '준선'은 소설 속에서 국제유고전범재판소의 재판관으로 나온다. 준선은 한국 최초의 국제재판소 재판관인 권오곤 전 국제유고전범재판소 전 부소장을 모델로 삼았다. 그가 다음에 출간할 또 다른 장편소설 <목련의 여인>에서는 송상현 전 국제형사재판소장을 모델로 한 주인공이 등장한다. 법률가 출신의 소설가다운 주인공 설정이다.   

그의 인생 1막은 변호사였고, 인생 2막은 정치인이었다. 그리고 이제 막 소설가로서 인생 3막을 열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40여 년을 기다려온' 새로운 인생이다. 그래서 정치에 복귀하는 일은 결코 없단다. 아마도 그의 인생 중 가장 행복한 시기를 지나고 있을 그를 지난 11일 저녁 강서구의 한 사무실에서 만났다.

"소설, 나로서는 오래 기다려온 숙제였다"

- 소설이라니 굉장히 뜻밖이다.
"그렇다. 그런데 나로서는 일생을 기다려온 것이어서 뜻밖이 아니다. 무려 40년을 기다린 결과다. 내가 글을 쓰지 않은 지 40년이 넘었다. 집에서 하도 법대 가라고 해서 간 것인데 대학도 문학쪽으로 가려고 했고, 대학교 초기까지도 글을 썼다. 그래서 항상 이쪽에 향수가 있었다. 다행히 정치에 발을 끊게 되는 기회가 생겨서 그 기회를 부여잡은 거다. 마지막 기회를. 사람들은 뜻밖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오래 기다려온 숙제였다."

- 정치에서 떠난 시기에 소설 쓰기를 선택한 것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닌가?
"40년을 기다렸다가 옛날부터 하고 싶은 것을 선택했다. 내 인생의 1막은 변호사였고, 2막은 정치인이었다. 그 인생 2막이 끝났으니 인생 3막을 시작해야 할 거 아닌가? 정치는 너무 오래 했다. 너무 오래 해서 아까운 청춘이 날아가 버렸다. 그게 항상 안타까웠는데 늦었을 때가 빠르다고 하지 않나? 마침 정치를 그만둬야 해서 그것을 원래 내 인생 코스로 가는 절호의 기회로 삼았다. 지난 2년간 일체 바깥과의 관계를 끊고 글쓰기에 몰두했다. 그래서 장편 두 편을 생산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몰두해서 쓰지 않으면 작품이 안 나온다."

- 언제부터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나?
"내가 정치를 하면서도 언젠가는 소설로 써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소설 재료 등을 많이 궁리했다. 유고슬라비아를 소설의 무대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한 지는 4~5년 됐다. 전부터 이쪽에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쪽이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인간적으로 매력이 있다. 소설의 재료가 될 만한 곳이다. 그래서 이쪽에 관한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해서 책도 읽고, 자료도 모았다. 거기를 가보기 위해 내가 한국-세르비아 의원 친선협회 회장까지 맡았다. 2014년에는 의원들 몇 명하고 세르비아를 공식 방문해서 세르비아 총리도 만났다.

세르비아가 역시 유고슬라비아의 주도세력 아니겠나? 그 전에 내가 크로아티아는 가봤는데 세르비아는 못가봤다. 그래서 세르비아에 갔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세르비아가 많이 안 나온다. 사람들이 많이 흥미를 느끼고 가는 곳이 크로아티아고, 보스니아는 전쟁의 참극을 가장 많이 겪은 곳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주로 관광을 가면은 크로아티아나 보스니아를 많이 간다. 그 나라들이 사람들에게 친숙하다.

특히 크로아티아는 요즘 인기가 있는 곳이다. 크로아티아 중심으로 쓰는 것, 두브로브니크를 중심으로 쓰는 것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겠다 싶었다. 크로아티아는 역사가 깊다. 옛날 로마지역의 중심지였다. 로마의 유적이 이탈리아 반도보다 더 많다. 로마 황제도 많이 배출했다. 로마 그 자체였다. 역사와 문화가 많이 발달돼 볼 것도 많고, 공부할 것도 많다. 그래서 그곳을 소설의 무대로 삼았다."

- 소설 속 남주인공('준선')도 국문과나 불문과에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성화로 법대에 간 것으로 나오던데.
"작가가 자기를 많이 표현하니까. 그런데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 재판관으로 나오는 주인공의 모델은 따로 있다."

- 그 모델은 누구인가?
"처음 밝히는데 권오곤이라고,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재판소 재판관이다. 2004년도에 국제유고전범재판소 재판관에 임명됐고, 부소장까지 지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판사다. 내 경기고, 서울대 법대 1년 후배다. 항상 내가 자랑스러워하는 후배다. 대단한 인재다. 대한민국 법조계에서 그렇게 세계적으로 통하는 법조인이 나왔다는 것은 우리의 자랑이다. 그 사람이 겪은 것을 내가 소재로 많이 끌어왔다. 주인공은 나 반, 그 사람 반이다."
 
신기남 전 의원의 첫 장편소설 <두브로브니크에서 만난 사람>.
 신기남 전 의원의 첫 장편소설 <두브로브니크에서 만난 사람>.
ⓒ 솔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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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주인공의 모델은 권오곤 전 유고전범 재판관

- 권오곤 재판관은 소설을 쓰기 전에 만났나?
"그렇지는 않았다. 권오곤이 헤이그에 가 있어서 못 만났다. 사실 이 작품은 권오곤한테 미리 얘기 안 하고 썼다. 쓰고난 후에 보여줬다."

- 소설을 보고 뭐라고 하던가?
"내가 좋은 와인 하나 들고 가서 만났다. 권오곤이 내 책을 읽은 뒤였다. '언론에 났던 여러 가지 얘기를 인용해서 당신의 경력이나 사상 등을 소설에 끌어들였다.' 그랬더니 '어떻게 그렇게 자기가 겪은 것처럼 잘 썼냐? 정말 잘 썼다'면서 오히려 고마워하더라.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내가 혹시 소설에서 잘못 쓴 게 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너무 잘 썼다. 어떻게 그렇게 복잡한 거를 쉽게 풀어서 썼냐?'고 했다.

그러면서 딱 한 군데 고쳐주더라. 자기가 직접 경험한 사건과 관련된 한 부분이 아주 틀린 거는 아닌데 이론적으로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그래서 이 소설의 재판을 찍을 때 고치려고 한다.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고 저렇게 해석할 수도 있는데 통상 이쪽으로 해석하는데 자기는 그렇지 않다고. 자기가 심리를 진행하고 판결했는데 밖으로는 잘못 알려졌다고 하더라. 그러면 굉장히 중요한 것 아니겠나? 책임 소재를 가리는 문제인데 언론보도가 잘못됐다는 거니까."

- 어떤 부분이었나?
"마르칼레 시장(사라예보의 중심지) 포격 사건이다. 이것이 일반인들에게는 이슬람 군대가 자해행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슬람계가 세계 여론의 지지를 얻기 위해 자기 민족을 상대로 자해행위를 했다는 거다. 그런데 권오곤 재판관은 자기가 재판장이 돼서 맡은 사건인데 이슬람계가 한 게 아니고 세르비아계가 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했다. 물론 밖으로는 이슬람쪽의 자해행위로 알려져 있어서 그대로 놔둬도 되는데 담당 재판관이 그렇게 얘기해서 나중에 고치려고 한다."

- 우리가 대부분의 국제뉴스를 서방언론들을 통해 접하기 때문에 사실이나 해석 등에서 다른 게 많다.
"서로 선전전을 하다 보니 그렇게 알려진 게 많다. 보스니아 이슬람계가 내 소설을 보면 기분 나쁠 거 아닌가? 아직도 양론이 팽팽하다. 밖으로는 이슬람계가 한 것으로 알려진 게 많다. 우리나라의 전 유고대사가 쓴 책에도 그렇게 돼 있다. 물론 이슬람계가 잘못한 게 많다. 다만 내 요지는 어느 쪽도 정의는 없었다는 거다. 다 잘못했다. 전쟁에서 이기고 외부에 홍보전을 펴기 위해 교활하게 거짓말했다. 그런데 세르비아 측만 잘못했다고 하는 게 많다. 다만 크로아티아나 보스니아 무슬림도 전쟁 중에 비열한 짓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 중·고등학교 때부터 글을 쓰던 '문청'(문학청년)이었나?
"그렇다.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가 취미였다. 중·고등 때에는 신문반, 문예반 활동을 했다. 글쓰기 대회에 나가서 맨날 상타고. 그때에는 글쓰기 대회가 많았다. '문예 현상 모집'이라는 것도 많았고. 경희대에서 전국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문학작품 현상 모집을 했는데 내가 소설 부문에 당선됐다. 선생님들이 나더러 국문과에 가서 글쓰라고 했다. 그런데 그 당시만 해도 문학인의 사회적 지위가 그리 높지 않았다. 그래서 그쪽에 갈 생각을 감히 못했다. 집에서 가족들이 법대 가라고 맨날 그랬고.

법대에 가서도 글은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안 되더라. 물론 대학교 2~3학년까지는 글을 썼다. 대학문학상도 타고. 대학 다닐 때 난 고시파가 아니었다. 태권도반 만들어서 반장하고, 글이나 써서 대학신문에 발표하고 그랬다. 군대 제대하고 나서 할 수없이 직업을 가져야 하니까 뒤늦게 고시를 봤다. 해군 제대하고 나서 직업을 가져야 하는데 그때부터 소설가를 직업으로 하기는 좀 그랬다. 등단하는 문제도 간단하지 않았고.

진해에서 해군사관학교 전임 강사를 하면서 고시 공부를 병행했고, 결국 변호사가 됐다. 항상 뭘 써보려고 했는데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그게 되겠나? 수필만 여기저기 기고했다. 소설은 문학이어서 자기수련과 습작 등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그게 안 되더라. 소설은 전념해야 한다. 변호사가 되고도 그 기회를 못얻었는데 게다가 정치권에 들어왔다. 그러니 글을 더 쓸 수가 없었다.

다만 언제나 글쓰기에 향수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치를 한 10년만 하고 그만둔 뒤 이쪽으로 더 일찍 돌아왔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은 든다. 후회까지는 아니고 그런 아쉬움이 있다. 그런데 이미 지난 일을 어떻게 하겠어? 6학년(60대)이 되어서야 전념하게 됐다."
 
신기남 전 의원
 신기남 전 의원
ⓒ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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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발칸반도를 소설로 쓰게 됐나?"

-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세르비아(구 유고슬라비아 연방) 등 '발칸반도의 역사'라는 소설 소재가 아주 특별해 보인다.
"아주 늦게 문학으로 돌아왔지만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 사이에 아주 많은 경험과 지식을 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나의 큰 재산이 됐다. 그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됐으니까. 늦은 나이에 소설로 왔으니까 좀 특별한 걸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평범한 것에는 만족하지 못한다. 우선 작품의 소재부터가 특이해야 하고, 주제도 상당히 무게감이 있어야 한다. 역사와 철학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 읽는 사람이 뭔가 느끼고 배우는 점이 있도록 해야 할 것 아닌가? 

소설 쓰는 기법이나 방법, 구성도 독특하게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소설이 여러 가지로 특이하다. 문학평론가들이나 지식인들이 재밌고 잘 썼다고 평가하는데 대중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고 걱정된다. 너무 무겁고, 구성이 복잡하지 않나? 사실 여러 명의 역사적 인물들을 삽입해서 순탄하지가 않다. 내가 소재나 주제나 기법 등 여러 가지 면에서 특이한 소설을 쓰려고 작정했다. 그렇게 쓴 것에 상당히 자부심을 갖고 있다. 지식인이나 평론가들은 상당히 좋게 평가해줘서 적이 안심은 된다. 그런데 많이 팔리려면 대중이 좋아해야 할 것 아닌가? 그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웃음)

나는 내 소설에는 역사와 철학, 세계적 지리, 이런 게 들어가서 풍부한 내용이 만들어지게 하고 싶었다. 내 주변이나 우리나라 얘기가 아니라 큰 틀의 얘기를 하고 싶었고, 스케일을 크게 잡고 싶었다. 역사의 반전 속에서 전쟁 얘기가 나오고 비극이 벌어져고 민족문제들이 나오고... 그런 무대로 발칸반도가 적합하다고 봤다. 그쪽이 무지하게 복잡해서 사람들이 이해를 잘 못한다. 우리도 그쪽 역사를 등한히 했다. 서구 중심 역사만 배워왔다. 그러니 우리나라 사람에게도 생소하다. 그래서 이쪽을 소개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물론 남녀가 등장하지만 그거 못지않게 많은 역사적 사실들과 인물들, 사건들이 등장한다. 이건 '11개의 소설'이라고 본다. 전체 항목이 20개 챕터(chapter)로 돼 있는데 그 가운데 10개 챕터가 남녀가 엮어가는 스토리다. 그 10개 챕터 사이 사이에 각각 인물과 사건 얘기가 10개가 들어가 있다. 그것이 짧지만 하나의 소설이다. 역사적 인물와 사건들을 가지고 단편소설을 쓴 거다.

폼페이우스(로마의 군인이자 정치가)도 나오고 나폴레옹도 나오고, 메슈트로비치(크로아티아 스플리트 교외 미르얀 지역에 있는 미술관)도 나오고, 기갈리치(유고 내전 당시 세르비아계 스릅스카공화국군의 군지휘관)도 나오고, 프랄랴크(크로아티아의 예술가이자 군인으로 국제유고전범재판소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은 직후 독약을 마시고 자살함)도 나온다. 아드리아해(이탈리아반도와 발칸반도 사이의 좁고 긴 바다)를 둘러싼 2000년 역사에서 활약한 인물들, 그들이 엮은 역사와 무대가 나온다. 그게 10개의 소설이다. 그래서 11개의 소설이라고 본 거다.

내가 이걸 '퓨전소설'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게 여행 가이드북인지 역사책인지 사회 이념서적인지 연애소설인지... 이렇게 짬뽕돼 있는데 이것도 내가 의도했다. 누구나, 어떻게든 이 책을 활용할 수 있다. 이 책을 들고 여행을 가도 된다. 남녀 주인공이 움직인 지도까지 생생하게 넣었다. 중간중간에 그림과 사진도 많이 넣었다. 미술 등 예술 얘기가 많이 나오니까. 또 역사 얘기도 많이 나오고, 남녀가 오밀조밀한 연애를 아슬아슬하게 벌어나가기도 한다. 역사, 연애, 예술 등이 섞여 있어서 퓨전소설이라고 한 거다."

"쉬운 소설만 읽어... 나는 '소설의 위기'라고 본다"

- 그래서 겉으로는 남녀 주인공인 준선-유지의 연애소설 구조를 띠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역사소설을 읽는 느낌이었다.
"사실 내가 쓰고 싶은 주제도 그거였다. 꼭 하나 하고 싶은 얘기가 기법이다. 소설을 쓰는 서술방법에 카메라 기법을 동원했다. 좀 외람되지만 우리나라 소설에 처음 시도하는 수법이고, 내가 '카메라 기법'이라고 이름을 처음 붙였다. 작가가 영화처럼 카메라의 역할을 하는 거다. 작가가 등장인물들의 심중, 즉 머릿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영화처럼 남녀가 나누는 대화와 행동, 그들을 둘러싼 풍경 등을 객관적으로 묘사만 한다. 작가가 어느 한 사람의 마음 속에 들어가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런 게 안 나온다. 그걸 실험적으로 써봤다.

그 기법을 더 개발해 보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표현이 굉장히 어렵다. 대사와 외부로 나타난 행동만으로 표현해야 하니까. 그래서 내용이 드라이해지기 쉽다. 대사와 행동, 주변 묘사만으로도 풍성한 내용이 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고심했다. 감히 새로운 서술기법이라고 자부하는데 어느 정도 평가받을지 모르겠다."

- 소설에는 굉장히 오래전 과거와 굉장히 가까운 현재가 섞여 있다.
"현재가 지나면 과거가 되고, 그래서 현재와 과거의 구별이 없다고 생각한다. 아드리아해변을 무대로 벌어지는 사건은 과거가 현재고, 현재가 과거가 된다. 종횡무진 시대를 뛰어넘어 소설을 쓰고 싶었다.

예를 들면 메슈트로비치 미술관이 있다. 이게 크로아티아 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건데 메슈트로비치(크로아티아의 화가이자 조각가)는 20세기 인물인데 1700년 전의 디오클레티아누스(고대 로마 황제) 황제를 스플리트 해변에서 만나서 얘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게 역사적인 만남이고 역사적인 대화다. 지금도 디오클레티아뉴스 궁궐이 있고 메슈트로비치 미술관이 있어서 이걸 연결시킨 거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판타지 소설'이라고 하더라.

티토(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공화국을 건설한 공산주의 지도자이자 파르티잔 총사령관)와 미하일로비치(범세르비아주의를 추구하는 유고슬라비아왕국의 군인으로 티토의 라이벌)도 얘기를 나눈다. 이런 것이 나에게 회심의 일작이다. 어느 평론가가 '거침없이 썼다'고 하더라.

<문학의 오늘>(문학잡지)에서 오봉옥 시인과 대담했다. 20페이지짜리 대담이었다. <문학의 오늘>이 정통문학지인데 이런 데 소개되고 싶다. 현재 우리나라 문학계, 특히 소설계가 위기다. 우선 사람들이 책을 잘 안 읽는다. 더군다나 소설을 잘 안 읽는다. 책을 읽어도 재미있는 엔터테인먼트만 읽는다. 서점에 가보면 창작소설은 별로 안 나오고, 팔리는 책들만 나와 있다. 출판사들이 요리, 여행, 애들 교육책 등만 내지 문학책은 잘 안 낸다. 수지가 안 맞으니까. 그래서 창작소설이 아주 드물다.

그래도 창작소설이 나오긴 하는데 주변의 일상사에 대한 얘기, 등장인물의 감성을 표현하는 오밀조밀한 내용의 소설들만 많이 나온다. 규모가 크고, 읽는 데 수고가 드는 긴 소설들을 일반 대중들이 많이 읽지 않는 것 같다. 쉬운 소설만 많이 읽는다. 나는 소설의 위기라고 본다. 스케일(규모)이 크고 무게감이 있는 소설들이 나와야 한다. 내가 뒤늦게 나온 만큼 그런 쪽에 기여하고 싶다. 그런 소설을 쓰려면 품이 많이 들고 공부도 많이 해야 한다. 이 소설 하나 쓰는 데 1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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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신기남, #두브로브니크에서 만난 사람, #신영, #유고슬라비아, #권오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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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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