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간으로 25일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막을 내렸다. 피터 패럴리 감독의 <그린 북>이 '최우수 작품상'의 영예를 받으며 이변의 기록을 썼다. 유력한 후보로 손꼽히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는 '최우수 외국어 작품상'을 비롯해 3관왕을 차지했다. 국내에서 '퀸 신드롬'을 불러온 <보헤미안 랩소디>는 남우주연상 등 4관왕에 올랐다. 

이번 시상식의 키워드로 <그린 북>의 작품상 수상과 각색상을 수상한 스파이크 리 감독의 <블랙클랜스맨>, 그리고 <로마>와 이를 배급한 넷플릭스(Netflix)를 선정해봤다. 키워드를 통해 2019년 오스카의 선택이 향후 영화계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질문을 던져본다. 


<그린 북>과 <블랙클랜스맨>
 
 제91회 아카데미 작품상의 영예를 안은 <그린 북>은 흑인 피아니스트와 백인 운전수의 우정을 다룬 영화로, 이 날 돈 셜리(좌) 역을 맡은 마허샬라 알리는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제91회 아카데미 작품상의 영예를 안은 <그린 북>은 흑인 피아니스트와 백인 운전수의 우정을 다룬 영화로, 이 날 돈 셜리(좌) 역을 맡은 마허샬라 알리는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 CGV 아트하우스

 
적어도 인종 문제에서 아카데미는 최근 잡음이 불거지는 그래미 시상식보단 진보적인 편이다. 만약 아카데미가 인종차별적이고 유색 인종의 문법을 무시했다면 2017년 수상을 번복하는 해프닝을 거치면서 <라라랜드> 대신 <문라이트>를 선택하진 않았을 것이다. 

<스파이더맨 : 뉴 유니버스>가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을 수상했고 1984년 이후 최초의 연출 계열 흑인 수상자가 등장했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라미 말렉은 이집트계 배우로, 이민자 출신 게이 보컬 프레디 머큐리를 연기해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조연상 부문을 석권한 마허샬라 알리, 레지나 킹 모두 흑인 배우다. 

이날 각색상을 받은 <블랙클랜스맨> 감독 스파이크 리는 '2020년 대선에서 사람과 증오 사이 올바른 선택을 하라'며 할리우드의 '안티 도널드 트럼프' 흐름과 '인종차별 철폐' 정신을 강조했다. 역설적이게도 그 '사람다움'에서 <그린 북>이 <블랙클랜스맨>을 이겼다.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색상을 수상한 영화 <블랙클랜스맨>은 1970년대 악명 높은 백인우월단체 KKK를 수사하는 흑인 형사의 이야기를 다뤘다.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색상을 수상한 영화 <블랙클랜스맨>은 1970년대 악명 높은 백인우월단체 KKK를 수사하는 흑인 형사의 이야기를 다뤘다. ⓒ 해리슨앤컴퍼니

 
<그린 북>이 비판받는 건 이 영화가 1960년대 블랙 커뮤니티의 비참한 삶과 현재 진행형의 인종차별 문제를 '대화와 포용'이라는 낭만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다. 영화 속 돈 셜리와 토니 발레롱가의 돈독한 관계는 발레롱가 측의 시선일 뿐이었고 현실은 그리 편안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처절한 현실을 환상으로 덮었다는 의견도 있다. 

그럼에도 <블랙클랜스맨> 대신 <그린 북>에 영예를 내린 것이 나쁜 결정이라 보이진 않는다. <블랙클랜스맨>이 현실 고발과 투쟁을 말한다면 <그린 북>은 화합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분열과 대립의 트럼프 행정부 아래에서 '다 같이 힘을 모으고 이해와 존중으로 맞서자'는 '은근한 저항'을 택한 것이다. 백인의 시선, 백인의 터치라는 비판보다 그들이 강조한 메시지 자체에 더 감명받은 결과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로마>, 넷플릭스 영화가 작품상을 받는다면?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유력한 작품상 후보였던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는 외국어 작품상 포함 3관왕에 만족했다.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유력한 작품상 후보였던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는 외국어 작품상 포함 3관왕에 만족했다. ⓒ 넷플릭스 <로마> 캡쳐

 
아카데미가 그래미보다 보수적인 지점도 있다.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는 감독상과 외국어 작품상에 만족해야 했다. 아예 넷플릭스를 금지해버린 칸영화제보다는 좋은 결정이지만, <그린 북> 대신 <로마>가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해야 했다는 의견도 많다. 사실 이 논쟁은 인종적 문제보단 플랫폼의 문제, 그중에서도 넷플릭스와 극장가의 문제에 가깝다. 

여러가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과연 넷플릭스는 전통 영화로 인정될 수 있을까? 음악과 영화의 스트리밍은 다르다. 제한된 공간에 모인 관객들의 암묵적 동의 아래 정면의 스크린에 오롯이 집중하는 '경험'. 이 '경험'이 지하철 스마트폰으로도, 태블릿 화면으로도, 거실의 TV로도 동일하게 제공될 수 있는 차원의 것인가?

'시네마의 역사와 인터넷의 역사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라는 티에리 프레모 칸영화제 집행위원장의 토로를 생각해본다. 그런데 <로마>는 기존 시네마의 제도 하에서는 탄생하지도 못했을 영화다. <로마>의 시나리오를 본 할리우드 제작사들은 영화화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세계적인 감독 코언 형제가 영화 <카우보이의 노래>를 넷플릭스로 공개한 것 역시 기존 제작사와 다른 넷플릭스의 전폭적 지원이 바탕이 됐다. 
 
 2018년 넷플릭스는 82편의 영화를 제작하며 가장 많은 영화를 제작하는 제작사가 됐다. 사진은 넷플릭스를 통해 올해 공개된 산드라 블록 주연의 <버드 박스>

2018년 넷플릭스는 82편의 영화를 제작하며 가장 많은 영화를 제작하는 제작사가 됐다. 사진은 넷플릭스를 통해 올해 공개된 산드라 블록 주연의 <버드 박스> ⓒ 넷플릭스 '버드 박스' 캡쳐

 
'손 안의 엔터테인먼트' 시장이 일반화되며 매년 극장을 찾는 관객은 세계적으로 감소 추세다. 영화를 위해 인터넷에 개봉한 영화 시상을 금지하는 영화제와, 영화 제작을 위해 인터넷을 찾는 창작자들의 대립이 묘한 광경을 자아낸다. 

넷플릭스는 자본의 힘으로 창작의 자유를 허하는 플랫폼이다. 독특한 시나리오와 다양한 촬영 기법,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다양한 작품이 넷플릭스의 생태계 안에서 자유로이 거닐 수 있다. 지난해 디즈니가 10편의 영화를 제작할 때 넷플릭스는 82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아카데미는 넷플릭스를 부정하진 않았으나 최고의 영예를 선사하는 데는 머뭇거린 듯하다.

공교롭게도 아카데미는 이번 시상식에서 촬영, 편집, 분장 단편 부문 시상을 광고 송출 도중 진행하기로 했다가 감독들의 큰 반대에 부딪쳤다. 또한 '인기 영화 부문'을 신설하려다 마찬가지로 비판을 받았다. 상업적인 플랫폼에는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가장 상업적인 광고와 상업성에 권위를 부여하려 한 시도가 그야말로 아이러니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도헌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브런치(https://brunch.co.kr/@zenerkrepresent/318)에도 실렸습니다.
아카데미 아카데미시상식 오스카 영화 시상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중음악평론가 - 대중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 (2013-2021) - 대중음악웹진 이즘(IZM) 편집장 (2019-2021) 메일 : zener1218@gmail.com 더 많은 글 : brunch.co.kr/@zenerkrepresent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