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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과수에서 만난 파라과이 과일장수 헤나로 피그레다씨.
 이과수에서 만난 파라과이 과일장수 헤나로 피그레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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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과이에서 온 과일장수

"이과수로 언제 가세요? 거기는 부에노스아이레스보다 습도가 더 높고 덥던데요. 날씨 정보 보니까 습도가 90 퍼센트예요."

페루 티티카카에서 만난 여행자 이동지씨와 이동 경로가 비슷해서 종종 SNS로 안부를 묻고 정보를 나눴다.

"아, 정말요?! 90 퍼센트면 물 속 아닌가요? 하하. 부에노스아이레스도 습해서 힘들었는데... 그래도 가야죠! 습도가 200퍼센트라고해도 가야죠, 이과수인데!"

남미 여행에서 빠뜨리면 아쉬운 곳, 드디어 이과수에 도착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야간버스를 타고 열여덟 시간이 걸렸다. 이과수 폭포 지역은 과거 원주민 과라니족의 땅이었으며, 1811년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 후에는 파라과이 땅이었다고 한다. 1870년 파라과이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이 이과수 폭포 지역을 빼앗아 가졌다. 이과수 3국 국경 전망대에서 파라과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세 개 나라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
 
이과수 3국 국경 전망대. 강 왼쪽이 파라과이, 오른쪽이 브라질, 사진을 찍은 곳은 아르헨티나다.
 이과수 3국 국경 전망대. 강 왼쪽이 파라과이, 오른쪽이 브라질, 사진을 찍은 곳은 아르헨티나다.
ⓒ 최늘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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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측 전망대라 이르헨티나 국기가 중심에 있고 이웃 나라의 국기 보다 크다. 강렬한 국가주의가 느껴진다.
 아르헨티나 측 전망대라 이르헨티나 국기가 중심에 있고 이웃 나라의 국기 보다 크다. 강렬한 국가주의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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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주변 길가에서 과일장수 헤나로 피그레다(Henaro Pigleda)씨를 만났다. 아르헨티나 지역이니 당연히 아르헨티나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는 파라과이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아르헨티나에 사는 파라과이 사람도 아니었다. 67세의 헤나로씨는 매일 도보로 국경을 넘어 아르헨티나까지 장사를 하러 오는 파라과이 사람이었다.

"저는 매일 열두 시간을 걸어요. 아침에 파라과이 집에서 출발해 브라질 국경을 넘고, 아르헨티나 국경을 넘어 이곳까지 여섯 시간이 걸려요. 관광객들에게 과일을 팔다가 저녁이 되면 다시 걸어서 파라과이로 돌아가지요. 도착하면 깜깜한 밤중이에요. 잠을 자고 다음 날 아침 다시 걸어서 국경을 넘어요. 파라과이에는 관광객이 없어서 과일을 좋은 가격에 팔 수가 없어요."
"열두 시간이요? 파라과이에는 과일 사는 사람이 없나요?"


내가 스페인어 숫자를 잘못 알아들은 게 아닌지, 믿기 어려워서 몇 번을 물었다. 전쟁에서 지고 땅도 빼앗긴 파라과이는 지금까지도 이웃 나라들에 비해 살기가 어려운 것 같았다. 과일을 잔뜩 실은 무거운 수레를 밀고 매일 열두 시간을 걸어 국경 세 개를 넘다니. 세상에는 내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힘든 내색 한 점 없이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어준 헤나로 씨가 파는 파라과이산 망고는 무척 달고 싱싱했다.
 
과일수레를 밀고 매일 3국 국경을 걸어서 오가며 장사를 하는 헤나로씨.
 과일수레를 밀고 매일 3국 국경을 걸어서 오가며 장사를 하는 헤나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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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과수에 눈물 몇 방울

이과수는 과라니어로 '큰 물'이라는 뜻이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세계 3대 미항,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 아메리카 최고봉, 아시아 최고층 등등 세계에는 사람들이 정해놓은 다양한 순위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세계 3대 폭포'는 아주 유명하다.

미국을 횡단하며 나이아가라 폭포에 갈지 말지를 고민할 때, 엘리너 루즈벨트 부인이 이과수를 보고 "오, 불쌍한 나이아가라야!"라고 한탄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사진으로 보아도 이과수가 더 크고 멋져 보였다. 게다가 나이아가라가 있는 미국과 캐나다는 물가가 비싸다. 과감히 나이아가라를 포기했고 이과수를 고대했다.

종종 세 군데 폭포를 모두 방문한 여행자를 만나면 어디가 더 좋았는지, 뭐가 어떻게 다른지를 물었다. 세 군데를 다 보고 비교할 수 있다는 게 조금 부러웠지만, 우리는 각자가 할 수 있고 생각하는만큼의 여행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언젠가 아프리카에 가서 빅토리아 폭포를 보게 될까. 같은 폭포라도 우기인지 건기인지에 따라 평가는 크게 달랐으니, 비의 양이 폭포의 규모에 큰 영향를 미치는 것 같다. 1월은 남반구의 여름이고 우기여서, 이과수는 형언하기 어려울만큼 거대했다.
 
아르헨티나 이과수. 다양한 폭포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아르헨티나 이과수. 다양한 폭포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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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료는 아르헨티나 쪽이 700페소, 브라질 쪽이 69레알(양쪽 모두 한화 21000원)로 무척 비쌌지만 두 군데 이과수를 모두 보았다. 아르헨티나 이과수는 270여 개에 이르는 폭포 지역의 8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폭포의 종합선물세트였다. 넓은 폭포, 길쭉한 폭포, 쌍둥이 폭포 등등, 네다섯 시간을 걸어도 걸어도 폭포의 절경이 이어졌다. '악마의 목구멍'이라 불리는 가장 높고 큰 폭포는 이과수의 중심이다. 강물 위로 긴 보행로가 연결되어 있어서 폭포의 바로 윗부분까지 접근할 수 있다. 유유히 흐르던 거대한 강은, 한순간 통째로 절벽으로 쏟아져내렸다.
 
아르헨티나 이과수의 하이라이트 '악마의 목구멍'. 사진 왼편이 전망대다. 폭포 바로 윗부분까지 보행로가 이어진다. 물보라가 심해 온몸이 젖는다.
 아르헨티나 이과수의 하이라이트 "악마의 목구멍". 사진 왼편이 전망대다. 폭포 바로 윗부분까지 보행로가 이어진다. 물보라가 심해 온몸이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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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추픽추에 가기 위해 쿠스코에서 산 천 원짜리 비옷은 이과수에서도 유용했다.
 마추픽추에 가기 위해 쿠스코에서 산 천 원짜리 비옷은 이과수에서도 유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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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이과수는 폭포 지역의 20퍼센트로, 규모가 작지만 멀리서 폭포의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시설은 적은데 관광객은 많아서 티켓을 사고 입장해 셔틀버스를 타는 데만 두 시간이 걸렸다. 보행로와 전망대에서도 인파에 밀려다닐 정도라, 조용히 폭포를 바라보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마지막 하이라이트, 사방으로 거대한 폭포에 둘러싸여 '악마의 목구멍'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에서, 나는 기어이 쏟아지는 폭포수 위로 몇 방울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사람의 몸은 60퍼센트 이상이 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세계 최대 규모, 그 거대한 물의 울림에 반응해서인지 이과수를 본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고, 때로는 통곡을 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차분히 폭포를 마주하며 슬픔을 느끼기에는, 줄지어 몰려드는 인파가 너무 많았다.

울고 있는 사람을 보지는 못했는데,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조용히 남몰래 눈물을 흘리는 걸까. 그 모든 울음을 폭포가 삼켜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밀려드는 인파와 온몸을 적시는 물보라 속에서도, 우비를 입고 꿋꿋이 전망대 한켠에 자리를 잡고, 삼십 분, 한 시간, 가만히 폭포를 바라보았다.
 
브라질 이과수. 아르헨티나 지역의 다양한 폭포를 건너편에서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브라질 이과수. 아르헨티나 지역의 다양한 폭포를 건너편에서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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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에 비해 상대적으로 좁은 브라질 이과수 지역의 중심 전망대. '악마의 목구멍' 전체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이 매우 많지만 자리를 잘 잡고 한참이나 폭포를 바라보았다.
 아르헨티나에 비해 상대적으로 좁은 브라질 이과수 지역의 중심 전망대. "악마의 목구멍" 전체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이 매우 많지만 자리를 잘 잡고 한참이나 폭포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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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이과수를 드디어 봤겠네. 어땠어?"

오랜만에 연락한 동생이 물었다.

"드디어 이과수를 봤지. 근데 그냥, 이름대로 '큰 물'이던데."
"그런 말은 갔다 온 사람만 할 수 있는 소리지!"


더위와 인파에 지쳐서인지, 한없이 심심하고 시시하게 이과수와의 만남을 표현하는 나에게 동생이 말했다. 어떤 말로 이과수를 설명할 수 있을까. 머릿속에 맴도는 모든 단어가 초라하고 무색하게 느껴진다. 평생 볼 폭포는 이과수에서 다 보았다. 눈을 감고 떠올리면, 천둥 같은 이과수 소리가 들릴 듯하다.
 
이과수 밀림에 사는 동물 코아티. 가까이 접근하다가는 손톱과 이빨에 공격당해 크게 다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온순한 아르헨티나 지역 코아티에 비해 브라질 지역의 코아티는 공격적이라 사람들이 손에 든 음식도 낚아채 갔다.
 이과수 밀림에 사는 동물 코아티. 가까이 접근하다가는 손톱과 이빨에 공격당해 크게 다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온순한 아르헨티나 지역 코아티에 비해 브라질 지역의 코아티는 공격적이라 사람들이 손에 든 음식도 낚아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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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모이, #세계여행, #남미여행, #이과수, #이과수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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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바다 미륵섬에서 유년기를, 지리산 골짜기 대안학교에서 청소년기를, 서울의 지옥고에서 청년기를 살았다. 2011년부터 2019년까지, 827일 동안 지구 한 바퀴를 여행했다.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생활놀이장터 늘장, 여행학교 로드스꼴라,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센터, 섬마을영화제에서 일했다. 영화 <늘샘천축국뎐>, <지구별 방랑자> 등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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