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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만 8915원. 열흘 남짓 이어진 사업주와의 협상이 종지부를 찍었다. 미지급된 임금이 입금됐다. 두 달 동안의 아르바이트 생활이 드디어 정리됐다.

방학 동안 원래는 과외를 할 생각이었다. 의대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해부학이 마침 끝났고, 학교에 갇혀 살던 삶에서 벗어나 환기가 필요했다. 생활비도 보태야 했다. 그런데 5개월간 고생한 머리를 쉬지도 못하게 또 굴려야한다? 게다가 과외는 너무 쉽게 돈을 버는 길은 아닌가라는 의심이 자주 들기도 했다. 그래, 머리에게 방학을 주고 몸을 좀 굴려보자.

고등학교 친구들이 대부분 입대하는 나이이고, 친구들과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문득, 군대를 가지 않는 의대생 특성상 학교·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생활'을 해볼 기회가 드문데, 공부만 할 줄 아는 '헛똑똑이'가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온실의 화초라니. 내가 원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택배 상하차를 염두에 두었는데, 체력이 좋은 애들도 다 쓰러진다니 약값이 더 나오겠다 싶었다. 그렇다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카운터에 앉아 있기보다는, 위아래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즉흥적이고 다양한 경험을 하는 직종을 택하고 싶었다. 선택지는 식당 서빙으로 좁혀졌다.

아르바이트 면접에도 학연과 지연이...

학기가 끝날 즈음 근처 고깃집·레스토랑·횟집 같은 사업장들에 전화를 돌렸고, 집에서 10분 거리의 고깃집에서 연락이 왔다. 방학을 맞은 기쁨을 채 만끽하기도 전에, 종강 당일 면접을 보러 갔다.

"학생이네요? 집은 어디에요?"
"대전 인근의 Y시입니다."
"우리 고향이 거긴데, 아직도 동생은 거기서 보쌈집을 해요. 고향 사람이라니, 반가워요."


이런 게 사회 생활인가 보다. 말로만 듣던 고향사람, 동문이 실제로 이런 역할을 하는구나. 학연의 도움이었을까. 그렇게 같은 날 면접을 보기로 했던 4명을 제치고 나의 보쌈집 서빙은 시작되었다.

월급 210만 원, 주 6일, 9~12시간의 서빙. 고등학교 때는 공부만 했고, 대학 와서 돈 벌어본 일이라고는 과외밖에 없는 대학생에게는 가혹한 시간표였다. 일하게 된 가게는 무거운 그릇으로 삶은 고기를 썰어 파는 대전의 맛집인데, 저녁에는 손님들이 늘 줄을 섰다. 50평 남짓한 공간에 꽉 찬 사람들과 고기냄새, 분주히 움직이는 5명의 웨이터를 상상해보시길.

"하다야! 가위는 놓고 가니!"

누군가에게 '멍청하다'라는 말을 태어나서 처음 들어봤다. 실제로도 내가 이렇게 일머리가 없는 줄 몰랐다. 심지어 중학교 때까지는 산골에서 농사를 짓고 일을 하며 지냈다는 자신감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제발 도망가지만 마"

사장님 왈, 내 앞에 그만둔 직원들이 한 트럭인데, 그 중 마지막 사람은 3시간을 일하고는 은행을 간다며 도망갔더란다. 도망갈 만했다. 핸드폰을 사용할 수 없었고, 대부분의 시간을 5~10kg남짓한 항아리와 음식을 날라야 했다.

술 마시고 노래 부르는 진상(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리 불리는)들은 어찌나 많던지. 상은 왜이리 안 닦이는지. 항아리는 무거웠고, 186cm의 거구에게 좌식상으로의 서빙은 허리에 좋은 일 일리 없었다. 상추를 더 달라는 사람들은 어찌 이리 많은지, 테이블 번호는 왜 지그재그로 있어 외우기 힘든지.

세상에나! 앉는 것이 이렇게 고마운 일일 줄이야. 발은 부었고, 하루 종일 소리지르던 목은 쉬었다. 첫 주에는 살이 6kg정도 빠졌다. 밥으로 보쌈을 먹었는데도 말이다! 친구 왈, "돈 주고, 다이어트도 시켜주고, 좋은 직장이네!"
 
 본 사진은 위 기사와 직접적 연관이 없음
 본 사진은 위 기사와 직접적 연관이 없음
ⓒ 류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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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의무

일하는 초반에는 사업주의 입장에서 노동자의 자세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돈을 받았으면 책임감을 가져야지. 두 달 간 지각 한 번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것이 당연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나 보다. 다른 곳에서는 폰만 보거나, 건성으로 대답하거나, 편의점의 경우에는 문을 닫고 게임을 하고 오는 친구도 있다 들었다. 우리 업소에서도 지각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었고, 손님들에게 인사말을 빠트리는 친구도 있었다. 사장님도 참 힘들겠구나 싶었다.

일할수록 하루 하루를 굴러가게 하는 노동자들에게 감사했다. 누군가의 노력에 의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노력으로 우리가 한 끼를 먹었다. 먹는다. 단지 교과서에서 문장으로만 알고 있던 것을 넘어서서 온몸으로 느꼈다. 상추와 고기를 가져오는 거래처 사장님들과 일꾼들, 조리하는 주방 사람들, 서빙하고 치우는 우리, 그 쓰레기를 다시 치우는 환경 미화원분들.

'한국은 사람이 가장 싼 나라'라던 기사를 봤던 기억이 났다. 임금이 정말 낮구나.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데, 고생하는데. 의사는 정말 돈을 많이 버는 직종이구나. 우리만(의사들만) 고생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구나. 새삼 돈을 벌고,. 가족을 부양하신 어머니·아버지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시간이 어찌나 잘 가던지. 벌써 첫 달 월급이 나왔다. 그런데 이런, 최저임금으로 계산해보니 돈이 너무 많이 빈다. 시급 3만 원짜리 과외를 할 때는 따로 계산 할 일이 없었는데, 인터넷 검색을 몇 번 해보니 최저임금·주휴수당·휴일수당·야간수당·연장수당 등 수당이 참 많았다. 법조문이란 것이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줄 처음 알았다.

아무리 임금이 싸고, 사람을 막 대하는 곳일지라도, 노동자들을 지키기 위한 법들이 있다. 근로기준법·최저임금법 등이 그렇다. 말 그대로 '최저'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그저 서 있는 것 만으로도, 그 사람에게 노동과 지시를 내릴 수 있기 위한 최소한의 돈이다. 그러나 이미 사장님과도 가까워졌고,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은 어려웠다. 정당한 일인지, 의리를 어기는 것은 아닐지 염려됐다. 마치 타인의 뒤통수를 치는 느낌이었는데, 그런 사람으로 기억되기는 죽어도 싫었다.

그러던 중, 지난 직원이 미지급된 임금 3만 원을 달라는 상황을 보게 되었다. 나는 당연히 사장님이 지급하실 것이라 생각했는데 되려 사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는 줄 아나 본데, 그렇지 않아."

이 문장이 아니었다면, '좋게 좋게' 넘어갔을지도 모르겠다. 이 문장이 모든 것을 바꿨다.

내 생각은 사장님과 달랐다. 사람들의 작은 움직임과 준법 정신이 모여 우리는 민주화를 이뤄내기도 했고, 헌법 위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마구 휘두르던 대통령을 몰아내기도 했다. 한 명의 의사가 박종철 열사에 대해 양심고백을 하지 않았다면, 한 건물 관리인이 태블릿 피시를 넘겨주지 않았다면, 우리들은 더 퇴보된 세상에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움직임에 나도 더하고 싶었다. 노동자들·혁명가들·사상가들·전태일 같은 열사들이 피 흘려 지켜낸 권리를 해치고 싶지 않았다. 돈 몇 백의 문제, 의리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을 뛰어넘는 원칙의 문제였던 것이다!

악의 평범성

사장님의 태도는 일종의 한나 아렌트가 2차 세계대전 전범을 보며 쓴 책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말하던 "악의 평범성"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겠다. 우리 사회는 헤지펀드부터 재벌의 갑질까지 거대한 자본의 횡포도 만연하다. 그런 거대한 횡포에서 사회적인 악이 비롯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그런 악만이 세상을 병들게 하는 것이 아니다. 작은 악·소자본가·중소기업부터 시작되는 사람들의 삶에 밀접한 악도 존재한다. 자신들이 모르는 사이, 그저 누군가가 묵인해서 생기는 조그마한 악, 그리고 그 악이 눈덩이처럼 굴러가 사회를 병들게 한다. 이 일은 그런 종류의 악으로 여겨졌다.

먼저 밝혀둘 것이 있다. 이 집이 영세한 업자였다면 이런 결심 또한 망설여졌을지도 모른다. 최저임금이 오르기는 했고, 그래서 사업을 하는 처지에서는 분명 부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집은 지역에서 술 매출 1위이자 좌석 수가 아주 많은 데도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는 집. 영세한 업자는 아니지 않은가.

나름 중소 기업에, 건물주이고, 골프 클럽을 알아보는 그런 소자본가에 관한 이야기다. 과연 이 사람이 돈이 없어서 월급을 제대로 주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으려 악했다기보다 무지함의 소치로 빚어진 일일 것이다.

아직도 멀고 먼 한국의 노동자 권리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을 쉬게 하라!"
"근로자를 혹사하지 말라!"
- 1970년 11월 13일, '근로기준법 화형식'에서, 전태일 열사


분명 전태일 열사가 청계천에서 일할 때보다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상황은 나아지고 있다. 논란은 있지만, 주 52시간을 일하게 되었다. 주휴수당을 챙기고, 최저임금을 준수하는 업체들도 많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대학생 신분으로 조금 더 자유로운 나조차도 16일을 연속으로 일해야 하고, 하루 12시간을 근무해야 했으며, 주휴임금을 받지도 못했는데, 하물며 그 일자리가 정말 자신과 가족의 생계와 관련된 이들은 얼마나 더 착취당하고 있을까.

나부터 나서기로 했다. 물론, 원칙만이 있는 세상, 모든 것이 완벽하게 돌아가는 세상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니다. 나 또한 사람이고, 사람은 누구나 작고 큰 잘못을 저지른 다는 것 또한. 나를 포함한 누구나 길가에 버린 쓰레기가 있고, 무단 횡단 한 도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자면, 도덕적 무결성을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중대한 법적, 도덕적 잘못에 대해서는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핵심이다. 성폭행·살인·횡령과 같은 종류의 범죄에 '임금 미지급'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처음 깨달은 노동법과 노조의 필요성, 그리고 고마움

임금을 제대로 받기 위해 먼저 최저 임금을 정확하게 계산해야 했다. 노동법과 최저임금법을 공부하고, 다양한 상황을 상정한 방정식과 보고서를 만들었다. '최고장' 이라는 것도 처음 써보았다. 아니, 법조문은 왜 이렇게 어려운지. 지난 학기 공부한 해부학'의 영어, 라틴어들보다 훨씬 어렵다 느껴졌다. 변호사라는 직업이 괜히 있는 게 아니구나, 대체 이건 같은 한글이 맞나 싶었다.

혼자 고군분투 하던 중 도움의 손길을 구했다. 원래 노동조합은 만날 싸우기만 하는 곳이라는 인상이 없지 않았는데, 인터넷으로 다양한 노무 상담 또한 운영하고 있었다. 이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난생 처음 알았고, 노동자들을 위하는 사람들과 조직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절실히 했다. 이들의 도움과 일주일 간의 공부 끝에 '최고장'과 '미지급 임금 계산표', '최저임금법 및 근로기준법 해석'을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최저 임금을 받기 위해 사장님과 협상이 진행되었다. 처음에는 하나씩 설명을 해드렸으나, 사장님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을 보이셨다. 당신은 법을 준수했다는 것이다. 되려 노동청에 가자는 격양된 반응을 보이셨다.

"아니 난 법 다 지켰어! 노동청을 가봐!"

하지만 사람의 일을 사람끼리 해결할 수 있다면 좋지 않겠는가. 그간 사장님과 나는 한 식구였다. 법의 도움을 받기 전 사장님을 설득하는 길도 있을 것이다. 서로 진정하고 차근 차근 설명을 해나가자 사장님도 이해를 하기 시작하셨다. 본인은 잘 모르셨다고 한다.

충분히 이해한다. 사장님은 정말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직원 없이 사모님과 하루 종일 경영하던 작은 가게에서 현재의 가게를 만든, 전형적인 자수성가 사업가시다. 당신도 당신의 방식이 주먹구구식인 것은 알고 있었다고 한다. 잘 배우지 못했고, 정말 몰랐다고 한다.

나도 납득했고, 사법기관을 거치지 않고, 앞으로 사장님이 다른 직원들에게 법을 지킬 것을 약속 받는 걸로 상황은 끝이 났다. 미처 다 받지 못한 내 임금이 즉시 입금되었음은 물론이고.

더 나은 노동 환경을 위한 세 가지 제안

이 일련의 경험은 여러 가지 생각을 남겼다.

하나는, 노동법이 학교와 사회에서 더 철저히 교육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법을 몰라서 어기는 사람과, 몰라서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게 해야 한다. "법은 권리 위에 잠자는 사람을 구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 역시 일하기 전에는 노동법에 대해 잘 몰랐다.

같이 일하던 직원 15명, 알바를 하는 고등학교 친구들, 의대생 동기들도 아느냐 물어보면 모르거나 "관심 없어"라는 답변을 받았다. 나 또한 그나마 대학교 때 '생활과 법률'을 수강하지 않았다면 이런 법의 기초조차 몰랐을 것이다.

두 번째는 노동 임금 체계가 더 단순화되고 직관적이어야 한다는 것. 분명 한글로 썼는데, 영어로 공부하는 해부학보다 어려운 것은 말이 안 된다. 법은 조금씩 개선되고 있지만, 판결문들과 시행령은 여전히 일반인의 이해를 넘어선다.  비단 내가 이과여서 생기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나 스스로도 철학과 문학을 더 재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또한 법조문을 보여준 다른 교대 친구도 한참을 지나서야 이해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더하여,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을 개선하는 것은 하지만 먼저 우리가 알려고 노력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사장님처럼, 혹은 어떤 노동자처럼 '귀찮아서' 알려 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 법의 유명한 격언처럼, '다른 누군가가 내 권리를 위해 싸워주지는 않는다.'

세 번째, 단결된 노동자의 중요성이다. '인터네셔널가'에서 말하듯, 단결한 노동자들이야말로 최소한의 인간다운 권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 한국의 노조 조직률이 11프로에 못 미친다던데, 과연 노동자의 하나된 목소리가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된다. 무슨 거창한 사회주의, 공산주의 혁명을 하자는 게 아니다. 법에 보장된 권리를 누리는 사회, 공정한 대우를 받는 사회를 꿈꾸는 것이다.
 
삼각김밥 하나 사는 데도 손이 떨려요


나는 9주간의 아르바이트 끝에 나는 다시 학교에 복귀했다. 지금 상태의 나는 8530원짜리구나, 내가 알던 좁은 세상을 넘어 정말 저임금 노동자들이 많구나, 공부에 다소 게으름이 일던 시기였는데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동기도 강해졌다. 미지급 임금 120만 원 남짓의 돈은 교육 기관에 기부했다. 좋은 뜻에서 한 일이니, 좋은 일에 쓰였으면 했다.

공부를 왜 해야 되냐는 사람들에게 권한다. 아르바이트 한 번 해보시라. 어떤 대외활동보다도 값진 경험을 당신에게 선사할 것이다. (물론 이 말이 학력만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말은 아니다. 누구나 자신의 재능이 있고, 예술가나 블루 칼라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도 있다. 공부 못해서 낮은 임금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들에 대한 업신여김도 당연히 아니다. 다만 전문직을 택한 본인의 입장을 서술한 것일 뿐.)

늘 받지 못한 것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나를 키워주신 어머니, 아버지께 더 감사하게 되었다. 청소하시는 분들께 더 크게, 다정하게 인사한다. 돈도 더 살뜰히 쓴다. 쓸 때면 이게 몇 시간 일해야 하는 거지, 하며 손이 떨리곤 했다. 삼각김밥 하나를 사는 데도 말이다. 아직 밥벌이하는 나이가 아니더라도 밥을 벌어본 경험은 내 삶을 보다 건강하게 했음을 믿는다. .  

뜨거운 배움의 시간이었다, 책상 앞에서 하는 공부 못지 않게 세상으로 나가서 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어디선가 들었음직한 말을 곱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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