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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쥐에 쑨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동시에 '칠리 페퍼'라는 웹사이트도 운영하고 있다. 2010년 중국의 폭스콘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낮은 임금과 살인적인 노동강도를 견디다 못해 자살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 제조 공장에서 일하기 위해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오는 저임금 여성 노동자들이 자기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노동법, 생리휴가, 임신 중절 등의 정보를 제공한다.

일본의 토시키 아베는 물리학을 전공한 후 도쿄대에서 강의를 한다. 그의 또 다른 직업은 일본의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 기업 '리디 러버'의 대표다. 그는 '무관심을 극복하자'라는 모토로 일본 내 음식물 낭비와 노인 빈곤 같은 사회문제들을 서로 연결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

이들은 '활동가'일까? '연구자'일까? 정답은 없다. 이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사회 운동을 하는 활동가인 동시에, 공부와 실험을 통한 연구를 하는 연구자이기도 하다. 여러 분야에 걸쳐 있는 자신의 정체성을 두고 오랜 시간 고민한 것은 이들뿐만은 아니다.

오랜 시간 현장에서 활동한 운동가는 학계에서 연구를 한 이들 못지않게 자신의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고, 연구를 현장에 접목하고자 하는 학자들도 연구실을 나와 사회에 뛰어들고 있었다. 액티비스트 리서처는 이런 연구자 + 활동가에게 새로이 붙여진 이름이다. 서울시 청년허브는 올해 이 '액티비스트 리서처'를 발굴하고 성장시키는 '아시아 액티비스트 리서처 펠로우십'을 진행한다.

14일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서 '아시아의 청년들, 도시 삶의 연구자가 되다' 국제 콘퍼런스가 열렸다. 앞으로 있을 펠로우십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함께 고민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기획 당시 150명 규모의 신청자를 예상했지만, 강연 직전 사전 신청만 300명이 훌쩍 넘었다. 당일에는 자리가 없어 밖에서 스크린을 보고 강연 음성을 듣는 이들도 있었다.

이날 행사에는 청년허브 안연정 센터장, 랩 2050 이원재 대표,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김현미 교수가 참석해 아시아 액티비스트 리서처 펠로우십에 대해 소개했다.
 
 노동자 권리 증진을 위한 웹사이트에 대해 설명하는 쥐에 쑨
 노동자 권리 증진을 위한 웹사이트에 대해 설명하는 쥐에 쑨
ⓒ 이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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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 공유하는 아시아... 새로운 질서 필요해

랩2050의 이원재 대표는 '한국의 가부장적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월급 노동자로 살며 돈을 벌고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었다면, 갈수록 심각해지는 고용난과 경제 불안정으로 이런 가부장적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는 의미다.

공고했던 질서가 무너질 때는 거대한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몰려 살고 있고, 필연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도시'라는 공동체 안에서 이 변화가 어떤 식으로 나타나고 있고, 또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김현미 교수는 이러한 흐름이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아시아 국가는 식민지 이후 급격한 성장을 위해 가부장적 질서를 이용했다. 군부 출신의 리더가 국가의 아버지 역할을 하며 국민들에게 번영을 약속하면, 구성원들은 국가의 발전을 위해 성실하게 노동력을 바쳤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극대화되면서 더 이상 국가가 노력에 대한 보상을 제공하지 못하게 됐고, 아시아의 시민들은 외부로 내몰려진 '난민의 정서'를 경험하고 있다.

물론 아시아에 닥친 혼란이 반드시 부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만은 아니다. 경제 침체, 독재 정치, 청년 실업을 겪는 아시아의 청년들은 다른 종류의 사회를 모색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홍콩의 우산 혁명, 대만의 해바라기 혁명, 일본의 반핵운동, 한국 촛불 혁명과 미투 혁명이 그 예다. 불평등과 불공정을 막아내려는 집단적이고 능동적인 형태의 사회운동이 발생하고 있고, 이에 따라 시민사회에도 새로운 역할이 요구되고 있다는 것이 김현미 교수의 설명이다. 
 
 아시아 청년들, 도시 삶의 연구자가 되다 행사 포스터
 아시아 청년들, 도시 삶의 연구자가 되다 행사 포스터
ⓒ 서울시청년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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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와 현장은 상호보완적 관계

콘퍼런스에서는 먼저 연구 활동가라는 길을 걷고 있는 이들이 등장해 이야기를 나눴다. 로자문드 모스(캐나다), 쥐에 쑨(홍콩), 케빈 양(대만), 토시키 아베(일본), 백희원(한국) 등 각국에서 온 참여자들이 무대에 올랐다.

하프 더 스카이 공공교육의 대표 쥐에 쑨은 사회 운동에 있어서 연구가 반드시 서로 연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장에서의 경험이 연구를 통해 검증되어야 이후에도 계속 실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에서도 활동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론적으로는 결과가 제대로 나왔지만 실제로 운동 현장에 적용했을 때는 실패한 적도 있었다.

대만 5% 디자인액션 대표 케빈 양 또한 각 분야의 전문성이 사회운동에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만에서는 병원에 가는 것이 오히려 병을 유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미신이 있었고, 이 때문에 무료 유방암 검진 프로그램을 제공해도 참여를 꺼렸다.

그는 검진용 버스를 카페처럼 디자인하고, 시민들에게 음료를 제공하며 '티파티'처럼 친숙하고 즐거운 이미지를 만들었다. 보건 의료와 디자인이라는 분야는 언뜻 서로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전문가들이 만나 시너지를 내고 시민들의 건강 증진이라는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시민의 참여는 연구-활동에 필수적

연구-활동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은 시민들의 참여다. ESC(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는 2017년 김승섭 고려대 교수가 진행한 '트랜스젠더 건강연구' 프로젝트의 투자를 맡았다.

한국에서 과학기술분야의 투자는 주로 경제적 이익에 직결되는 분야에만 몰린다. 사회적, 학문적 가치가 있지만 수익이 나기 어려운 연구에는 투자가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김찬현 사무국장은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과학 연구를 고민했고, 다음 스토리 펀딩을 통해 시민들에게 연구비 1600여만 원을 투자받는데 성공했다.

김찬현 대표는 'ESC에서 정의하는 과학인이 과학에 전문성을 가진 연구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과학 교사, 과학에 관심 있는 일반인도 모두 넓은 의미에서 과학인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소수 전문가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과학이 많은 대중에게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사회의 영역으로 더 나와야 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2017년 시민의 펀딩으로 진행된 트랜스젠더 건강 연구
 2017년 시민의 펀딩으로 진행된 트랜스젠더 건강 연구
ⓒ 다음스토리펀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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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과학자이자 활동가인 토시키 아베 역시 활동가들과 관계를 맺는 '파트너'들의 존재를 강조했다.

그는 구독 중심의 파트너십을 운영하고 있다. 파트너들은 리디러버의 활동 내용을 담은 저널을 받아보고, 활동 비용을 후원하거나 오프라인 활동에 참여하기도 한다. 전업 활동가나 연구자가 아니더라도, 후원이나 부분적 참여를 통해 활동-연구에 기여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대중 참여는 수익성과는 거리가 먼 연구들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연구가 연구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확장하는 데 필수적이다.

의지만으로 어려워... "역량이 있어야"

연구-활동은 의지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김찬현 ESC 사무국장은 "냉정하게 말해서 역량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의지뿐 아니라 실제로 운동을 끌어나가고 성과를 낼 역량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그는 "만약 내가 당장 역량이 충분하지 않다면 주변의 동료를 찾아서 같이 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후 토론에 참여한 문화연구자 천주희씨 또한 "기본적으로 연구가 어떻게 이뤄지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개인의 관찰을 넘어 연구로 나아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학사-석사-박사와 같은 학교 중심의 교육과정에 들어가 있지 않은 이들이 연구를 하기 힘든 까닭도 여기에 있다. 연구 프로세스를 배우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연구를 검토해 줄 동료나 선배가 없기 때문이다. 천주희씨는 앞으로 있을 '아시아 액티비스트 리서처 펠로우십'에 필요한 것도 이런 것들이라고 설명했다. 독립적인 연구자나 활동가들이 서로 비평할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회혁신 분야의 연구-활동가를 기르는 선행 프로그램들도 존재한다. 로자문드 모스는 캐나다에서 사회혁신 레지던시 펠로우십에 참여했다. 쥐에 쑨은 이화여대에서 제공하는 EGEP라는 프로그램을 수료했다. EGEP(Ewha Global Empowerment Program)는 아시아-아프리카 지역 비정부 공익부문 여성인재의 역량 강화를 위해 2주간 합숙하며 토론하고 공부하는 프로그램이다.

아시아 액티비스트 리서처 펠로우십을 준비하는 청년허브도 <청년, 자기 삶의 연구자가 되다>와 같은 연구사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2014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는 이 연구사업에서는 성소수자, 취업 준비생 여성 등 당사자성을 가진 청년들이 자기 삶에서 느끼는 문제의식과 대안을 연구하고 논문을 만들어냈다.

이번 펠로우십은 아시아로 범위를 넓혀, 다음 세대가 살아갈 도시에서의 삶의 방식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발굴하는 게 목적이다. 이들이 연구-활동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2-4주의 합숙 방식으로 교육이 제공된다. 7월부터 공모를 시작해 10월에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이다.

청년허브 안연정 센터장은 "사회혁신 분야에서 일하는 다양한 전문가들이 연락을 주셨으면 좋겠다."며 기대와 바람을 드러냈다. 앞으로 진행될 펠로우십에 대한 정보는 청년허브 홈페이지와 www.ayarf.net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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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과 언론을 공부하는 여성 청년. 페미니즘, 노동, 철거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읽고 쓰는 삶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