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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인생의 마지막에는 죽음이 놓여 있고 어떤 삶을 살든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되어 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죽음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다양하다. 죽음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죽음을 맞이할지 생각하면서 자신의 삶을 천천히 정리하는 사람들도 있다.

인생을 계획하는 일이 가능하듯이, 어떤 죽음이 나에게 적합할지 생각해보는 일도 가능하다. 어떤 사람은 평생 행복하게 살다가 수명이 다하여 가족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죽음을 맞이하는 자신을 상상할 것이다.

자신의 직업이나 일을 사랑하는 사람 중에는 성취의 정점에 도달한 직후나 일을 하는 동안에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만 어떤 종류의 죽음을 상상하든, 모든 사람과 관계가 끊어진 채로 외로운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1년에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홀로 다가오는 죽음을 맞이한다. 그들의 시신은 아무도 인수하는 사람이 없다. 설령 가족이 있다고 해도 말이다. 바로 무연고 사망자들이다.
 
남자혼자죽다
 남자혼자죽다
ⓒ 성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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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혼자 죽다'는 무연고 사망자들의 죽음을 기록한 책이다. 저자들은 기자나 PD를 준비하는 언론인 지망생(속칭 '언시생')들이었는데, 우연한 계기로 무연고 사망자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책에 따르면, 무연고 사망자는 아무도 시신을 인수하지 않은 사망자다. 가족들이 없거나 연락이 되지 않는 경우, 가족들이 있어도 가족들이 사체포기각서를 제출하는 경우 고인은 무연고 사망자가 된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사망자를 화장하고, 이후 국가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납골당에 유골함이 10년간 보관된다.

지방자치단체는 고인이 무연고 사망자임을 인지한 후에는 홈페이지를 통해 무연고 사망자 공고를 내야 한다. 저자들은 이를 확인해서 2012년 1월부터 2014년 7월까지 홈페이지에 올라온 서울시 공고문 209개를 조사해서 무연고 사망자를 조사했다.

저자들은 언론사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이었다. 추후에 기자가 된 사람은 있지만 무연사 조사를 시작할 당시에는 언론인이 아니었다. 기자나 공무원, 사회복지사가 아니었으니 그저 학생일 뿐 별다른 지위는 없었던 셈이다. 특별한 취재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이들은 맨땅에 헤딩하듯이 공고를 보고 직접 무연사 사망자가 나온 지역을 찾아갔다.

주변 이웃이나 여관 주인에게 고인에 대해 물어서 조금이라도 고인의 과거에 대해 알게 되면 다행이었다고 한다. 고인을 잘 돌보지 못한 것에 대해 우울해 하는 주민을 만나는 일도 있지만, 때로는 주민들에게 응대조차 받지 못하기도 했다. 저자들은 그래도 직접 발로 뛰면서 무연고 사망자들의 과거를 기록했다.

책에 나오는 무연고 사망자 상당수는 노숙을 하거나 쪽방촌과 같은 열악한 주거 시설에서 거주했다. 알코올로 인한 질병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았고 특별한 직업이 있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서울대를 나와 관료로 근무했던 사람부터 수억원을 기부했던 부자까지 다양한 출신 배경이 있었으나 많은 사람들이 마음이 꺾여 삶의 기력을 놓은 상태였다. 무연고 사망자들의 가족은 이미 사망했거나 고인과 연락을 끊은 지 오래였다.
 
"이놈이 12월에 죽을 때까지 돌봐줬어. 국민장례식장에서 수의하고, 염하고, 뭐하고. 그랬더니 150만 원을 달래. 해주고 싶어도 내가 돈이 어디 있어. 그래서 그랬지. '주민센터에서 가족한테 통보해놨으니 잠깐 기다려봅시다.' 그런데 한 사람도 안 온거야. 그게 가슴이 아프다 이 말이야, 나는. 눈물이 나, 눈물이." -221P
 
이 책은 무연사에 대한 책이지만 제목은 '남자 혼자 죽다'이다. 무연사를 하는 이들은 대부분 남성이기 때문이다. 저자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남성 무연사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여성 무연사는 전체 무연사에서 수가 적은 편이었다. 저자들이 조사한 공고 목록에서는 무연고 사망자의 10% 가량만이 여성이었다.

저자들은 유독 두 성별 중 남성이 많은 무연사를 겪는 이유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 전문가들을 만났다. 남자가 홀로 죽는 사회 현상의 배후에는 남성은 관계가 아닌 과업 중심의 관계를 훈련받는 현실, 구조조정과 조기 퇴직, 가부장적인 사회 문화, 남자가 경제력으로만 평가받는 세태 등의 원인이 배후에 있다는 의견이 책에 등장한다.

저자들은 무연사에 대해 조사하면서 냉대를 받거나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혼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저자들도 고인에 대해 묻는 것이 유가족이나 고인에게 잘못된 행동이 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럼에도 저자들은 무연사 취재를 계속했는데, 무연사에 대한 관심이 매우 저조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무연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였다.

책에 따르면 공무원들도 무연사에 관한 법률 규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니, 얼마나 무연사가 알려지지 않았는지 짐작이 간다. 무연사에 대한 연구 역시 아직 미비하다고 한다.

책의 뒷 표지에는 무연사로부터 아무도 무연하지 않다는 문장이 쓰여 있다. 저자들은 무연사한 사람들의 미래가 우리가 맞닥뜨릴 수 있는 미래라고 한다.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별 문제없어 보이는 이들도 언젠가 실패하거나 빚을 질 수 있다.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지금과 같은 삶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
 
만약 그들처럼 실패해서 다시 일어서지 못했을 때 가족 혹은 지인이 여전히 내 곁에 있으리라고 어느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가족에게 부담을 지우기 싫어서 혹은 자기 처지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내가 먼저 모든 관계를 끊고 숨어버릴 수도 있다. 우리가 만났던 무연고 사망자들을 그저 불쌍한 사람들로 볼 수 없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308P
 
저자들은 한 사람이라도 무연고 사망자들의 간절한 호소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한다. 논의를 하려면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무연사에 대한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호소에 응대하는 사람들이 늘기를 기원한다.

남자 혼자 죽다 - 세상에 없는 죽음, 무연사 209인의 기록

성유진.이수진.오소영 지음, 생각의힘(2017)


태그:#남자, #무연고사망자, #무연사, #고독,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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