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북미정상회담의 장소는 상징성이 있다. 1차 북미정상회담 장소였던 싱가폴과 2차 회담 장소인 베트남 모두 향후 북한이 본격적으로 개혁개방을 할 때 롤모델로 삼고자 하는 국가들이다.

북한이 싱가폴을 개혁개방 롤모델로 삼는 이유 중 하나는 싱가폴의 경제체제는 서구 자본주의 시장경제 국가 중에서도 개방형 통상국가, 아시아 금융 허브 등 자본주의의 최첨단을 달리고 있지만 싱가폴의 정치제제는 서구 선진국의 민주주의 모델과는 다른 권위주의 정치체제이기 때문이다.

싱가폴은 경제 발전과 양극화 해소를 동시에 구현했다. 자본주의 국가들 중에는 보기 드문 사례이다. 높은 과세와 높은 복지를 보장하며 경제발전과 양극화 해소를 구현했던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정치체제와 달리 복지국가와 다른 경로로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사민주의 노선의 경제발전은 재정 여력이 없는 개발도상국이 따라가기는 어려운 모델이기에 싱가폴은 자신만의 독자적인 경제발전 모델을 만들어냈다.

제도는 경로의존성이 있기에 체제가 급격히 전환될 경우 체제가 붕괴될 위험이 있기에 김정은 위원장이 아무리 북한을 스위스처럼 바꾸고 싶다 하더라도 곧바로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도입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북한은 현재의 권위주의 정치시스템을 활용하여 북한이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제도의 기반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북한은 싱가폴의 초기 경제발전 과정을 상세히 살필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싱가폴이 경제성장과 양극화 해소라는 함께 달성하기 어려운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던 이유로 토지사유제 기반이 아니라 토지를 국가가 매입하여 공공토지임대 방식을 시행하여 지대 추구를 영구히 차단했다는 점을 주목한다. 싱가폴의 토지 보유 과정과 공공토지임대 방식이 싱가폴 경제발전과 양극화 방지에 미쳤던 효과를 살펴보고 북한 개혁개방에 주는 시사점을 검토한다.

싱가폴 토지 보유 과정

싱가폴 초대 총리 리콴유는 건국 초기부터 강하게 토지를 국가가 매입하여 공공토지임대 방식을 구현했다.

1961년 싱가폴에서는 한국의 판자촌 같은 지역에서 큰 화재가 일어났다. 리콴유는 가난한 판자촌 주민들의 주거를 신속히 복구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토지수용법을 개정해 시세보다 낮은 가격으로 화재 지역 토지를 매입한다. 토지수용법 개정안을 제출하면서 리콴유가 했던 말이다.
 
"이 화재로 인해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대단히 극악한 짓입니다. 만일 조금이라도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불법 거주자들이 사는 땅을 소유한 사람들에게 방화를 하도록 유도하는 일이 될 뿐입니다.(내가 걸어온 일류국가의 길, 174)"
 
싱가폴은 강력한 토지수용법을 통해 시세보다 낮은 가격으로 토지를 꾸준히 매입하며 싱가폴 주거복지 시스템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나는 공적 자금으로 세워진 인프라(infrastructure)나 경제 발전으로 인한 땅값 상승을 통해 개인 지주가 이익을 누릴 이유가 전혀 없다고 보았다.(내가 걸어온 일류국가의 길, 175)"
 
리콴유는 토지 불로소득을 보장하는 토지가치 사유제가 만들어내는 폐해를 명확히 인식하고 토지를 매입하여 공공토지임대 방식의 기조를 일관되게 유지하였기에 현재는 85% 이상의 토지를 싱가폴 정부가 소유하고 있다.

싱가폴 공공토지임대 방식의 효과

싱가폴 공공토지임대 방식은 싱가폴 경제 발전과 소득 불평등 및 양극화 방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상당량의 국유지를 소유한 싱가폴은 국유지 위에 공공주택을 지어 공급하기 때문에 서민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주택을 구입할 수 있다. 현재 싱가폴 국민의 80% 이상이 싱가폴 주택개발청((HDB, Housing and Development Board)이 공급하는 공공주택에서 살고 있다. 공공주택은 환매조건부, 즉 주택을 되팔 때 공급한 주체인 싱가폴 주택개발청에게 되팔게 하여 공공분양주택에서 부동산 투기가 발생하는 것을 막고 있다.

정부가 토지를 상당량 비축하고 있으면 도로, 공원, 교육시설, 항만 등 필요한 사회기반시설을 신속하고 저렴하게 구축할 수 있다. 사회기반시설 조성비용이 낮아진 만큼 정부의 세금지출도 줄어들고 토지임대 수입과 개발이익환수 비용은 세수입으로 충당되어 기업소득과 개인소득 세율을 낮출 수 있었다. 개인과 기업의 노력분에 대해 확실히 보장해줌으로써 글로벌 자본과 인재들이 싱가폴로 더 많이 몰리게 되었다.

여타 나라의 국민들과 달리 싱가폴 국민들은 부동산 투기로 부를 축적하여 계층 이동을 할 수 없기에 사회발전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는 '지대추구' 대신 자녀들에 대한 높은 교육열로 국민적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싱가폴의 높은 청렴도 역시 리콴유의 강력한 부패척결 의지와 함께 토건세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공공토지임대 방식은 싱가폴이 작은 땅과 적은 인구로도 세계적인 강소국이 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이다.

북한이 배워야 할 싱가폴의 성공 요인 : 강한 리더십으로 일관되게 공공토지임대 방식 추진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보는 토지사유제 방식은 시장경제와 어울리는 토지제도는 아니다. '자유로운 경쟁'과 '노력에 대한 보상'이 시장경제를 지탱하는 두 축인데 사회가 함께 만들어낸 토지가치 상승분을 개인이 가져가는 것을 허용하는 토지사유제는 자유로운 경쟁을 훼손하고 사회에 의미있는 생산물을 만든 사람이 보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엉뚱한 사람이 보상을 받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토지사유제 하에서도 토지보유세를 강화한다면 부동산 투기도 방지할 뿐 아니라 토지를 가장 잘 사용할 사람에게 토지가 배분되어 경제의 효율성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지만 대다수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실현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이미 지대와 토지 자본이득을 누리고 있는 기득권이 강력하게 형성되어 있고 이들이 선거와 정치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력한 국가의 통제와 리콴유 가문의 장기 집권으로 인해 싱가폴은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로부터 '유모 국가'라고 조롱받기도 하지만 혼란스러운 건국 초기 리콴유와 같은 강력한 리더십이 없었다면 작은 도시국가 싱가폴은 진작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등 주변 강대국에 흡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싱가폴이 공공토지임대 방식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도 권위주의 정치체제의 장점을 십분 살렸기 때문이다. 일관된 정책기조로 기득권의 저항을 무산시키는 것은 민주주의 정치체제 하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권위주의 정치체제 하에서는 강력한 리더십이 의지만 있다면 크게 어렵지는 않은 일이다.

민주주의 국가가 다시 권위주의 정치체제로 돌아갈 필요는 없다. 하지만 공산주의 경제와 강력한 일당독재 권위주의 정치체제에서 시작하는 북한은 체제의 장점을 십분 살려 초기 개혁개방 과정에서 불로소득을 차단하여, 정치와 경제 내에 부패를 줄여 땀 흘린 사람들이 땀의 대가를 누리고, 땅의 가치는 모두가 공유하는 정의롭고 효율적인 체제로의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강력한 권위주의 정치체제를 활용해 초기 개혁개방 제도 발전 방향을 제시하고 추구해나간 싱가폴의 경험이 바로 개혁개방을 준비하는 북한이 적극 배워야 할 중요한 자산이다.

관련 기사 :
1. 북한 개혁개방을 위한 제언 1 - 북한 개혁개방의 반면교사 '러시아식 개혁개방'
2. 북한 개혁개방을 위한 제언 2 - 북한 토지제도, 싱가폴·홍콩을 롤모델 삼아야하는 이유

태그:#싱가폴, #공공토지임대제, #헨리 조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토지불로소득 없고 땀흘려 일하는 사람이 대접받는 세상을 꿈꿉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