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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황교안 대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황교안 대표.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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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까지 이런 경우는 없었다. 14일 오전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현재 국가보훈처가 추진 중인 독립유공자 전수조사에 대해 "우리 해방 후에 반민특위로 인해서 국민이 무척 분열했던 거 모두 기억하실 겁니다, 또다시 우리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이라고 발언했다. 즉, 제헌국회에서 일제시기 친일파를 단죄하기 위해 설치했던 반민특위의 활동이 당시 국민들을 '전쟁' 수준으로 분열시켰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역사적 사실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동안 일제 식민지 시기 친일파 또는 친일행위와 관련해 이를 온갖 변설로 옹호하거나, 변명하거나 혹은 친일 행적을 문제 삼는 인사들을 향해 색깔론으로 공격하며 친일 청산 자체를 반대한 경우는 있어도, 정치인 가운데 나경원 원내대표처럼 대놓고 '반민특위'를 공격한 사례는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 최소한 반민특위의 활동 당시 반민특위 해체에 앞장섰던 반민족행위처벌법 대상자(친일파)들을 제외하면, 그러하다.

그런 점에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이번 '망언'은, 전당대회 과정을 거치며 '선명성'을 당의 주된 기치로 내건 자유한국당의 노선을 염두에 둘 때 한국 보수 정치세력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 '자백(?)'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는 그동안 친일파 또는 반민특위와 관련해 암묵적으로 유지되어 오던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조차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중대한 심각성을 지니고 있다. 그야말로 '거침없는 폭주'라 할 만하다.

물론 '사회적 합의'는 가변적인 것이며, 결코 절대적일 수는 없다. 하지만 현실 정치의 영역에서 어떤 합의는 그 사회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성을 보여주곤 한다. 예컨대 '히틀러를 찬양해선 안 된다'는 독일사회의 합의에는 나치즘과 같은 파시즘의 재림을 경계하는 방향성이 내포돼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사회에서 대놓고 반민특위를 공격하는 사례가 없었던 건, 적어도 정부 수립 직후 친일 청산을 위한 노력과 활동에 내포되어 있던 대의는 부정할 수 없으며, 친일 청산 노력은 기본적으로는 정당한 것이라는 지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이번 망언은 친일 청산의 정당성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는 데서 엄중한 문제가 있다. 아마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친일 청산을 매우 강한 어조로 강조한 것에 대한 자유한국당의 '선전 포고'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자유한국당의 '선전포고'는 어떻게 나왔나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이와 같이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조차 무너뜨리는 '거침없는 폭주'의 길로 나아갈 수 있던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우리 공론장이 왜곡된 데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과정에서부터 시작된 이러한 망동이 우리 정치권과 공론장에서 단순한 중계와 비판, 견제의 수준을 넘어 실질적인 제재나 처벌에 의해 적절히 걸러졌더라면 이런 '망언'이 가능했을까.

이와 함께 반민법과 반민특위가 중도에 무력화되지 않고, 친일청산이 제대로 성공했더라면, 나 원내대표의 오늘과 같은 발언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 원내대표의 이번 망언은 우리 현대사의 어두운 심연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그동안 친일파에 대한 정의는 대체로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규정되어 왔다. 즉, 반민특위라는 이름에서 고스란히 드러나듯 '친일파=반민족행위자'라는 것이었다. 일제 식민지 시기와 해방 직후는 민족문제와 계급문제가 상호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던 때다. 반민특위가 활동하던 정부 수립 초기에는 이 같은 민족주의적 입장에서의 친일파 규정 및 친일 청산 노력이 설득력을 지닐 수 있었다.

그러나 민족주의를 상대화할 수 있게 된 현재의 입장에서 친일파를 재정의하자면, 그것은 한마디로 '강자에 복종하고, 약자를 짓누르며 출세한 범죄적 인간형'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일제'라는 당대의 '강자'가 주도한 강제동원, 학살, 고문, 민족분열책 등 각종 '식민지 범죄', '전쟁범죄'에 복종 및 부역한 범죄자들이었으며, 이를 통해 '조선인'이라는 약자를 탄압하고, 자신의 영달과 출세, 안전을 달성코자 한 부류였다.

이러한 친일파의 속성은 해방 이후에도 그대로 지속됐다. 이 땅을 점령한 미군정은 8.15 직후 전국에서 우후죽순처럼 일어난 인민위원회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친일 경찰과 관공리들을 중앙과 지방에서 재기용하기 시작했으며, 이들은 일제 대신 미국이라는 새로운 강자를 등에 업고 각종 민중 탄압과 부정부패를 자행했다.

1946년 대구에서 처음 일어나 남한 각지로 확산된 '10월 항쟁'은 그러한 당시의 시대 상황을 잘 보여준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에 잘 묘사되어 있듯 10월 항쟁에 참여한 민중들은 무엇보다 친일 경찰에 대한 깊은 원한과 적개심을 드러내며 때로 물리적 폭력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해방 정국과 한국전쟁 시기를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김성칠의 <역사 앞에서>에 누누이 나타나듯 당시 양심적 지식인과 민중들 사이에서 대한민국은 '부패'라는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었다. 그 원인은 말할 것도 없이 친일파, 그 중에서도 특히 친일 경찰, 친일 관공리 출신 인물들이 주축이 된 부정부패와 민중 탄압에 있었다.

현재적 문제인 '친일 청산'... 나경원이 우려스럽다

이처럼 강자에게 복종하며 강자의 이해와 이익을 대변하고, 약자를 자신의 영달과 출세를 위한 노리개로 얕잡아 보는 친일파의 전형적 처세술은, 기실 오늘날 한국사회의 크고 작은 일상 영역 곳곳에서 지속되고 있는 문제라 할 수 있다. 친일파와 같은 인간형을 청산하지 못한 후유증이 바로 이것인 것이다.

즉, 오늘날의 입장에서 '친일 청산'은 다양한 고민을 포함하고 있다. 민중을 대하는 권력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강자와 약자가 어떻게 서로 공생할 것인지, 출세욕과 같은 다양한 인간적 욕망을 어떻게 보다 더 윤리적인 방향으로 수렴시켜 나갈지 등. 우리의 일상 윤리 및 현실 정치와 직결된,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친일 청산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듯한 나 원내대표이 우려스럽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지금 일반인들의 삶과 일상에서 제기되고 있는 문제들, 특히 강자와 약자의 사회적 불평등 관계에서 비롯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무관심과 그릇된 인식, 해결의지의 부재를 드러내는 것이나 다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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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시민. 사실에 충실하되, 반역적인 글쓰기. 불여세합(不與世合)을 두려워하지 않기. 부단히 읽고 쓰고 생각하기. 내 삶 속에 있는 우리 시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