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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원내대표의 발언은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뿐 아니라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는 국민에 대한 모독입니다. 대통령까지 끌어들여 모독하는 것이 혹여 한반도 평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길 바랍니다. 냉전의 그늘을 생존의 근거로 삼았던 시절로 돌아가겠다는 발언이 아니길 더더욱 바랍니다.

나라를 위해 써야할 에너지를 국민과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으로 낭비하지 마십시오. 자유한국당과 나 대표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번영을 염원하는 국민들께 머리숙여 사과하기 바랍니다."

결국 청와대가 발끈했다. 신속한 데다 어조의 수위도 높았다. 12일 나경원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원내대표가 12일 국회 교섭단체대표 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라고 비유한 것에 대해 청와대는 즉각 한정우 청와대 부대변인의 논평을 통해 반박했다.

"태극기부대에 인정 받겠다는 의도가 너무나 뻔한 연설"
 
교섭단체 대표연설 나선 나경원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나 원내대표는 연설 도중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 수석대변인'에 비유해, 사과를 요구하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 교섭단체 대표연설 나선 나경원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나 원내대표는 연설 도중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 수석대변인"에 비유해, 사과를 요구하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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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청와대뿐이겠는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한민국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죄"라고 격분했고, 홍영표 원내대표도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것에 대해 명확하게 책임을 묻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규탄했다. 연설 직후 열린 의원총회에서였다. 앞서 홍 원내대표는 나 원내대표의 연설 도중에도 국회 의장석 앞으로 나가 강하게 항의, 연설이 지연되는 장면이 전 국민에게 생중계되기도 했다.

정호진 정의당 대변인 역시 논평을 통해 "뻔뻔함과 졸렬의 극치"라며 "과격하고 극렬한 언사로 친박 태극기 부대의 아이돌로 낙점되겠다는 의도가 너무나 뻔히 보였다"고 꼬집었다. 박주현 민주평화당 수석대변인도 "현직 대통령을 북한의 수석대변인 운운하는 것을 보면, 5.18민주화운동이 북한의 사주에 의한 것이라는 홀로코스트적인 발언 역시 한국당 일부 의원의 실수가 아닌, 한국당의 공식입장인 듯"이라고 지적했다.

바른미래당 김수민 원내대변인 역시 "싸구려 비판"이라며 "신중치 못한 발언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들 야당의 논평을 좀 더 들여다보면, 논평의 수위는 훨씬 더 독했다. 나 원내대표의 연설 내용이 얼마나 어이없고 형편없었는지를 방증하는 증거라 봐도 무방할 듯 보인다.
 
"도대체 연설문에 좌파 타령이 몇 번인지 모르겠다. 아직도 진영논리에 색깔론인가. 국민들의 의식은 미래를 향해 아득히 앞서가고 있는데 자유한국당만은 아직도 무고한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 죽이던 그 시절 그대로 머물러 있다. 그러니 전두환 앞에서 침묵하고 자당 의원들이 5.18을 모독하도록 활개치고 다니도록 놔두는 것 아닌가. 가히 전두환 졸개들이라 할만하다."
- 정의당 정호진 대변인

"다른 정당의 대표연설에서 나경원 원내대표를 일본 자민당의 수석대변인 운운 하면 제대로 진행되겠는가."
- 평화당 박주현 수석대변인

이 같은 반응은 또 있었다. 정청래 전 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망언 중 최악의 망언"이라며 "당신 화법으로 말하면 그럼 당신은 아베 수석대변인인가?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라"고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청와대 발끈하게 한 나경원 원내대표의 국회 연설

이러한 비판들이 그저 '여야 갈등'과 같은 '기계적 균형'에 갇히거나 정쟁 프레임으로 인한 '정치 혐오'로 빠져서는 곤란하다. 실제 연설 내용을 살펴보면 나 원내대표의 주장이 얼마나 편협하고 악의적인지, 또 표현과 내용 양면에서 문제가 심각한지 대번에 알 수 있다. 우선 나 원내대표 자신도 "낯 뜨거운"이란 단어를 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란 표현이 나온 대목은 이랬다.
 
"한미동맹(의 엇박자)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반미, 종북에 심취했던 이들이 이끄는 '운동권 외교'가 이제 우리 외교를 반미, 반일로 끌고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정책은 원인과 결과,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지 못하는 위험한 도박일 뿐입니다. 이제 그 위험한 도박을 멈추십시오.

외교안보라인 전면 교체가 시급합니다. 청와대 안보실장, 외교부 장관, 국정원장을 교체하십시오.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자 지명을 철회하십시오. 북한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옹호와 대변 이제는 부끄럽습니다.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 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소득주도 성장과 예비타당성 면제, 일자리 정책 등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던 나 원내대표는 하노이 선언 불발과 미국이 북한 영변 외 핵시설을 거론한 것을 언급하며 현 정부의 외교정책을 맹렬히 비난하기 시작했다. 헌데, "반미, 종북에 심취했던 이들이 이끄는 '운동권 정부'"라는 표현도 모자라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국회 역사에 길이 남을 비난까지 등장시켰다.

비판을 넘어 원색적인 비난으로 치달은 나 원내대표의 이 발언은 평소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둘러싼 나라 밖 시각은 도외시 한 채 한·미·일 동맹에만 오매불망 집착하는 한국당의 시각을 현미경으로 확대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이어 나 원내대표는 현 정부의 적폐청산 작업을 비판하는 동시에 "미세먼지, 탈원전, 보 철거, 문재인 정부가 좌파 포로정권이라는 명백한 증거"라며 원색적인 표현을 이어갔다. 또 노동개혁과 관련해서는 "바로 문재인 정부가 강성귀족노조, 좌파단체 등 정권 창출 공신세력이 내미는 촛불청구서에 휘둘리는 심부름센터로 전락했기 때문"이라며 촛불청구서라는 국민 모독에 가까운 표현까지 서슴지 않았다.

아울러 선거제 개혁에 대해 "불문의 헌법정신에 반한다는 것을 고백합시다"라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한 나 원내대표는 급기야 연설 말미 납득하기도, 용인하기도 어려운 제안들을 여럿 내놓으며 본심을 드러냈다.

나경원 원내대표의 제안, 누구를 위한 것인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초당적 원탁회의 개최"나 "국민부담 경감 3법(부동산 가격 공시에 관한 법률 개정, 지방세법 개정, 조세특례제한법 개정) 제안" 정도는 국회 내에서 다툼의 여지는 있어 보인다. 그러나 "국론통일을 위한 7자 회담"의 경우, 이전 협의체들을 파행으로 이끈 장본인이 누군지 되돌아 볼 일이다.

더군다나 "자유한국당이 직접 굴절 없는 대북 메시지 전달을 위한 대북특사를 파견하겠습니다"는 주장에 이르러서는 아연실색을 거듭하게 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 급물살을 탄 한반도 평화체제에 숟가락을 못 얹어서 안달이었던 한국당이 대북특사를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직접 대화하겠다니. 그간 한국당이 김정은 체제에 어떤 원색적인 비난을 했고, 남북정상회담 등 평화 분위기에 어떤 훼방을 놓았는지 돌아보고, 자성과 사과부터 하는 게 먼저 아닐까.

한편 미세먼지 정책과 관련해 국민과의 스킨십을 넓혀 나가는 것은 좋다. 그러나 "동북아-아세안 국가들로 구성된 대기오염 물질의 장거리 이동에 관한 협약"은 뜬금없지 아니한가. 결과적으로 한국당의 본색은 마지막 두 개의 제안에 있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반대하며 지난 일요일부터 비례대표제 폐지를 주장해 온 나 원내대표는 다시금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권력 분산 원포인트 개헌"을 꺼내들었다.

우선 여야 4당이 제안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사실상 거부한 셈이다. 마지막으로 나 원내대표는 "전 상임위 국정조사·청문회"를 제안했다. 이에 대해 나 원내대표는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각종 비리와 부패를 국회 차원에서 조사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자유한국당은 상임위-특검-국민투쟁이라는 3단계 투쟁을 펼쳐나갈 것"이라고 공언했다. 벌써부터 3월 국회도 파행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터져 나오는 대목이다.

결국 나 원내대표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과 같은 발언으로 논란을 자처하는 등 초강수를 뒀다. 그 반대편으로 선거제 개혁을 사실상 거부하고, 장외투쟁까지 암시하는 '상임위-특검-국민투쟁'의 전 수순으로 "전 상임위 국정조사·청문회"라는 얼토당토 않은 카드를 꺼내들었다. 극한 수준의 어깃장 놓기요, 가히 '땡깡' 정치라 부를 만하다.

이를 두고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논평할 가치도 없지만 나 대표가 겨냥하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냉정히 봐야 한다"며 "국회를 격렬한 이전투구의 장으로 만들어 중간지대를 말살하고, 자기 세력을 최대화하기 위한 노림수로 국가원수 모독발언까지 감행했다"고 지적하며 아래와 같은 해법을 제시했다.
 
"이 판에 말려들면 안 된다. 과감하게 패스트트랙을 바로 걸어야 한다. 좌고우면해서는 안 된다. 자유한국당의 망동을 제압하고 고립시킬 수 있는 전략을 써야 한다. 지금은 욕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자유한국당이 국회를 모독할 때, 국회는 제 갈 길을 감으로써 그 모독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이다."

"이 판에 말려들면 안 된다" 
 
나경원 격려 대열에 김진태-권성동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마친 후 동료의원들의 격려를 받으며 퇴장하고 있다. 왼쪽 중간에 김진태 의원이, 오른쪽으로 권성동 의원도 보인다.
▲ 나경원 격려 대열에 김진태-권성동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마친 후 동료의원들의 격려를 받으며 퇴장하고 있다. 왼쪽 중간에 김진태 의원이, 오른쪽으로 권성동 의원도 보인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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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경제를 끝판으로 내모는 '소득주도성장 굿판'을 멈춰라."

작년 9월, 김성태 전 한국당 원내대표의 국회연설은 "저급하다", "저잣거리 거친 언사"라는 비판을 낳았다. "소득주도 성장은 보이스피싱"이니 "적폐청산쇼"이니 하는 표현이 딱 그랬다. 그가 주장한 "출산주도성장" 정책은 비웃음을 샀다. 이를 두고 정세균 전 국회의장은 "눈을 의심했다"며 "오랜 세월 정치를 해왔지만 오늘 같은 경우는 단연코 처음"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오늘 나 원내대표의 연설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적극적으로 색깔론을 앞세워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훼방 놓는 한편 '비현실'적인 정책을 넘어 작금의 국회를 또 다시 파행으로 몰아넣을 만한 제안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자극은 갈수록 강도가 세지는 법이다. 그러한 관성의 법칙을 인정한다 해도, 김성태 전 원내대표를 훌쩍 뛰어 넘은 나경원의 전 원내대표의 이번 연설은 '극우' 자유한국당 지지자들 외에 누구를 만족시킬지 의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정책이 위헌적이라고 말하면 여기에 반응하고 대응하면서 화두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은 위헌인가'로 흐르게 된다. 전형적인 프레임 전쟁이다. 오도된 프레임을 지르고 그 프레임 내에서 논쟁이 진행되면 판 자체가 자한당에 유리해진다.

위헌이라는 단어를 현재의 대통령과 결부시켜 자주 사용하면 할수록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반대했던 옹골찬 우익세력의 지지를 계속 견지할 수 있으며 또한 이런 발언을 통해 현재의 대통령도 탄핵감이라고 선동함으로써 자한당 지지층의 결속도 다질 수 있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최경영의 경제쇼>를 진행 중인 KBS 최경영 기자가 12일 페이스북에 적은 글이다. 공감한다. 최 기자는 이러한 나 원내대표의 과격성이 "나름의 합리적 목적이 있다"라며 "이런 식의 주장은 앞으로 계속될 공산이 크다. 치밀하게 계산된 정치적 레토릭이다. (해결 방안은) 다른 이야기를 통해 상황을 역전시키는 것 뿐"이라고 조언했다.

실제로, 나 원내대표의 제안들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 아닌 "거부해야 마땅한 제안들"이 대부분이다. '출산주도성장'을 내걸었던 김성태 전 원내대표가 '나이브'했다면, "김정은 수석대변인" 운운한 나 원내대표는 훨씬 더 치밀하게 지금의 반응을 계산했을 터다. 맞다. 이정미 대표의 말마따나 이 판에 말려들 필요가 없다. 국민을 모독하는 수준의 제안과 연설에는.

그리고, 이날 나경원 원내대표가 연설을 마친 뒤 국회 본회의장을 나서며 환하게 웃는 얼굴이 언론 카메라에 잡혔다. 나 원내대표는 파이팅을 외쳤고, 그 뒤로 선 한국당 의원들도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이 웃음을, 이 웃음의 의미를 나 원내대표의 연설을 목도한 수많은 국민들이라면, 앞으로도 오래도록 기억하지 않을까.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운데)가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마치고 나오며 파이팅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운데)가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마치고 나오며 파이팅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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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화 기자, 오늘은 프리랜서 글쟁이. 살다보니 시나리오 쓰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