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주의!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리스 출신의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신작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가 지난달 21일 개봉했다. 지금 현재 가장 주목받는 감독 중 하나인 란티모스 감독은 <더랍스터>, <킬링 디어> 등의 전작들을 통해 마주하기 껄끄러운 인간의 민낯을 독특하고 충격적인 방식으로 그리며 관객들을 매혹해왔다. 그리고 이번 영화 역시, 욕망하고 갈망하는 인간의 기이한 모습을 '권력'이라는 소재를 이용해 간결하고도 강렬하게 그리고 있다.
 
8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영화는 18세기 초, 대영제국의 첫 번째 국왕, 앤 여왕 시대의 궁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앤 여왕(올리비아 콜맨)과 그녀와 어린 시절부터 특별한 우정을 쌓아온 말버러 공작부인(레이첼 와이즈), 그리고 새롭게 여왕의 총애를 받으며 그들 관계에 균열을 일으키는 몰락한 귀족 가문 출신의 하녀 애비게일(엠마 스톤), 이 세 여인의 관계를 통해 모든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권력 구조. 

복잡한 권력 관계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그것이 사회적 지위에서 비롯된 공적인 것이든 연인 사이와 같이 가장 개인적이고 친밀한 것이든. 공적인 관계와 사적인 관계가 만났을 때, 보다 복잡하고 흥미로운 모습으로 우리의 욕망을 일깨우는 권력과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우리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이 영화는 보여준다.  

첫 장면에서 우리는 왕정 국가의 절대 권력자 앤 여왕의 군주로서 카리스마 있는 모습 대신, 실수 없이 연설을 마쳤다는 것에 신이 나 마치 장기자랑을 끝내고 부모의 칭찬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사라(말버러 공작부인)의 눈치를 살피는 모습을 본다. 그리고 우리는 권력자로서 무능한 앤의 모습을 계속해서 보게 된다. 그녀는 국왕이라는 하나의 상징으로 존재할 뿐, 사실상 그녀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은 사라, 바로 말버러 공작부인으로 여왕과 어린 시절부터 우정을 나누며 신뢰를 쌓아온 그녀는 여왕에게 대놓고 면박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국가와 국민의 안위가 달린 중대한 사안 결정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외국 대사들을 맞이하는 자리에 여왕 대신 참여하는 등, 사실상 나라를 통치하고 있는 것이 그녀라고 봐도 무방할 만큼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한다. 사라의 아름다운 외모, 건강한 신체는 승마와 사격에서 특히 돋보이고, 냉철한 지성은 잔인할 만큼 단호한 결단력을 보인다. 

여왕의 절대적인 신임, 프랑스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전쟁 영웅 남편까지. 영국 안에서 그녀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는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애비게일이 등장한다. 몰락한 귀족의 딸로 아버지의 도박 빚을 갚기 위해 이곳저곳을 전전하던 그녀는 일자리를 찾아 먼 친척 사라를 찾아오고 하녀로 일하기 시작하는데,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애비게일은 자신의 존재감을 서서히 드러내고 순식간에 사라를 위협하는 존재로까지 성장한다. 

기회는 우연한 기회에 찾아온다. 그리고 많은 야심가들이 그러하듯 애비게일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기회를 허투루 보내지 않는다. 사라의 전담 시녀가 된 그녀는 수십 명의 다른 하녀들과 함께 잠을 자고 종일 육체노동을 하는 것에서 벗어나 작고 초라하지만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된 것에 기뻐하고 사라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앤과 함께 보내는 사라 곁에서 그들을 관찰하고, 그 누구도 침범 할 수 없는 그들 관계의 빈틈을 발견한다. 애비게일이라는 인물이 흥미로운 것은 그녀가 처음부터 거대한 야망을 품고 그것을 목표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능성을 서서히 키워나간다는 점이다. 

사랑 게임인가 권력 투쟁인가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앞서 얘기했듯 사라는 앤 여왕의 무조건적인 신뢰를 받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사라를 향한 앤의 사랑이기도 하다. 그녀는 끊임없이 사라의 관심과 사랑을 갈망하지만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폭식증의 공허처럼 사랑을 향한 그녀의 갈망은 채워지지 않는다. 절대 군주라는 지위를 제외하면 앤의 존재는 결핍투성이 이다. 애정결핍과 그녀가 앓는 통풍이라는 질병은 서로의 영향 아래 그녀의 상태를 악화시키고, 그녀를 더욱 신경질적으로 만든다. 몸이 아프거나, 외롭거나, 앤은 시도 때도 없이 사라의 이름을 부르짖는다. 때로는 자신과 함께 있어달라고 바닥에 드러누워 떼를 쓰기까지 한다. 

앤 여왕은 열다섯 명의 자식들을 잃고, 자신이 키우는 애완 토끼들에게 죽은 자식들의 이름을 붙여 준다. 자신이 토끼들을 아끼듯 사라 역시 토끼를 아껴주길 원하지만 앤이 겪어온 슬픔을 곁에서 지켜본 사라는 토끼가 죽은 자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토끼에 대한 앤의 애정을 거북해하지만 애비게일은 토끼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앤의 마음을 얻기 시작한다. 몸이 아파 야외 활동은 물론이고 국정을 돌봐야 하는 순간에도 부재할 수밖에 없는 앤의 콤플렉스를 애비게일은 정확하게 파악하고, 사라가 앤에게 주지 않는 애정에 집중해 자신의 자리를 넓혀가며 앤과 동침하는 사이로까지 발전한다. 

이제 애비게일은 사라에게 거슬리는 존재가 되고, 두 여인의 게임이 시작된다. 애비게일은 신분 상승이라는 욕망 때문에 이 게임을 시작했을 것이지만 사라의 눈 밖에 난 이상 목숨을 걸고 싸워야만 한다. 애비게일을 내쫓는 것쯤이야 가볍게 처리 할 수 있을 거라고 사라는 생각했을 것이다. 이것은 분명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지만 애비게일의 사활을 건 절박함과 교활함, 그리고 앤의 결핍을 과소평가한 사라는 결국 게임에서 지게 된다. 

두 사람의 게임이 마치 사랑 게임이라도 되는 양 은근히 즐기던 앤은 사라가 떠난 후 더 큰 공허를 느끼고 애비게일은 마치 앤의 죽은 자식을 대신하는 토끼처럼 사라의 방을 차지했음에도 그녀를 대체하지는 못한다.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에는 대놓고 상류층을 비꼬는 장면들이 있다. 특히 궁중에서 오리 경주를 벌이고, 벌거벗은 광대에게 토마토를 던지는 귀족들의 모습에서는 씁쓸한 실소가 터져 나온다. 이들 장면은 고속촬영으로 촬영해 귀족들의 우스꽝스럽고 한심한 모습을 과장해 묘사하고 있는데 보기에 다라서는 섬뜩하기도 하다. 또한 총리라는 자는 어느 자리에 가건 자신의 오리(영국에서 제일 빠른)와 함께하며 절대 권력자는 자신의 주관이라고는 없고 측근의 말에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며 곤란한 상황이 오면 기절하기와 같은 유치한 방법으로 그 상황을 모면한다. 

만약 다른 감독이 이 각본(이 영화는 감독의 전작들과 다르게 감독이 각본에 참여하지 않았다)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다면 우리가 그동안 수없이 보아 온 권력 암투를 담은 시대극이 되었을 수도 있지만 란티모스 감독의 연출은 상징과 은유를 활용하여 이 영화를 기묘한 심리극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완벽한 앙상블을 이룬 세 주연 배우의 열연이 이 영화를 그 어떤 영화보다도 특별하게 만든다. 올해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한 올리비아 콜맨의 놀라운 연기는 유치하리만큼 신경질적인 앤 여왕의 심리를 설득력 있게 묘사했다.

"너와 나는 이 게임에 임하는 목적이 달랐어"라고 말하는 사라에게 어쨌든 이기는 게 중요한 것 아니냐고 애비게일은 답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 게임의 승자가 애비게일일까? 이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서 이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힘들 것이다. 

 
 <더 페이버릿 : 여왕의 여자> 영화 포스터

<더 페이버릿 : 여왕의 여자> 영화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시민기자의 브런치 계정에서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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