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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광주의 초등학생들에겐 전두환이 방탄소년단보다 더 유명한 인물이라는 걸 저분들은 잘 모르시나보죠."

자유연대와 자유대한호국단 등의 이름을 내건 보수단체가 광주 동산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학교장 사과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는 소식에 중학교에 갓 입학한 딸이 건넨 말이다.

해마다 5월이면 5.18 민주화운동 계기수업을 받는 아이들에게 전두환은 이미 '교양'에 가깝다. 또래들 중에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성함은 몰라도 그를 모르는 이는 없다고 단언했다.

중학생만 되어도, 전두환이 12.12 쿠데타와 광주 학살을 통해 권력을 찬탈했다는 정도는 대개 알고 있다. 또 고등학생이라면 당시 '3S(Sports, Screen, Sex)'라는 우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프로야구가 시작되고 컬러 TV가 보급되었다는 것쯤은 모르지 않는다. 심지어 그가 1931년생이라는 것도 알고 있으며, 하도 욕을 많이 먹어서 오래 사는 거라고 조롱하는 아이들도 있다.

지난 15일 보수단체 회원 10여 명이 '초등학생들이 집단적으로 정치 구호를 외친 건 학교의 정치 중립 의무를 위반한 행위'라며 학교장의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했다. 나흘 전인 11일 전두환씨가 광주지방법원에 출두하는 광경을 구경하던 인근 동산초등학교 학생들이 창밖으로 '전두환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친 사실을 문제 삼은 거다. 사과하지 않으면 교육공무원법에 의거해 고발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어른들 일에는 신경 쓰지 말고 시험 공부나 하라? 
 
"전두환은 물러가라" 초등학생의 외침 전두환씨가 11일 오후 재판을 받기위해 광주지방법원에 도착한 가운데, 이 장면을 지켜본 인근 초등학생들이 학교 복도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전두환을 물러가라"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전씨는 2017년 4월 출간한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고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전두환씨가 11일 오후 재판을 받기위해 광주지방법원에 도착한 가운데, 이 장면을 지켜본 인근 초등학생들이 학교 복도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전두환을 물러가라"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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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과는 별개로 전두환이라는 세 글자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광주 시민들에게 피를 거꾸로 솟구치게 하는 분노의 상징이다. 1980년 5월 광주 학살의 최종 책임자라는 사실보다, 수십 년 동안 거짓을 일삼고 발뺌하며 사죄하지 않는 파렴치함에 울분을 터뜨리고 있는 것이다. 피붙이를 가슴에 묻은 유가족들조차 욕보이는 '악마'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나오는 형국이다.

만약 구호를 외친 아이들이 나이를 서너 살 더 먹은 중고등학생이었다면 그들의 반응은 달랐을까. 저들이 말하는 학교의 정치 중립 의무는 교사든 학생이든 정치 현실에 관심을 갖지 말라는 뜻이다. 중고등학교는 말할 것도 없고,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가장 많이 할애된 단원이 정치와 법이라는 걸 과연 저들은 알고나 있을까.

전두환을 향한 분노의 야유를 아이들의 '일탈 행위'로 규정한 저들의 배짱이 놀랍다. '순진무구한' 아이들을 담임교사가 선동하고 학교장이 방조했으니,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막무가내 논리다. 저들이 생각하는 학교 교육이란, 아이들이 정치건 뭐건 어른들이 하는 일에는 신경 쓰지 말고 고분고분하게 시험공부나 열심히 하도록 지도하는 것이다.

소식을 듣는 순간, 오래된 흑백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사진 속에는 4.19 혁명 당시 앳된 아이들이 거리에 나와 어깨동무를 한 채 '부모 형제들에게 총부리를 대지 말라'는 현수막 아래서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 담겨있다. 사진 속 아이들은 당시 서울 종로구 수송초등학교 학생들로 밝혀졌는데, 교과서마다 4.19 혁명을 서술하는 단원에 삽화로 실려 있다. 고등학생과 대학생은 물론 초등학생들까지도 4.19 혁명에 주체적으로 참여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인용되는 사진이다.

저들은 이를 두고도 당시 사진 속 아이들도 교사에 의해 선동 당한 것이라고 주장할까? 아니면 '그땐 맞고 지금은 틀리다'며 눙칠까?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의 주역인 박준채는 당시 나이가 15세였고, 나라를 위해 바칠 목숨이 하나뿐이라는 게 유일한 슬픔이라고 포효했던 유관순은 3.1운동 당시 나이가 17세였다. 만약 지금의 초등학생이 60년 전 아이들보다 정치적으로 미성숙하다면, 교육의 무능과 병폐를 탓해야 옳지, 정치적 중립 운운하는 건 어른으로서 낯부끄러운 일이다. 저들이 목청을 돋우는 '대한민국의 질서'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한 줌도 안되는 사람들 그냥 차분하게 대하자"
 
 15일 오전 광주 동구 동산초등학교 앞에서 보수를 표방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전두환은 물러가라'고 외친 학생들 행동에 항의하고 있다. 해당 초등학교 학생 일부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형사 피고인으로 광주지방법원에 출석한 지난 11일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전두환은 물러가라" "전두환을 구속하라"고 외쳤다. 2019.3.15
 15일 오전 광주 동구 동산초등학교 앞에서 보수를 표방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전두환은 물러가라"고 외친 학생들 행동에 항의하고 있다. 해당 초등학교 학생 일부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형사 피고인으로 광주지방법원에 출석한 지난 11일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전두환은 물러가라" "전두환을 구속하라"고 외쳤다. 2019.3.15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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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튿날 소식이 알려지자 교무실로 몇몇 아이들이 찾아와 '우려'를 표명했다. 고작 10여 명에 불과한 저들의 집단행동이 보수 언론들에 의해 부풀려져 무슨 사건이라도 되는 양 이슈화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한 줌도 안 되는 저들의 어처구니없는 주장이 언론에 의해 과잉 대표되는 건 '가짜 뉴스'와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발끈하지 말고 차분하고 평범하게 그분들을 대하자고 주장했다. 그분들이 알바로 동원됐든 자발적으로 나섰든, 또 다른 광주 시민의 모습으로 인정해주는 게 성숙한 자세라고 입을 모았다. 저들 앞에서 '전두환과 한통속'이라거나 '나잇값 하라'는 식의 조롱으로 되받는 건 외려 저들이 원하는 바라고 말했다.

한 아이는 당장 저들의 '정치적'인 주장을 '행정적'으로 응답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주장이 옳고 그르냐를 따지기보다 그들의 집회 형식을 문제 삼자는 것이다. 집회 신고는 제대로 했는지, 소음 유발로 인한 학생들의 수업권 침해는 없는지 등을 따져 책임을 묻는 대응이 외려 효과적일 거라고 말했다. 말하자면, 저들의 '개그'를 '다큐'로 받자는 이야기다.

"5.18을 겪었다고 해서 광주 시민들 모두가 민주주의자일 수는 없잖아요. 저런 생각을 하는 분들도 있다는 걸 받아들이고 반면교사 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봐요. 민주주의에서의 적폐는 더 많은 민주주의로만 청산될 수 있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나요."

사실 여전히 유럽 각국에서 극소수일지언정 나치를 옹호하는 이들이 있고, 미국에선 과거 KKK단과 같은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버젓이 활동하고 있지 않느냐는 거다. 우리 사회라고 그런 이들이 왜 없겠느냐며, 저들은 토론과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관심과 포용의 대상이라고 말했다. '일베'의 기성세대 버전이라고 보면 딱 맞을 것 같다며, 미셸 오바마의 표현을 빌려 이렇게 매조지었다.
 
When they go low, we go high.
저들이 저급하게 가도, 우린 품위 있게 갑시다.

사족 하나. 한 아이는 저들에게 보수나 극우 등 특정 이념을 지칭하는 수식어를 붙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스스로 오랫동안 관행처럼 사용하며 우리 사회의 이념 갈등을 부추겨 놓고선, 짐짓 이념으로 대립하고 갈등하는 시대를 끝내야 한다고 충고하는 무책임하고 뻔뻔한 '기레기'들과 우리나라 언론사들을 질타했다.

그러면서 초등학교 앞에서 확성기를 틀어놓고 시위를 벌인 저들에게 대체 무슨 기준으로 보수나 극우라는 표현을 쓴 것인지 되물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념적으로 규정할 게 아니라 그저 몰상식한 것일 뿐이라는 거다. 그는 몰상식한 자들이 보수로 대접 받고 있는 게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모순이라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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