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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부터 군산 한길문고 상주작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작가회의가 운영하는 '2018년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가 되었습니다. 문학 코디네이터로 작은서점의 문학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자리를 만듭니다. 이 연재는 그 기록입니다. - 기자말
 

별거 아닌데도 자꾸만 눈이 가는 게 있다. 기어이 닿고 싶어서 팔이라도 쭉 뻗어보는 게 있다. "아무것도 아니고만"이라는 타박을 받으면서도 내려놓지 못하는 욕망. 나한테는 그게 1등이다. 가장 많이 팔린 책 1등.

"떨 것 없씨야. 똥개도 즈그 집 앞에서는 먹고 들어간다이."

어릴 때 들었던 말의 실체는 첫 책을 내고서야 제대로 알았다. <우리, 독립청춘>은 우리 동네서점 한길문고에 입고된 지 한 달 만에 243권이 팔렸다. 한길문고 매대에 우아한 탑처럼 쌓여있던 <소년의 레시피>는 어느 밤에 가보면 싹 팔리고 없었다.

군산이라는 소도시와 어울리지 않는 <서울을 떠나는 삶을 권하다>도 입고되고 두 달 지나서는 가장 많이 팔린 책 1등을 했다. 한길문고에 사랑을 쏟는 독자들은 그 마음을 참지 못하고 같은 동네에 사는 작가의 책을 사주는 것 같았다. 덕분에 나는 3관왕을 했다.
 
군산시립도서관과 군산의 동네서점 다섯 곳은 힘을 합쳐서 동네서점 살리기를 한다. 시민들은 신간을 서점에서 빌려읽을 수 있다.
▲ 희망도서 바로대출 군산시립도서관과 군산의 동네서점 다섯 곳은 힘을 합쳐서 동네서점 살리기를 한다. 시민들은 신간을 서점에서 빌려읽을 수 있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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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작가의 욕망을 잘도 알아주는 한길문고. 또다시 사람을 흔들었다. 동네서점에서도, 도서관에서처럼 책을 빌려 읽을 수 있는 '희망도서 바로대출'을 한다고 했다. 한길문고에서 첫 번째로 책을 빌려 읽는 사람이 되자고 결심했다. 하지만 나는 서점 상주작가. 그 기쁨을 다른 누군가에게 양보하기 위해서 페이스북 '군산 스토리'에 글을 올렸다.

"새봄, 군산의 서점들은 새로운 모습으로 독자에게 다가갑니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출판사 새 책 소식에서 봤던 그 신간. 도서관에 들어오려면 한참 걸리는 그 신간. 한길문고를 비롯한 예스트서점, 우리문고, 마리서사, 양우당서점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신간을 빌려 읽을 수 있습니다. 도서관 회원증만 있으면 됩니다."

군산의 시립도서관과 동네서점들이 힘을 합쳐 진행하는 희망도서 바로대출은 3월 1일부터. 닥쳐서 하면 안 될 수도 있으니까 시행 이틀 전부터는 시범 운영을 했다. 나는 1등으로 책을 빌린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을 내려놓았다. 다만, 빨리 빌려서 읽어보고 싶다는 욕망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2월 28일 한낮. 노트북을 켜고 군산시립도서관을 클릭했다. 화살이 날아들 듯 배너광고 네 개가 시야를 가로막았다. 나는 부모님의 원수를 갚으러 온 사람처럼 재빨리 사이트를 장악하는 배너광고를 없애버렸다. 드디어 보였다. 희망도서 바로대출!
 
군산의 동네서점에서 책을 빌려읽을 수 있는 희망도서 바로대출. 군산시립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신청하면 된다.
 군산의 동네서점에서 책을 빌려읽을 수 있는 희망도서 바로대출. 군산시립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신청하면 된다.
ⓒ 군산시립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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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을 했다(도서관 회원카드가 있는 시민들도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온라인 가입을 해야 함). 처음부터 또렷하게 보였던 희망도서 바로대출을 클릭했다. 헤매지 않도록 '도서신청 하러 가기'가 재깍 따라 나왔다. 기타오지 기미코의 에세이 <싫지만 싫지만은 않은>을 신청했다.

"발행일이 2년을 초과한 자료는 신청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 출간된 지 1년 안 된 책만 빌릴 수 있다. 나는 메모해둔 책 목록을 확인하려고 스마트폰을 집어 들다가 곁길로 새버렸다. 포털 사이트도 아닌데, 시립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습관처럼 내 책을 검색했다. 음하하하핫! 신청 가능했다. 하지만 책으로 나오기 전에 100번 넘게 읽었다. 

<곰탕1 - 미래에서 온 살인자>를 신청했다. 한길문고 상주작가 프로그램 '에세이 쓰기'에 참여하는 전은덕 선생님이 재밌게 읽었다고 했으니까. 바로대출은 1회 1권, 한 달에 2권까지만 신청가능한데 <곰탕2 - 열두 명이 사라진 밤>은 어떡하지? 남편 이름으로 신청했다. SF와 액션 영화를 좋아하는 남편은 거실 탁자 위에 올려놓은 책을 훑어라도 볼 테니까.

"배지영님께서 신청하신 <곰탕1>을 한길문고에서 2019.03.05.까지 대출 바랍니다."
 

대출 신청을 한 지 10분도 안 돼서 문자가 왔다. 나는 지갑 속에 있어야 할 것들이 잘 있나 확인했다. 남편한테도 전화를 걸어서 "책 대출 문자 왔지? 서점으로 와줘"라고 재촉했다. 그리고는 축지법을 연마한 수련생처럼 날 듯이 서점으로 달려가서 말했다.

"책 빌려 가라는 문자 받았어요. 곰탕."
 

한길문고 김우섭 점장님은 웃으면서도 완전 업무용 언어를 썼다.

"신분증하고 도서관 회원카드 주세요."
"도서관에서 책 빌릴 때는 카드만 내면 되는데요?"
"서점에서는 안 됩니다. 신분증도 보여주셔야 합니다."

 
동네서점 한길문고에서 신간을 빌렸다. 도서관에서 빌릴 때는 도서관 회원카드만 있으면 되지만, 서점에서는 신분증까지 확인한다.
 동네서점 한길문고에서 신간을 빌렸다. 도서관에서 빌릴 때는 도서관 회원카드만 있으면 되지만, 서점에서는 신분증까지 확인한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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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한 새 책을 받았다. 대출기간은 14일, 반납도 서점에서 한다. 도서관에서 대출할 때하고는 다른 기분이었다. "베풀어주는 호의, 고맙습니다"라고 절을 하고 싶었다. 한길문고에 왔다가 상주작가한테도 책을 사준 '박종대의 행복한 치과' 원장님과 '밥하지마'이근영 선배님한테 품었던 마음, 존경심이 치솟았다.

1억 5천만 원! 올 한 해 시립도서관에서 희망도서 바로대출에 쓸 예산이다. 군산시민들이 한길문고, 예스트서점, 우리문고, 양우당서점, 마리서사에서 책을 사지 않고 빌려보라고 정한 돈이다. 대기업인 지엠대우가 문을 닫고 난 뒤, 수능참고서 같은 매출까지 20% 줄어든 군산의 동네서점에 활력을 주는 정책이다.

"사실 도서관은 예산도 들고, 일도 많아지지. 동네서점을 위해서 이걸 하는 거야. 도서관에서 책 수거하러 서점마다 매일 다니겠대. '우리가 한 달에 한 번씩 모아서 갖다 주겠다'고 했더니 그러면 그동안 시민들은 책을 못 읽을 수도 있다잖아. 서점 편의가 아니라 시민들을 위해서 다닌다는 거지."
 

한길문고 문지영 대표님은 말했다. 지난해 가을,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의 거점서점으로 선정된 이후, 한길문고의 분위기는 더 따스해졌다. 서점의 문화공간을 찾는 시민들의 발걸음도 잦아지고, 단행본 매출까지 오르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가을,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의 거점서점으로 선정된 한길문고. 서점의 문화공간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고맙습니다.^^
 지난해 가을,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의 거점서점으로 선정된 한길문고. 서점의 문화공간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고맙습니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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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앉아있던 테이블에서 몸을 기울여 서점 서가를 봤다. 새 학기를 맞이하는 한길문고에는 책과 참고서를 사러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서점의 최고 큐레이션은 책을 보는 사람들이다. 책만 있는 서점은 너무나 쓸쓸하고 슬플 것 같았다.

"상주작가가 있어서 우리 서점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문지영 대표님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씩씩한 어린이처럼 말했다. 최고로 기분 좋은 말을 들은 그 순간에 봉인해 두었던 내 욕망은 튀어나오고 말았다.

"언니(한길문고 대표님은 학교 선배)! 희망도서 바로대출, 나 몇 등이야?"
"세 번째다야. 3등."


나는 책 한 권 가격을 13,500원(<소년의 레시피> 기준)으로 잡아보았다. 희망도서 바로대출 총예산 1억5천만 원에 책값을 대입해서 나눠보았다. 11,111등을 한 사람도 나처럼 서점에서 책을 빌려 읽을 수 있다. 흡~~~~ 새 책 냄새를 맡을 수 있다.

태그:#희망도서 바로대출, #군산 동네서점 살리기, #군산 시립도서관, #군산 한길문고,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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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소년의 레시피』 『남편의 레시피』 『범인은 바로 책이야』 『나는 진정한 열 살』 『내 꿈은 조퇴』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 대한민국 도슨트 『군산』 『환상의 동네서점』 등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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