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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서울 광화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앞에서 '비정규직 이제 그만 공동투쟁' 관계자들이 ‘경사노위 본회의 무산에 대한 입장과 투쟁계획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폐기 등을 촉구하고 있다.?2019.03.07
 7일 서울 광화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앞에서 "비정규직 이제 그만 공동투쟁" 관계자들이 ‘경사노위 본회의 무산에 대한 입장과 투쟁계획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폐기 등을 촉구하고 있다.?2019.03.07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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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로 예정되었던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 본회의는 청년, 여성, 비정규직을 대표하는 노동자 위원들의 불참 통보로 사실상 무산되었습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도의 단위기간 확대를 노·사·정 합의의 이름으로 의결하고자 했던 정부와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입니다.

본회의가 무산되던 날 경사노위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법령 개정을 포함하여 결정구조 개편 방안을 고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특히 청년, 여성, 비정규직 대표 위원 3명의 본회의 불참과 관련하여, 박태주 상임위원은 "사회적 대화의 핵심은 이른바 전국 차원의 노․사단체"이며, "청년․여성․비정규직은 중요하지만 보조축"이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러한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입장은 실망을 넘어 경악 그 자체입니다. 노동조건을 정함에 있어 노동자와 사용자가 대등한 위치를 점하고 상호 간 의견 교환을 통해 합의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은 노동법의 대원칙이자 노사관계운영의 기초입니다. 그러한 대원칙과 기초는 청년, 여성, 비정규직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습니다. 정규직 남성 중년 노동자만 합의의 주체가 되라는 법은 없고, 그런 법은 존재해서도 안 됩니다. 사회적 대화의 장이라고 일컫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출범시키면서, 국회와 정부가 청년, 여성, 비정규직 대표를 본회의 위원으로 선임하기로 법과 규정에 정한 것은 그러한 과오를 씻기 위함이 아니었습니까.

설령 그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다른 위원과 동등한 자격으로 각자의 계층을 대표하여 위원으로 있는 사람들에게 '보조적인 축'이라는 식의 몰상식한 표현을 공개적으로 발언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현실은 심히 유감스럽습니다. 누구나 각자의 삶에 있어 주체로서의 권리를 가진다는 민주공화국에서, 일하는 청년과 여성, 비정규직은 '중년과 남성, 정규직을 위한 보조적인 삶'을 살라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발언입니다. 이런 식의 무례한 대우는 한 사람의 청년 노동자로서 도저히 수용할 수 없습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는 장시간 노동에 대한 면죄부

그런데 정부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한국노총은 정작 자신의 무례함을 모르는 모양입니다. 청년, 여성, 비정규직 대표위원 3명의 불참에 유감을 표시하며 대놓고 참석하라는 압력을 가하는 꼴이 가히 우습다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청년, 여성, 비정규직 대표가 민주노총의 입김에 휘둘렸다면서, 차마 입에 담기도 거북한 힐난과 조롱을 이들에게 쏟아내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한 사람의 청년 노동자로서, 청년을 대표하는 위원에게 쏟아지고 있는 이와 같은 무례한 언사와 힐난을 규탄하며, 본회의 불참을 결정한 청년 대표 김병철 위원을 감히 변론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청년 대표의 입장은 명확합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는 장시간 노동에 대한 면죄부의 남발이고, 설령 정부와 사용자가 그것의 수용을 대가로 어떤 조건을 제시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수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노동시장의 주변부에서 아파도 아프다고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는 청년 노동자에게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는 법의 이름으로 내려지는 사형선고와 다를 바 없습니다. 주 64시간을 연이어 일하도록 종용하는 제도적 장치는 노동자의 죽음 앞에서도 멈추지 않고 가동되는 자본의 컨베이어 벨트와 다를 바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청년 대표가 내릴 수 있는 결정에 선택지가 여럿이었겠습니까. 청년의 과로사 만연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 그것이 단순히 본회의에 참석해야 한다는 의무감 보다 크지 않았겠습니까.

청년의 의견은 단 한 줄도 수렴되지 않은 경사노위 본회의에 불참하기로 결정한 것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법이 청년대표인 그에게 보장한 권리이자, 청년대표로서 그가 청년에게 마땅히 지켜야 할 의무를 이행한 것일 뿐입니다. 여성과 비정규직을 대표하는 나지현, 이남신 위원의 결정 또한 각자 대변하고자 하는 계층을 위한 결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청년대표에 대한 무례한 언사와 힐난은 결코 적절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루고자 하는 사회적 합의의 끝에는 청년 과로사의 만연과 무제한 노동의 합법화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청년 대표의 본회의 불참 결정, 지극히 정당하고 상식적인 선택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 대표의 결정이 마땅히 비난받아야 하는 것이라면, 그 비난은 모든 청년이 함께 지고가야 할 몫일 것입니다. 일을 마치고 나서 내가 누구인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시간을 원하는 것이 죄라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낼 시간을 원하는 것이 죄라면,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원하는 것 이죄라면, 단순히 쉴 시간을 원하는 것이 죄라면, 일하고 꿈꾸는 한국 사회의 모든 청년은 유죄일 것이며, 그 벌은 당연히 청년 모두가 함께 감당해야 할 몫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많은 청년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는 청년의 외침이 죄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한국 사회 청년은 무죄입니다. 저녁이 있는 삶, 존엄하게 자신의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삶. 그것은 많은 청년이 주 40시간 근무를 요구하며 꿈꿔온 삶입니다. 그 꿈을 가로막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에 청년은 단호히 반대할 수밖에 없고, 청년 대표는 그 뜻을 따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유죄란 말입니까.

정부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한국노총에 고합니다. 사회적 합의는 대화의 주체가 동등한 지위에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졌을 때, 비로소 작동 가능한 것입니다. 청년 대표가 청년 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회의에서 개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여건, 자원을 제공하지 않은 채, 과로사에 이를 만큼 장시간 노동을 공짜로 시킬 수 있는 제도를 노․사․정의 이름으로 의결하는 자리에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끄러운 으름장을 쏟아내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이대로라면 정부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한국노총은 일하는 청년의 외면과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청년의 죽음을 막기 위한 청년 대표 김병철 위원의 본회의 불참 결정은 지극히 정당하고 상식적인 선택일 뿐입니다. 정부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한국노총은 그에 대한 몰상식하고 비합리적인 언사를 즉각 멈추고, 사회적 대화의 진정한 실현을 위해 청년 노동자의 목소리를 어떻게 듣고 반영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태그:#경제사회노동위원회, #경사노위, #탄력적 근로시간제, #사회적 대화,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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