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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정치기행 일정 마지막 이틀(2019년 1월 19·20일)은 호텔이 아니라 단독주택에서 묵었다. 다 같이 모여 평가회(?)를 하려는 주최 측의 계획에 따른 것이다. 도쿄 중심가엔 16명이 머물만한 숙소가 마땅치 않아 외곽으로 정했는데, 알고 보니 여기는 예전부터 노동자들이 주로 거주하던 동네였다고 한다. 지금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살고 있다.

전철역에서 내려 슈퍼마켓, 학교, 볼링장, 꼬치구이집을 지나면 한적한 주택가가 나온다. 우리 숙소는 주택가 골목 안쪽의 일본식 2층집이었다. 작은 뒤뜰, 뻑뻑한 창문, 장식 없이 기능에 충실한 가구, 오래된 그릇장에 걸맞게 제각각인 그릇들, 공유 숙박시설 특유의 소박한 분위기가 낯선 환경에서 보냈던 며칠간의 긴장을 풀리게 했다.

따뜻한 차를 마시다가, 이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년이 보장된 직장에서 어제와 비슷한 일을 하다 퇴근길에 장을 봐서 따뜻한 저녁밥을 해먹고, 목욕을 하고, 책을 읽다 잠드는 평온한 나날. 사랑하는 사람과 손잡고 산책하다 개울가 오리를 보고 함께 미소 짓는 평범한 시간 속에 늙어가는 삶.

노동조합 조합원이라는 게 그런 나의 일상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는 사회에서 살고 싶어졌다. '노동조합을 한다'는 것이 삶을 송두리째 바쳐야 한다거나, 굴뚝에 올라야 한다거나, 단식을 해야 하는 일이 아닌 사회에서 살고 싶어졌다. 내가 소속한 집단이 나의 이해를 대신해 주고, 내가 선택한 정당이 나의 사회·경제적 기반과 일치하는 사회에서 살고 싶어졌다.

남의 나라, 빌려 쓰는 집에서 우리 사회, 내 삶에 대한 간절함이 솟구쳤다.

일본 사회에서 노동이 어떤 의미인지 정치기행 내내 생각했다. 우리보다 노동이 존중되고 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다지 정치적이지 않아 보이는 노동조합이 어떻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인지 궁금했다. 일본의 노동정치는 어떻게 형성됐고, 노동의 시민권은 어떻게 획득됐는지 배우고 싶었다. 해답에 가까이 갔을까?
 
일본 지하철 역무원 한조몬역에는 3인이 있었다
▲ 일본 지하철 역무원 한조몬역에는 3인이 있었다
ⓒ 박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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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지하철 승강장에는 예외 없이 역무원들이 있었다. 숙소가 있던 한조몬역에는 무려 3명이나 있었다.

손으로 수신호를 하는 그들을 보며 '우리의 역무원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생각했다. 일본이 우리보다 기술이 떨어져서 사람을 쓰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국에서는 무인운전, 무인역사 등 지하철 무인시스템 도입을 둘러싼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기술의 발전은 놀랍다. 그런데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면 우리 삶은 더 여유롭고, 윤택해져야 하는 것 아닌가? 왜 우리는 더 불안한 일자리에서 더 오래, 더 힘들게 일하고 있는 걸까. 우리의 아껴진 노동은 누가 훔쳐간 걸까.

일본정치기행 연재 마지막 편이다.

'노동조합'은 새로운 사회의 상징

시노다 도오루 교수(와세다대학교)의 설명에 따르면 일본은 헌법이나 노동기준법보다 노조에 대한 법률을 먼저 제정했다. 1945년 전쟁에서 진 뒤 4개월밖에 안 지난 시점이었다.

미국의 강요에 따른 것이다. 나카키타 고지는 <일본 노동정치와 국제관계사>에서 당시 미국의 대일 정책은 '비군사화와 민주화'를 기본방침으로 해 노동조합을 적극 육성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후 미·소 냉전이 격화됨에 따라 점령정책이 변하고, 노동조합을 억압하게 되지만 전쟁 직후의 상황은 노동조합 육성정책이었다.

시노다 교수는 법 제정 이후 노동조합이 빨리 퍼지게 된 것은 '산업보국회'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일본은 전쟁 중에 노사 협조를 위한 단체 '산업보국회'를 만들었다. 생산성 향상을 위한 것이다. 당시에는 '말도 안 되게' 노동자를 착취하는 기업이 많았는데, 그러면 생산성이 떨어지니까 나라에서 경영자를 '혼냈다'고 한다. 물론 이는 노동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전쟁을 위한 것이었다. 어쨌든 이에 힘입어 1949년 일본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50%에 달했다.

처음엔 노사간에 많이 부딪혔고, 폭력사태도 발생했다고 한다. 1958년 춘투의 경우 도쿄 중앙우체국에서 작업 시간 중 2시간 동안 현장 집회를 실시했는데, 우정성은 위원장 등 7명을 해고하고, 정직 297명, 감봉 200명, 경고 404명, 훈계 1568명 등 2000명이 넘는 노동자를 징계했다. 70명은 경찰 체포, 일부는 우편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기시 내각(기시 노부스케 총리)은 단체교섭도 거부한다.

1960년대 들어 이런 상황은 변하게 된다. 경영자가 노동조합과 잘 지내는 게 비용이 덜 들고, 합리적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세계경제가 변화해 다른 나라와 경쟁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됐기에 경영자와 노동자가 힘을 합쳐서 경쟁력을 높이려 했다고 한다.

1950년대부터 진행된 미국 측의 '생산성 향상 프로그램' 지원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일본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미국 방문 연수를 포함한 생산성 향상 프로그램은 경제성장을 통해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향상시키고, 분배를 둘러싼 계급대립을 해소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일본의 노동조합을 자유주의 진영에 묶어놓으려는 미국의 의도가 다분히 담긴 것이다. 온건한 노동조합 육성·지원과 함께 반공주의 강화,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탄압이 이뤄졌다는 점에 비춰 봐도 그렇다. 

공산당을 중심으로 한 자생적 노동조합 운동과 외부에 의해 이식된 노동조합 운동이 혼재하던 전후 일본에서 노동조합이 갖는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시노다 교수는 '새로운 사회의 상징'이었다고 말한다.

"일본 국민 대부분은 가족이나 친척이 전쟁에 나갔고, 그중 누군가는 죽었다. 또, 1945년부터 10년 동안 굉장히 큰 고생을 했다. 배 안고픈 사람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 전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은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경찰이나 군대에 의해 억압받는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과거에는 때리고, 욕하고, 학대하는 것이 당연했는데, 이를 안 하게 된 것이다. 노동조합은 억압받던 사회에서 새로운 사회로 바뀌게 된 상징적 역할을 했다."


시대는 앞으로 나아갔고, 노조는 그 시작에 있었다.
 
시노다 도오루 교수 와세다대학교
▲ 시노다 도오루 교수 와세다대학교
ⓒ 박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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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학교, 노동조합

일본에서 전후 노동조합은 '민주주의의 학교'라고 불렸다. 시노다 교수는 '민주주의의 한 방식을 노동조합을 통해서 배운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일본의 노동조합은 깜짝 놀랄 만큼 리더에게 아무런 힘이 없다. 한국은 리더의 존재가 있는데 일본은 그렇지 않다. 말단의 조직이라도 내려가서 최소한 한 달에 한번은 이야기를 나눈다. (조합원들은) 직장에서 집회를 해도 대부분 안 온다.

하지만 집회를 해서 절차를 하나씩 밟아 나가는 것이 일본 노조에서는 굉장히 중요하다. 리더의 힘이 강하고, 인덕이 높아서 사람들이 따른다? 일본에서는 절대로 안 된다. 일본 노조는 민주주의라 같이 이야기 나누고, 같이 정하는 절차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신카와 도시미쓰 교수(호세대학교)는 "노조의 기본 역할은 임금 협상이다, 노동자의 이익과 요구 실현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라며 "규칙을 지키면서 자기 의견을 내세우는 민주주의를 배워나가는 데 의의가 있다"라고 말한다. 

신카와 교수는 노동조합이 본래 배제된 사람들(노동자)을 찾아오는 역할을 했다며, 현재도 같은 의미를 갖는다고 했다. 예컨대, 일하는 여성의 권리 보장, 늘어가는 외국인 노동자를 포섭하는 문제 등 현대 사회에 등장한 새로운 문제가 '배제'의 측면에서 본다면 19세기 노동문제와 동일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노조가 어디까지 대응할 수 있을 것인가'가 중요하고, 이는 '21세기 민주주의에서 큰 열쇠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동조합은 또다시 새로운 시대의 문 앞에서 서 있다. 노동조합은 민주주의 발전의 문을 열 수 있을까?
 
신카와 도시미쓰 교수 호세대학교
▲ 신카와 도시미쓰 교수 호세대학교
ⓒ 박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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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통한 점진적 변화

현재 일본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약 17%다. 독일과 같은 수준이다. 노동조합이 강하다고 알려진 독일은 얼마 전까지 30%였는데 갑자기 떨어졌다. 이탈리아도 40%에서 급격히 하락했다. 선진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떨어지는 낙차가 심했다. 일본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떨어졌다. 이와 같은 설명에 이어 시노다 교수는 "17%는 부정적 숫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뒤에서 밀어주는 바람"이라고 평가한다.

"지난 10년 동안 반노조주의, 포퓰리즘 등 노조에 안 좋은 사회적 상황이 이어졌다. 일본은 열심히 힘을 냈다기보다 버텼다는 느낌이다. 낙차가 없었으나 대신 압력도 없었다.

지난 몇 년 일본식 경영은 일본 내에서도 비난받고 있다. '언제까지 다 사이좋게 나갈 거냐? 능력 있는 경영자를 뽑아서 발전하자'는 의견도 있다. 다만,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는 많이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그러다) 리먼 쇼크가 발생하고, 자본주의 일방적 경영은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성장이 늦더라도 사람이 사람끼리 도우면서 가는 게 낫지 않느냐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일본에서도 신자유주의적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사회 변화의 속도가 느리다 보니 경쟁체제 도입에 앞장섰던 나라들이 일본을 추월했다. 빠르게 변했던 나라들이 한 바퀴 돌아오니, 느리게 변했던 일본이 오히려 맨 앞에 선 형국이 됐다. 

그러다 보니까 일본 내에서 '안 바꿔도 되지 않나?'는 의견도 나왔는데, 시노다 교수는 안 바꿀 수는 없단다. 그래서 나온 답이 '점진적 변화'다. 대화로 풀어나가자는 것이다.

일본의 특징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순응성'이다. 조용하고 완만한 사회 변화를 추구한다. 너무나 조용하고 완만해서 변화가 잘 보이지 않기도 한다. 한국의 특징은 '저항성'이다. 기본적으로 합의를 추구하지만 합의가 안 될 경우 강한 반발을 통해 의견을 표출한다. 일본과 한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다면 더 좋은 사회가 가능할 것이다.

한 사회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본에서 만난 두 명의 정치학자 신카와 교수와 시노다 교수의 의견은 조금 달랐다. 신카와 교수는 노동조합이 저항세력의 역할을 하면서 사회 변화에 앞장설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고, 시노다 교수는 일본 노동조합의 선택은 합의를 통해 체제 안에서 협력하는 것이라고 했다.

민주주의는, 두 학자들의 견해 사이, 합의와 저항의 균형 속에 발전하지 않을까? 노동조합이 쥐고 있는 민주주의의 열쇠에 이름이 있다면, 그 이름은 균형일 것이다.

경영자의 사회적 역할은?

이쯤에서 마쳤으면 좋으련만, 시노다 교수는 우리에게 숙제를 냈다(네? 숙제라고요? 저희는 한국에서 왔습니다만...).

"여러분에게 숙제를 드리고 싶다. 노동과 정치의 관계를 생각했을 때, 중요한 것은 경영자다. 경영자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가 관건이다. 기업, 경영자들의 움직임이 정치에 굉장한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경영자 단체 약화는 노동정치 전체에 있어서 큰 의미를 갖는다. 예전과 달리, 정부와 상관없이 기업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된 것이다. 업계가 블랙이 된다."

숙제는 '경영자'였다. 좋은 경영자란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에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좋은 경영자'라는 말 자체가 낯설게 들렸다.

한국에서 경영자란 어떤 존재인가? 일행들은 "돈을 많이 벌 고자 하는 사람" "극단적으로 노동자가 아무리 힘들어도 자기만 돈을 많이 벌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 답했고,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내 머릿속에는 자동완성으로 '노동자 착취를 통해 이윤을 추구하고, 자본을 증식시키는 사람'이 떠올랐다. 자본가의 이윤은 착취에서 나온다는 생각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으니 '투쟁의 대상'으로 생각할 수밖에.

"일본 사람들은 경영자와 노동자 보수의 차이가 큰 것을 기피한다. 일본 사람들의 사회적 정의는 경영자가 돈을 너무 많이 받아 노동자와 간극이 크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영자에 대한 시선과 다를 수 있다. 노조에서 중요한 것은 경영자다. 경영자 연구가 필요하다."

어려운 숙제를 받아들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일본 도쿄 야경
▲ 일본 도쿄 야경
ⓒ 박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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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은 굉장한 것

정치발전소가 주관한 일본정치기행에는 국회의원실 보좌관, 기초의회 의원, 기자, 정당원, 노동조합 활동가, 정치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함께했다. 일정 초반 맛있다고 허겁지겁 먹은 라멘이 체해 위통으로 고생한 내게 최고의 약은 '괜찮냐'는 동료들의 걱정이었다(진짜 약도 공수해줬다, 약은 약사에게). 일본의 노조, 정당 관계자들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함께한 사람들에게도 많이 배웠다. 기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자기 자리에서 충실히 살고 있는 사람들이 빛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일본정치기행을 권하는 내게 많은 이들이 물었다. "일본에서 배울 점이 대체 뭐예요?" 대체로 '대체'에 강세를 두고 말한다. 

일본에는 새롭게 뜨는 정당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전투적 노동조합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좋아하는 인기 정치인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것이 대안'이라고 소개할 만한 정책을 들은 바도 없고,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얻어온 것도 아니다.

시노다 교수가 내 준 숙제뿐만 아니라 수많은 숙제를 짊어지고 왔다는 게 더 정확하다. 애초에 정답을 찾으러 간 것이 아니다. 일본은 일본의 고민이 있고, 우리는 우리의 고민이 있다. 그럼에도 '노동 있는 민주주의'가 왜 필요한지 알려면 일본에 다녀오라고 말하고 싶다.

비록 노조에 대한 부정적 여론도 있고, 젊은 세대들이 노조를 꺼리는 분위기도 있지만 노조는 일본의 정치·경제·사회에서 하나의 제도화된 실체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일본에서는 노동이 존중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일본 도쿄 라멘, 맛있게 먹고 체하다
▲ 일본 도쿄 라멘, 맛있게 먹고 체하다
ⓒ 박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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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에 대한 시노다 교수의 설명으로 '일본정치기행' 연재를 마치고자 한다.

"단결권은 대단한 것이다. 만약 노동조합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면, 모여서 강하게 단결하면 위험한 사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회주의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일본에서는 '반사회적 집단'(야쿠자의 공식적 표현)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노동조합이라면 괜찮다는 것이다. 단체교섭권도 대단한데, 만약 100명의 사람들이 집에 찾아와 협상하자고 하면 어떻게 할까? 경찰을 부를 것이다. 그런데 노동조합이 하면 괜찮다. 또, 경영자가 맘에 안 든다고 데모를 한다. 노동을 제공하고 돈을 받기로 한 계약인데 경영자가 맘에 안 들어서 데모를 한다?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이다. 노동조합 덕분에 뭘 해도 다 괜찮다. 노동조합은 굉장한 것이다."


그렇다. 노동조합은 굉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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