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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는 내 옆에 점점 쌓여 가는 책 더미를 바라보며 한숨을 쉰다. 나는 왜 이렇게 다 읽지도 못할 책들을 사들이고 있는 걸까. 물론 책이 좋아서 읽고는 있지만, 집 안이든 머릿속이든 온통 뒤죽박죽 정리가 안 되는 느낌이다.

마음을 다잡고 벼르고 벼르던 벽돌 책을 한 번 진지하게 읽어볼까, 하고 읽다가도 금세 집중력이 떨어진다. '아, 내 옆에는 이렇게 읽을 것들이 쌓여 있는데, 이 한 권을 붙들고 있으면 저 책들은 언제 다 읽나' 하는 생각이 자꾸만 끼어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것들을 다 읽으면 뭐 하나, 금방 다 잊어버리는데. 이것이 진정 시지프스의 고행 아닌가. 읽어도 읽어도 남는 것이 거의 없고 끝도 없으니 말이다.

누군가 "그 책 읽어 봤어?" 하고 물으면 "읽어 봤지, 좋아." "그래? 어떤 내용인데?" "음, 그게…" 이따위 말밖에 할 수 없는 독서생활이 다 무엇이란 말인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나의 책 읽는 방법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초심으로 돌아가 책장 한쪽에 꽂혀 현자의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책들, 독서법에 대한 책들을 찾아본다.

"선생님들, 이번에도 저를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

이럴 때 즐겨 찾는 책은 오에 겐자부로의 <읽는 인간>, 히라노 게이치로의 <책을 읽는 방법>, 윤성근의 <나는 이렇게 읽습니다>이다. 그리고 이번에 꽤 괜찮은 책을 한 권 만났다. 따끈따끈한 신간이다. 신정철의 <단 한 권을 읽어도 제대로 남는 메모 독서법>이다.

네 권의 책 모두 책 속에서 뭔가 길을 잃은 것 같아 불안해질 때 읽으면 도움이 되는 좋은 책들이다. 더불어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나 하나뿐은 아니구나. 책을 읽는 사람들 모두 한 번쯤은 이런 고민을 하는구나 하는 안도감도 느낄 수 있다.

오에 겐자부로의 <읽는 인간>이 저 높은 곳에 있어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경지에 이른 책이라면, 나머지 세 권은 가르침을 따라 실제로 시도해 볼 만한 방법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신정철의 <단 한 권을 읽어도 제대로 남는 메모 독서법>에 나온 방법들은 지금 당장 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독서법을 소개하고 있다. 쉬운 설명과 예시, 그림과 사진, 도표까지 곁들이고 있으니 이보다 더 친절할 수는 없다.
 
<단 한 권을 읽어도 제대로 남는 메모 독서법>, 신정철 지음
 <단 한 권을 읽어도 제대로 남는 메모 독서법>, 신정철 지음
ⓒ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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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권을 읽어도 제대로 남는 메모 독서법>(아래 <메모독서법>)의 저자 신정철은 서울대학교 응용화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전자회사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읽기와 쓰기의 경계를 넘나들며 삶의 지평을 넓혀가는 독서 애호가로서 독서 모임 '성장판'과 블로그 '마인드와칭'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그의 첫 번째 책 <메모 습관의 힘>에서 독자들이 가장 좋아하고 실천하고 싶어 한 내용이 '메모 독서'였다고 한다. 그런데 전체 10개 장 중 한 장 분량으로밖에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그 부분을 따로 정리해 책을 한 권 출간해도 좋겠다는 요청이 많아 이 책 <메모 독서법>을 출간하게 되었다고.

이 책은 '메모 독서'의 방법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위해 책에 밑줄을 긋는 요령부터 메모 독서의 효과, 독서 노트를 쓰는 방법, 메모 독서를 습관화하기까지 메모 독서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책을 깨끗하게 보면 깨끗하게 잊힌다며, 부디 책에 밑줄을 치고 메모를 하고 귀퉁이를 접으며 읽기를 권한다.
 
학문은 사실을 분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하죠. 분류되지 않는 정보는 가치가 없습니다. 밑줄 치기는 책 속 정보들이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 중요도를 분류하는 작업이고, 이 과정을 통해 책은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끝까지 다 읽었는데 밑줄이 하나도 쳐 있지 않은 책은 나에게 가치가 없는 것이죠. (53쪽)

나는 오랫동안 책을 아주 깨끗하게 봤다. 책은 읽었지만 처음처럼 새것 같은 상태를 유지했다. 왜 그랬을까. 초등학생 때부터 새 공책을 쓸 때 완벽한 필기를 고집했던 내 성격도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뭔가 지저분하다 느끼면 그 페이지를 찢어버리고 다시 쓰기를 반복해 결국 노트를 다 찢어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교과서에 밑줄을 칠 때도 매번 자를 대고 반듯하게 선을 그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지금은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유별난 성격이 다소 남아 있어 책을 깨끗하게 보려고 고집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가 하나 있었는데, 다 읽은 책을 중고서점에 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이 생각이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이었는지는 직접 중고서점에 팔아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낑낑대며 책을 들고 중고서점에 가서 팔았는데 내 손에 쥐어진 돈은 고작 몇 천 원이 전부였다. 원래 책값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금액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책은 돈이 되지 않는다. 나의 소중한 책들을 헐값에 팔아 버리느니, 원하는 사람에게 그냥 줘 버리거나, 모조리 집에 쟁여두고 사는 것이 좋다.

책을 꽤 읽는 편에 속하지만 읽는 족족 깨끗하게 잊어 버리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나도 뭔가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읽으면서 기억해 둘 만한 부분은 노트에 적었다. 그런데 문제는 책을 읽을 때마다 옆에 노트와 필기구를 준비해 둬야 한다는 것이었고, 그게 생각보다 불편했다.

<메모 독서법>을 읽고 결국 나는 책을 깨끗이 보기를 포기했다. 그래, 어차피 팔 것도 아닌데 깨끗하게 봐서 뭐 하겠는가. 밑줄 치고 메모하면서 좀 더 제대로 책과 대화를 해보자.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독서에서 벗어나 생각과 의견이 오고 가는 독서를 해보자.

저자는 이 책에서 크게 6단계에 걸친 독서법을 소개하고 있다. 1단계 책에 밑줄 치기→ 2단계 여백에 메모하기→ 3단계 재독하며 다시 밑줄 치기→ 4단계 독서 노트 작성하기→ 5단계 독서 마인드 맵 만들기→ 6단계 글(서평) 쓰기.
 
처음 읽을 때 괜찮은 문장을 발견하면 형광펜으로 밑줄을 칩니다. 그리고 밑줄 친 문장들을 다시 보면서 중요도가 더 높은 문장을 찾아 빨간색 볼펜으로 밑줄을 칩니다. 그리고 나중에 참고할 만한 정말 중요한 문장을 발견하면 문장 옆의 여백에 체크 표시를 해줍니다. (60쪽)

독서 노트에 저자의 말을 옮겨 적고 나면 뭔가 대꾸를 하고 싶어집니다. 다른 사람이 SNS에 올린 글에 댓글을 다는 것처럼 그 밑에 내 생각을 쓰고 싶어지는 것이죠. 생각을 하다 보면 질문도 떠오릅니다. 저자가 한 말에 내 생각을 말하고 질문하게 됩니다. (97쪽)

실제로 밑줄을 치면서 그 문장을 다시 읽게 되고, 다시 읽으면서 밑줄 친 문장에 대해서 조금 더 깊게 생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읽다가 어떤 생각이든 떠오르는 즉시 여백에 메모를 했다. 처음에는 내가 적은 메모가 유치해 보여서 누가 볼까 민망하기도 했지만 누가 보겠는가. 우리 집에 있는 책은 거의 나 말고는 아무도 안 본다.

설사 누가 좀 보면 어떤가. 그렇게 창피한 일도 아니다. 처음이 어설프지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 나도 제법 그럴 듯한 생각을 메모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그래도 도저히 다른 사람이 볼까 걱정이 된다면 책을 숨겨 놓거나 같은 책을 한 권 더 사서 꽂아놓으면 된다. 뭐 그렇게까지 하겠냐마는.

책에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며 읽으면 누구든지 글을 쓸 수 있다. 확실히 그렇다. 책을 깨끗하게 볼 때와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전에는 책을 읽고 서평이라도 쓸라치면 머릿속에 다시 백지상태가 되어 방금 읽은 책에 대해 단 한 줄도 쓰기 힘들었다. 고작 '좋았다. 감명 깊었다.' 따위의 감상을 쓰자고 책을 읽은 게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을 따라 밑줄을 치고 메모를 하며 읽었더니 서평 쓰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일단 밑줄 친 문장들을 타이핑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 단순한 과정에서 생각들이 피어났다. 밑줄 친 문장을 타이핑하면서 나의 생각도 짧게나마 같이 쓸 수 있게 되니, 굳이 따로 힘들이지 않고 독서노트를 쓸 수 있게 되었다.

독서 노트 외에 저자가 강력하게 추천하는 것은 마인드맵이다. 책을 읽을 때마다 매번 마인드맵까지 만들 필요는 없고, 평소 관심이 있던 주제의 책이거나, 공부나 업무에 필요해서 책 전체를 파악하고 싶을 때, 책에 담긴 정보를 나중에 활용하기 위해 정리해둘 필요가 있을 때 마인드맵을 만들면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책을 읽고 나도 마인드맵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해서 써 보았다. 사용법도 간단하고 확실히 전체적인 큰 줄기를 파악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중요한 책을 읽고 마인드맵을 만들어 책 앞장에 끼워 두면 나중에 필요할 때 쉽게 책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마인드맵은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도 되지만, 노트에 간단히 그리는 것도 좋다. 나는 4차 산업시대가 도래하는 이 시대에 시대착오적이게도 컴맹에 가까운 사람이라, 컴퓨터를 사용하기보다는 노트에 적는 것이 편하다. 프로그램을 이용해 만든 마인드맵을 인쇄하려면 유료 결재를 해야 한다는 단점도 있으니 노트에 직접 그리는 것이 어쩌면 더 편한 방법일 수도 있겠다.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메모를 하며 독서를 한 후에 독서 노트까지 작성했다면, 서평이나 자신의 글을 한 번 써 보라고 말한다. 책을 읽고 서평을 쓰면 읽은 책이 비로소 나의 것이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책에서 얻은 생각을 내 삶에 통합하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처음에는 생각대로 잘 써지지 않을 것이다. 누구나 그렇다. 하지만 하나 둘 내가 쓴 글들이 쌓이다 보면 나도 제법 그럴 듯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독서모임에도 참여하기를 권한다. 같은 책을 얼마나 다양한 시각으로 읽을 수 있는지 확인하며 시야를 넓힐 수 있는 자리가 될 수 있다. 또 다른 사람에게 읽은 책에 대해 말해야 하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더 책을 훑어보고 생각을 정리하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재독이 이루어진다. 책을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읽을수록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한 번 읽었을 때 그냥 스쳐 지나간 문장이 새롭게 눈에 들어올 수도 있다. 처음 책을 읽었을 때와, 다시 읽었을 때의 나는 같은 사람이 아니므로 책에 대한 감상도 달라질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독서의 즐거움이다.

이 책에서 제시한 메모 독서 과정을 다 거쳤다면 이제 메모 독서를 습관으로 만들어야 한다. 저자는 메모 독서가 습관이 될 때까지 적어도 3개월 이상 꾸준히 독서 노트 쓰기를 제안한다. 이렇게 읽고 메모하고 독서노트를 쓰고 글까지 쓰려면 책 한 권을 읽는 데에 시간도 오래 걸리고 에너지도 더 소모될 것이다.

옆에는 읽을 책들이 쌓여가는데 책 한 권을 붙들고 몇 날 며칠을 있으려니 조바심도 날 것이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는지보다 단 한 권을 읽었더라도 얼마나 제대로 읽었느냐가 중요하다.

나 역시 누구 못지않게 책 욕심이 많아서 읽지도 못할 책들을 책장에 잔뜩 꽂아 놓고, 바닥 여기저기에 책을 쌓아놓고 그것도 모자라 도서관에서 대출 가능 권수를 꽉꽉 채워 빌려 오곤 한다. 그럴 때마다 이게 다 뭐 하는 짓인가 싶지만 읽고 싶은 책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니 자꾸만 조바심이 나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히라노 게이치로의 말을 새기며 마음을 다잡는다.
 
서점에서 무심코 많은 책을 샀다가 너무 많이 쌓여 읽지 못하는 상태가 되면, 페이지를 넘기는 손도 빨라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몇 번이나 반복해서 말하지만, 양의 독서는 이제 끝내야 한다. 앞으로는 자신에게 소중한 책을 소중히 여기며 읽는 독서를 하자. 세상에 넘쳐나고 있는 막대한 책들은, 평생 동안 아무리 애써도 극히 일부밖에는 읽을 수 없다. (히라노 게이치로, <책을 읽는 방법> 중에서)

<메모독서법>에서 제시하는 독서법도 결국은 '천천히 읽기'다. 이 책의 특별한 점은 구체적인 방법 제시와 풍부한 사진자료에 있다. 저자가 직접 작성한 독서 노트를 찍은 사진은 물론이고, 마인드맵의 기초적인 조작 방법까지 알려준다. 그래도 어려워할 독자들을 위해 어떤 문장에 밑줄을 쳐야 하는지, 저자는 어떤 색깔의 펜을 사용해 밑줄을 치고 메모를 하는지까지 알려준다.

이제 막 독서에 취미를 붙여 보려는 사람에게는 물론이고, 책을 꽤 읽는다고 자부하는데도 남는 것이 없고 어쩐지 길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단 한 권을 읽어도 제대로 남는 메모 독서법

신정철 지음, 위즈덤하우스(2019)


태그:#메모독서법, #신정철,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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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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