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로고

넷플릭스 로고 ⓒ 넷플릭스

  
그동안 나는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를 멀리하는 편이었다. 킬링 타임용으로 보는 콘텐츠를 볼 때만 종종 이용했을 뿐이다.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넷플릭스'라는 서비스에도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영화라면 극장에서 봐야지 하는 완고한 고집이 가장 크게 작용했을 터다. 

시작은 아내가 권해서였다. 꼭 보고 싶은 콘텐츠가 있는데, 넷플릭스로 보면 일단 첫째달은 무료이고 둘째달부턴 지인 3명과 함께 총 네 사람이서 한 달에 1만4500원만 내면 모든 걸 무제한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1만4500원을 4로 나누면 1명당 3625원이니 커피 한 잔 값도 채 되지 않는 가격이다. 그렇게 넷플릭스 세계에 들어갔다. 

아내와 나는 다른 듯 비슷한 취향이라 주로 넷플릭스를 같이 시청한다. 정확히 하자면 두 명이서 1명당 분의 3625원을 소비하기 때문에 1명당 1812.5원이 되는 셈이다. 즉, 무수히 많은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시청하는 데 1달에 1812.5원이 드는 것이니 더 말해 무엇하랴. 

2019년 새해 벽두부터 시작한 넷플릭스, 한 달이 조금 넘어갔을 뿐이지만 요즘 나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신작을 보러 극장에 거의 가지 않게 되었고, 예전 개봉작을 보러 인터넷을 뒤지지 않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지상파와 케이블 채널을 막론하고 텔레비전 방송 자체를 안 보게 되었다. 

내가 앞으로도 계속 영화 리뷰 기사를 쓴다는 전제 하에, 넷플릭스는 계속해서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넷플릭스가 영원하란 보장은 없지만 말이다. 사실 넷플릭스 자체 보다 OTT(Over The Top: 인터넷을 통해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생각을 바꾼 게 더 크다. 

넷플릭스의 시작과 과정

넷플릭스는 1997년에 비디오 대여 사업으로 시작해 지금은 온라인 스트리밍 사업을 위주로 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폭발적으로 성장해 작년 한때 디즈니를 뒤로 하고 전 세계 기업 시가총액 1위를 달성하기도 했을 정도의 기업이 되었다. 전 세계 1억 5천 만 명에 다다르는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2016년 1월 상륙해 변변찮은 콘텐츠 때문에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2013년 3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의 위상을 수직 상승시켜준 데이빗 핀처의 <하우스 오브 카드>, 2017년 제작비 전액을 투자한 봉준호의 <옥자>를 공개하면서 국내 관심도가 크게 상승했다. 이후 넷플릭스는 점점 믿을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가 되어 갔다. 

2018년 정점을 찍은 넷플릭스, 이제 대표작을 한두 작품으로 국한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 이유엔 여러 가지가 있다. 엄청난 제작 투자, 그리고 이에 반비례하는 자본의 간섭이다. 넷플릭스는 2018년에만 120억 달러(한화 약 13조 5천억 원)를 투자해 콘텐츠를 만들었다. 지난 2016년부터 한국에 투자한 금액은 1500억 원에 달한다. 단기적으론 부채가 엄청나게 늘었지만 장기적으로 디즈니, 아마존, 훌루 등과의 경쟁에서 이기거나 또는 버티기 위해선 꼭 필요한 투자인 것이다. 

한편, 넷플릭스는 창작자에게 콘텐츠 방향 등 간섭을 하지 않는 걸로 유명하다. 사람들로 하여금 훨씬 쉽게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해 놓았으니 진짜 좋은 작품만 나오면 된다는 신념이 작용한 듯하다. 그 덕분에 '거장'들이 넷플릭스와 함께 하게 되었다. 2019년이 2개월 채 안 된 이 시점에서 공개된 영화들의 면면만 봐도 알 수 있다. 스티븐 소더버스의 <높이 나는 새>, 댄 길로이의 <벨벳 버즈소>, 매즈 미켈슨 주연의 <폴라> 등이다. 

넷플릭스 대표 오리지널 영화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들은 넷플릭스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 오리지널 콘텐츠는 2015년 최초로 시도한 이후 매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사실 2016년까지만 해도 두각을 보이지 못했고 2017년에는 봉준호의 <옥자>, 노아 바움벡의 <마이어로위츠 이야기>, 메이컨 블레어의 <루스에게 생긴 일> 정도가 눈에 띈다. 

그러던 것이 2018년에 폭발하기 시작했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타마라 젠킨스의 <프라이빗 라이프>, 폴 그린그래스의 < 7월 22일 >, 코엔 형제의 <카우보이의 노래>,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가 연달아 공개되어 그야말로 풍년을 맞이했다. 산드라 블록 주연의 <버드 박스>와 인터랙티브 방식의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는 느낌표와 마침표를 찍었다. 

이중 <로마>는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의 영예를 받은 것도 모자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0개 부문 최다 노미네이트되어 감독상, 촬영상, 외국어 영화상 등 3개 부문을 수상했다. < 7월 22일 >과 <카우보이의 노래> 또한 베니스 영화제에서 상을 탔다. 

2019년 3월에는 <트리플 프런티어> <하이웨이맨> 등이 공개될 예정인데, 감독도 감독이지만 쟁쟁한 배우들이 영화의 이름값과 궁극적으로 넷플릭스의 이름값을 드높여줄 예정이다. 이밖에도 넷플릭스가 콘텐츠의 제작 해당 국가를 제외한 전 세계 배급 판권을 가진 좋은 작품들이 부지기수이다. 

지금은 넷플릭스 시대

OTT 서비스 업체가 넷플릭스만 있는 건 아니다. 한국엔 상륙하지 못했지만 좋은 콘텐츠를 보유한 '훌루'도 있고, 폭스를 인수한 후 전 세계를 폭격할 것으로 보이는 '디즈니+'도 있다. 아마존을 비롯 세계적인 대기업들도 이젠 발을 들이밀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넷플릭스의 독보적 활약이 돋보인다. 미국에서 훌루가 디즈니와 폭스를 위시한 이들이 합심해 만든 케이스라면, 우리나라에선 방송사와 통신사들이 합심해 새로운 OTT 업체를 만들 기미가 보인다. 넷플릭스의 급성장에 따른 위기감 상승 때문이다. 

모든 OTT 기업들이 막대한 자본을 앞세워 좋은 콘텐츠를 갖추고 창작자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언제 어디서나 어떤 디바이스로든 무제한 시청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가정한다면, 결국 브랜드 선점이 정답일 것이다. 넷플릭스는 이 모든 걸 가장 앞서 달성하고 유지해 왔다.

물론 독점 기업은 안팎으로 거센 압박과 도전을 받을 것이다. 언젠가 하강 곡선을 걸을 수도 있다. 넷플릭스에 대항하고자 디즈니가 큰 자본과 좋은 콘텐츠로 시장을 재편할 준비를 하고 있다. 북미를 포함 전 세계 영화계에서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자본과 경쟁력과 콘텐츠를 갖춘 디즈니는, 누구나 알고 있는 브랜드 이름과 100여 년의 역사 전통을 자랑한다. 

그럼에도 아직은 넷플릭스 시대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빅데이터'를 잘 활용하고 있는 기업이 넷플릭스이기 때문. 이용자들의 이용 패턴을 수집하는 넷플릭스는, 우리 스스로도 잘 모르는 우리 취향의 콘텐츠를 알아서 추천한다. 그건 비단 이용자들의 구독과 시청에 국한된 게 아니라,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할 때도 긴요하게 쓰인다고 한다. 

한편, 이용자 입장에서 그동안 미국 영화만 봐왔던 것에 비해 넷플릭스가 공개하는 전 세계 수많은 국가들의 콘텐츠 면면은 차라리 축복이다. 근 10년 동안 전 세계 영화계가 점점 범 슈퍼히어로로 급속히 편제화되어 가는 가운데, 다양한 종류의 영화들을 접할 수 있다는 것도 시대의 흐름을 선도하고 따르는 한편 큰 덕목이라 하겠다. 특히 다큐멘터리의 수준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과거 세계 유수 방송국에서 만들곤 했던 다큐멘터리들도 과감히 제칠 수 있다. 

무엇보다 큰 장점, 넷플릭스만의 장점은 아니겠지만 접근성이 매우 뛰어나다는 점이다. 내가 보고 싶은 작품을 내가 보고 싶을 때 보고 싶은 기계로 보고 싶은 장소를 택해 볼 수 있다. 더 말해 무엇하랴. 나는 넷플릭스 덕분에 보다 다양하고 작가주의적인 콘텐츠를 얻을 수 있다. 나는 넷플릭스 덕분에 보다 훌륭한 환경에서 일(보고 쓰는)을 할 수 있다. 나는 넷플릭스 덕분에 행복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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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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