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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운구위원들이 고 문동환 목사의 관을 운구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운구위원들이 고 문동환 목사의 관을 운구하고 있다.
ⓒ 이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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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을 가서 하루를 묵었다. 장례예배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내겐 흔치 않은 일이다. 가까운 거리가 아닌 데도 참석할 수 있었던 것은 몇 사람의 배려 덕에 가능했다. 11일 조문 마치고 이상욱 목사님이 차로 부천 박영복 목사님 댁까지 데려다주었다. 12일 새벽 일찍 박희숙 목사님이 세브란스 장례식장까지 수송하는 노고를 기꺼이 감당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전 7시 발인 시간이 잡혀 있었다.

12일 7시 장례식장을 출발, 장례예배는 수유리 한신대 서울캠퍼스에서 예정돼 있었다. 영구차를 앞세우고 유족과 조문객을 태운 차가 뒤따랐다. 대형 버스 2대가 특별히 준비되었다. 우리 일행은 앞 버스에 올라 수유리로 행했다. 출근길을 감안해서 다소 일찍 시간을 잡은 것 같은데 차가 의외로 잘 빠져 오전 8시가 조금 지나 한신대 강당에 도착했다. 예배 때까지 1시간여의 여유가 생긴 셈이다.
 
 고 문동환 목사 추모 현수막이 한신대학교 서울캠퍼스 앞에 걸려있다.
 고 문동환 목사 추모 현수막이 한신대학교 서울캠퍼스 앞에 걸려있다.
ⓒ 이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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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이 된 문동환 목사가 한신대학교 명예교수인 관계로 학교장(學校葬)으로 장례가 치러진다고 했다. 학교에서 인적 물적으로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 교문 밖 대로에서부터 학교 신대원 예배당에 이르기까지 "큰 스승 고 문동환 목사님을 추모합니다" 등의 문구를 넣은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고인이 생전 학교와 교계 그리고 국가에 이바지한 공로가 반영된 결과라는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장례예배가 드려질 신대원 예배당도 깔끔하게 정리정돈이 되어 있었다. 미처 조문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예배당 입구 오른쪽에 분향소까지 마련해 두고 있었다. 유족들과 내빈들을 위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방도 하나 마련되어 있었고, 예배 참석자들을 위해 따뜻한 차를 마실 수 있는 테이블도 준비되어 있었다. 문 목사님의 저서를 모아 한눈에 살필 수 있도록 전시해 놓기도 했다. 아주 세심한 배려이다.
 
 장례예배가 드려지는 한신대 신대원 예배당 입구에 문동환 목사의 저서들이 전시되어 그의 학문적 깊이를 살펴보게 했다.
 장례예배가 드려지는 한신대 신대원 예배당 입구에 문동환 목사의 저서들이 전시되어 그의 학문적 깊이를 살펴보게 했다.
ⓒ 이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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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에서는 문동환 목사의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를 거쳐 장‧노년기에 이르기까지의 영상이 흘러나왔다. 한 사람의 평범한 사람이 감내하기 힘든 양질의 일을 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갑자기 사도 바울이 떠올랐다. 신약 27권 중 13권을 쓴 것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능력의 결과라고들 흔히 말한다. 문동환 목사는 예수님을 가리는 바울을 비판하는 입장이고, 그것에 대한 책도 한 권 저술한 바 있지만 어쨌든 바울의 열정은 인정해 주어야 할 것이다.

모니터를 통해 나오는 그의 삶을 요약하자면 두 가지이다. 자유와 약자 사랑! 간극이 있어 보이는 두 가지를 문 목사는 마술사처럼 잘 조화시키며 살아왔다. 이 둘 중 하나를 제어한다면 그의 삶은 꼬이고 말았을 것이다. 아니, 과거 군사 정권이 문 목사에게서 둘을 결박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가 초심의 지조를 굽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 문동환 목사 장례예배가 드려지는 한신대학교 서울캠퍼스 강당에 예배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고 문동환 목사 장례예배가 드려지는 한신대학교 서울캠퍼스 강당에 예배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 이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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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 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어떤 때는 외국으로 몸을 피해 유랑의 길을 택함으로써 압제를 벗어났다. 한 사람의 민주 투사를 만들어내기도 어려운 일인데 두 사람, 세 사람의 민주 투사, 사회개혁 운동가를 배출해낸 가문이다. 형 문익환 목사와 형수 박용길 장로 그리고 문동환 목사, 모두 고인이 되었지만 이 세 분은 우리 현대사의 출중한 투사들임이 분명하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부친 문재린 목사와 모친 김신묵 권사의 영향이 컸다. 문재린 목사는 규암 김약연 목사와 함께 간도에서 민족교육에 힘썼다. 규암 선생이 설립한 명동학교는 일제시대 독립투사를 교육 배출하는 데에 공을 세웠다. 명동학교는 그래서 민족교육의 요람이라고 불렸다. 사상계의 장준하, 통일운동가 늦봄 문익환, 민족시인 윤동주, 아리랑의 나운규 등이 이 학교에서 동문수학했다. 

장례식장에서 선물 받은 예쁜 화초
 
 김경재 목사(한신대 명예교수)가 시편 130:6, 빌리보서 3:12를 본문으로 '새벽을 여는 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다.
 김경재 목사(한신대 명예교수)가 시편 130:6, 빌리보서 3:12를 본문으로 "새벽을 여는 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다.
ⓒ 이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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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중 박성수 선생 등 몇몇 사람들과 차를 마시며 정담을 나누었다. 오전 8시 30분이 되자 낯익은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나타나기 시작했다. 장례의 호상을 맡은 세 사람, 김상근 목사(KBS 이사장), 김성재 목사(한신대 석좌교수), 주장환 교수(한신대 사무처장)는 장례 기간 내내 함께했다.

생각나는 대로 인사 나눈 몇 분을 거명하면,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김용복 한신대 석좌교수,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 함세웅 신부, 박종화 경동교회 원로목사, 노정선 연세대 명예교수 등을 들 수 있다.
   
 문동환 목사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추도사에서 그와의 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다.
 문동환 목사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추도사에서 그와의 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다.
ⓒ 이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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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각 오전 9시에 김주한 목사의 집례로 장례예배가 시작되었다. 김 목사는 한신대 신대원장으로 이번 장례식 집행위원장을 맡아서 수고했다. 오르가니스트 권정원의 전주에 이어 집례자가 개식사를 했다. 참석자들이 '오 자유'라는 찬양을 함께 불렀는데, 이 노래는 고인이 된 문동환 목사가 평소 즐겨 부르던 찬양일 뿐 아니라 자유인 문동환을 농축해 놓은 의미를 담고 있는 특별한 노래이기도 하다.

그 다음 순서의 대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추도사(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기도(이재천 한국기독교장로회 총무), 성경봉독(시편 130:6, 빌립보서 3:12, 한신대 신대원 학생회장), 설교(새벽을 여는 이,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약력보고(호상 김성재 한신대 석좌교수), 조사(김충섭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조가(손자 맥스 문-전인덕, 평화운동가 홍순관-권오준), 조사(한완상 전 통일부총리, 임채정 전 국회의장), 헌화, 장례위원장 인사(연규홍 한신대 총장), 이후 일정 안내(집례자), 찬송(582장), 축도(김일원 한신학원 이사장), 운구(운구위원).
   
 장례위원장을 맡은 연규홍 한신대 총장이 참석자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장례위원장을 맡은 연규홍 한신대 총장이 참석자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 이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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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례자가 특별한 광고를 하나 했다. 문동환 목사는 생명 사랑의 정신으로 평소 화초 가꾸기를 즐겼다고 한다. 죽어가던 화초도 그의 손길이 닿으면 파릇파릇 살아났다는 것이다. 그 정신을 생각하며 화초를 준비했으니 선물로 하나씩 가져가라는 것이다. 결혼식장에 가서 선물을 받은 적은 있지만 장례식장에 와서 선물을 받는 일은 드문 경우이다. 그것도 살아 있는 예쁜 화초를.

운구차를 앞세우고 장례 차량들이 서서히 교문을 빠져나갔다. 교문까지 교직원과 예배 참석자들이 양쪽으로 늘어서 마지막 가는 길을 경건한 마음으로 환송했다. 운구차는 마석 모란공원으로 가서 민주열사 묘역에 고인을 안장하게 된다. 전태일 열사, 박종철 열사, 조영래 변호사, 문익환 목사 등의 유택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도 이별의 슬픔에 함께하듯…. 이렇게 해서 우리는 민중 신학의 큰 별을 보냈다.

[관련기사]
민중신학의 큰 별 지다... 문동환 목사님, 편히 잠드십시오
문동환 목사님이 마지막까지 남긴 말, 잊지 않겠습니다
 
 한신대 교직원들과 참석자들이 강당에서 교문 입구까지 도열해 마지막 가는 길을 환송하고 있다.
 한신대 교직원들과 참석자들이 강당에서 교문 입구까지 도열해 마지막 가는 길을 환송하고 있다.
ⓒ 이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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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천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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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