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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지 꼭 1년이 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1년을 돌아보며 '죽을 권리'를 말하는 환자와 그 보호자, '죽음'부터 말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전합니다.[편집자말]
어렵게 만들어진 연명의료법은 죽음을 결정할 권리가 아니라 무의미한 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 한국 사회의 법과 제도는 아직 ‘죽을 권리’까지도 가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렵게 만들어진 연명의료법은 죽음을 결정할 권리가 아니라 무의미한 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 한국 사회의 법과 제도는 아직 ‘죽을 권리’까지도 가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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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렇게 살기를 바랄까? 눈뜨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간질 발작을 하며 때때로 고통에 신음을 내뱉는 이런 삶을?"
- 캐시 란젠브랑크, <안녕, 매튜> 중에서

수년째 식물인간 상태인 동생 매튜. 누나 캐시 란젠브랑크는 처음으로 동생의 죽음을 마음먹던 날,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의 책 <안녕, 메튜>에 따르면, 가족은 이후 법원의 영양·수분공급 중단 허가를 받는다. 자신과 연결된 튜브를 제거하고 13일 뒤, 매튜는 8년간의 투병생활을 마칠 수 있었다.

한국에도 매튜와 비슷한 환자들이 있다. 하지만 현행법이 정한 연명의료 중단 범위는 매우 제한적이다. 시행 1년째인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아래 연명의료법)은 ▲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 한해 ▲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및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의학적 시술로서 치료효과 없이 임종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것을 중단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식물인간이나 영양·수분공급 중단은 해당하지 않는다.

이정도 범위를 정하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국 사회에서 연명의료 문제를 두고 처음으로 토론이 이뤄진 것은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 때였다. 병원에선 만류했지만 보호자는 의사의 치료를 거부했고, 결국 퇴원 후 산소호흡기를 떼자 환자는 5분 만에 사망했다. 법원은 보호자는 물론 담당 전문의와 전공의의 살인죄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2009년에서야 죽음을 둘러싼 논의는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갔다.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을 원한다며 환자 가족들이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김 할머니 사건' 덕분이었다.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환자가 ▲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르렀고 ▲ 본인 의사를 확인해 ▲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 자기결정권 행사로 인정된다며 김 할머니의 연명의료 중단을 허용했다.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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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법이 만들어지고, 제도로 작동하기까지 약 10년이 더 걸렸다. 2018년 2월부터 시행된 연명의료법은 흔히 '존엄사법'이라고 하지만, 정확한 명칭이 아니다. 현행법은 죽음을 결정할 권리가 아니라 무의미한 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 한국 사회의 법과 제도는 아직 '죽을 권리'까지 가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조심스러워한다. 문화와 제도, 두 가지 면을 고려할 때 연명의료 중단부터 제대로 정착해야 한다는 이유다. 이들은 <오마이뉴스>가 취재한 '이 할머니'처럼 사전연명의료의향서(아래 사전의향서)를 쓴 말기암 환자여도, 임종과정이 아니라면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없는 경우가 현행법의 사각지대라는 데에 대체로 동의했다(관련 기사 : ① 내 어머니는 살아 있습니까, 죽고 있습니까). 하지만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환자단체] "아직 '○○사' 논쟁을 할 때 아니다"

안기종 한국환자연합회 대표는 "사전의향서를 썼으니 의사표시가 명백하지만, 이런 경우는 (연명의료 중단이 아니라) 소극적 안락사"라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아직 사(死)자가 들어가는 논쟁을 할 때가 아니다"라며 "연명의료계획서에 따라 연명의료 유보 또는 중단을 결정한 비율이 적어도 60~70%는 돼야 한다"고 했다.

연명의료 결정은 환자가 직접 쓴 연명의료계획서 또는 사전의향서를 확인할 때 가능하다. 둘 중 하나가 없다면  배우자, 부모 등 직계 존속 또는 자녀 등 직계 비속(모두 1촌 이내)의 진술로 정할 수 있다(지난해 3월 개정 전까지는 가족 전원 합의). 그런데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1년(2018년 2월 4일~2019년 2월 3일) 동안 연명의료 결정이 이뤄진 사례 가운데 3분의 1만 환자의 연명의료계획서(31.5%)와 사전의향서(0.8%)에 따른 것이었다. 나머지는 환자 가족 2인 이상이 진술하거나(31.8%) 전원 합의(35.9%)로 정해졌다.

안 대표는 "아직 한국의 연명의료 중단은 경제적 이유가 큰 영향을 준다"며 "이 현실이 바뀌어야 (죽을) 권리로 접근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지난해 시행을 앞두고서도 의료계에서 많이 우려했는데 굉장히 무리 없이 진행된 만큼 사전의향서 교육과 의사의 연명계획서 참여가 늘어나고 제도 남용이 없도록 감시하는 것 등이 이뤄져야 한다"며 "약 3년 뒤에는 사회적으로 (연명의료 중단) 다음 논의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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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 "자칫 돈 문제로... 하나씩 논의해야"

'김 할머니 소송'을 대리한 신현호 변호사(법률사무소 해울) 역시 사전의향서를 썼지만 아직 임종과정에 이르지 않은 말기질환 환자의 경우가 "충분히 이해된다"면서도 조심스러워했다. 그는 "한국은 의료가 상업화하고 건강보험 보장률이 62.7%(2017년 기준) 정도라 자칫 돈 되면 살리고 그렇지 않으면 (의료를) 종결할 위험이 크다"며 "노인병원에도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니 치료 안 받겠다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한다, 이건 자기결정권이 아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사회는 자꾸 '죽을 권리'를 말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7년 노인실태조사에 참여한 65세 이상 노인 1만 73명 91.8%는 연명치료에 반대했다. 지난 7일 <서울신문>은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0.7%가 안락사 허용에 찬성했다고 보도했다. '이 할머니' 같은 사례는 언제든 논쟁의 대상으로 떠오를 수 있다.

신 변호사도 "이 환자와 유사한 경우가 상당수일 것"이라며 "그럼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하느냐의 문제"라고 했다. 그는 "3~4개월 남은 기간 동안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기 싫다는 이들도 있는데, 앞으로 하나씩 논의해야 한다"며 "공급자 중심인 호스피스·완화치료도 재택·재가 치료 원칙, 환자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종교계] "죽을 권리? 사전 의향서? 우려스럽다"

종교계는 더 보수적이다. 정재우 신부(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 원장)는 "연명의료법은 생애 말기 환자에게 중요하지 않은 처치를 고집해 오히려 환자가 고통스러워지는 것을 막자는 일뿐, 죽음을 결정짓는 절차를 만든 법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언론에서 안락사 문제 등과 함께 얘기하며 '자기결정권'으로 접근하는데, 죽겠다고 결정하고 실행하면 그건 자살"이라며 "우리가 그동안 해온 자살예방 노력은 어떻게 봐야 하냐"고 되물었다.

그는 '죽을 권리'라는 관점뿐 아니라 '사전의향서를 쓰면 연명의료 중단을 쉽게 결정할 수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사회 분위기도 우려했다. 실제로 지난 1년간 사전의향서를 쓴 사람은 11만 5259명(2월 3일 기준)으로 꾸준한 증가세며 정부는 사전의향서 제도를 더욱 적극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하지만 정 신부는 사전의향서의 법적 효력을 우려하며 "이것은 희망사항의 표현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미래를 가정하고 쓴 사전의향서를 바탕으로 한 연명의료 중단은 환자 자신이 정확한 상태를 알지 못한 채 이뤄지는 것"이라며 "사전의향서를 쓰더라도 연명의료계획서를 다시 쓰고, 실제 상황에서 의사와 계속 대화하며 치료를 진행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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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국회] "좀더 지켜보고... 공론화 과정 거쳐야"

관련 기관도 고민이 깊다. 김명희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 사무총장은 '이 할머니' 사례를 "의료의 회색지대"라고 했다. 하지만 "인간이 하는 일이 100% 예상대로 되지 않는다, '김 할머니'도 연명의료 중단 후 200일 정도 더 생존했다"며 "결국 고통 받는 것은 환자라 굉장히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김 사무총장은 또 "한국은 이제 겨우 연명의료 결정 수준으로 들어갔다"며 "의사조력자살이나 안락사는 한 걸음이 아니라 열 걸음 후의 문제"라고 했다. 그는 "여전히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생각이 만연한데 죽는 방법을 말하는 것은 너무 시기상조"라며 "좀더 제도 시행을 지켜보고, 죽음의 문제를 더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때, 삶의 마무리를 논의할 시스템을 구축한 다음에 방법론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회도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한다는 쪽이다.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7년말 연명의료 결정절차를 완화하는 취지의 법안을 발의, 본회의를 통과시켰다. 하지만 사전의향서를 쓴 말기환자라도 임종과정 판단을 완화하는 것 등 선택권을 더 넓히는 것은 어려운 문제다. 의원실 관계자는 "이 사안은 가족이 악용할 수도 있어 굉장히 조심스럽다"며 "앞으로 공론화 과정을 거쳐 추가 입법이 필요하다면 같이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안녕, 매튜 - 식물인간이 된 남동생을 안락사시키기까지 8년의 기록

캐시 란젠브링크 지음, 서가원 옮김, 이와우(2016)


태그:#연명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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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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