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강제징용 조선인 노무자들이 탄광 벽에 쓴 피맺힌 절규들.
 강제징용 조선인 노무자들이 탄광 벽에 쓴 피맺힌 절규들.
ⓒ 눈빛출판사

관련사진보기

 
'긴 아리랑'

하늘도 무심하시지
기어이 돌아가지 못하고 여기서 죽는구나.
동포(의 시신)를 깔고 동포(의 시신)에 덮여서 죄다 한 구덩이에 묻히는구나!
이름 하나 생시 한 줄 표식도 없이 누가 와서 찾아가지도 못하게 …
여보시오 동포여! 내 조국 사람들이여!
행여 내 목소리 들린다면 부디 나를 위해 울어주오
내 신세 되어 귀향 못한 수만 동포를 잊지 마오
부디 데려가 주오
내 고향, 내 조국으로….

 
  
일제에 의해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의 삶과 죽음을 동영상으로 만든 <긴 아리랑>에서 내레이터가 구성지게 읊조리는 사설의 한 대목이다. 그와 함께 화면에서는 조선인 강제 징용 노무자 시신들이 퇴비장의 풀처럼 한 구덩이에 버려지고 있었다. 그 장면에 순간 장내는 조용한 흐느낌으로 변했다. 손수건을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에 가게 된 조선인 노무자들은 '모집'이나 '관의 알선'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모두 강제연행이었다. 그렇게 연행된 조선인들은 일본 각지 및 점령지의 탄광, 발전소, 군항, 군수공장 등에서 감금상태로 강제노역을 당했다. 영화 <군함도>에서 재연했듯이 비인간적 강제노역으로 질병, 사고, 집단 괴롭힘 등으로 많은 조선인 노무자들은 목숨을 잃었다. 1945년 해방 때까지 이와 같은 처지에 놓였던 조선인 강제노역자는 수백만 명에 이르며, 그 사망자는 14만 명으로 추정된다.

그렇게 죽어간 이들 가운데 우선 74위가 남북 민화협과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의 주선으로 고국에 돌아왔다. 3.1절 100주년 기념일인 지난 1일 오후 2시 백범기념관에서 제1차 조선인 유골봉환 추모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그동안 이들의 유골을 안치해줬던 일본 오사카 통국사에서 온 스님과 유해 봉환단 25명 그리고 국내 귀빈 300여 명이 참석했다. 배우 박성웅씨의 사회로 진행된 추모식에서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김용덕 이사장님의 사업소개 및 경과보고가 있었다.

특별히 일본에서 유골봉환사업에 이바지해 온 일본인 곤노유리씨의 추모사가 있었다. 문희상 국회의장, 김부겸 행안부장관, 북측 민화협 김영대 회장의 추모사(대독)에 이어 이번 행사를 주관한 김홍걸 남측 만화협상임의장의 마무리 추모사가 있었다. 김홍걸 의장의 추모사 일부를 옮긴다.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인도주의적 사업"
  
 김홍걸 민화협 상임의장이 추모사를 낭독하고 있다.
 김홍걸 민화협 상임의장이 추모사를 낭독하고 있다.
ⓒ 민화협(이승렬)

관련사진보기

 
"이번 조선인 유골봉환 남북공동사업은 일본과 갈등을 부추기 위한 행사가 아닙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진심어린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기 전에 먼저 인도주의적 사업을 남과 북 및 양심적인 일본인이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미 남북 민화협은 2018년 7월 18일 평양에서 '조선의 혼, 아리랑의 귀향'이란 유골봉환운동을 추진키로 결정한 바 있습니다.

(중략) 오늘 추모제를 지내는 74분 중 네 분은 해군군속이고 나머지 70분은 강제동원 희생자들입니다. 국내로 봉환된 이분들의 유골은 우선 제주도 선운정사에 임시로 모셨다가 최종 안치 장소는 남북의 평화가 정착되면 비무장지대 '평화의 공원(가칭)'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조선인 강제노무자들이 이국땅에서 밤마다 아리랑을 부르면서 고국의 부모 형제자매를 그리워했던 불쌍한 그분들의 죽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앞으로 일제 강제동원피해 관련 토론회를 5월 중에 평양에서 열기로 남북 민화협이 합의했습니다. 이번 1차 유골 봉환사업에 이어 앞으로도 계속 북측과 협력하여 이 사업을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님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가슴에 깊이 새기면서 추모의 말씀으로 갈음합니다.(이하 생략)"

  
'나라다운 나라'로 발돋움하다
  
 이호연 명창이 진혼곡으로 '이별가'를 부르는 가운데 유골함이 장내를 돌고 있다.
 이호연 명창이 진혼곡으로 "이별가"를 부르는 가운데 유골함이 장내를 돌고 있다.
ⓒ 민화협(이승렬)

관련사진보기

 참배객들의 애도 속에 유골함이 장내를 돌고 있다.
 참배객들의 애도 속에 유골함이 장내를 돌고 있다.
ⓒ 민화협(이승렬)

관련사진보기

 조선인 유골봉환 추모식을 마친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조선인 유골봉환 추모식을 마친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민화협(이승렬)

관련사진보기


김홍걸 의장의 추모사에 이어 특별제작 동영상 '긴 아리랑'이 상영됐다. 영상이 끝난 뒤, 국립국악원 합주단의 연주 속에 이호연 명창의 진혼곡 '이별가' 가락이 구성지게 흘렀다. 

그리고 74위 유골상자가 장내를 돌았다. 이호연 명창의 목소리가 고인들의 넋을 진혼하는 가운데 이날 추모식은 끝났다. 고국으로 봉환된 유골은 2일 제주도 선운정사로 옮겨진다고 한다. 
 
 미군이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를 본국으로 송환하고 있다(1958. 5. 28.).
 미군이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를 본국으로 송환하고 있다(1958. 5. 28.).
ⓒ NARA / 박도

관련사진보기

 
기자는 2004년부터 2017년까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수 차례 한국전쟁 사진을 조사 및 수집했다. 미국은 전쟁이 끝난 지 수십 년이 지나도 미군들의 유해를 성조기에 정성껏 싸서 본국으로 정중히 봉송한다. 기자는 그런 일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이 '나라다운 나라'라는 것임을 느꼈다. 

한국도 이국땅에 버려진 강제징용 노무자들의 고혼을 수습하는 것을 보고 나는 이것이 '나라다운 나라' 모습을 찾아가는 바른 길 같아 슬픈 가운데도 흐뭇했다.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30여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등.

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