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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위한 의미있는 '무엇'이 필요한가요? 계간지 <딴짓>의 발행인인 프로딴짓러가 소소하고 쓸데없는 딴짓의 세계를 보여드립니다. "쫄지 말고 딴짓해!" 밥벌이에 지친 당신을 응원합니다.[편집자말]
'너 어디까지 가난해 봤어?'

술자리에서 '가난 배틀'이 붙었다. 연봉 배틀도 아니오, 개그 배틀도 아니오, 가난 배틀이라니. 명칭 그대로 누가누가 가난한가를 겨루는 게임이었다. 장난으로 한 질문이었는데 술자리에 모인 자들의 사연이 너무 구구절절해서 눈물 없이는 들을 수가 없었다.

'이긴 사람 술값 빼주기'라는 포상이 내걸리자 경쟁심은 두둑하고 지갑은 얇은 젊은이들이 열을 올리며 제 가난을 선전했다. 대북방송 저리 가라 수준이었다. 모인 사람은 대부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삼 분의 일은 가난한 예술가, 삼 분의 일은 활동가, 남은 삼 분의 일은 회사원이지만 그나마도 사회적기업이라 너도 나도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중 일등을 한 친구의 웃픈 에피소드가 생각이 난다. 그는 연극배우였다. 연극 연습은 계속해야 하고, 연습 때문에 고정적인 아르바이트도 할 수 없었던 친구는 한 달에 30만 원으로 살아야 했단다. 월말이면 라면 살 돈이 없어, 한 번은 찬장에 남은 국수를 육수도 없이 삶아 먹었다고 했다. 찬장에 있던 명절에 받은 참치나 스팸 따위는 오래 전에 털어먹은 후였다. 통장 잔고가 바닥을 칠까 말까 으르렁거리면 나도 괜히 찬장을 열어본다. 육수 없는 국수는 무슨 맛일까?
 
 정부지원금 받기, 쉽지 않다.
 정부지원금 받기, 쉽지 않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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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들이 기대는 곳이 정부지원사업이다. 자리를 잡지 못한 예술가, 활동가, 프리랜서, 사회적기업과 스타트업 종사자들, 가끔은 대학생들까지. 몇 가지의 아르바이트로 쌀독을 채우고, 정부지원사업이나 펀딩으로 하고 싶은 일을 벌인다. 하고 싶은 일은 대개 돈이 되지 않는 일인데다, 미래까지 불투명한 일인 것이 태반이라 지원 형태가 아니면 시작할 자금을 구할 방도가 없다.

그래서 다들 정부지원사업에 눈독을 들인다. 서울문화재단 사이트를 확인하며 아침을 열었다가, 경기문화재단 지원사업을 보며 점심을 먹고, 민간지원사업을 뒤적거리며 지하철을 탄다. 한 해 농사를 결정지을 지원사업은 대개 연초에 모집하기 마련이라 1월부터 3월이 중요하다.

연초에는 굵직굵직한(금액이 크다는 이야기다) 사업들을 모집한다. 연극, 음악, 공연,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지원사업이 있다. 할 만한 지원사업을 잘 골라야 한다. 이미 지원을 받은 곳에선 다시 받기가 어렵고, 다른 프로그램이라도 같은 재단에서 하는 지원사업이면 중복수혜도 어렵다.

나이도 중요하다. 39세가 넘어가면 웬만한 지원사업의 자격요건이 되지 않아 비빌 언덕도 없어진다. 지역일수록 거주자 우선인 프로그램이 많다. 주민등록상 소재지에 따라 노려볼 만한 지원사업도 다르다. 사업자가 없어도 되는 간단한 동아리 지원사업부터 법인이어야만 지원가능한 큰 사업도 있다. 집안에서 끌어다 쓸 돈은커녕 먹을 쌀도 없는 이들에게, 정부지원사업은 절박한 동아줄이자 달달한 꿀이다.

그러나 꿀 발린 동아줄이라도 잘 쓰면 약이고 못 쓰면 독이 된다. 지원사업이 됐다고 마냥 좋은 것도, 밀어주는 사람이 생겼다고 힘을 발휘하는 것도 아니다.
 
 서울문화재단 열린광장
 서울문화재단 열린광장
ⓒ 서울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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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남의 돈 받는 게 쉬운 줄 아니

남의 돈은 공짜로 쓰는 게 아니라는 건 만국 공통 진리다. 정부지원금이라고 예외일까. 지원사업은 금액이 클수록 갖추어야 할 서류도 복잡하다. 지원서나 프로그램 계획서, 예산계획서도 양식이 복잡하고 채워야 할 내용도 많다. 세금을 쓰는 일이니 응당 그래야만 할 일이다.

허나,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증명해야 할 서류가 한 가득이다. 프로그램의 중간과 끝마다 보고해야 할 리포트가 만만치 않다. 열 명 이하의 작은 모임을 해도 서류로 시작해 서류로 끝나야 한다. 예산을 쓰다 보면 항목별로 비는 곳도, 넘치는 곳도 생기기 마련이다. 필요 없는 항목은 안 쓰면 아까우니 더 쓰게 되고, 필요한 항목은 자비로 메꾸게 되기도 한다. 지원사업을 쓰려면 서류에 통달해야 한다. 

게다가 정부지원사업에는 인건비가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지역활성화를 위한 축제를 기획하면, 기획자들의 인건비는 지원금에 포함되지 않는다. 예비사회적기업에 다니면서 축제를 기획할 때, 인건비 책정을 허락해주지 않는 지원사업을 많이 발견했다. 

제 인건비는 제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정부지원금으로 기획해 보고 싶었던 일들을 기획하고, 해 보고 싶었던 연극을 올리는 이들이 준비 과정에서도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이유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직접 기획해서 하니 임금은 줄 수 없다는 걸까. 좋은 취지의 일이라서, 네가 하고 싶어서 하니까라는 이유로 인건비 책정이 허락되지 않는 것은 열정페이의 다른 이름이다. 이 부분은 천천히 변화하고 있다. 정부지원사업이라도 인건비 책정을 허락하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

둘, 자립의 꿈은 멀다

정부지원사업을 연이어 계속 받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자립의 의지를 잃어갈 수도 있다. 사회에 의미 있는 프로젝트지만, 자금이 부족해 시작이 어려운 사람에게 정부지원사업은 마중물이다.

허나, 연이어 다른 지원사업의 도움을 받으면, 경제적 자립 방법보다 정부지원사업을 받게 되는 노하우를 쌓게 된다. 하나의 프로젝트로 같은 수혜를 받기 어려운 경우에는 행사 이름을 바꾸거나 다른 이의 명의로 지원하기도 한다.

정부지원사업으로 시작하는 것은 좋지만, 언젠간 누군가의 뒷받침 없이도 혼자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 절박하게 수익성을 추구해야만 한다. 계속 누군가의 후원으로만 유지되는 사업이 건강하게 지속되기란 요원한 일이다. 

최근 정부지원사업은 스타트업처럼 이익을 목표로 하는 비즈니스를 후원하는 것뿐 아니라 개인이나 동아리의 취미생활 등을 지원하는 것까지 확대되고 있다. 규모도 천차만별이다. 개인적으로 정부의 역할이 커지는 것이 반갑다. 지원사업의 틈새틈새가 채워지는 것이 보기 좋다.

나는 출판사의 문화공간을 유지하기 위해 이번에 소규모의 정부지원사업에 응모했다. 출판사는 2년 전에 한 번 서울문화재단의 취미지원프로젝트로 인쇄비의 일부를 지원받은 바 있었다. 덕분에 위기를 곧잘 넘기며 4년 넘게 계간지는 유지하고 있다.

정부지원사업, 잘 쓰면 약이고 못 쓰면 독이다. 먹는 사람이 찬 거 더운 거 가릴 처지가 아니라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가난배틀에서 일등을 한 배우가 먹었던 찬장 속 육수 없는 국수. 맛은 그렇다 쳐도 유통기한은 괜찮았을까. 독이었을까. 약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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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밥 벌어 먹고 사는 프리랜서 작가 딴짓매거진 발행인

라이프+ 여행·문화 담당 기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선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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