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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문의 신간 <강물에 떠내려가는 7인의 사무라이>를 펼친다. 소설 창작 과정을 드러낸 메타소설이다. 물론 그걸 알고 <강물에~>를 집어든 건 아니다. 작가가 정영문이어서다. 평소 실험적 서사를 선보였기에 이번에는 뭘 어떻게 다룰지 궁금해서다. 책장을 넘기자마자 티가 난다. 메타소설 특유의 자의식 흐름이 첫 문장에서 넘쳐난다.
 
"지금은 겨울이고, 나는 텍사스에 있고, 텍사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텍사스에 관한 이야기에서 멀어지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다시 텍사스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가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소설이라는 이름하에 쓰고 있지만 어쩌면 뭐라고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일 수도 있는 이 글을 쓰고 있다."
 
 
기사문의 육하원칙을 떠올리게 하는 '언제, 누가, 어디서, 무엇을'이 연결어미 일곱 개의 쉼표 세 개로 이어진다. 아주 긴 문장이 아닌 데도 읽는 데 품이 든다. 사실 <강물에 ~>에는 뭔 얘기로 끝날지 모를 문장이 한 쪽을 훌쩍 넘는 경우가 꽤 있다. 높은 문해력이 없으면 재미남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릴레이경주처럼 쉼표 단위로 바통을 건네받아야 확충되는 그 맥락짓기를 나는 쉼표 릴레이문장이라 부른다.
 
 <강물에 떠내려가는 7인의 사무라이> 겉표지
 <강물에 떠내려가는 7인의 사무라이> 겉표지
ⓒ 워크룸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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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 릴레이문장이 태어난 건 <강물에 ~>가 "의식의 흐름 기법과 의식의 마비 기법과 의식의 착란 기법이 뒤섞인 소설"이어서다. 사실 이건 정영문이 처음 시도하고 소개한 건 아니리라. 내 의식도 사는 중에 알게 모르게 그런 뒤섞임에 휩쓸리니 그렇다. 차이라면, 나처럼 망상이나 공상으로 그치고 마는 그걸 정영문은 소설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 데 쓴다는 거다.

첫 문장에서 드러나듯, <강물에~>의 서사는 텍사스에서 시작해 텍사스에서 끝난다. 텍사스 친구 집에서 머문 동안의 삶을 다룬 얘기인데, 사건 위주보다는 한갓지게 지내는 중에 맞닥뜨리는 의식의 흐름이 주를 이룬다. 말이 안 되는 말들을 부러 많이 전개시키는 게 서사의 플롯인 셈이다. 그러니까 "말이 안 되는 어떤 생각이" "말이 되는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설득력 있게 말이 되"는 걸 보게끔 하는 것이다.

통념을 깨는 그 의식의 변화를 보아내야 재미나고, 그래야 <강물에 ~>의 결말에 대해 공감할 수 있다. 세상의 "그 지긋지긋하고 터무니없는 풍경"이 눈에 거슬려서 다시 보고 또 보게 되는 건 "그 지긋지긋하고 터무니없는 풍경"이 "아무런 쓸모가 없지는 않"다는 데 동의하는 것과 같다. 의역하면, 그런 풍경에 부대끼다보니 그걸 만든 사회 구조에 대해 눈떴다는 역설이다.

그 역설은 나름의 세계관을 반영한다. "글이나 쓰는 사람에게 미래는 지금도 없었고 미래에는 미래가 더 없을 거라는 생각"이다. 결코 낙관적이지 않은 미래상이다. 그러나 <강물에 ~>는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대신 "괜히 도랑이나 구덩이를 파는 것과 마찬가지인 이런 글"을 계속 쓰겠다고 맘먹는다. "괜히"는 '그냥'이자 '내키는 대로'다. "강물에 떠내려가는 7인의 사무라이"의 이미지가 그것이다.

그런 글쓰기는 대의명분과 상관없는 '소설의 사소화'에 다름 아니다. 가라타니 고진이 말한 근대문학의 죽음이다. SNS를 통해 자기 삶을 공유하는 게 대세인 요즘 세대에게 거대 서사는 뜨악하다. 타인의 시선은 아랑곳없는 "그녀"의 행위를 "근사하게" 여기는 "나의 7인의 사무라이"가 그걸 입증한다. 여기서 "7인의 사무라이"는 작가의 "머릿속에 출현"해 늘 "함께하는" 허구적 존재, 즉 구상 중인 소설 속 인물이다.

그러니까 <강물에 ~>에서 '소설의 사소화'는 순간순간에 충실한 삶의 태도다. 그러한 삶에 정처(대의명분)는 따로 없다. 그렇다고 각자도생을 옹호하는 건 아니다. SNS의 소통 지향을 떠올리면, 개인의 사소한 삶마저도 존중하는 공생을 지향한다고 볼 수 있다. 그건 누구든 존중 받아야 한다는 평등사상에 가깝다. 다른 견해를 적대시하는 댓글들이 여전히 많은 지금 여기에서 '소설의 사소화' 시선은 분명 쓸모 있다.

정영문의 다음 실험적 서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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