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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유당공원 전경
 광양 유당공원 전경
ⓒ 이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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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여 년이라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광양 '유당공원'에는 수십 년 동안 친일파들의 비석이 다른 비석과 함께 나란히 세워져 있다. 친일 행적을 새긴 안내판이 비석 앞에 있지만 친일 행위에 대해 간단히 한 줄로만 언급돼 있을 뿐 다른 비석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인다.

유당공원 친일파 비석들은 3.1운동이 돌아올 때마다 철거 논란에 휩싸였지만, 3.1절이 지나면 논란은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올해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공론화를 통해 광양시민들의 의견을 듣고 철거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기에 친일파들의 비석을 다른 비석과 따로 관리, 단죄비(斷罪碑)도 설치해 교육의 장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1547년 조성, 천연기념물 간직한 유당공원

광양시 광양읍 목성리 5일 시장 옆에는 유서 깊은 공원이 하나 있다. 연못과 수양버들을 뜻하는 '유당공원'이 바로 그곳이다. 광양시에 따르면 유당공원은 1547년 광양현감 박세후가 만들었으며 광양읍성(光陽邑城)을 쌓고, 멀리 바다에서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나무를 심었던 곳이다.

현재 성(城)은 없어졌으나 팽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등 당시에 자라던 나무들이 남아 있다. 그중의 하나가 이팝나무다. 이팝나무는 당시 성이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한 군사보안림을 목적으로 심었으나, 태풍으로 풍수해가 큰 지역이므로 바람의 피해를 막는 방풍림의 역할도 했다고 한다.

유당공원의 이팝나무는 조상들의 군사적 문화 및 바닷바람을 막는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문화적 자료다. 또한 이팝나무 치고는 매우 크고 오래된 나무라 그 생물학적 보존가치를 인정받아 1971년 9월 13일 천연기념물 제235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광양 유당공원 내 세워진 비군. 여기에 친일파 비석 2기가 있다.
 광양 유당공원 내 세워진 비군. 여기에 친일파 비석 2기가 있다.
ⓒ 이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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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당공원에는 6.25 참전용사의 혼을 기리기 위한 충혼탑이 있으며, 매년 현충일에 기념식도 열리고 있다. 또한 이곳에는 백성을 사랑했다며 세운 '애민비'들이 있다.

비석들을 살펴보면 광양현감과 전라관찰사의 선정을 기리는 비 12기, 광양 지역 역사적 사건을 기록한 비 2기와 정려비 2기 등 총 16기가 있다. 유당공원에는 원래 비석이 없었으나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 광양 지역에 남아 있는 비석들을 이전한 것이다.
 
친일파 이근호와 조예석의 비석
 친일파 이근호와 조예석의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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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오적 이근택의 형 이근호, 한일병합 공로 조예석 비석까지

문제는 이들 비석 중 친일파를 기리는 공적비들이 다른 비석들과 함께 나란히 세워져 있다는 점이다. 유당공원 내 비군(碑群)에는 친일파 이근호와 조예석의 비석이 있는데, 이근호와 조예석은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물사전에 수록된 인물들이다.

1902년 전라남도 관찰사에 임명된 이근호는 을사오적 가운데 한 사람인 이근택의 형이다. 유당공원 내 이근호의 비는 '청덕애민비'(淸德愛民碑 : 청렴결백한 애민 정신을 기리기 위한 비석)로 비석 앞 안내문에는 '일제 강점기 법무대신으로 한일합병조약에 앞장선 공로로 남작작위를 받았으며, 을사오적 이근택의 형'이라고만 표기돼 있다.

군수 조예석의 비는 '휼민선정비'(恤民善政碑 : 청렴결백하고 백성을 사랑하며 베푼 선정을 기리기 위한 비석)로 안내문에는 '일제강점기 판사를 지냈으며, 1912년 한일합병에 관계한 조선 관리들에게 수여한 한일병합기념장을 수여 받음'이라는 설명이 새겨져 있다.

하지만 이런 안내문은 비석 아래를 내려다 봐야만 보일 정도로 소극적으로 설치한데다 내용 역시 간단한 친일 행위 설명으로 끝나고 만다. 안내문 글자도 일부 빛이 바래 글자 색깔이 지워져 있다.
 
이근호 비석 아래 있는 안내문. ‘일제 강점기 법무대신으로 한일합병조약에 앞장선 공로로 남작작위를 받았으며, 을사오적 이근택의 형’이라고 적혀있다.
 이근호 비석 아래 있는 안내문. ‘일제 강점기 법무대신으로 한일합병조약에 앞장선 공로로 남작작위를 받았으며, 을사오적 이근택의 형’이라고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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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석 비석 아래 있는 안내문. ‘일제강점기 판사를 지냈으며, 1912년 한일합병에 관계한 조선 관리들에게 수여한 한일병합기념장을 수여 받음’이라고 설명해놓았다.
 조예석 비석 아래 있는 안내문. ‘일제강점기 판사를 지냈으며, 1912년 한일합병에 관계한 조선 관리들에게 수여한 한일병합기념장을 수여 받음’이라고 설명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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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 철거 여부를 공론화에 부쳐야"

유당공원에 세워진 친일파들의 비석 존치가 결정된 것은 10년 전이다. 2008년 12월 광양시는 비지정문화재 가운데 보존과 학술적 가치가 높은 관내 향토문화유산을 새롭게 지정하기 위해 '문화유산보호관리위원회'를 열었다.

회의 끝에 유당공원 내 16개 비군 중 1960년대 이후 세워진 3기를 제외한 13기를 역사적·학술적 보존가치가 높다고 판단,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여기에 친일파들의 비석도 포함됐다.

최상종 광양시 학예연구사는 "당시 위원들 사이에서 친일파들의 비석 철거 여부를 놓고 논의가 오갔다"라면서 "아픈 역사도 우리의 역사이고, 철거보다는 이를 교육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에 존치를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최상종 학예연구사는 "2010년 1월 친일파 비석 앞에 친일 행적을 담은 안내문을 설치한 후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라며 "철거 여부에 대해 지자체가 직접적으로 입장을 밝힌다는 것은 조심스럽다"라고 밝혔다.

한편,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지역에서는 '친일파 비석을 그대로 존치해야 하는지 공론화를 통해 시민들의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강필성 광양교육희망연대 대표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전국 곳곳에서 친일 잔재 청산에 앞장서고 있는데, 광양 한가운데 유서 깊은 공원에 친일파 비석이 버젓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과연 올바른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강필성 대표는 "친일파들의 비석을 다른 비석과 함께 세워놓는 바람에 뚜렷이 구분되지도 않아 시민들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라면서 "친일 행적을 담은 안내문도 비석 아래 있어 잘 보이지도 않고 한 문장으로 간단히 설명한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그는 "광양시는 친일파 비석 철거 여부를 공론화에 부쳐 시민들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라면서 "존치해야 한다면 최소한 다른 비석들과 따로 보관하고, 친일 행적을 소상히 기술해야 한다, 또한 단죄비도 설치해 역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태그:#광양유당공원, #친일파 비석, #이근호, #조예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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