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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다음 주 유치원 개학을 무기한 연기하겠다고 한다. 말이 '개학 연기'이지 '집단 휴원'이다.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적폐몰이·독선적인 행정에 대해 2019학년도 1학기 개학 일정을 무기한 연기하는 준법 투쟁을 전개한다"면서 "끊임없이 대화를 요구했지만 교육부는 이를 거부하고 사립유치원 마녀사냥을 멈추지 않고 있다"고 정부 태도를 비난했다.

앞서 지난 25일에는 집회를 열고 '유아교육법', '사립학교법', '학교급식법개정안' 같은 유치원 3법과 유아교육법 시행령 개정을 주장했다.

그간 한유총은 사립유치원 사유재산 인정, 사립유치원 원아 무상교육과 교사 처우 개선, 누리과정 폐지를 요구해왔다. 정작 자기 허물을 고쳐야 할 이들이 오히려 남을 고치겠다고 벼르고 으른다.

'집단휴업'은 불법이며, 이미 정한 입학일을 바꾸는 것도 유치원운영위원회에 자문을 거쳐야 하는데 이러한 절차를 지켰는지도 찬찬히 따져볼 일이다. 한유총 주장대로라면 최소 1800여 곳 유치원은 우리 아이들을 위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스스로 '돈놀이'하는 곳이라고 말한 셈이다. 돈보다 아이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눈곱만큼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럴 수 없다.

한 학부모를 만났다. "우리 집엔 유치원 다니는 아이가 없어서 하는 말인데" 하고는 "이쪽 저쪽 편들지 않고 하겠다"며 하는 말이 이렇다.

"솔직히 탈탈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립유치원이 어디 있겠나. 그런데 조그만 흠을 들춰내서 사립유치원을 싸잡아 몽땅 비리집단으로 몰아가는 교육부나 시·도교육청도 그렇고, 아이 볼모 삼고 제 주장만 일삼는 사립유치원도 그렇고 적당히들 타협해야 하지 않겠나. 무엇보다 개학이 코앞인데 아이들을 맡기지 못해 발 동동 구르는 학부모 마음에 비할까."

얼추 맞는 말 같은데 뒷맛은 영 개운치 않다. 더욱 놀라운 건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거의 다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는 것이다. 이러면 속으로 웃는 이 과연 누구일까.

사립유치원이 유아교육에 기여한 공이 크다는 점을 결코 부정하지 않는다. 지금처럼 많은 사립유치원은 그간 '절박한 필요'들이 만나 만들어낸 것임도 우리는 잘 안다.

하지만 유아교육 공공성 강화는 시대 요구요, 시민 대다수가 지지하는 일이다.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길이다. 한유총이 더는 역사의 저류를 거스르지 않기를 바란다.

아울러 정부든 사립유치원이든 싸잡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도 말하고 싶다. 남의 일로 보는 순간 세상은 한 뼘이라도 더 나쁜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한유총이 저들 마음대로 하는 데에는 적극이든 소극이든 남일처럼 보아온 사람들의 말 없는 동의와 구경꾼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좀 성가시더라도 꼼꼼하게 따져보고 한 걸음이라도 더 나은 쪽으로 가자고 목소리를 보태주면 좋겠다. 한나 아렌트가 나치 전범 아이히만에게서 '악의 평범성'을 발견했듯, 생각하지 않는다면 우리 누구든 '불의'와 '적폐'를 편드는 조력자이다. 이는 역사가 주는 교훈이다.

태그:#한유총, #개학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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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과 글쓰기 교육, 어린이문학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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