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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14000원
ⓒ 쌤앤파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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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그랬다.
 

이 책을 읽다가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내 삶이 좀 더 수월하지 않았을 텐데, 스트레스로 아프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나 후회는 없다. 이 책을 읽지 않았어도 꼭 필요할 때 '아니'라고 말하는 교사의 길을 걸어왔으니.

교단 경력 4년이 되던 해에 전근 간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교감 선생님은 내 인사기록카드를 보고는 한 마디 상의도 없이 6학년 담임과 연구부장을 맡겼다. 나는 전임지에서 6학년 담임과 경리 업무, 과학, 비품, 수학 경시대회, 합창부 등 업무에 지쳐 도망치듯 타군으로 전출했다. 당시 경리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는 말로 다 할 수 없다. 주말은 물론 방학을 제대로 쉰 적이 드물었던 한 해였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는 경리 장부만 정리하는 허수아비였다. 지출결의서를 만들거나 영수증을 챙겨 앞뒤가 정확한 금전출납부를 만드는 영혼 없는 하수인이었다. 교사로서 자부심을 느끼기도 전에 교단의 어두운 단면을 일찍 맛본 슬픈 교사였다. 

그러나 그렇게 도망친 다음 학교에서 연구부장을 맡았다. 연구부장 업무가 뭔지도 모른 상태에서 위에서 시킨 일이니 그저 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부당하다고 여기지는 않았지만 조금 억울했다. 실무 경험이 전혀 없는 데다가 연구시범학교 수업 공개나 연구학교 근무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일감의 특성을 모르니 그 일을 맡을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지 못해 1년 내내 마음고생을 했다. 그러다 보니 연구부장 업무는 교감 선생님이 시키는 일만 수행하는 수동적인 내 모습을 견디기 어려웠다. 

40명에 가까운 학급 학생 수에 6학년 담임을 맡아 전 과목을 다 가르치고, 매달 학력평가를 치러야 하니 어깨가 무거웠다. 그나마 6학년을 3년째하고 있었던 터라 학생 지도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교장 선생님은 매달 학력평가 결과표를 가지고 학년이 다른 모든 반에 서열을 매겼다. 시험도 가르친 내용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지 출제 회사에서 만든 시험지를 구매해 치르다 보니? 어떤 문제가 나올지 모른다. 그러니 시험에 나올만한 문제를 잘 찍어서 가르치는 교사가 우수한 교사로 평가받는 웃지 못할 풍경이 그려졌다.

교육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가 없었다. 과학 실험을 열심히 하면 오히려 학력평가 점수가 낮으니 과학 지식마저도 달달 외우게 했다.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직접 다뤄야 하는 음악 수업조차 시험 성적으로 평가받는 교육 현장의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제자들에게 미안하다.

체육마저도 시험점수로 학력을 재던 시절, 담임의 능력이나 학생지도의 성과는 매달 치러지는 학력평가로 귀결되었다. 평가 때마다 담임을 교체하는 것은 기본이고 학생들을 분산시키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비교와 경쟁으로 어린 가슴들이 멍들었다.

나는 그렇게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하는 비겁한 선생의 길을 걸었다. 그런 현실을 견딜 수 없어서 한 번은 항의했던 적이 있었다. 시험 날짜와 범위가 공개되었는데, 교감 선생님이 갑자기 날짜를 앞당겨 시험을 본다는 것이었다. 당시 '배우지도 않은 내용으로 평가를 한다는 게 말이 되냐'고 말하자, 교감 선생님은 "학교를 그만두라"고 했다. 사표를 쓸 수 없다는 나와 지시를 따르지 않은 잘못을 물어 사표를 받겠다는 교감 선생님과의 언쟁은 교장 선생님의 개입으로 일단락되었다. 학생들은 제대로 배운 다음에 시험을 치르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갑자기 예고된 시험 일정을 마음대로 바꾸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그 일 이후 나는 옮겨가는 학교마다 6학년을 5년씩 맡았다. '조용한 사람이 입바른 소리 한다'며 특정 교직단체 교사로 오해를 받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교장 선생님들도 불의한 일에는 반드시 토를 다는 문제교사(?)로 여겼던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서야 한 학교에서 6학년만 4~5년을 맡길 리가 없다. 교단 38년 동안 6학년 담임 경력은 22년, 1학년 담임 경력은 8년했다. 덕분에 기억에 남는 제자를 많이 길렀지만!

교육은 '인품'(人品)을 지닌 사람을 기르는 것
 

나의 교육철학은 언제나 '착한 학생'이었다.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능력이 출중하다 하더라도 착하지 않으면 그 모든 것이 거품이라고 생각해서다. 착함은 '인품'의 기본이다. '인간다운 품성을 가진 사람'이 되라며 학생들에게 사람에게 물건 '품'(品) 자를 쓰는 한자의 깊은 뜻을 늘 가르치곤 했다. '품'자에는 입 구(口) 자가 3개 사용된다. 첫 번째는 정직, 두 번째는 꼭 필요한 말, 세 번째는 친절한 말을 뜻한다.

책의 제목대로 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누구한테나 착한 사람으로 살면 일찍 지쳐 떨어진다. 말하지 않아서 억울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자기를 지키는 최소한의 '가시'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제목을 바꾸고 싶다. '착하게, 단호하되 친절하게'로!

교직은 어느 공무원 직군보다 정신적·육체적으로 아픈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착하게 살라고 가르치고 몸으로 실천해야 하는 교직의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교사들은 참고 견디는 일이 너무나 많다. 우리 사회에서 교권 붕괴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학생·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 사례는 늘고 있다. 참으로 서글퍼진다. 어디 그것뿐인가? 때로는 학교 내의 불합리하거나 부조리한 일도 잘 참아야 한다. 사람 사는 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학교라고 예외 대상이 아니다.

2월 28일 자로 마라톤 경주를 완주하고 내려서며 후배 교사들에게 해주고 싶은 단 한마디는 '착하게, 단호하되 친절하게'다. 부디 아프지 말고 행복하시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교닷컴에도 실립니다.


태그:#인품, #교육, #착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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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매에는 사랑이 없다> <아이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라> <쉽게 살까 오래 살까>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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