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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낮은 까미노] 산티아고 데 까미노 프랑스길 32일의 기록 Day - 3

19.02.23 17:05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산티아고 ⓒ 김기열
 

세 번째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페르돈의 언덕을 넘어 팔에 바를 약을 공수하는 특급 임무를 수행하는 날이다.

페르돈 언덕의 난이도에 대해 익히 들은 말이 있어 든든히 준비를 하고, 등산화 끈을 꽉 매이고 출발한다. 마침 산중턱을 따라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아침햇살이 기분좋게 내려쬐어 잠시 모자를 벗고 온몸으로 받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상쾌한 공기와 풀향기를 코를 싱그럽게 하고, 내려다보이는 푸른 들판과 함께 걷다보니 어느새 어렵지 않게 페르돈 언덕에 도착한다.

이렇게 금방 걸릴지는 몰랐다.
아침 컨디션이 좋아 그렇게 느껴진지는 몰라도 어 벌써? 이렇게 쉽게? 라는 생각이 들정도 였으니 페르돈의 언덕을 넘으며 누군가를 용서하고.. 어머니 아버지가 생각나고.. 이런 글만 봐왔던 나로썬 당황스러웠다.

아마 전 마을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아침 일찍 출발을 했던게 큰 도움이 되었음에 조심스럽게 예상해본다.

페르돈 언덕에는 많은 순례자들이 짐을 벗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나바라 까미노 친구의 협회에서 만든 철조각품들과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하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땀을 식히기도 한다.
페르돈 철조각품의 맞은 편에는 순례자들을 돌보던 옛 병원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가 있었는데, 여기에 "별들이 바람에 따라 흐르는 길을 지나" 라는 아주 아름다운 문장이 있었다.

꽤 오랜 시간을 이 글 앞에 서서 문장을 되뇌이다가, 약소하지만 덧붙여 시 하나를 쓴다.


별들이 바람에 따라 흐르는 길을 지나,
꽃씨가 바람에 따라 나르는 길을 지나

보잘 것 없는 두 다리를 뭍에 내립니다.
찰랑이는 물병은 흘려넘쳐 고된 등을 적시고
아지랑이 피어 흙먼지를 잠재우지만

이 마음의 혼란은 누가 보살펴주실지
높고도 찬란한 하늘빛에 물어보지만

당신은 뿌리 깊은 나무만을 눈앞에 내세웁니다.

이것이 답이라면
한낱 가느다란 몸의 보리가 되어
고개 숙이니,

잠시 부는 바람에 흔들리게 하지 않게 해주옵시고
바람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소서

바람이 데려다줄 곳을
바람이 알게 할 것을

굳게 믿게 하소서


어떤 大시인이 쓴 글귀에 내가 붙여 쓴거라면 아마 평생의 놀림감이 되겠지만, 이 시를 다시 꺼내 읽다보니 그때 기억들이 하나둘 나타나 즐거워 첨부한다.

페르돈 언덕을 지나 까미노는 다시 내리막길에 접어든다.
푸엔떼 라 레이나까지는 우떼르가, 무르사발, 오바노스 총 3개의 마을을 지나게 되는데 각기 다른 모습을 띄고 있어 재미있다. 우떼르가는 마을 입구까지의 평원과 하얀 성모마리아상이 인상적이며 무르사발은 잘 닦인 타일과 12세기의 신비한 팔각형 성당이 있다는데, 아쉽게도 기억에 남아있지 않아 나는 지나친 것 같다.
오바노스에는 고풍스러운 세례자 요한 성당이 있다. 내부구경을 하고 싶었지만 문이 닫겨 있었다.
그렇게 어렵지 않게 푸엔떼 라 레이나까지 도착한다. 이쯤되니 순례자의 요령이 생기기 시작한다. 사실 순례길을 걸으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잘못된 습관들을 지속적으로 고쳐가게 된다. 배낭의 위치, 배낭의 매는 법, 발 딛는 방법, 허리세우기 등등. 이런 것들은 걸어보면서 차근차근 맞춰가지 않고선 모른다. 글로 설명해도 사람마다의 신체조건, 셋팅이 다르니 일단 걸어보며 점차 수정해나가는게 맞다.

나같은 경우에도 수십번 배낭의 높이와 스틱의 유무, 등산화 매는 법, 걷는 법 등을 체크해갔다.

정도(正道)는 없다. 각자 다른 길이 있을 뿐이다.

내가 제일 먼저 깨닫게 된 건 물의 공급인데, 나같은 경우엔 그냥 걸으면서 보이는 바에 들어가서 수돗물을 부탁했다. 마을사람들도 보통 수돗물을 마신다. 어린 아이에게도 물을 부탁하면 수돗물을 준다. 단, 마실때 약간 물맛이 찝찝한 경우엔 버리고 다른 물을 마셨다.
물병의 관리도 중요하다. 첫날 물통 분실 사건 이후로, 플라스틱 물병을 2~3개 가지고 다니며 물을 번갈아 담아 다녔는데 사흘마다 물병 교체를 권장한다. 플라스틱 물병은 일단 개봉하고 나면 안에 세균이 번식하기 아주 좋은 환경이 만들어져서, 한 물병을 계속 사용하는 건 위험하다.

가장 좋은 건 역시 개인 물통을 휴대할 줄 아는 자연도 생각하는 순례자다.

바나 레스토랑에서 물을 부탁하면 운이 좋은 경우엔 뚜껑이 있는 물병을 주는데 호리병이나 유리병에 담아 나오면 높은 확률로 수돗물이다. 거리낌 없이 마시면 된다. 고급 레스토랑일 경우엔 추가요금을 받는 경우도 있다.

순례후기로 갈수록 동네 펌프에서도 먹고 급할 땐 POTABL 표지판이 없는 수돗물 (절대 따라하지 마시오!) 등 아무거나 주워 마셨는데 물로 탈이 난 적은 없었다.

푸엔따 라 레이나는 여왕의 다리라는 뜻이며, 순례자를 위해 지어진 크고 아름다운 다리 주위로 큰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골목길 구석구석과 검은 야고보 조각상으로 유명한 성당을 구경한 뒤에 드디어 약국을 찾았다.
약국으로 들어가서 내 팔을 보여주니 약국에 있던 모든 사람이 한 마디를 외쳤다.

맘미미아!

서로 웅성거리며 해결책을 찾기 위해 각종 연고를 다 꺼내보다가 알로에젤을 하나 쥐어주며 약사가 진지하게 조언해준다.

이대로는 순례를 포기해야할수도 있다며, 병원을 찾아가거나 며칠 휴식을 취하며 차도를 보란다. 이 약국에서 지금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건 알로에젤정도고, 시간이 날때마다 발라주란다. 나는 일정때문에 휴식은 어렵고 계속 걸어야한다고 말하니, 굉장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코스를 조정해보고 쉬엄쉬엄 다니란다.

난 무척 겁먹은 상태에서 약국을 나왔다.

약국에서 알로우젤을 바르고 나오니 일단은 무척 시원하고 살 것 같아서 알베르게 보단 다음 마을로 향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용기는 있는데 바보같은 행동이였다.

꿈에 나올 것만 같은 웅장하고 기풍있는 다리를 건너고, 시라우끼로 향하면서 다시 탈 것 같은 온 몸의 고통을 느낀다. 우선 심한 팔부분을 손수건으로 감아 최대한 햇빛에 노출되지 않게 하였다.
이상하게 페르돈 - 푸엔따 라 레이나까지의 까미노는 별로 힘들지 않았는데, 거리로 치면 삼분의 일도 되지 않으면서 시라우끼까지의 구간은 몸이 천근만근이였다.
지친 몸을 겨우겨우 이끌고 시라우끼로 가면서 문득 하늘을 보았는데 아, 무엇이 문제였는지 알아차렸다.

바로 해였다. 지금의 순례는 난 계속 아침 8시이후에 출발하여 3~4시까지도 까미노 순례길에 서있는 일정을 유지했는데 스페인에서 해가 가장 뜨거운 시간이 1~3시이니, 스스로를 고행의 길로 내몰았던 것이다.

순례방식의 수정이 필요했다.

투덜투덜거리며 머릿속엔 온갖 악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해는 지독하게 날 내려쬐었다.

5시가 넘어 시라우끼에 도착했다.
시라우끼의 알베르게는 젊은 여성과, 아버지로 보이는 중년의 남성이 함께 운영하는 곳이였다.

도장이 큰 하트로 되어있어 꽤나 young한 느낌이 있고, 남쪽으로 향해있는 큰 베란다가 인상적이다.

여기서 난 아주 웃긴 에피소드를 겪어 여러분에게 이야기해주려고 한다. 남주인은 아주 유쾌하고 장난기가 많으신 분이다. 물병에 물을 넣어달라고 부탁했더니 갑자기 새로운 물병을 가져오곤 1유로를 달란다. 난 내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는지 알고 1유로를 지불하고 물병을 받았는데, 옆의 여주인이 나에게 윙크를 하며 지나간다. 앞의 남주인도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더니 나중에 저 여주인에게 가보란다.

혼란스러워 우선 샤워를 하고 여주인에게 가보니 크게 웃더니, 저 사람이 장난기가 많은 사람이야, 미안해, 장난값으로 1유로를 줄게! 하곤 1유로를 쥐어주는게 아닌가!

난 새로운 플라스틱 물병을 (생수로 가득 찬) 공짜로 받게 되버린 것이다.

더 재미있는 건 다음이다, 난 일찍 저녁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는데 남주인의 또 다른 장난을 보았다. 한 외국인 친구에게, 여보게 당신 저녁식사 지불 안했는 것 같은데 다시 가서 확인하는게 어떤가하는게 아닌가. 그 남자는 아니야 난 지불했어 하곤 대답하는데 남주인의 독촉에 어쩔 수 없이 돌아가서 확인하러 갔다.

그리고 그 모든 광경을 보고 있는 나에게 남주인은 아까 본 그 의미심장한 미소를 하곤, 윙크를 하였다.

매우 유쾌한 상황이였다. 아마 그 외국인 친구도 장난값으로 1유로를 받았을 것이다.

숙소값에 높은 수준의 장난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하루에도 몇명의 순례자에게 이런 joke를 칠지, 유쾌하게 사는 이들이 부럽고 또 사랑스러웠다.

이런 작은 소동(?)이 지나가고, 난 알베르게 앞에 있는 성당에 가 걸터앉았다. 한 스페인 남성이 어디서 났는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지금도 그 저녁의 시라우끼 마을 공기가 느껴진다. 사랑스러운 사람들과, 작지만 무언가 설명못할 에너지로 가득 차있던 동네.

해가 서서히 넘어가고, 새들도 저녁준비를 하는지 기분 좋은 소리를 내었다.그렇게 한동안 성당 앞에 앉아서 기타소리와 새소리를 들었다. 거리마다 석양이 물들어 가는 진풍경을 보면서.

꽤나 낭만적인 하루의 마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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