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블랙클랜스맨>으로 각색상을 수상한 스파이크 리 감독

2019년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블랙클랜스맨>으로 각색상을 수상한 스파이크 리 감독 ⓒ EPA/연합뉴스

 
"이 나라를 세운 사람들, 그리고 원주민을 죽인 이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인간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 스파이크 리 감독(아카데미 시상식 수상소감 중)
 

지난 2월 25일, 미국 LA 돌비 극장에서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렸다. 블랙 팬서가 3관왕에 올랐고, 흑인과 백인의 우정을 그린 영화 <그린북>이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다. 한편, 각색상은 스파이크 리 감독의 <블랙클랜스맨>에게 돌아갔다. 스파이크 리는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커리어 첫 번째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게 되었다. 스파이크 리는 <말콤 X> , <똑바로 살아라> 등의 작품을 통해 인종적 문제의식을 드러내 온 흑인 감독이다.
 
스파이크 리가 상을 받았다는 것만큼이나 화제가 된 것은 그의 수상 소감이었다. 그는 "2020년 대선에서는 도덕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사랑과 증오 사이에서 사랑을 택하자"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저격했다. 여기에 침묵할 트럼프가 아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누가 흑인을 위해 더 이바지를 했는지 보라'며 빠르게 응수했다.
 
'차별과 혐오'의 시대, 영화 <블랙클랜스맨>이 비추는 것


영화 <블랙클랜스맨>은 미국 사회에서 적지 않은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품이지만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높지 않은 편이다. 극장에 걸리지 못 하고, VOD 시장으로 직행했기 때문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의 주된 설정은 다음과 같다. 흑인 경찰 론 스탈워스(존 데이빗 워싱턴)가 백인 우월주의 집단 KKK에 잠복 요원으로 잠입한다.
 
 유대인 형사 플립(아담 드라이버)과 흑인 형사 론 스탈워스(존 데이빗 워싱턴)

유대인 형사 플립(아담 드라이버)과 흑인 형사 론 스탈워스(존 데이빗 워싱턴) ⓒ 영화 < 블랙클랜스맨 > 스틸컷

  
목소리 연기는 론이 하지만, 행동은 유대인 경찰 플립(아담 드라이버)이 대신한다. 론은 '흑인이 자신의 동생을 강간했다'며 흑인 혐오를 연기하고, 플립은 '홀로코스트는 아름다운 일이었다'며 유대인 혐오를 연기한다. 소수자 자신의 입을 통해 소수자를 핍박하는 연기를 한다. 흑인, 혹은 유대인이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혐오적 표현들을 남발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웃픈' 장면이다. 영화에서는 인종차별과 혐오를 고발하는 것뿐 아니라, 이를 변주하는 스파이크 리의 감각이 빛난다.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방법론이 부딪히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론은 운동권의 흑인 학생들과 친해진다. 론의 애인 파트리샤는 '흑인 해방'과 '혁명'을 외친다. 소수성을 공유하는 론은 운동가들의 이상에 정서적인 연대를 느낀다. 그러나 론은 제도권 내부의 변화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는 파트리샤에게 "모든 경찰이 돼지라고 생각하느냐"고 묻는다. 영화는 어느 쪽이 옳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좁혀질 수 없는 간극 사이에서도 두 관점이 합일을 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영화는 '순백의 아메리카'를 외치는 혐오주의자들의 사명감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영화 <국가의 탄생>을 보며 '전의'(?)를 다지며 '화이트 파워'를 외치는 백인 우월주의자, 그리고 다른 한 쪽에서는 생존을 위해 '블랙 파워'를 울부짖는 소수자들이 있다. 이 대비가 꽤 인상적으로 그려진다. 이 갈등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삶도 중요하다)를 외치는 흑인들이 있는가 하면, 'White Lives Matter'와 역차별을 운운하는 백인들 역시 있다.

영화의 결말 부분에서, 영상은 현재의 미국을 담은 다큐멘터리로 전환된다. 2017년, 미국 남부에서 일어나는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집회와 차량돌진 테러를 보여준다. 인상적인 부분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이다. 트럼프는 '양쪽에 좋은 사람이 있고, 양쪽에 괜찮은 사람이 있다'며 애써 양비론을 펼친다.

결국 이 영화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결국 트럼프로 상징되는 가치, 그리고 더 나아가 지금의 미국일 것이다. 트럼프의 집권 이후 차별과 혐오의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 영화에 등장한 데이비드 듀크와 같은 혐오주의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횃불을 들고 있다. <블랙클랜스맨>은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결코 1970년대의 이야기에서 머물지 않는다. 현재의 미국과 만나면서, 더욱 더 생생하게 숨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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