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15세 소녀가 흘린 눈물에는 여러 가지로 복잡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모두 보여주고 은반 위에서 끝내 터진 눈물은 안타까움보다는 앞으로의 미래를 더욱 밝게 해주는 원동력이 됐다. '피겨 기대주' 유영(15·과천중)의 얘기다.
  
 유영이 23일 오후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열린 2018 KB금융 전국 남녀 피겨스케이팅 회장배 랭킹대회 겸 2019 피겨 국가대표 1차 선발전 여자 싱글 프리 스케이팅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다. 2018.12.23

유영의 연기 모습(자료사진) ⓒ 연합뉴스

 
유영은 지난 9일(한국시간)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열린 2019 국제빙상연맹(ISU) 피겨스케이팅 주니어 세계선수권 대회 여자싱글 프리스케이팅 경기에서 123.20점(기술점수 66.13점 구성점수 57.07점)을 받으며 총점 178.82점으로 최종 6위로 대회를 마쳤다.
 
엇갈린 평가 속 악재 겹쳐


2년 연속 내셔널 챔피언에 빛나는 소녀는 상당한 긴장감과 부담을 안고 이번 대회에 나섰다. 유영은 지난 2016년 국내 종합선수권(KB금융 코리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에서 김연아(29)가 처음으로 이 대회에 우승했을 때보다 어린 만 11세에 나이로 우승해 피겨계에 새로운 재목으로 떠올랐다. 이후 그는 국내대회에서 항상 높은 평가를 받아왔는데 특히 한 살 터울이자 같은 국가대표인 임은수(16·신현고), 김예림(16·수리고)보다 구성점수 등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왔다.
  
유영 '매혹의 스케이트' 유영(과천중)이 13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열린 'KB금융 코리아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 2019'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아름다운 연기를 펼치고 있다.

유영의 연기 모습(자료사진) ⓒ 연합뉴스

 
그러나 국제대회에서는 내셔널 챔피언다운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유영을 지난 시즌부터 이번 시즌까지 주니어 그랑프리 두 시즌을 치렀다. 첫 시즌에는 메달권에 들지 못했고, 이번 시즌에는 1차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유영과 함께 경쟁하고 있는 임은수는 두 번의 메달을 획득했고, 김예림은 김연아 이후 13년 만에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까지 진출했다.
 
아울러 지난해 처음으로 출전했던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는 프리스케이팅에서 두 번이나 엉덩방아를 찧으며 9위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렇게 국내에서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여준 것에 비해 유영은 국제대회에서는 다소 위축되는 느낌을 받았다.
 
문제는 무엇보다 국제대회에서 실수가 잦아졌다는 것이다. 유영은 국내대회에서는 좀처럼 점프에서 큰 실수를 하지 않는 편이었다. 반면 국제대회에서는 트리플-트리플 점프나 에지 문제를 겪고 있는 트리플 플립 등에서 실수가 나오면서 기술점수에서 크게 깎이고 말았다. 이런 점은 구성점수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이번 주니어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도 같은 실수가 또 다시 나왔다. 쇼트프로그램에서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를 뛰다가 러츠 점프 착지 직후 오른발이 꺾이면서 연결 점프를 아예 놓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유영은 기술점에서 8점 가량 손해를 보고 말았다. 이렇게 만 15세 소녀는 '두 번의 실수는 없다'고 다짐하고 나온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또다시 위기에 봉착했다.
 
성적보다 더 큰 자산 얻어

쇼트프로그램에서 큰 실수를 범하며 10위권 밖으로 밀려나면서 유영에게는 더 큰 중압감으로 다가왔다. 국내와 국제대회에서 다소 엇갈리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을 극복하고 또한 시니어로 올라오는 차기 시즌을 위해서라도 이번 주니어 세계선수권은 그에게 매우 중요한 대회였다.

이튿날 프리스케이팅에서 유영은 비장한 표정으로 링크에 나섰다. 자신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인 <캐리비안의 해적> OST를 통해 빠른 스피드를 바탕으로 박진감과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마음껏 펼쳐냈다.
  
 피겨 여자싱글 유영의 우아한 연기

유영의 연기 모습(자료사진) ⓒ 연합뉴스

 
점프에서 단 한 차례 실수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는 쇼트프로그램에서 놓쳤던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를 비롯해 더블 악셀-트리플 토루프 등 배점이 큰 점프들을 모두 상당한 스피드와 비거리, 높이 등을 보여주며 과감하게 성공시켰다. 유영의 장점이 그대로 발휘되는 순간 심판들로부터 무려 2점대에 가까운 수행등급(GOE) 점수까지 받았다.
 
올 시즌 초반 그는 연결 트리플 점프에서 회전수 부족을 지적 받아왔다. 아직 시니어로 올라오기도 전부터 연결 점프의 회전이 모자라다고 판정을 받은 것은 앞으로 선수 생활을 이어나가는 데 있어 크게 발목을 잡힐 수 있는 요소였다. 하지만 시즌 후반 연결 점프의 높이가 높아지고 회전이 견고해지면서 이런 문제를 단숨에 해결했다. 피겨스케이팅에서 회전 부족 문제는 단순히 하루 이틀 만에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볼 때 상당히 놀라운 부분이었다.
 
결국 그토록 원하던 클린 연기를 해내자 유영은 음악이 끝남과 동시에 눈물을 흘리며 참아왔던 감정이 터지고 말았다. 그가 갖고 있던 부담감이 얼마나 컸고 전날의 실수가 얼마나 아쉬웠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당초 목표로 했던 주니어 세계선수권 톱5 이내와 시상대 진입은 한끗 차이로 아쉽게 무산됐다. 하지만 유영은 앞으로 시니어 선수로 성장해 나가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단단한 마음가짐을 이번 대회를 통해 얻었다. 유영은 쇼트프로그램 직후 SNS를 통해 "오른발 부츠가 대회에 오기 전에 꺾이는 문제가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부츠는 피겨 선수들에게 있어 생명과도 같은데 이런 상황에서 아직 경험이 많지 않은 선수가 느끼기는 부담감은 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게다가 쇼트프로그램 실수로 또다시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낼지도 모른다는 압박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프리스케이팅에서 그 모든 것을 만회하고 자신의 프리스케이팅 개인기록을 경신해 냈다. 힘든 상황을 슬기롭게 대처해 낸 것은 앞으로 선수 생활에 있어서 이번 대회 메달보다 훨씬 더 값진 성과였을지도 모른다. 유영에게 있어 이번 6위는 그렇기에 메달 이상으로 소중한 결과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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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스케이팅 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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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스포츠와 스포츠외교 분야를 취재하는 박영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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