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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이 노리코는 <대학에 가는 AI vs 교과서를 못 읽는 아이들>에서 주입암기식 교육을 비판했다. 문제를 푸는 방법을 알려주면, 인공지능은 인간보다 훨씬 빨리 해답에 도달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기술을 가르치고, 스스로 생각해보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는 현실은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다.

지식이 쌓이다 보면 지혜가 생길 수 있다. 그런 희망조차 없다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옛 인생 선배들이 쓴 글을 읽을 이유는 희박해진다. 우리는 단지 뇌 안에 데이터를 쌓기 위해 글을 읽는 것이 아니다. 지식의 축적이 단지 덧셈에서 끝난다면, 즉 화학적 방응을 통한 플러스알파의 효과를 불러오지 않는다면, 독서의 의미는 공허하다.

모리 히로시의 <생각의 보폭>은 추상적 사고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지식의 축적에서 끝나지 말고, 생각의 보폭을 넓혀 추상적 사고의 영역까지 걸어가자는 것이다. 이백 쪽이 넘는 책의 결론은 단 한 줄로 요약된다.
여하튼 중요한 것은 한 마디로 '좀 더 생각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생각의 보폭을 키워 추상적으로 생각하자는 이 책의 결론이다. 너무 간단해 '겨우 그거야?'라고 놀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엇이든 조금 더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195쪽)

'생각하라'는 한마디 말을 하려고 이백 쪽 책을 썼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좀 더 생각하자'는 말을 듣고 당당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또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그 말을 듣고 당당한 사람이야말로 가장 생각을 안 하는 사람이 아닐까?

일전에 대학 친구에게 요즘은 어떤 책을 읽냐고 물었다. 그는 나와 대학 시절 참 많은 책을 함께 읽고 토론을 했던 친구다. 그랬던 그 친구의 대답을 듣고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요즘 다독보다는 다상량을 하지."

다상량. 좋은 말이다. 그러나 책을 읽지 않는 다상량이 얼마나 공허한지 나는 알고 있다. 아마 그도 알고 있을 것이다. 구사나기 류슌은 <단순하게 생각하는 연습>에서 말한다. 망상은 탐욕, 분노와 함께 마음속에 쌓이는 '세 가지 독' 중 하나라고. 망상은 생각과는 다르다.

추상적 사고의 힘
 
<생각의 보폭> 표지
 <생각의 보폭> 표지
ⓒ 마인드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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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모리 히로시는 요즘 사람들이 자살을 많이 하는 이유로 추상적 사고가 부족함을 꼽는다. 추상적 차원에서 생각하는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피상적이고 찰나적인 수준에서 받아들인다. 그렇게 낮은 차원에서 세상 모든 일을 바라보면 나만 피해자인 것 같다. 그래서 견디기 힘들어하고, 극단적인 선택으로 기울기도 하는 것이다.

블로그 이웃 중 한 분이 자동차 사고를 당했다. 그런데 블로그에 이렇게 썼다. 사람이 안 다쳐서 다행이라고. 추상적 차원에서 본다는 것은 한 단계 높은 데서 쳐다보는 것이다. 강의 가던 길에 자동차 사고가 나다니, 강의료보다 수리비가 더 나오겠다는 생각에 머물면 분노밖에 쌓이지 않는다. 하지만 한 차원 높은 수준에서 생각하면 사람이 안 다쳐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가능하다.

우메다 사토시도 <말이 무기다>에서 한 단계 높은 곳에서 조망하는 사고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구체적인 생각에 매몰되다 보면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고 체계적인 사고가 불가능해진다. 이때, 추상도를 높여 생각해야 그 미로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행동은 추상적이지 않다. 생각을 입 밖으로 말하는 것조차 이미 행동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생각이 말이나 글로 고정되면 추상성을 이미 잃어버린다. 판단이야말로 그렇게 고정된 사고의 극단적인 형태다. 사람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것을 우리는 도덕적으로 그르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것은 그냥 현명하지 못한 행동에 다름 아니다.
사람을 추상적으로 보는 사람은 '좋다' 혹은 '싫다'는 감정적인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 '이 사람에게서 어떤 것을 얻을까?'라고 끊임없이 흥미를 느낀다. 감정적인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기에 사려가 깊어진다. (83쪽)

사람에 대한 판단을 삼가는 것을 단지 도덕률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내게 유리한 행동이라고 생각하자는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도 배울 것, 얻을 것이 있다. 타산지석이라는 말이 왜 있겠는가?

더 많은 사람들이 생각의 보폭을 키우고, 추상적 사고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형성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나누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억압 없는 자유로운 토론 속에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하버마스의 금언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추상적 사고 연습
국경선이라는 건 굵기가 1km쯤 되어도 좋은 게 아닐까. 세계 지도에 그려진 선은 충분히 그 정도의 굵기다. 그 국경선 위는 어느 쪽 국가의 것도 아니다. (30쪽)

이 책에는 저자의 독특한 사고의 일면을 보여주는 많은 글이 있다. 많은 국제 문제들이 국경선에 대한 다툼으로 나타난다. 그 와중에 난민이 발생하고, 인권이 유린된다. 그런데 국경선을 정확하고 세밀하게 확정하는 것이 왜 필요한가? 생각해보면, 1차원의 선이라는 것은 상상 속에나 존재한다. 실제의 국경선은 두께를 가질 수밖에 없다.

영국의 해안선의 길이는 무한하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해안선을 재는 자의 정밀도에 따라 영국의 해안선 길이는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 국경선 역시 마찬가지다. 확정될 수 없는 것을 확정하려 하면서, 국가들이 서로 다투고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 아닌가? 저자는 추상적 사고 능력을 키우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제안한다.
- 일상적인 것을 의심한다.
- 평소의 것을 조금씩 바꿔본다.
- 그렇구나! 불현듯 무언가를 느꼈다면 다른 비슷한 상황이 없는지 상상해본다.
- 늘 비슷한 것, 비교할 수 있는 것을 연상한다.
- 장르나 목적에 구애받지 말고 될 수 있으면 창조적인 걸 다룰 기회를 가진다.
- 스스로 창작해본다. (120~121쪽)

저자 스스로도 '지금 생각나는 대로 써 본' 목록이라고 말한다. 요는, 일상적인 것을 비일상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일상에서 비일상성을 발견하는 습관을 들이다 보면, 서로 다른 것에서 유사성을, 비슷한 것에서 다른 점을 찾는 능력이 생길 것이다. 사람들이 소위 '창의력'이라 부르는 그 힘은 결국 새로운 것의 창조로 나타난다. 그것이 창작의 힘이다.

일상적인 것들을 의심해보자. 저자는 세 쪽에 걸쳐 직접 시범을 보인다. 일본 정부의 원자력 정책, 전래 동화의 이상한 점, 달리기나 높이뛰기를 더 공평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독특하지만 수긍이 되는 이야기를 막힘도 없이 줄줄 해낸다.

그런데 저자의 생각이라고 정답이라는 법도 없다. 저자는 일본 전래동화에 나오는 노인에 대하여 말한다. 기분 나쁘게 생긴 것을 주워 오다니, 좀 이상한 사람 아니냐고. 하지만 그걸 주워왔으니까 동화가 되는 것이다. 그걸 그냥 지나친 수많은 사람들은 잊혔지만, 그걸 주워온 노인은 전래 동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저자는 또한, 달리기 경기를 더 공정하게 하려면 각자 마음대로 뛰게 해서 시작시간과 끝시간을 재면 된다고 한다. 현재의 경기 방식은 달리기 실력뿐 아니라 신호에 반응하는 속도에도 좌우되므로 아무래도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 출발이 아니라면 결승선을 반 걸음 먼저 통과하는 스펙터클하고 가슴 뭉클한 명장면이란 사라지고 말 것이다. 달리기 경기는 원래 기록 경쟁이 아니라 엔터테인먼트였다.

일상적인 것을 의심해보는 것도 좋지만, 의심에 또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것도 좋은 생각 연습 아닐까. 변증법이란 그런 것이다. 정반합의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언젠가는 더 좋은 생각에 다다를 것이다.

저자는 언젠가부터 연하장을 보내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잃는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시간을 얻었다고. 연하장 하나 하나에 주소와 이름을 적고 인사말을 쓰는 행위에 매몰되면, 긴 시간을 들여 수백 장의 연하장을 보내는 행위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생각하지 못한다. 한 발짝 떨어져서, 추상도를 높여 생각해 봐야 매년 며칠을 낭비하게 하는 연하장 보내기라는 활동의 실체를 볼 수 있다.

한 단계 높은 수준에서 생각하면, 우리의 일상은 많이 달라 보인다. 일신우일신. 매일 새로운 삶을 사는 비결이다.

태그:#잡식성 책사냥꾼, #모리 히로시, #<생각의 보폭>, #추상적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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