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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지어보고 싶으나 지어본 경험은 없었다. 만들기를 좋아해 다양한 목공 작품은 많이 완성해 봤으나 전통 건축양식 정자를 혼자 짓겠다고 시도한 건 처음이다. 어렵다고 생각하기보다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은 힘이 됐고 실제로 해내고야 말았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개인 차원의 역사적인 기념물을 만들고 싶었다는 심우근 천안제일고등학교 역사교사의 의지는 그러했다.

지난 3월 1일(금) 정자 건립에 열중인 심 교사를 만나기 위해 천안시 동남구 광덕산 산허리에 있는 그의 집을 방문했다.
 
 심 교사는 천안제일고등학교 역사교사다.
▲ 심우근 교사.  심 교사는 천안제일고등학교 역사교사다.
ⓒ 노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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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혼자 힘으로 완성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지만 건물을 짓는다는 건 철저한 준비 없이는 꿈으로 끝날 목표였다.

"본격적인 계획은 지난해부터죠. 올해는 우리나라가 독립(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한 지 100주년이 되는 아주 뜻깊은 해잖아요. 개인 차원에서 역사적인 기념물을 짓고 싶었어요."
 
곧 완공을 눈 앞에 둔 정자. 지붕의 곡선을 살린 전통 건축 방식의 정자다. 기둥과 천장 안쪽을 채운 개판 나무는 모두 기존에 다른 용도로 사용했던 나무를 재활용했다.
▲ 정면에서 본 정자 곧 완공을 눈 앞에 둔 정자. 지붕의 곡선을 살린 전통 건축 방식의 정자다. 기둥과 천장 안쪽을 채운 개판 나무는 모두 기존에 다른 용도로 사용했던 나무를 재활용했다.
ⓒ 노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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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인 준비도 철저히 했다. 집을 짓는 건 실제 기술이 받쳐주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2008년 한옥문화원에서 6개월가량 목수 수업을 받고 실습 겸 현장에도 다녔다. 마음에 두고 있다가 드디어 올해 실천했다.

"옛날 조상들은 살 집을 스스로 지었잖아요. 동물도 자기 집은 자기가 지어요. 근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이 자기 집을 못 짓는다는 건…."

하지만 '정자 하나 짓는 게 뭐 그리 어려울까'라고 한다면 모르는 소리다. 전문가가 짓는 정자가 아니다. 엄연히 정자를 처음 짓는 초보 목수의 작품이다.

심우근 교사가 짓는 정자는 보통 주택에서 휴식 장소로 이용하는 정자보다 큰 편에 속하며 온갖 전통 건축양식이 숨어있다.

이 정자는 보는 이 시선의 안정을 생각한, 기둥 위가 안으로 쏠린 '안쏠림' 방식이다. 게다가 전통 기와집에서나 볼 수 있는 기와지붕의 유려한 곡선미를 지녔다. 추녀 쪽으로 뻗어 나온 곡선과 처마가 지붕 가운데로 살짝 들어가는 곡선 두 지점을 다 살렸다.
 
골격은 다 완성했고 마감과 칠만 남은 상태. 보통 정자보다 커서 어떻게 혼자 지을 수 있었을까 궁금증이 솟는다. 심 교사는 힘보다 꾀를 더 많이 썼다고 말했다.
▲ 측면에서 본 정자.  골격은 다 완성했고 마감과 칠만 남은 상태. 보통 정자보다 커서 어떻게 혼자 지을 수 있었을까 궁금증이 솟는다. 심 교사는 힘보다 꾀를 더 많이 썼다고 말했다.
ⓒ 노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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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뿐만 아니라 기둥과 개판 판자는 집에서 기존에 쓰던 목재를 다시 써서 자원재활용과 환경보호 가치를 되살렸다. 구운 기와를 올릴 수 없어 전통 기와 꼴로 나온 컬러강판 강철 기와를 사용한 것 말고는 모든 재료가 나무이며 못 사용을 줄인 전통 짜맞춤 방식이다. 상식과 물리 기본 원리를 총동원해 기둥을 나르고 세웠다. 심지어 건축에 쓰는 공구 일부는 손재주 좋은 심 교사가 직접 만들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오로지 혼자 힘으로만 지었다는 것. 심 교사는 긴한 일을 보는 것 외에는 지난겨울 온통 정자 짓는 일에 매달렸다. 많게는 하루 10시간을 일했다.

"추운 줄도 모르겠고 시간 가는 줄도 몰랐어요. 혼자 하기 정말 힘들었지만, 곰곰이 고민해서 꾀를 내서 하니 다 되더라고요."

3.1운동은 우리나라 독립 의지를 세계에 알린 중요한 '혁명' 
 
종도리에 심 교사가 기념하고 싶은 글귀 내용을 썼다. 그가 기념하고 싶은 내용은 독립혁명 민주공화 100주년이다.
▲ 정자 천장의 종도리 종도리에 심 교사가 기념하고 싶은 글귀 내용을 썼다. 그가 기념하고 싶은 내용은 독립혁명 민주공화 100주년이다.
ⓒ 노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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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 교사가 그토록 자기 힘으로만 정자를 완성하려는 건 무슨 까닭일까.

그는 "3.1운동은 우리 역사, 왕조와 황제 시대를 뛰어넘어 '민국'이라는 민주주의 국민이 주인인 나라, 공화정을 취한 나라임을 만방에 알린 혁명"이라며 "임시정부헌법을 만든 조소앙의 '삼균주의(개인과 개인,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가 균등한 생활을 하게 하는 주의)'처럼 평등사상을 내세워 국가 대 국가로 대항하려고 4월 11일 상해임시정부 수립에 이르게 한 것"이라고 열띤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의미가 모여서 100주년 되는 해 국가는 국가 차원에서 기념하는 것이고 그런 뜻깊은 날, 나는 나 자신이 기념해 정자를 짓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이 우리 스스로 독립을 외치며 일어선 것처럼 심 교사 또한 혼자 힘으로 그 의미를 구현하는 기념물을 만들려 했던 것이다.

프랑스는 프랑스대혁명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889년 만국박람회를 열었으며 그 문이 에펠탑이다. 당시는 흉물이라는 오명을 받았으나 지금은 파리를 상징하는 명물이 되었다.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도 프랑스 국민들이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모금을 통해 선물한 것인데 이 또한 관광명물이 되었다.

심 교사는 이러한 사례를 들며 "기념물로 만든 것 자체가 또 다른 기념물이 돼 있다. 우리도 100주년을 계기로 정부 차원이든 시민단체가 주도하든 애국가를 다시 제정하든가 삼일독립공원 등 상징물을 만들기 시작하는 결의라도 했으면 좋았을 일 아니냐"라고 아쉬워했다.

정자 이름도 임시정부 주석을 세 번이나 지낸 천안 출신 석오 이동녕 선생의 호를 딴 '석오정'이다. 이것만으로 부족한지 정자 뒤편엔 우당 이회영의 호를 따 '우당'이라 이름 붙였다.

수원 '화성성역의궤'처럼 정자 건립기 기록한 현판 걸어 
 
심 교사가 지은 정자 이름은 석오정과 우당 두 개의 이름을 갖고 있다. 이동녕 선생과 이회영 선생을 기리기 위해서다. 
또 심 교사는 화성성역의궤처럼 정자를 짓게 된 이유와 기간 공정 비용 등을 기록한 현판을 걸 예정이다. 지금은 완적부착하지 않은 임시 상태.
▲ 석오정 건립기 심 교사가 지은 정자 이름은 석오정과 우당 두 개의 이름을 갖고 있다. 이동녕 선생과 이회영 선생을 기리기 위해서다. 또 심 교사는 화성성역의궤처럼 정자를 짓게 된 이유와 기간 공정 비용 등을 기록한 현판을 걸 예정이다. 지금은 완적부착하지 않은 임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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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근 교사는 왜 이 정자를 지었는지 정자를 지으며 걸린 기간과 비용까지 상세히 기록한 현판을 정자 안에 걸었다. 정약용의 '화성성역의궤'처럼.

조선 후기 정조 시대 수원 화성을 축조할 때 들어간 모든 공정과 인부 품삯까지 기록한 자료가 바로 정약용이 쓴 화성성역의궤다. 또한, 누가 그 부분을 지었는지 일한 인부의 이름까지 기록했다. 지금으로 치면 건축 실명제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건축 실명제를 안 해요. 건설사 이름만 새긴 기념석만 덩그러니 놓아두고. 건축 실명제를 한다면 부실공사도 훨씬 줄어들 거 아닌가요. 한때 불에 탔던 화성도 화성성역의궤에 목재 부분까지 세세히 다 기록돼있어 복원 가능했던 거지요. 세계에서 그렇게 세밀하게 기록한 건축기록물이 없어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유도 그 때문이죠."

정자 천장 종도리엔 '독립혁명 민주공화 100주년 1.30 기둥 섬, 2.6 보 오름'이라고 기록했다. 심 교사는 "일부러 타동사로 하지 않았다. 섬과 오름은 그들 스스로 섰고 올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명력을 갖게 된 거"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엔 '고픈 뫼'라는 심 교사의 아호를 썼으며 양쪽 끝엔 '물'과 '돌'이라는 글자를 썼다. 물과 돌은 화마와 재난이 오지 말라는 벽사의 의미를 담았다.

"역사용어, 날짜보다 성격 잘 담아내는 이름으로 바꿔야" 

"많은 희생을 치러가며 부정부패했던 구체제를 뒤집고 정부까지 세운 것을 혁명이라 할 때 3.1운동은 혁명의 정의와 전개 과정이 딱 들어맞아요. 상대가 일본 제국주의이고 제1공화국 헌법전문에 '3.1혁명의~'로 초안이 들어있었어요. 우파인 유진오조차 '3.1혁명으로 들어선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아'로 썼는데 이승만이 임시정부를 부정한 거예요. 역사는 필연입니다. 무오독립선언도 있었고 2.8 독립선언, 3.1독립선언 등이 이어져 왔는데 꼭 3.1만 강조할 필요는 없어요. 그전에도 독립운동이 있었기에 '독립혁명'으로 부르는 게 나아요. 기미독립혁명이라고 하든지 독립혁명기념일이라고 하는 게 맞겠지요. 미국도 날짜 부르지 않고 미국 독립혁명기념일이라고 하잖아요."

당대는 날짜가 중요했을지 몰라도 시대를 넘어가면 날짜만 기념하는 역사용어는 겹치는 건 물론이고 헷갈리기까지 한다.

심 교사는 "날짜만 강조하는 역사 공부는 후대가 매우 어려워진다. 역사용어는 역사의미를 담아야 하는데 4.19라고 하면 날짜보다 이승만 독재정권으로부터 정권을 쟁취한 새로운 혁명이 있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직도 교과서에는 한국전쟁을 6·25전쟁으로 표기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배우는 역사용어와 단어 의미와 정의를 재정립해야 한다. "역사용어 재정립 운동을 벌이고 싶다"고 밝혔다.

최근 개학을 맞이한 심우근 교사는 역사교사로서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올해는 특히 더 수업 방향을 특화할 생각이다. 조선이 패망한 요인부터 독립운동사로 들어가 3.1운동 전후 일들부터 현대까지 체계 있는 교육을 준비하고 있다.

특성화고 학생들에게 적합한, 영화 보고 감독 또는 주인공 상대자에게 편지 쓰기, 독립기념관 체험 수행평가, 자신의 일상을 담은 개인 독립선언서 쓰기 등 암기보다 이해 독려와 역사의미를 살피는 수업을 할 계획이다.

"연대 순서 찾는 것이 뭐가 중요해요?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 게 더 중요하죠. 역사는 사람이 사는 푯대가 돼요. 역사관 인생관 세계관 가치관 다 같은 맥락이에요. 역사는 사람의 삶의 방향을 좌우하기 때문에 역사를 이해하고 바로 아는 것은 정말 중요해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천안아산신문에도 올라갑니다.


태그:#혼자힘으로집짓기, #역사용어재정리, #100주년개인기념건물, #3.1독립혁명, #3.1민주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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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과 천안 아산을 중심으로 한 지역소식 교육 문화 생활 소식 등을 전합니다. 지금은 출판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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