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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사방팔방 오만가지 것에 관심이 많았다. 소심한 성격 때문에 겉으로 표출은 못했으니 망정이지, 생각으로만 치면 영락없는 슈퍼 울트라 오지라퍼다. 아랫집 아저씨는 왜 늘 화가 나 계실까, 어릴 때 커피를 마시면 왜 안 되는 걸까 등등 궁금한 것도 많았다. 

이제와 아쉬울 것까진 없다만, 그 호기심이 학구열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사소하고 쓸데없어 보이는 것에 관심을 갖는다. 그렇다고 나쁠 것도 없었다. 공상만으로도 심심할 틈이 없어 좋고, 덕분에 책을 사랑하게 되었다. 뿐인가. 사람들의,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너무도 행복하다. 

이런 내게 반가운 책이 있다. 작정하고 '잡동사니 정보'를 건네 주겠단다. AK커뮤니케이션즈의 '트리비아 북' 시리즈로, 놓치기 쉬우면서도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주제들을 골랐다고 한다. 하찮아 보일 수 있지만 문화의 획일화를 방지하고 활력을 불어넣는 '서브 컬처'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영국 메이드의 일상> 책표지
 <영국 메이드의 일상> 책표지
ⓒ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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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복이라기엔 무언가 이상하지만, 너무도 널리 각인되어 있는 의상이 있다. 검은 드레스 위에 하얀 앞치마와 모자. 백여 년 전 영국을 무대로 한 영화나 문학 작품에서는 빠짐없이 등장하는 조연, 바로 메이드(maid)다. 이들은 빅토리아 시대를 상징하는 하나의 아이콘이라고 한다.

<영국 메이드의 일상>은 타인의 집에 고용되어 급료와 숙소, 식사를 제공받으며 일하던 '가사 사용인'에 대해 말하는 책이다. 중세 시대에는 주로 남성들이 담당하던 일이었는데, 19세기에 이르러 여성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일하는 여성 중 '최대다수파'가 되었다고 한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올 쯤에는 직업 여성 세 명 중 한 명이 가사 사용인이었다고 하니, 그들이 사회를 구성하는 무척 익숙한 존재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을 들여다보는 것은 당시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영국을 중심으로 다양한 타입의 일러스트와 사진 등을 모아, 메이드들의 인생을 재구축해보고자 한다. 가장 평범한 여성들을 조연에서 주연으로 옮겨와서 그녀들의 시선을 따라가며 그들의 일과 슬픔, 분노, 사랑과 결혼, 미래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p15)

책을 보며 그간 가졌던 몇 가지 궁금증이 해소되기도 했다. 소설 속 주인공이 부유한 귀족인 경우 대저택을 관리할 수 있는 여러 명의 가사 사용인을 두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작고 초라한 집과 늘 돈 걱정을 하는 빠듯한 살림살이의 주인공도 가사 사용인을 두는 경우가 많아서 늘 의아했던 것이다.

책에 따르면, 당시 영국은 상류/중류/노동자계급으로 확연히 나뉘었다고 한다. 이때 산업혁명을 거치며 부를 축적한 노동자 계급은, 자신들을 다른 노동자 계급과 구분짓길 원했고, 따라서 숙련된 집사까지는 무리더라도 급료가 낮고 미숙련된 가사 사용인이라도 두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고 한다. 노동자 계급은 고용주이자 사용인이기도 했던 것이다. 

노동자 계급의 아이들은 십대 때 부모 곁을 떠나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흔했고, 심한 경우 겨우 여덟 살 때부터 일을 시작했다고 하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다행히 초등교육제도가 보급됨에 따라 학교를 마치는 연령이 갈수록 높아졌고, 동시에 일을 시작하는 시기도 늦어졌다고 한다. 

최상류층의 가문은 300명 이상, 하위 귀족이나 상층 중류계급은 수십 명의 가사 사용인을 두었다고 한다. 이런 경우 요리, 청소, 세탁, 보모, 가정교사 등으로 업무가 세분화되었지만, 도시로 갈수록 작은 집에 홀로 고용된 가사 사용인이 집안의 모든 노동을 도맡아 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한다.

노동시간은 길었으나 자유 시간은 적었다. 심지어 19세기 초까지는 임금을 일년에 한 번 지급했으나, 20세기에 들어서 매월 지급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임금은 직종이나 숙련 기술의 유무, 지역에 따라 큰 격차가 있긴 했지만, 대체로 좋지는 않았다. 그러나 숙식을 제공하는 직장이었던 터라, 가난한 집안의 여성들에게는 유력한 선택지가 되었다. 

박봉을 받는 가사 사용인의 지갑은 가벼울 수밖에 없었지만, 돈을 좇는 자본주의는 이들에게도 손을 뻗쳤다. 하기사 직업 여성의 3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을 놓칠 리가 없다. 책에 수록된 당시의 잡지들을 보면, 제복, 앞치마, 구두 등 유행의 변화를 알리며 이들을 유혹하는 광고들을 적잖이 볼 수 있다.

고용주에 따라 대우는 천차만별이다. 병에 걸리거나 부상당한 가사 사용인을 정성스럽게 돌봐주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아프다는 이유로 바로 해고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용인의 연애를 감시하고, 종교를 강요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이들을 위해 무도회를 열고, 정기적으로 상여를 제공하는 고용주도 있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좋은 대우를 받았다고 보기는 힘들다. 1890년대에 영국 상무성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런던에서 일하는 사용인 1,864명 중 36퍼센트가 1년 이내 이직을 했다고 한다. 또한 실제 사용인으로서 일한 여성들이 남긴 생생한 수기들은 업무 실상을 보여준다. 올바른 노동환경을 위해서는 엄격한 법과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하게 한다.

저자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관한 기사를 쓰고, 그 시대를 고증하는 역할로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말한다.
 
"여기 저기 넘치는 정보 속에서 언제나 저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주연보다도 조연, 남성보다는 여성, 어른보다는 아이, 아가씨보다는 메이드, 언제나 중심에서 살짝 벗어난 곳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녀들을 축으로 한 책을 만들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p281, 저자 후기)

<봉순이 언니>가 떠오르기도 했고, 가혹한 노동 조건을 견디며 우리나라 산업화의 주축이 되었던 이름 모를 이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중심에서 살짝 벗어난 곳에 있는 사람들', 그러나 이 사회를 이루고 있던 진정한 큰 축. 이들을 우리의 관심 한복판으로 끌어오는 것도 역사를 바라보는 후세가 할 일이 아닐까 한다. 

사소한 것에 갖는 관심과 호기심은 늘 나를 즐겁게 한다. 그리고 그 사소한 것이 실은 사소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더욱 즐겁다. 책의 완성도가 아쉬운 면이 없지 않지만, 트리비아 시리즈가 반갑게 느껴지는 이유다. 

영국 메이드의 일상

무라카미 리코 지음, 조아라 옮김,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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