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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철거를 앞둔 16일 오후 광화문 광장 세월호 천막들.
 다음 주 철거를 앞둔 16일 오후 광화문 광장 세월호 천막들.
ⓒ 김시연

세월호 분향소에 있는 희생자들 영정을 서울시청으로 옮기는 이안식을 하루 앞둔 16일 오후 광화문 세월호 광장. 노란리본공작소(아래 노리공) 천막 안은 여전히 노란리본을 만드는 손길로 분주했다. 다음 주 세월호 천막이 철거되더라도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 있는 공방으로 옮겨 노리공을 계속 이어갈 계획이기 때문이다.
   
노리공이 옮겨갈 공방 주인인 조각가 정찬민(62)씨는 지난 2014년 7월 광화문 노리공이 만들어진 뒤부터 4년 넘게 자원봉사를 해온 세월호 광장의 산 증인이다.  

"우리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자정까지 불을 밝혔어요. 세월호 광장 상황실과 분향소가 저녁 8시쯤 문을 닫고 나면 남는 건 경찰관 2명하고 우리뿐이야. 앞으로 세월호 천막이 철수하면 이곳에 기억 공간이 들어서겠지만 밤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지만 않으면 사람들에게 잊혀지는 거야."

노리공 자원봉사자들이 돌아가며 자정까지 세월호 광장을 지킨 이유도 '세월호 광장이 아직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세월호 광장 자원봉사자들 "우리는 단원고 2학년 11반"  
광화문 세월호 광장 노란리본공작소로 들어가는 시민들. 지난 5년 동안 이곳에서 노란리본 만들기 자원봉사에 참여한 시민은 2~3천 명에 이른다고 한다
 광화문 세월호 광장 노란리본공작소로 들어가는 시민들. 지난 5년 동안 이곳에서 노란리본 만들기 자원봉사에 참여한 시민은 2~3천 명에 이른다고 한다
ⓒ 김시연
 
노리공은 세월호 자원봉사자들이 자발적으로 꾸린 단체다. 2014년 7월 초부터 이곳을 거쳐간 3천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만든 리본 개수만 30만 개가 넘는다. 이 가운데 1주일에 하루 이상 꾸준히 찾는 '단골' 자원봉사자도 20명이 넘는다고 한다. 특히 정씨는 노리공 총무를 맡아 리본 재료 수급부터 후원금, 영수증 관리까지 도맡고 있다.

노리공은 노란리본을 시민에게 무료로 배포하면서, 노란리본을 대량으로 요청하는 단체나 개인들이 십시일반 보내주는 후원금으로 재정을 일부 충당하고 있다. 하지만 리본 재료값을 대기에도 빠듯해 자원봉사자들이 자비를 털고 있다. 누군가는 300만 원으로 빔 프로젝트를 샀고, 다른 누군가는 200만 원을 들여 조형물을 세웠다.

정씨가 손수 만들어 세월호 가족들과 이곳에 기증한 조각 작품도 1000여 개가 넘는다고 한다. 세월호 광장 곳곳을 장식한 나무 조각 작품들도 대부분 정씨 작품이고, 세월호 희생자들의 얼굴을 새긴 판화 작품도 가족들 품에 안겼다.

노리공을 비롯해 진실마중대 등에서 4년 넘게 꾸준히 자원 봉사하는 시민들은 20여 명 정도다. 그동안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과 동고동락하다보니 서로 정도 많이 들었다. 세월호 가족들이 단식에 나섰을 때는 자원봉사자들도 차마 숟가락을 들 수 없었다.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에서도 세월호 광장 철거를 앞두고 그동안 꾸준히 활동해온 자원봉사자들에게 '화분'으로 감사를 표했다.

자원봉사자도 스스로 '단원고 2학년 11반'이라고 부른다. 

"단원고는 10반까지 있잖아요. 우리도 4년 넘도록 이곳에서 유가족들과 동고동락했으니 11반이라고 불러달라고 했어요." 

노란리본공작소 마지막 날, 한 곳에 모인 자원봉사자들  
 
지난 2014년 7월 만들어진 뒤 5년 가까이 광화문 세월호 광장 한 켠을 지켜온 노란리본공작소 내부 모습. 다음주 이곳이 철거된 뒤에는 중랑구 면목로에 있는 조각가 정찬민씨 공방으로 옮겨질 예정이다.
 지난 2014년 7월 만들어진 뒤 5년 가까이 광화문 세월호 광장 한 켠을 지켜온 노란리본공작소 내부 모습. 다음주 이곳이 철거된 뒤에는 중랑구 면목로에 있는 조각가 정찬민씨 공방으로 옮겨질 예정이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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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노리공에 자정까지 불이 켜지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다. 17일 '이안식'을 치르고 다음 주부터 세월호 천막들이 철거되면, 공간을 잃은 자원봉사자들이 다시 이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일까. 이날 평소보다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노리공을 찾았다. 페이스북에서 '몽스포 박'이라는 계정을 쓰는 한 자원봉사자 역시 경기도 하남에 살면서 주말마다 이곳을 찾아 자원봉사를 해왔다. 노리공에서 리본도 만들고, 분향소 상주 노릇도 하고, 안내소인 '진실마중대'에서 세월호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서명을 받는게 4년 넘게 그의 일상이 됐다.

세월호 천막 철거를 앞둔 소감을 묻자 박씨는 '목젖이 아프다'고 했다. 그는 "울고 싶은데 참아야 할 때 목젖이 아프잖아요"라며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에요"라고 소회를 밝혔다.

박씨는 "5년 가까운 흘렀지만 바뀐 건 하나도 없다"면서 "그동안 진상 규명이 된 게 뭐가 있느냐"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자원봉사자 '마포호랑이' 역시 "5년 동안 한 번도 지친 적이 없다"면서도 "이전 정권과 현 정권의 차이는 규제 정도에 있을 뿐,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규제 완화 이상의 진전은 없다"고 아쉬워 했다..

정찬민씨도 한참을 고민하다가 끝내 '마음이 아리다'고 말했다. 정씨는 "팽목항도, 안산도 철수했고 지금 이곳이 전국에 존재하는, 마지막 세월호 분향소"라며 "안 보이면 잊히기 마련인데, 구심점이 사라져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분향소 사라져도 세월호 기억하게 노란 리본 계속 만들 것"  
세월호 천막, 분향소 철거를 이틀 앞둔 광화문 광장의 풍경
 세월호 천막, 분향소 철거를 이틀 앞둔 광화문 광장의 풍경
ⓒ 류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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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공이 사라진 뒤, 앞으로 이들의 주말은 어떻게 채워지게 될까. 자원봉사자들은 하나 같이 '당분간 계속 광화문 광장에 나오겠다'고 말했다.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분향소는 사라지더라도 세월호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정씨는 "노리공을 내 공방으로 옮기더라도 주말에는 광화문 광장에 나와 노란리본을 계속 만들겠다"면서 "그렇게 해서라도 사람들이 세월호를 잊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몽스포 박씨도 "당분간 광화문 광장을 계속 찾을 것 같다"면서 "이 싸움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적어도 내 손자 세대에는 이런 일이 없어졌으면 바라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세월호 천막이 철거된 자리에는 '기억 안전 공간'이 조성될 계획이다. 대형 참사로 피해를 입은 이들을 추모하기 위한 장소로 세월호 참사 5주기를 앞둔 다음달 12일께 시민들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태그:#세월호, #광화문, #노리공, #노란리본공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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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류승연기자입니다.

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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