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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를 피해 해외로 떠나는 가족들이 늘고 있다고 전한 시사저널 보도. 시사저널은 해외로 갈 수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맘부격차'가 생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세먼지를 피해 해외로 떠나는 가족들이 늘고 있다고 전한 시사저널 보도. 시사저널은 해외로 갈 수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맘부격차"가 생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 시사저널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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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은 왜 국경을 넘나드는가

2019년 3월 5일 자 시사저널 기사를 읽다가 '맘부격차(Mom+빈부격차)'라는 신조어를 접했다. 생경한 단어 뒤에 이어지는 일러스트 덕분에 흐릿했던 박탈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두 종류의 엄마와 아이가 있다. 한쪽에서는 괌의 맑은 하늘 아래에서 아이가 모래성을 쌓는다. 엄마는 빨간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선베드에 앉아 쥬스를 마신다. 반대쪽에서는 미세먼지로 덮인 대한민국에서 아이가 마스크를 끼고 모래장난을 한다. 엄마는 미세먼지 수치를 확인하느라 핸드폰을 놓지 못하고 있다.

한 달 전 즈음, 나는 괌에 다녀온 엄마였다. 일러스트에서처럼 빨간 민소매 원피스를 입진 못했고, 보풀 일어난 5천 원짜리 분홍색 티셔츠에 린넨 반바지를 입고 괌을 누볐다. 게다가 매달 6만 원씩 5년 모은 돈으로 다녀온 해외여행이었으니 내가 그 '맘부격차'의 주인공이라고 하긴 어려웠다.

우리 가족이 괌으로 간 건, 그저 여행지 후보군에서 중국을 뺐기 때문이다. 춘절의 매캐한 폭죽 속으로 5살, 3살 어린 아이 둘을 데리고 뛰어들고 싶지 않았다. 단순히 경제적 부유함을 과시하거나 유난을 떨기 위함이 아니었다. 하늘이 좀 더 맑은 곳에서 아이들과 쉬고 싶었다. 그뿐이었다.
 
괌 남부 언덕. 괌은 상상하는 것처럼 화려한 휴양지가 아니다. 괌의 매력은 맑은 하늘과 깨끗한 공기, 잘 보존된 자연이다.
 괌 남부 언덕. 괌은 상상하는 것처럼 화려한 휴양지가 아니다. 괌의 매력은 맑은 하늘과 깨끗한 공기, 잘 보존된 자연이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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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서 내려 택시를 탔다. 별안간 미국 땅에서 우리 말이 들렸다.

"안녕하세요."

현지인이 한국말을 참 잘 한다고 생각하던 찰나. 아니나 다를까, 진짜 한국인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이야기를 나누던 중 기사님의 이민 사연을 들었다.

"2년 전 괌으로 이민왔어요. 가족들과 괌 여행을 왔다가 이민을 결심했어요. 하늘이 정말 맑던데요. 아토피에 비염을 달고 살던 두 아이가 씻은 듯 나았어요. 다니던 직장도 있었기에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오길 잘 했어요. 택시 일이 힘들긴 해도 아이들이 건강해진 것만으로도 택시 일을 견딜 만해요."

그녀가 유복했다면 하루 열 시간 운전대를 잡았을까. 한국을 떠난 것은 아이들 건강 때문이었다. 게다가 괌의 물가는 지독히 높다. 두 아이의 엄마였던 기사님은 악명 높은 식비를 감당하느라 하나에 5천 원 남짓하는 '햇반 미역국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버티기도 했단다.

최근 물가가 비싼 괌의 대안으로 비교적 체류비가 적게 드는 오키나와나 대만 남부 등지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꽤 늘고 있다. 엄청나게 부유한 사람만 그런 게 아니다. 공기에 예민한 아이를 둔 평범한 부모들도 이런 생각을 한다. 

이들을 '맘부격차'라는 신조어까지 붙여가며 극성 맞은 부모로 몰아세울 수 있는 걸까. 여유로운 부모의 사치로만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미세먼지가 단지 생활의 불편함에서 그치는 정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19년 3월 2일, 강릉 경포 호수(왼쪽), 19년 2월 3일, 괌(오른쪽)
 19년 3월 2일, 강릉 경포 호수(왼쪽), 19년 2월 3일, 괌(오른쪽)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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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거주하는 강원도 동해시는 비교적 미세먼지가 적은 곳이다. 한반도 서쪽 하늘이 뿌연 날에도 비교적 쾌청한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최근처럼 고농도 미세먼지가 한반도 전체를 뒤덮으면 실내 활동만 해야 했다. 평소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주던 태백산맥도 소용없었다. 

미세먼지는 태풍처럼 여름에 잠깐 각오해야 하는 일시적 자연재해와 성격이 다르다. 사시사철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하루를 시작하며 미세먼지를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됐다. 이쯤되면 불쾌하지만 미세먼지를 '삶의 일부'라고 불러도 부족하지 않다. 
   
미세먼지에 가려진 태백산맥.한 줄기가 통째로 미세먼지에 가려 전혀 보이지 않는다.
 미세먼지에 가려진 태백산맥.한 줄기가 통째로 미세먼지에 가려 전혀 보이지 않는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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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가 없을 때 선명히 보이는 태백산맥. 미세먼지에 가려졌던 태백산맥의 가장 높고 긴 줄기가 버티고 있다.
 미세먼지가 없을 때 선명히 보이는 태백산맥. 미세먼지에 가려졌던 태백산맥의 가장 높고 긴 줄기가 버티고 있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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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에 잃은 봄, 되찾을 수 있을까

6일 신용승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장은 "과거 사례를 살펴보면 고농도 미세먼지 발생시 중국 영향은 70% 이상"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고농도 미세먼지 사태에 대한 정량적 분석은 더 필요하다고는 덧붙였기에, 아직 중국이 원인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억울함이 치밀었다. 미세먼지에 분투하는 우리의 노력이 헛수고 같았다. 무력감에 우울해졌다.

여태껏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개인적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화석 연료를 태워 생산하는 전기 사용을 줄이기 위해 멀쩡한 청소기에게 휴가를 줬다. 대신 빗자루로 방을 쓸었다. 특히 새 물건을 살 때 더 신중하게 되었는데, 'made in china'면 사지 않는다. 나의 소비가 고농도 미세먼지를 불러오는 데 일조할까 봐 두려워서다.

최소한의 소비가 최소한의 생산으로 이어져 오염물질을 줄이리라 믿었다. 그래서 발목 부러진 빨래 건조대를 창문에 기대어 쓰고 있었다. 새 빨래 건조대를 사면 생산, 유통 과정에서 오염물질이 나오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아이 잠옷 지퍼 아귀가 틀어져도 새로 사지 않고 단추를 달아 썼고, 남편이 자취할 때부터 쓰던 샤워 퍼프는 7년 째 사용 중이다. 철저한 재활용품 분리수거는 두말할 것 없었다.
 
미세먼지 저감정책 실시 후, 텅 빈 주민센터 주차장
 미세먼지 저감정책 실시 후, 텅 빈 주민센터 주차장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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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동해시 북삼동의 환경농도 전광판. 고농도 미세먼지 앞, 대한민국에 안전지대는 없다.
 강원도 동해시 북삼동의 환경농도 전광판. 고농도 미세먼지 앞, 대한민국에 안전지대는 없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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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적 노력도 이어졌다. 교사인 남편은 차량2부제를 반드시 실천해야 했다. 게다가 2014년식 LPG 차량(배출가스 1등급 차량)이다. 미세먼지 저감 조치로 동료 선생님 세 분을 태워 카풀 출퇴근 중이다. 정책은 행정부에서 내리고, 실천은 공공기관 근로자들의 몫이었다. 불편했지만 환경을 위해 의미있는 일이기에 다들 감내하는 분위기다.

미세먼지 저감조치에 따라 평소 붐비던 주민센터 주차장이 한산했다. 청와대에서도 솔선하여 전기, 수소차와 긴급 업무 차량을 제외하고 모든 차량 운행을 중단했다. 청와대 직원들은 개인 차량을 전혀 쓰지 못 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2022년까지 '미세먼지 나쁨'을 30% 선까지 줄이는 게 목표다. 노후 경유차 폐기에 지원금을 주고, 수소, 전기차 비율을 늘리는 추세다. 노후 석탄 화력 발전소를 봄철 가동 중단하고, 신재생 에너지를 늘린다.

정부와 국민들의 노력은 눈에 들어간 티끌만큼이나 부질 없고 하찮은 것일 수도 있다. 고농도 미세먼지라는 바위를 향해 계란이 달려드는 격이다. 그러나 머리카락 굵기보다 작은 PM10, pM2.5 먼지에 눈이 따끔거리는 날이 매일 이어지고 있다. 손 놓고 있을 수 없다.

미세먼지 문제는 자연 환경과 산업, 정치가 결합된 복잡한 사안임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 차원에서라도 매일 꼼꼼히 분리수거를 하고, 최대한 소비를 줄이고(중국산 물건은 특히!), 대중교통을 탄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일지언정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해야 마음이라도 편하고, 이런 노력이 큰 흐름에 영향을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괌에서 택시 핸들을 잡던 두 아이의 엄마가 5천 원짜리 인스턴트 밥을 끊고, 깨끗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질 날이 올까. 꿈 같은 이야기이지만 꿈이라고만 치부하기에는 현실의 하늘이 너무 탁해서 나 하나쯤이라도 먼지 줄이기를 실천하지 않을 수가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블로그(https://blog.naver.com/dahyun0421)에도 실립니다.


태그:#미세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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