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음식은 음식마다 나름의 맛을 가지고 있다. 먹는 사람마다 음식의 맛을 다르게 평가한다. 사람들이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기 때문에 음식에 관한 이야기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다. 책도 그렇다. 책은 저마다의 향을 가지고 있고 사람마다 그 효용을 다르게 느끼며 읽는 맛이 가지각색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책을 찾기 위해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나는 맛있는 밥을 먹는 것, 나에게 맞는 책을 찾아 읽는 것을 기쁨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다보니 책이나 음식이나 유사한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어떤 책들은 기대치에 완벽하게 부응하는 반면, 어떤 책들은 소화가 안 되고 독자를 더부룩하게 만든다. 밥집과 책방을 찾아다니면서 나름의 기준이 생겼다. 음식에 비유하여 내가 좋아하는 책과 타인에게 주의를 권하고 싶은 책의 종류를 몇 가지 소개하고 싶다.

남도 알고 나도 아는 맛집에 가려면 시간 엄수는 필수다. 줄을 서야 할 수도 있다. '올재 클래식스' 시리즈를 구매하는 일도 그렇다. '올재 클래식스'는 동양과 서양의 고전을 한 권당 29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판매한다. 분기마다 특정 시간대에 책을 판매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기에 구매가 쉽지 않다.

오프라인 서점에서 올재 클래식스를 찾아 돌아다니다가 마지막 세트를 구매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쉰 적도 있다. 고생하면서 사지만 사고 나서 읽을 때는 확실히 만족스럽다는 점에서 저명한 맛집과 비슷하다.

물론 남은 전혀 모르고 나만 아는 맛집도 있다. 특별한 번화가도 아닌 곳에서 낡고 유명하지 않은 가게에 들어갔는데, 음식이 내 취향에 딱 맞는다면 복권에 당첨된 기분이다. 나만 아는 보물장소를 찾은 느낌이 든다. 헌책방에서 오래전에 절판된 책을 구매해서 재밌게 읽었을 때의 기분도 비슷하다. <수의 신비와 마법>(프란츠 칼 엔드레스,고려원)이라는 절판된 책을 헌책방에서 구매해서 읽었을 때 정말 크게 횡재한 기분이었다.

좋아하는 책 중에는 '삼각 김밥'같은 책도 있다. 요즘의 삼각 김밥은 맛도 다양하고 질도 좋다고 생각한다. 크기를 매우 작게 만들어서 저렴하게 판매하는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미니북'은 구매와 소지가 매우 편리하다. '살림지식총서' 역시 저렴한 가격에 새로운 교양의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작아도 크기와 상관없이 나름 만족스럽다.

프랜차이즈 식당의 음식처럼 적정한 수준의 효용을 제공하는 책들도 있다. 정말 좋아한다고 말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친한 사람과 함께할 수는 있다. 국내에 대량으로 번역, 수입되는 일본 작가들의 책 중에는 인물, 사건, 배경이 비슷비슷하게 구성되어 있는 읽으면서 시간을 때우기 좋은 책들이 많다. 어색한 점도 별로 없고 무난히 읽을 수 있는 책들이다. 다작으로 유명한 작가들의 책에 이런 책들이 많다.

좋아하는 책도 싫어하는 책도 아닌 책에는 '냉동식품'같은 책과 '탄산음료'같은 책이 있다. 특정 주제에 관해서 의미의 전개는 짧게 하고 정보 나열 위주로 쓴 책은 냉동식품같은 책이 된다. 내용물도 분명히 들어있고 영양가도 없지는 않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서도 모든 목차의 내용이 하나로 연결되지 않아 소화가 쉽지 않다.

키워드에 관련된 글은 많으나 모든 글이 다 책의 주제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다. 책의 후반부에 가끔 별 상관없어 보이는 내용이 분량을 차지하고 있어서 읽기 전과 읽은 후의 맛이 다르다.
 
탄산음료 같은 책은 어떤 책일까?
 탄산음료 같은 책은 어떤 책일까?
ⓒ Pixabay

관련사진보기

 
'탄산음료'같은 책은 좋은 것이 아닌가 생각될 수도 있다. 시원함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나쁠 것은 없다. 콜라와 사이다는 김빠지면 끝이다. 내가 싫어하는 것에 대해 마구 비판한 책들을 읽으면 뭔가가 해소된 느낌이 들어 시원하다. 하지만 그런 책은 다시 읽기엔 영양가가 없다.

싫어하는 것에 대해 날카로운 어조로 시의성있게 비판한 책들을 읽으면 뭔가가 해소된 느낌이 들기는 한다. 이런 책의 상당수는 지나치게 시의성에 의존하고 있어서, 곧 다른 책에 의해 대체될 운명이다.

책이 나온 지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책의 영양가가 빠진다. 특정 관점에서의 날카로운 비판만 읽다보면 사안을 바라보는 감각이 치우쳐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매번 이런 책을 읽는 것은 피해야 할 수도 있다. 대중 정치 서적이 이런 경향이 강하다.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책에는 두 가지가 있다. 나와 취향이 다른 책은 언젠가 취향이 바뀌어 보게 될 수도 있으니 나쁘게 볼 필요가 없다. 그런데 취향이 아니라 책 자체가 조리에 실패한 음식처럼 사람들에게 좋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우선, '불어 터진 컵라면'같은 책들이 있다. 컵라면에 물을 붓고 스마트폰을 하다 잊어서 시간을 초과한 컵라면같은 책 말이다. 기본적으로 내용 자체가 부실한데 페이지 수는 비정상적으로 긴 책(혹은 비정상적인 값어치의 책)들이 이에 해당한다.

별다른 내용은 없는데 억지로 양을 늘리려고 하니 앞에서 한 말이 뒤에 또 나온다.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보이지 않거나 저자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 알게 되어도 평범한 말이라 책 자체가 큰 의미가 없게 느껴진다.

어려운 분야의 책인데 비전문가가 쓴 책이나, 책의 얼개를 짤 정보나 경험이 부족한데 쓰여진 책이 이렇다. 이런 책은 되도록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지 않는다. 중고서점에 이런 책을 팔러 가도 중고서점에 이미 넘치는 책이라 팔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다음으로 '가짜 맛집 음식'같은 책이 있다. SNS나 블로그 업체를 동원해서 단시간에 유명해졌지만 음식 자체는 별로 맛이 없는 손님을 언짢게하는 식당의 음식같은 책이다. 짧은 시일 내에 갑자기 유명해진 사람의 이름을 빌린, 그 유명인의 전문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에 관한 책은 유명인과 별다른 관련이 없을 확률이 있다.

꼭 사람이 아니더라도 단기간에 유명해진 주제에 대한 책 중에는 내용이 비어있는 것이 많다. 읽으면 그냥 사기당한 느낌이다. 한때는 꽤 유명한 것처럼 보여도 나중에 찾아보면 찾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사람들에게 잊혀 있다는 점에서 가짜 맛집과 닮았다.

정치인들이 선거를 앞두고 출간한 책들도 절반 정도는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 정치인과 관련된 책인데 책에 지나치게 사진이 많거나 종이 질이 이상할 정도로 좋다면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상으로 추천하고 싶은 책과 주의를 권하고 싶은 책에 대해 짧게 써보았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음식처럼 책도 직접 대해보고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좋다는 음식도 직접 먹어봐야 나랑 맞는지 알 수 있다.

책도 직접 읽어봐야 나랑 맞는 책인지 읽는 맛은 어떻게 다가오는지 알 수 있다. 직접 자신만의 원칙을 세워서 책의 맛을 찾으러 다니는 즐거움도 인생의 큰 낙이다. 좋아하는 맛을 찾았으면 같은 종류의 맛을 즐기는 길을 개척할 수도 있다. 맛집을 찾는 사람들처럼 좋은 책을 찾는 사람들도 많아지길 바란다.

태그:#책, #음식, #서적, #도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전화해주실 일 있으신경우에 쪽지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