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2006년 11월 19일 노무현 대통령과 캄보디아 체아 심 국가원수 대행이 19일 저녁 프놈펜 공항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2006년 11월 19일 노무현 대통령과 캄보디아 체아 심 국가원수 대행이 19일 저녁 프놈펜 공항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태극기와 대통령을 상징하는 금빛 봉황 문양이 아로새겨진 대형 비행기 한 대가 2006년 11월 19일 프놈펜국제공항 활주로에 안착했다. 한 인물이 환한 웃음에 손을 흔들며 트랩을 내려왔고, 마중 나온 캄보디아 정부 고위 인사들과 반가운 악수를 나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캄보디아를 국빈 방문한 대통령이 되는, 양국 외교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 순간이었다. 

대한민국과 캄보디아는 1997년 10월 30일 외교관계를 정상화했다. 올해로 22년째다. 

양국은 1970년대 악명높은 '킬링필드' 시대의 서막과 함께 한국 대사관 철수를 단행했다. 이후 거듭된 내전 속에 서로 다른 이념체제의 길을 걸으면서, 길고도 어두운 터널을 지나 다시 대사관급 외교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양국이 실질적인 우호증진과 경제 및 문화, 인적 교류협력의 물꼬가 트기 시작한 건 외교정상화 8년 이후인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의 첫 국빈방문부터다.

노무현-훈센의 약속

당시 노 대통령과 훈센 총리는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의 우호증진강화를 위해 경제협력을 포함, 다방면에서 함께 노력하기로 약속했다. 이 같은 합의 아래 정부는 낙후된 캄보디아 지방 국도건설에 나서는 등 캄보디아 사회 간접자원개발과 전후복구사업을 위해 무상원조와 저리 경제개발차관을 제공했다.

또한 양국은 합작투자를 통해 한국형 증권거래소가 건립될 수 있도록 물밑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때마침 방문 시기에 맞춰 그해 경상북도와 캄보디아정부가 공동주관한 앙코르-경주 엑스포가 앙코르유적이 있는 씨엠립에서 한 달간 열렸다. 앙드레김이 주최하는 패션쇼가 별이 빛나는 밤하늘 아래 천년고도 앙코르와트 앞에서 펼쳐졌다. 한국전통문화를 소개하고 알리는 다채로운 문화이벤트와 전시행사가 연달아 열렸다.

그저 잘사는 나라로만 알던 대한민국을 현지 국민들에게 알리는 중요한 계기이자, 한류 열기를 촉발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해 아시아나항공에 이어 이듬해 대한항공이 인천-프놈펜 구간과 인천-씨엠립 구간을 연결하는 직항노선을 차례로 취항, 양국간 하늘길이 열렸다. 입소문을 타고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앙코르와트가 '핫'한 관광지로 떠오르면서 캄보디아를 찾는 한국인 관광객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한해 40만 명 이상의 한국인들이 캄보디아를 방문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의 국빈방문을 즈음해, GS건설과 포스코건설 등 한국 굴지의 건설기업들이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때 프놈펜 랜드마크가 될 골드타워 42 빌딩 건설도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섬유봉제, 건설과 농업, 부동산 투자를 중심으로 대캄보디아 투자가 늘면서, 양국간 교역량도 눈에 띄게 늘어나 한때는 한국이 캄보디아 투자국 1위에 오르기 했다. 1000명도 안 되던 교민사회는 유동인구를 포함해 2만 명 규모로 커졌다.

이처럼 노 대통령의 국빈 방문은 양국간 우호증진은 물론, 관광산업과 비즈니스 분야 등 경제분야 전반에 걸쳐 양국간 교류협력의 물꼬를 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문재인 신남방정책의 초석 다진 노무현

문재인 정부가 역점적으로 추진 중인 신남방정책의 초석을 다진 사람은 따지고 보면 노무현 대통령일지도 모른다. 기왕 노 대통령 말이 나온 김에 잠시 숨을 고를 겸, 노 대통령의 캄보디아 국빈 방문 당시 국내 언론엔 보도되지 않은 에피소드를 전하겠다.

캄보디아는 입헌군주제 국가인 만큼 실질적 권한을 가진 총리에 앞서 상징적 국가원수인 국왕을 먼저 접견하는 게 외교관례상 맞는 순서다. 그런데 당시 노로돔 시하모니 국왕과 노 대통령의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국왕은 요양차 평양으로 떠난 시하누크 부왕 부부를 만나기 위해 나라를 잠시 비웠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친북 성향의 왕실 입장에선 오랜 우호관계를 유지해온 북한과의 의리와 입장을 배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도 북한과 친할 수밖에 없는 캄보디아의 외교정치 현실과 왕실의 분위기를 충분히 이해해, 서운함 따위는 내비치지 않았다. 대신 훈센 총리와 만나 오로지 양국간 미래 발전방향과 양국간 경제교류협력, 우호증진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에만 대화의 초점을 맞췄다.
 
 노무현 대통령 내외가 훈센 총리 내외의 안내로 2006년 11월 21일 캄보디아 시엠립에 있는 세계문화유산인 앙코르 와트를 관람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내외가 훈센 총리 내외의 안내로 2006년 11월 21일 캄보디아 시엠립에 있는 세계문화유산인 앙코르 와트를 관람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훈센 총리도 이에 감동했는지, 대한민국에서 온 첫 번째 대통령을 위해 직접 앙코르와트를 안내하는 열의와 정성까지 보였다. 훈센 총리는 대한민국 국가원수를 예우하려고 각별히 애썼다. 노 대통령은 가난하기만 나라로만 알던 캄보디아에 대해 많은 것을 이해하고 떠날 수 있었다.

이후 노 대통령은 동남아 국가 중 가장 가난한 캄보디아에 애정을 갖고 돕고자 했다. 국내 정치문제에 탄핵 위기까지 몰리는 등 정치적 위기 속에서도 그는 가난한 캄보디아에 대한 관심과 지원 만큼은 결코 잊지 않았다.

그는 재임기간 내내 정기적으로 청와대 파견 특보를 보내는 열의까지 보였다. 현지에서 추진 중인 각종 정부 진행 사업들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도 수시로 점검했다. 특보를 통해 현지 정부 관료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였다. 당시 기자는 청와대에서 파견된 특보들을 안내했다. 기자는 대한민국 정부가 캄보디아에 약속한 각종 사업 현장을 찾아 전국을 도는 것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캄보디아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특별한 관심과 배려, 지원이 있었기에 오늘날 양국 관계가 한층 더 발전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한국-캄보디아의 약속, 빛을 잃다

하지만, 그 같은 노력은 유감스럽게도 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이후 점점 빛이 바래기 시작했다. 2009년 서브프라임 사태로 촉발된 미국발 경제위기는 그 결정적 신호탄이 됐다고 할 수 있다. 환율이 치솟고 경기가 나빠지자, 현지에 진출한 대한민국 기업들이 추진 중이던 대형 프로젝트 사업들은 줄줄이 중단되거나 연기됐다. 동시에 현지 교민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고, 한국인으로서의 자존심도 함께 무너졌다.

동포간담회를 주최한 이명박 대통령은 사업가 시절, 훈센 총리의 경제자문관으로 임명됐던 인연을 강조하면서 캄보디아와의 경제 교류 협력과 지원을 약속했다. 당시 교민사회는 한국발 투자와 경제협력이 늘어날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 재임 중 양국간 교류 협력은 기대치를 휠씬 밑돌았다.

이후 2014년, 한국을 방문한 훈센 총리는 박근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양국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관계'로 격상시키기로 상호 합의하며, 양국관계가 개선되길 바랐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촛불혁명으로 남은 임기를 못 채운 채 떠나면서, 양국 관계는 별다른 결과물을 내놓지 못했다. 많은 약속들은 결국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박근혜-훈센 정상회담 이후 4년가량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양국 교역 규모가 늘고, 각종 경제 지표 역시 많이 좋아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양국간 실질적인 우호협력 관계는 과거 노 대통령 시절에 비해 오히려 소원해졌다. 아니, 되레 후퇴한 느낌이 없지 않다. 대한민국 정부가 상대적으로 베트남 등 다른 나라에 보다 큰 관심을 주고 있는 형국이라 이유 모를 서운함이 있다.

캄보디아 교민사회가 문재인 대통령을 기다리는 이유
 
 브루나이 국빈 방문 일정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2일 오전 브루나이 반다르스리브가완 국제공항을 출발하며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브루나이 국빈 방문 일정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2일 오전 브루나이 반다르스리브가완 국제공항을 출발하며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때마침 이런 시기에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14일부터 캄보디아를 국빈방문한다. 반가운 마음부터 드는 게 사실이다. 캄보디아 교민사회는 대통령의 국빈방문에 큰 관심과 기대감을 갖고 있다.

동남아에서는 제일 먼저(2016년) 성명을 발표하고 촛불혁명에 동참했던 교민사회라 그 감회가 남다르다. 캄보디아 정부 역시 오랜만에 대한민국 대통령이 국빈 자격으로 방문한다는 사실에 무척 고무된 듯하다. 국빈 맞이 준비가 분주하다.

캄보디아 정부는 최근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적인 경향을 보인다. 그렇지만, 캄보디아 정부의 속내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걱정이 앞서는 듯하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자국 경제가 중국 자본 아래 예속될 수 있으며, 그 정도가 심해지면 주권 침해까지 우려돼 경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유럽과 미국의 특혜관세철회 위협에 위기감을 느낀 캄보디아 정부는 겉으로는 여전히 중국에 의존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도, 아시아권 경제 대국인 일본과 대한민국과의 활발한 교류협력과 지원을 원하고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 정부는 그러한 정치적 맥락을 잘 해석하고, 또한 현재 캄보디아가 직면한 정치외교적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과 방식으로 양국 관계를 한 단계 더 끌어올려야 한반도 평화 시대 정착을 위한 대한민국 정부의 입장을 지지해줄 수 있는 지원군을 확보할 수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양국 정상은 상호간 발전적 미래를 위해 다양한 경제 협력 방안을 논의, 합의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신남방정책은 한마디로 말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인류 번영 평화 공동체의 구현이다.

한국-캄보디아 정상회담이 단순한 경제 협력 수준을 넘어, 아시아를 넘어, 인류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상생과 협력의 관계로 발전시키는 데 주력하길 바란다. 그 성과가 문재인 대통령 국빈 방문의 성과로 남길 바란다. 아울러 가난한 나라를 무조건 도와준다는 과거의 일방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길 기대한다. 이제는 양국이 상호 '윈-윈'할 수 있는 공동번영의 파트너로 서로를 인식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생전 추진했던 양국간 교류 협력과 우호 증진의 기본 토대를 더욱 굳건히 다지는 길인 동시에, 문재인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신남방정책이 제대로 된 결실을 맺게 하는 지름길이다.

댓글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라이프 프라자 뉴스 편집인 겸 재외동포신문 기자

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