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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과히 혁명이라 할 수 있다. 현존하는 '모쒀족'의 '모계제'에 부여하는 헌사다. 더 나은 삶을 위한 변혁을 혁명이라 한다면, 이들에게 제격이다.
 
가모장제
 
"할머니-손자-손주로 이어지는 모쒀식 가족을 이해할 때의 핵심은 자식이 오로지 엄마에게 속하지 그의 아샤오(연인)에게는 속하지 않는다는 점이다.(p114)"
 
'모계제' 하면 '원더우먼'을 키운 저 아득한 역사 속 아마조네스를 떠올리겠지만, 먼 역사를 더듬을 이유가 없다. 사라진 유토피아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현재 지구 한 곳에 떡하니 존재하고 있는 모계 사회, 중국 윈난성 서남단 고산지대에 살고 있는 '모쒀족'이 바로 그들이다.
 
 <어머니의 나라> - 오래된 미래에서 페미니스트의 안식처를 찾다 / 추 와이홍 (지은이), 이민경 (옮긴이)
 <어머니의 나라> - 오래된 미래에서 페미니스트의 안식처를 찾다 / 추 와이홍 (지은이), 이민경 (옮긴이)
ⓒ 흐름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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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쒀족은 오래전부터 모계사회를 이루며 살아 왔다. 어머니의 딸들과 그 딸들의 딸들로 가계를 잇는데, 혈통을 지키는 일은 온전히 여성의 몫이다. 가계 구조는 3대로 구성된다. 이 정도의 노동력은 있어야 농사나 수렵, 채취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여성이 혈통을 잇는다 해서 태어난 남아를 차별해 키우지 않는다. 다만 혈통을 잇지 못할 뿐이다. 성장한 딸과 아들의 아이샤(성적 파트너)와 아들의 자식은 가족으로 구성되지 않으며, 오직 딸들의 자식만 가족에 귀속된다. 대체 무슨 소리냐 하겠지만, 이것이 가능한 건 이들의 독특한 애정 관계인 '주혼'에 있다.
 
주혼(Walking Marriages)
 
"주혼은 남성 아샤오가 여성과 밤을 보낸 뒤 아침이 되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연인과 결혼을 하거나 남성의 집에 들어가 살거나 그와 함께 독자적인 가족을 꾸려 살지 않는 방식의 관계다."(p48)
"모쒀 사회에는 결혼이라는 개념도 없고, 따라서 가족 내에 아내나 부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걷는다'거나 '방문하다'는 말이 붙은 것은 남성이 밤이 되면 여성의 집을 찾기 때문이다. "(p219)
 
모쒀족 연애의 핵심은 어떤 아샤오도 상대에게 속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모쒀족에겐 결혼제도가 없다. 주혼 관계는 매우 사적인 것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지만, 여러 방식의 주혼이 있다. 여성의 집을 자유로이 드나드는 관계에서 부부처럼 지속적 관계를 유지하기도 한다.
 
가모장의 남성들
 
"모쒀인들은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하고 남성이 열등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모쒀 남성은 모쒀 여성과 같이 영원히 독신으로, 결혼이 없는 사회에서 살기에 남편이 될 수 없다. 모쒀 남성은 아버지가 될 수 없다."(194)

남성들은 혈통을 잇지 못할 뿐, 평생 어머니의 집에서 어머니와 가족과 산다. 이들은 혈통을 이어나가는 여성들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남성들은 그들의 자리를 성실히 지킨다. 자신의 아이를 거느리지 않지만 조카들을 건사한다. 어렸을 때부터 남성들이 가사를 돌보는 것은 모쒀 사회에서 당연한 일이다. 남성들이 집 밖의 궂은 노동을 맡아 한다고 해서 이들의 지위가 여성보다 높아지지 않으며, 가모장의 권위에 도전하지 않는다.

모쒀족 남성들은 여성들의 아이샤가 되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인다. 외모에 대한 치장이나 관심이 매우 높고 보석을 남성미를 발현하는 도구로 애용한다. 선택할 입장에 있는 여성은 어떤 남성에게 끌릴까? 좋은 혈통을 유지하기 위한 남성의 더 나은 조건은 무엇으로 구성될까?
 
가부장에 찌든 상상력은 버리시라. 모쒀족 여성은 남성에게 부양받지 않으니 남성의 경제력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지적인 능력? 문명의 지식에 집착하지 않으니 학벌 따위로 줄 세울 리도 만무할 테고. 그렇다면? 외적인 조건이 좌우한다.

튼실한 체력은 척박한 환경에 필수다. 특히 큰 손이 관건인데, 큰 손은 곧 양질의 노동력을 제공할 강인함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모쒀족의 남성들은 매력적인 여성을 접할 기회를 포착하는 즉시 적극적 구애를 벌인다. 모쒀족의 이성간의 만남은 다분히 에로틱하다.
 
모쒀족의 여성들
 
"모쒀 사회에서는 여성을 새로운 생명을 탄생케 하는 힘의 원천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삶과 빛의 영역을 담당하는 것이 여성의 신성한 의무라고 믿었다."(p97)
"모쒀 여성이 자신의 존재를 완성하는 핵심요소는 엄마가 될 수 있는, 그로 인해 모계 혈족 식구를 늘려갈 수 있는 능력이었다."(178)
 
모쒀족 여성들은 외모에 신경 쓰지 않는다. 꾸밈노동 따위에 노력을 쏟지 않는다. 여성들은 어려서부터 존중받으며 자라고 13살이 되면 성인식을 치르고 '자기만의 방'을 가진다. 버지니아 울프가 그토록 갈망했던 '자기만의 방'을 이들은 어른이 되는 동시에 부여받는다. 남성보다 열등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을 소모해야 할 필요가 없는 모쒀족 여성들은 자유롭고 자긍심이 높다.

이들에게 남성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는 일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누구와 어떤 아이샤 관계를 맺든 질타 당하지 않는다. 그러니 순결은 의미가 없다. 남편에게 기대 살지 않는 이들에게 연애란 실상 스쳐 지나는 삶의 작은 부분일 뿐이다. 이들에게 중요한 일은 모계 가정을 잘 꾸려나가고 훌륭한 가모장이 되는 것이다. '걸파워'는 모쒀 공동체의 상식이다.
 
<어머니의 나라>를 쓴 저자 추 와이홍은 인류학자가 아니다. 뉴욕의 잘 나가는 변호사였다. 그러나 연봉이 올라가고 돈이 쌓여갈수록 내면은 소진되어 갔다. 남성중심 로펌에서 자신의 스타일은 존중받지 못했고 자신의 언어는 통제 당했다.

사표를 던진 후, 여남 모두 억압 당하지 않는다는 그들의 모계사회에 끌려, 모쒀족의 마을로 스며들었다. 그들과 6년을 살아가면서, 부계제에서는 부재한 관계의 자유와 해방감 그리고 외부인을 향한 무람없는 환대를 발견한다.
 
역자 이민정에게 <어머니의 나라>를 번역하는 일은, "낭만적인 끌림, 경제력을 합쳐 생활할 의지, 섹스를 하고 싶은 욕망, 같이 아이를 키우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한 명에게서 전부 느낄 수 있으며 그것을 어째서 당연하게 여기는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하는 방식이었다. 그렇다고 모두 모쒀족이 되자는 걸까?
 
물론 모두 모쒀족이 될 수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 하지만 기능을 잃은 가부장과 결혼 제도에는 변화가 필요하다. 변화의 물꼬로 그의 시도를 소개한다. 그는 현재 3명의 여성과 함께 살고 있다. 그는 자신들의 주거 결합을 '가족'이라고 부른다. 여성들끼리 남성들끼리 혹은 남녀들끼리, 반드시 결혼이란 제도에 들어가지 않고도 탄생한 가족은 이미 적지 않다.
 
그러나 자유로운 결합으로서의 가족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들에게 온전한 가족 성원권을 주기 위해 '동반자법'이 시급히 제정되어야 한다. 프랑스의 '시민연대협약'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동거하는 커플에게도 부부에 준하는 혜택을 준다면, 결혼에 얽매이지 않고도 여남 간의 결합은 안정될 수 있다.

미혼모(부)를 적극적으로 가족의 형태로 끌어안는 사회적 노력도 필요하다. 저출생을 국가 위기로 설정하면서 미혼모의 아이를 해외 입양시키는 모순된 정책은 사라져야 한다. 비독점적 다자간 연애인 '폴리아모리'도 신인류에 맞는 연애, 결혼관을 낳을 수 있다.
 
자, 그럼 여기서 한 숨 돌리며 돌발 퀴즈를 내보겠다. 마마, 호환보다 무서운 것은? ... 답은 '자본주의'다. 놀라운 추동력만큼 가공할 파괴력을 가진 자본주의의 형, '신자유주의'가 '어머니의 나라'에 입성했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저자가 리장에서 험한 산길을 7시간이나 달려 당도했던 모쒀족 마을은 위기에 처해 있다. 중국 정부가 이 지역의 빈곤을 퇴치하겠다며 내민 카드는 관광이었다. 생존이 중요했을 뿐 개인이 축적한 재산이란 개념조차 없던 부족에게 돈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을 땅이 자본가들에게 넘어가 호텔과 식당 등 관광 관련 건물로 채워지고, 원주민은 그 호텔이나 식당의 임금 노동자로 전락했다. 이들이 입던 전통의상 따위는 장 속에 처박혔고 경작해 얻던 먹거리는 점포에서 구입한다. 오토바이나 차, 휴대폰을 경쟁하듯 소유하려 한다.
 
현금만 대거 유입된 것이 아니라 술, 도박, 마약이 쓰나미처럼 밀려들어와 모쒀족들의 삶을 부수고 있다. 중국 정부의 교육은 가부장을 근간으로 한 일부일처제를 정상가정 형태라고 윽박지르며, 모계제를 뿌리채 흔들고 있다. 모쒀족의 가모장제는 이제 어떤 운명에 처하게 될까?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저자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아직 흔들리지 않고 가모장을 유지하는 모쒀 부족이 건재하고, 모쒀족 젊은이들 모두 가부장과 일부일처로의 전환에 만족할지는 더 두고 봐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서다. 농경사회에서 타임머신이라도 탄 듯 밀레니엄 생활권으로 이동한 모쒀 사회의 젊은이들. 이들은 과연 어떤 선택에 놓이게 될까?
 
여남 역할의 완전한 미러링이었던 <이갈리아의 딸들>은 잠시 잊어도 좋다. <어머니의 나라>는 여남 간의 억압을 해체한 고차원의 평화로운 삶을 보여주었고 제시하고 있다. <어머니의 나라>는 인류학 텍스트로도 전혀 손색이 없다. 모쒀족의 독특한 의식주생활, 거무신산을 숭배하는 신앙, 전통 의식과 축제, 죽음을 대하는 방식 등 이들만의 문화가 책 속에 다채롭게 펼쳐진다.

오지 탐험이나 체험 관광에 흥미를 느끼는 독자도 읽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뭐니뭐니해도 <어머니의 나라> 백미는 '가모장'에 있으니, 열린 마음으로 가모장의 세계에 접속하시라.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 게시 예정


어머니의 나라 - 오래된 미래에서 페미니스트의 안식처를 찾다

추 와이홍 지음, 이민경 옮김, 흐름출판(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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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영화를 좋아하고 그에 관한 글쓰기를 합니다. 세상을 낯설고 예민하게 보려고 애쓰는 중입니다. 익숙함에 길들여지지 않으려구요.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