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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난민의 대량 유입 문제가 독일 사회의 난제로 부각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해 봄, 독일의 한 언론매체(TAZ)가 '동독주민도 이민자인가?'라는 낯선 질문과 함께 동독 정체성과 이민을 비교하는 토론을 진행했다. 

한 회의석상에서 동독 주민이 난민업무를 담당하는 동독의 한 주정부 장관에게 던진 문제제기, '외국 난민의 사회통합은 중요시하면서 동독주민의 사회통합은 충분히 다루지 않고 있다'로 시작된 이 토론. 이 토론은 동독 주민의 사회통합 문제를 넘어 동독인 정체성에 대한 논의를 끄집어냈다. 

동독주민을 막론하고 개인의 사회통합 문제는 개인의 정체성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동독주민의 사회통합에 대한 논의가 동독 정체성 논쟁으로 확대된 것은 독일 통일 후 한 세대의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들의 정체성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독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왜 그것은 통일 후 한 세대가 지나가는 지금까지 계속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걸까. 

사라진 동독, 생겨난 동독 정체성    
 '동독주민도 이주민이다'라는 주제를 다룬 독일언론 기사.
 "동독주민도 이주민이다"라는 주제를 다룬 독일언론 기사.
ⓒ 강구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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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 정체성은 통일된 독일사회에서 살아가는 동독인이 스스로를 서독인과 구별짓는 과정에서 형성된 일종의 집단정체성이다.

통일 후 동독인의 문화·사회 정체성 문제를 다룬 사회학자 폴락은 동독 정체성을 통일 이후 동서독 간에 여러 가지 차이가 존재하는 가운데 동독인들이 서독인들과는 다른 자신의 상황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특수정체성이라고 설명한다.

동독 정체성에 대한 논의가 대체로 경제적 측면에서 동독인이 서독인보다 열악한 상황에 있다는 것을 주된 근거로 한다는 점에서 동독 정체성은 실체가 없는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렇지만 동독주민이 직면하고 있는 경제 상황이야말로 통일 후 그들이 처한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기 때문에 이를 단순히 경제적 상황에 국한된 설명으로 과소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동독 출신의 심리학자 마쯔 또한 동독 정체성이 동독 시절에는 없다가 동서독 주민이 한 사회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것이라고 주장한다. 수십 년간 다른 사회에서 생활하면서 서독인과는 상이한 사고를 가지고 있던 동독주민이 통일 후 서독인과 구분되는 상황을 고민하면서 생겨난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처럼 동독 정체성은 동독인이 통일 후 갖게 된 새로운 자기 인식의 단면을 보여주는, 동독인의 입장에서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자기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동독 정체성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서독 정체성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이미 그들이 대세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논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버릴 수 없는 동독

동독 정체성이 통일 후 생겨난 것이라면 자연스레 동독인이 서독인과 자신을 구별 짓기 시작한 이유에 대한 질문이 제기된다. 40여 년간 지속됐던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의 감격을 누렸던 동독주민들이 통일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동독정체성을 생각하게 된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해 동독 출신 신학자 슈토이스로프는 1차적으로 통일과 함께 동독 시절 존재하던 것들이 사라져 가는 상황을 무기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동독주민의 경험이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늘 가던 집 앞 상점의 같은 자리에 진열되어 있던 친근한 물건이 어느 날 갑자기 다른 낯선 것으로 바뀌어 있던 경험, 이웃들이 모이는 사랑방 역할을 했던 공동체 공간이 서독의 슈퍼 프랜차이즈로 바뀌어버린 경험, 삶의 자부심이 서려 있던 직장이 하루아침에 문을 닫았던 경험 등 일상을 이루고 있던 많은 것이 없어져 가는 상황에서 동독인들은 말할 수 없는 상실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즉, 통일 전까지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많은 동독의 것들이 송두리째 사라져 가는 상황에서 '나'를 지키기 위한 저항으로 동독 정체성을 붙잡게 됐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통일 후 접한 새로운 체제에 대한 실망감 또한 동독 정체성 출현의 원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통일 초기의 급격한 체제 전환 과정에서 여러 가지 혼란을 경험했지만 동독주민들은 그것이 가져올 긍정적 변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상황을 인내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도 대량실업 등 동독 지역 경제와 관련된 상황이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새로운 체제에 대한 실망감이 점차 커졌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마음에 묻혀 있던 동독에 대한 생각들이 조금씩 표출되기 시작했다. 즉, 통일 이후의 사회변화 상황에서 구동독인이 경험하고 느꼈던 심리적 정서적 공항의 결과가 동독정체성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동독에 대한 재평가

동독인들의 자기주장(Selbstbehauptung) 성격을 가지고 있는 동독 정체성은 1990년대 초중반부터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우선 동독에서의 개인사, 일상 경험의 재해석 현상이 나타났다. 통일 초반 무렵인 1992년, 다수의 동독인이 "동독시절 삶이 전부 나쁘지는 않았다(87%)" "동독에서 만족스럽게 살았다(59%)"는 의견을 보였다. 통일 초기부터 누적된 새로운 체제에 대한 회의적 인식이 분출되면서 "이전 것이 다 나빴던 것은 아니다"라는 동독에 대한 긍정적 정서가 확산된 것이다.

이는 더 나아가 동독 체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을 가져왔다. 동독에는 실업이 없었을 뿐 아니라 육아·복지·여가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동독체제가 서독체제보다 강점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 적극적으로 언급됐고, 통일 전 동독은 '아이들의 천국' '공동체 사회' '스포츠 국가'로 설명됐다. 

동독에 대한 긍정적 재해석이 통일 이후 도매금으로 평가절하됐던 동독 체제에 대한 새로운 평가로 이어진 것이다. 초콜릿크림, 음료 등 동독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동독산 물건이 하나 둘 세상에 선보이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이다. 서독산에 비해 품질이 떨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통일과 함께 서독산 물건들에게 마트 진열대를 내줘야 했던 동독 물건이 동독을 그리워 하는 정서에 힘입어 다시 동독 지역에서 재기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방어기제로서 동독 정체성?
  
베를린 장벽 붕괴를 묘사한 미술작품 동독인들은 이 작품을 보며 어떤 감정을 느낄까?
▲ 베를린 장벽 붕괴를 묘사한 미술작품 동독인들은 이 작품을 보며 어떤 감정을 느낄까?
ⓒ 강구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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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후 동독주민 사이에 형성된 동독정체성이 그 자체로 문제라고 할 수 없다. 변화된 상황에서, 오늘날의 나를 있게 한 근원에 대한 재인식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러한 동독 정체성이 자신에 대한 자연스러운 인식의 결과가 아닌 통일 후 새로운 상황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노력의 산물로 생겨났다는 것이다. 즉, 대량실업 경험으로 대표되는 통일 후의 혼란 속에서 자리 잡기에 실패하면서 동독 정체성을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동독 정체성은 동독인들이 통일 후 직면한 새로운 상황에 대해 냉철하게 인식하고 대응하기보다 외부 상황에서 대해 방어적 자세를 취하는 방식으로 작용했다. 새로운 체제에서 직면하게 된 문제에 대한 반감으로, 동독 체제가 가지고 있던 한계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개인의 삶에서 좋았던 것 등에 대해서만 언급하는 태도가 그러한 특성을 보여준다.

물론 그러한 태도를 가지게 된 데에는 현실 상황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과 함께 서독인에 비해 열등한 집단으로 구별되는 듯한 상황에서 느낀 사회적 하락의 경험도 한 몫 했지만.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는 동독 정체성

통일 이후 한 세대의 시간이 지나면서 동독주민이 처한 사회적 상황이 변화해 동독 정체성이 회자되기 시작하던 1990년대 초반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2017년에 실시된 조사결과에 따르면 동독주민 가운데 60대의 경우 25%가 자신을 '독일주민'으로 인식하는 반면, 40대에서는 40%가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새로운 체제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비율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 동독 정체성은 여전히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전보다 다소 완화돼 이제는 그것이 개인을 규정하는 여러 정체성 가운데 하나처럼 인식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그렇지만 동독 정체성은 동독에서 실제로 생활했던 경험이 있는가와 무관하게 여전히 동독 내 지역, 연령 등의 특성을 초월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특히 동독 주민 가운데 일부 계층의 경우에는 더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30년 전과 비교할 때 격차가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동서독 간 소득 차이, 일자리를 찾아 젊은 세대가 대거 빠져 나간 일부 지역에서 느끼는 황량한 상황 등은 여전히 이들이 서독과는 다른 상황에 놓여 있다고 느끼게 하는 구조적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늘어나는 난민에 대한 노골적 반대를 표명하는 극우주의 성향의 정당이 구동독 지역에서 세력 확대에 성공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토대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새로운 정체성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난민 문제 연구가인 포로우탄(Foroutan)은 자신의 나라를 '잃어버렸다'는 점에서 동독주민과 난민은 유사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견을 보였다. 통일 후 새로운 체제에 직면했던 동독주민들도, 자신이 살던 터전을 떠나온 난민들이 겪었던 것과 유사한, 새로운 상황에서 심리적 정서적 어려움을 느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직면해 있는 상황의 유사성에도 일부 동독 지역에서 자신과 유사한 상황에 있는 난민을 거부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이로 인해 서독 지역에서도 빈번히 나타나고 있는 현상임에도 극우주의 경향은 동독지역의 특성을 보여주는 대명사로 인식되고 있다.

동독 정체성, 동독주민의 사회통합에 대한 논의가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지만 문제에 대한 대응 방안은 사실 새롭지 않다. 통일 후 개인의 생활수준은 좋아졌음에도 삶에서 적지 않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그들이 적절히 사회에 통합됨으로써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게 하는 동시에 그들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계속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전부는 아니지만, 어찌 보면 매우 단순하면서도 중요한 사실은 각 개인의 상황에 따라 상이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즉, 직업을 비롯한 개인 상황이 안정돼 있을수록 새로운 정체성에 더 가까운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통일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정체성의 문제에 직면해 있는 동독인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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