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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에 재학 중인 홍아무개(21)씨는 이번 학기 휴학을 결심했다. 그는 휴학하는 이유 중 하나로 전공 수업 부족을 꼽았다. 이번 학기에 개설된 전공의 90% 정도는 4학년에 진학하는 홍씨가 이미 수강한 과목이다. 뉴미디어 환경에 걸맞은 새로운 전공을 개설하겠다던 학교가 올해 신설한 전공은 단 하나. 반면 총 전공 수업 개수는 2년 전 대비 34%나 감소했다. 400만 원 가까운 등록금을 내면서 관심 없는 전공을 들을 수 없어 결국 휴학했다. 고려대 총학생회에 따르면 올해 학내에서 사라진 강의는 200개가 넘는다.

#2 연세대학교 언론홍보영상학부 황윤기(24)씨는 졸업반이다. 보통 졸업 전 마지막 학기엔 수강 신청이 수월하지만, 황씨는 목표한 7개 강의 중 단 두 개만 가까스로 신청했다. 특히 매년 인기였던 교양 과목이 연달아 폐강되며 수강 신청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졸업 기준은 충족해야 하기 때문에 남들이 듣지 않는 정원미달 강의를 찾는 중이다. 졸업이 코 앞인데, 남들이 버린 과목을 '주워담아야' 하는 현실이 막막하다. 한국비정규직교수노동조합은 지난 2월 성명에서 연세대가 선택교양과목을 60%나 축소했다고 밝혔다.

지금 캠퍼스는 공사판

봄기운이 물씬 풍기는 3월. 캠퍼스 곳곳에 새 학기를 맞이하는 학생들의 설렘이 가득하다. 그런데 여느 봄날과 달리, 고려대는 '공사판'이다. 아침만 되면 캠퍼스 곳곳에서 요란한 기계 소리가 울려 퍼진다. 높이 솟은 공사장 가림벽은 아파트 재건축 현장을 방불케 한다. 개강 시즌에 흔히 보기 힘든 풍경이다.

곳곳에 '건설 붐'이 일고 있다. 학교가 엄청난 돈을 투입해 건물 신축에 열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고려대는 안암캠퍼스에서 ▲ SK미래관 ▲ 건축사회환경관 ▲ 융합연구동 ▲ 자연계 실험동, 세종캠퍼스에서 ▲ 정문 및 부대시설 ▲ 문화스포츠대학 교육동 ▲ 산학협력관 등 모두 7개의 건물을 신축·계획 중이다.

SK미래관 정도 공사 중이던 2017년 기준 대학알리미에 올라온 '건설 중인 자산'만 310억여 원이었다. 여기에 중앙도서관 로비 리모델링, X-Garage 조성 등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개보수 작업까지 합치면 열 개가 넘는 건물에 최소 수백억 원대의 예산이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이게 학교냐" 지난 2월, 고려대 후문에 학교의 수업 감축을 비판하는 대자보가 붙어있다.
▲ "이게 학교냐" 지난 2월, 고려대 후문에 학교의 수업 감축을 비판하는 대자보가 붙어있다.
ⓒ 유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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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퇴임한 염재호 전 고려대 총장은 2월 25일 졸업식 축사에서 지난해 고려대가 기부받은 금액은 약 1100억 원이라고 밝혔다. 이 중 700억 원 이상이 건축기금이었다. 또 4천억 원에 달하는 적립금의 상당 부분 역시 건축기금이다. 이미 수천억 원에 달하는 건축 '예산'을 확보한 셈이다. 캠퍼스가 공사판이 될 수 있는 이유다(8일 고려대는 건축기금은 건축을 위한 기부금 성격이라고 알려왔다 - 편집자 주).

학교는 건물 신축을 통해 학습 및 연구 활동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고 홍보한다. 염 전 총장은 학내 언론과의 퇴임 인터뷰에서 "(SK미래관 신축으로) 지식을 습득한 학생들이 자기 주도적으로 문제를 풀고 새 지식을 창출해내는 생각의 근육을 키우도록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막상 학생들은 이러한 건축 붐이 달갑지만은 않다. 들을 강의가 없어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 없는데 건물만 '삐까번쩍'하면 뭐하냐는 것이다.

그런데 강의는 줄고

지난 2월 말 고려대 후문. 방학 기간임에도 학교 후문엔 학생들의 대자보가 줄줄이 걸려 있다. 대부분 학교의 강의 수 축소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올해 1학기 고려대의 개설과목 수는 전년 대비 200개 이상 줄어든 상황. 고등교육법 개정안(이하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대학 본부가 시간강사들의 수업을 줄이며 전체 강의 수도 덩달아 줄어든 탓이다.

수업이 줄며 많은 학생들이 수강신청에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시간강사가 진행하던 수업들이 대폭 축소됐다. 익명을 요구한 재학생 A씨는 "학생들 사이에서 수년째 호평받던 강사가 해고되고 평이 안 좋은 전임교원이 수업을 맡으면서 학생들이 큰 혼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 본부는 기자와 2월 28일 통화에서 "강사가 전담하는 수업의 축소를 지시한 적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학생은 별로 없다. 본부가 각 학과로 보낸 대외비 문건에서 시간강사 전담 과목 수를 줄이라고 지시한 정황이 지난해 11월 확인됐기 때문이다(관련 기사 : "강사법 대비 강의수 축소·과목 통폐합"… 고려대, 대외비 문건 파문).

당시 학교는 '시간 강사 채용 극소화'를 목표로 ▲ 과목 수 축소 ▲ 전임교원 수업 비중 증대 ▲ 졸업이수학점 축소 ▲ 분반 수 축소 ▲ 기존 수업 통폐합 및 온라인 강의 비중 강화 등 강사법 대응 계획을 구체적으로 검토했다.

이 문건이 유출되면서 학교는 대응 계획을 철회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번 학기 수업이 대폭 준 배경에 여전히 학교 본부가 있다는 것이 학생들의 생각이다. 실제로 고려대 총학생회는 2월 5일 페이스북에 게재한 카드뉴스에서 "익명의 교수로부터 '강사를 채용하지 말라는 비공식적인 지시가 여전히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학교는 재정 부담을 호소한다. 수년째 등록금이 동결된 상황에서 강사법 시행에 따른 추가 재정 소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박만섭 교무처장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강사법 시행으로 연간 55억 원의 추가 재정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그러나 이후 정부가 강사법 시행에 따른 추가 비용의 70%를 지원하겠다고 나섰고, 8500억 원에 달하는 대학혁신지원사업 역시 진행하겠다고 공표했다. 또 강사법 시행이 오는 9월부터라 12월 겨울방학 때는 2주만 임금을 지급하면 된다(단 2019년만 해당). 이런데도 학교 본부는 200여 개에 달하는 강좌를 줄인 것이다.

반면 건물 신축에는 수백억 원대 비용이 쓰이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교육 여건보다 시설물 투자가 더 우선이냐"는 비판이 나온다. 맨 위에서 사례로 인용한 홍씨는 "친구들끼리 농담삼아 '학교는 대체 등록금을 어디다 쓰는 거냐'고 말한다"며 "건물 부수고 짓는데 투자할 돈으로 보다 근본적인 문제인 강의 시수 부족을 먼저 해결하는 게 순서"라고 밝혔다.

중앙대도, 연세대도... 짓고 또 짓고

이는 비단 고려대만의 상황이 아니다. 중앙대는 2008년 두산에 인수된 뒤 5개의 건물을 신축했다. 중앙대 교수협의회가 두산건설 연도별 사업보고서를 바탕으로 파악한 공사비 총액만 2500억 원에 달한다. 신축 건물의 시공사는 모두 두산건설이었고, 수의계약으로 진행됐다. 교육부는 지난해 8월 중앙대-두산의 '일감 몰아주기'가 의심된다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현재 중앙지검이 수사를 진행 중이다.

그런데 중앙대학교 강사법 관련 구조조정저지 공동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학기 중앙대의 개설강좌는 5079개로, 작년 대비 무려 1102과목이 줄었다. 중앙대는 2017년 시간강의료로 95억 5천만 원을 지급했다. 두산건설과 맺은 수의계약에 비하면 푼돈에 불과한 강사료를 아끼려는 것이다. 

연세대는 지난 2015년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에 1100억 원을 들였다. 2014년 전면 운용을 시작한 송도 국제캠퍼스에도 수천억 원의 예산이 들어갔다. 작년 3월에는 인천시와 '연세대학교 국제캠퍼스 2단계 협약식'을 가졌다. 4만 2000평의 부지를 516억 원에 공급받기로 했다. 하지만 연세대는 이번 학기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선택교양 강좌를 60%나 줄였다.

대학에 돈이 없어 시간강사를 해고하는 게 아니다. 우선순위가 다를 뿐이다. 도대체 왜 대학들은 이렇게 건물을 짓고 또 지을까.

고준우 대학연구네트워크 대표는 지난 27일 서면 인터뷰에서 "시설물 증축이야말로 대학들에게 가장 안정적인 투자의 대상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고 대표는 "기업과 제휴해 건물을 올림으로써 학생들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고, 일단 짓고 나면 임대 사업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며 "게다가 성과가 바로 나지 않는 교육·연구 프로젝트에 비해 시설물 증축은 단기간에 가시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대학이 시설물에 적극 투자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2015년 대학교육협의회는 교육부에 총 22개의 '교육분야 규제개혁 건의과제'를 제안했다. 이 중 상당수는 토지·건축 관련 규제를 푸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교지 인정 범위 확대, 교지에 대한 취득세·재산세 면제, 학교시설 취득 시 세금 면제, 기준면적 초과 교사에 대한 수익사업 허용 등이 포함됐다. 쉽게 말해 학교가 땅과 건물을 통해 '몸집 불리기'를 하겠다는 말이다.

대학은 지금 사실상 '시간강사 대량해고' 중
 
 지난 2월,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고려대학교 캠퍼스 내 SK미래관 건설 현장. 고려대는 SK미래관 공사 때문에 학내 일부 도로를 폐쇄했다.
 지난 2월,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고려대학교 캠퍼스 내 SK미래관 건설 현장. 고려대는 SK미래관 공사 때문에 학내 일부 도로를 폐쇄했다.
ⓒ 유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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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수사법대로라면, 시설물 증축에 쓰이는 수백억 원은 '투자'가 되는데 강사법 개정으로 인한 추가 재정 소요는 '비용'이 된다. 그러나 강사법 개정 역시 시간강사들의 안정적인 연구활동과 강의활동을 돕기 위한 것으로, 이 비용 역시 교육기관이라면 당연히 부담해야 한다.

강사법의 골자는 강사를 교원으로 인정하자는 것이다. 기존에는 한 학기 단위로 재계약하던 것을 바꿔 1년 이상 임용을 보장하고, 4대보험이나 방학 중 월급·퇴직금 등을 지급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그간 시간강사들은 쥐꼬리만한 임금을 받으면서도 상시적인 고용불안에 휩싸였다.

대학은 이런 시간강사의 처지를 이용해 이들을 착취해 왔다. 2017년 고려대가 시간강사에게 지급한 시간강의료는 101억 원. 전체 예산의 1.5%, 교원 예산의 4.5%에 불과하다. 고려대는 이 시간강사들에게 전체 강의 30%에 달하는 수업을 맡겨 왔다. 그렇다면 시간강사의 안정적인 연구·활동을 돕는 비용 역시 교육기관의 투자다.

하지만 법이 바뀌면서 이들을 '노동자'로 인정해야 할 처지가 되자, 대학들은 시간강사들을 사실상 '대량해고' 하고 있다. 동시에 시설물 증축에는 수백억 원을 쏟아붓고 있다.

고려대 홈페이지 메인에는 "2018년 QS평가에서 고려대가 3년 연속 국내 사립대 1위를 차지했다"는 홍보기사가 여섯 달째 걸려 있다. '국내 사립대 1위' 대학에서 학생들이 강의가 부족해 휴학한다고 누가 생각이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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