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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을 향한 첫 출발선에서

교직 38년을 포함 공직 생활 41년 4개월을 뒤로 하고 처음 맞는 3월이다. 마치 무중력 상태로 떠 있는 느낌이다. 공식적으로 일하지 않아도 되는데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도서관을 찾았다.

'교육'이라는 제목이 들어가지 않은 책을 골라 읽기로 했다. 그런데도 어느 순간 퇴직한 학교 홈페이지를 들락거리고 새 소식이 올라왔나 검색까지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습관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놀라는 중이다. 오랜 시간 몸에 밴 관성의 법칙이 지배하고 있으니 물리학은 내 삶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며칠 동안 이곳저곳에서 정년퇴임을 축하하는 식사 초대에 다녀왔다. 마라톤 완주를 잘했다며 소소한 자리에 꽃다발, 때론 정성스런 편지와 선물들이 배달되니 실감이 난다. 따로 퇴직 기념행사를 하지 않겠다고 고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찾는 이들에게 얼굴을 내밀고 감사함을 표현하는 건 당연한 도리이리라. 문제는 술과 수다를 좋아하지 않는데 그런 자리에 가야 하니 힘들다.

이래저래 사람 만나는 걸 기피하는 내 성향을 다시 확인하며 사람은 쉽게 바뀔 수 없음을 깨닫는다. 아니, 사람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크게 충격을 받거나 힘든 일을 겪거나 특별한 터닝포인트가 발생하지 않는 한! 결국 아무도 나를 바꾸지는 못한다. 사건이나 사람이 나를 바꾸도록 자극할 수는 있으나 결국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교육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가르치는 제자를 변화의 물가로 이끌 수는 있으나 그가 물 마시기를 거부하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 물을 먹고 싶도록 갈증 나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게 교육의 힘이고 교사의 자질이다.

필요를 절감하게 하는 능력을 갖추는 노력이 계속 되어야 하는 이유다. 세상이 무서운 속도로 달리며 변화의 속도를 가늠할 수 없으니 더욱 그렇다.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아도 상식과 지식이 넘쳐나는 세상이니 학교와 교사는 늘 새로움을 추구하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할 능력을 겸비해야만 한다.

퇴직을 하니 좋은 점은 새벽에도 마음 놓고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거다. 다음 날 아침 출근 때문에 마음 놓고 책 속으로 빠질 수 없었던 그 많은 시간을 반복하지 않아도 되니 행복하다. 읽다 자다를 반복해도 좋은 '자유인'은 오랜 갈망이었다. 다시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 어린아이처럼 책을 사랑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특히 의무감으로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니라 읽고 싶은 책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무 때나 말을 걸지 않는 책이라는 친구는 우리 집 고양이처럼 말이 없어서 좋다. 이런 성정으로 38년 동안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선생 노릇을 해낸 게 신기하다. 일방통행이지만 마음이 통하는 최상의 친구는 책이 분명하다. 그에겐 실망할 일이 드물어서 좋다. 언제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미안해하지 않고 상처 주지 않고 내려놓을 수 있으니.
 
 은퇴자의 공부법/윤영선, 윤석윤,최병일 지음/14,000원
 은퇴자의 공부법/윤영선, 윤석윤,최병일 지음/14,000원
ⓒ 어른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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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자의 공부법>은 퇴직한 첫날 제일 먼저 고른 책이다. 주변 사람들은 6개월쯤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라고, 좋아하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라고들 조언한다. 그럼에도 다시 집어든 것이 책이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아 나도 모르게 집어든 책이다. 은퇴자의 공부라니! 쉬거나 놀거나 여행을 다니기는커녕 공부하라고 채근한다. 아니, 은퇴는 삶의 여정이니 공부는 당연한 거라고 떠민다.

퇴직은 남의 일로 알고 살아 왔는데 원치 않는 일이지만 현실로 다가왔다. 아직 기대수명이 만만치 않게 남아있으니 저자의 권학 편을 꼼꼼히 챙겨서 읽었다. 이 책에는 독서와 글쓰기로 인생 2막을 연 세 사람의 저자가 등장한다.

그들의 공통점은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하며 달라진 삶을 적고 있다. 진솔하고 꾸밈없는 일기를 보는 느낌이다. 그래서 소박하고 단출하다. 옆집 아저씨가 살아온 이야기를 막걸리 한 잔 나누며 들려주는 듯한 담백함이 좋다. 전문 작가가 아닌, 아마추어에 가까운 작가만의 풋풋하고 어설픈 소박함이 좋은 책이다.

마지막 인생의 동반자, 책

'공부하는 은퇴자에게는 정년이 없다'는 부제 아래 윤영선, 윤석윤, 최병일 세 사람이 공저자로 참여하여 집필한 책이다.

자신들의 삶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필력 또한 결코 얕지 않으면서도 전문가인 척 하지 않는 겸손함이 좋다. 그러니 설교하거나 강요하는 글이 아니라 걸어온 길을 복기하여 써내려 간 점이 편안하게 다가선다. 정년퇴직이나 조기퇴직으로 원치 않는 퇴직을 하며 겪은 마음고생을 견뎌낸 과정도 진솔하게 풀어내어 안타까움과 공감을 불러낸다.

제2의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하며 정체성에 시달리는 대목에선 한숨마저 나왔다. 나 역시 지금 그러하니. '이해한다'는 말은 바로 지금 그 자리에 서 있지 않으면 가슴으로 느낄 수 없으니 함부로 써서는 안 되는 낱말이 분명하다.

날마다 보던 동료 직원들, 귀엽고 사랑스런 제자들, 떠들썩한 교실, 이른 아침 문을 열고 일찍 오는 아이들을 기다리던 도서실의 익숙한 냄새가 벌써부터 그립다. 하느님은 세상 어디에나 있을 수 없어서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말이 있는데, 학교는 그 어머니의 소중함을 가르치는 곳이니 인간이 만든 조직 중 최상이 아닌가!

은퇴자는 인간이 사람으로서 마땅히 하고 살아야 할 일터로부터 배제된 사람이다. 기대수명이 현저히 늘어났지만 법률적으로 사회적으로, 아니 경제적인 이유가 더 정직한 표현이다.

그러니 직장을 떠난 사회의 이방인으로 무중력이 주는 헛헛한 느낌을 빨리 지우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칫 잘못하면 삶의 균형감각을 잃고 허무해지거나 우울감으로 힘들어질 수 있으니. 마치 뿌리 없는 나무처럼 둥둥 떠 있는 듯한 상태를 이길 수 있는 방편을 찾는 노력이 절실함을 깨닫도록 도움을 준 이 책이 고맙다.

'공부에 빠져서 행복하다'는 윤영선씨, '공부로 삶을 바꾸었다'는 윤석윤씨, '공부로 세상과 통한다'는 최병일씨의 공통점은 독서와 글쓰기다. 다행히 나는 이 분들과 공통점이 같아서 안심이 된다. 공부를 좋아하는 점에서 그렇고 책을 읽고 나누기를 좋아하는 점도 닮았다.

나도 세상이라는 학교에 적응을 잘하여 인생의 진정한 마무리를 잘 하고 싶다. 빈 가지로 서서 쉬는 듯 보이는 겨울나무도 결코 쉬지 않는다. 새 봄을 기다리며 수액을 조절하며 새순을 낼 준비로 바쁘다. 겨울나무가 그럴진대 나도 자연의 일부이니 그렇게 살아가리라. 내게 주어진 그 자리에서 나무처럼 말없이 제 할 일을 다 하며 다시금 새 봄을 노래하리라!

덧붙이는 글 | 한교닷컴과 전남교육소식에도 송고합니다.


은퇴자의 공부법

윤영선.윤석윤.최병일 지음, 어른의시간(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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