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쇼핑 천국, 안도라

고태규의 유럽 자동차 집시여행
19.02.23 11:13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27일째: 3월 31일 (일) 바람은 잔잔하고 맑은 날씨다
 
 
쇼핑 천국, 안도라
 
아침에 싸그리다 파밀리아성당으로 미사를 드리러 갔다. 아내는 피곤하다고 아침도 안 먹고 취침중이다. 본당 내부 관람은 10시경인데도 벌써 어제만큼 줄이 늘어져 있다. 본당 예배당과는 달리, 다행히 신자들이 미사 보는 예배당은 출입이 자유로웠다. 지하에 있는 이 예배당은 본당과는 분리되어 있어서, 관광객들이 복작거리는 본당으로는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나는 시간이 늦어 예배가 거의 끝날 때쯤 입장했다. 뜻밖에도 한국인 신부님이 주임 신부님과 함께 미사를 집전하고 있었다. 한국인 성지순례 단체 관광객도 미사에 참석하고 있었다.
 
화려한 외부 장식과는 달리 소박한 내부 장식에 놀랐다. 거의 장식이 없는 작은 도시의 작은 교회 같았다. 이렇게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외관이 화려한 성당에 이렇게 소박하고 수수한 예배당이 있다니. 그리고 가우디가 천재는 천재라는 생각과 함께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 장식이 화려했으면 차분하게 기도하러 온 신자들이 얼마나 정신이 어지러웠을까. 아무튼 내가 미사를 보고 싶었던 성당 중 한 곳에서 미사를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파리 노트르담성당, 로마 바티칸 성베드로대성당, 바르셀로나 싸그리다 파밀리아성당, 산티아고대성당, 런던 세인트폴대성당. 이제 교회는 하도 많이 봐서 지겨울 정도다. 앞으로는 명품(?)만 골라서 볼 계획이다.
 
성당을 나와 부근에 있는 피카소 미술관으로 갔다. 청년기의 작품이 주로 전시되어 있었다. 우리는 피카소가 추상화만 그린 걸로 알고 있는데, 여기에는 초기에 그린 구상화도 꽤나 많았다. 피카소 작품에는 '피카소니까' 봐주는 작품이 많다. 워낙 다작인 탓이다. 평생 그린 작품이 3천점이 넘으니까. 유럽에 있는 미술관에 가보면, 피카소 그림 한두 점 안 걸린 곳이 없다. 내 눈으로 볼 때는 작품이 우수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샤갈이나 칸딘스키처럼 마음이 끌리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내 마음에 드는 작품은 서너 점에 불과했다.
 
아까 파밀리아성당에서 만난 한국 단체관광객들을 다시 만났다. 그런데 참담한 광경을 보고 말았다. 그들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선물가게에 들러, 선물만 사고서는 미술관에는 입장도 안하고 돌아가는 것이었다. 나하고 같이 입장했는데, 내가 짐 보관소에 가방 맡기고 가이드북을 사려고 서점에 들렀더니, 가이드가 자기 팀한테 벌써 나가자고 한다. 그렇게 하려면 아예 미술관에 오지를 말고, 다른 곳을 좀 더 충실하게 보든지. 관광 전공자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내 아내만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날 처음 알았다. 언제쯤 우리 관광객들도 일본 할머니 여행자들처럼 한 손에 가이드북을 들고 그림 하나하나를 감상하면서 비평도 하면서, 여행을 즐기는 그런 날이 올까.

지하철역에서 메트로 직원과 다투었다. 민박집에서 시내로 올 때, 표를 출입기계에 집어넣었는데도 열리지 않아, 다시 표를 샀다. 그걸 반환해달라고 요구했는데, 영어를 전혀 알아듣지도 못하고, 안 된다고 거절했다. 그래서 내가 그 직원에게 표 1개 값을 반환해달라고 따진 것이다. 지하철 한번 승차에 6천원이라니. 한번 승차에 2유로(3천원)이고, 두 개를 샀으니까 4유로다. 엄청 비싼 메트로를 탄 것이다.

메트로역에서 내려 민박집을 찾지 못해 한참이나 헤맸다. 할 수 없이 바르셀로나 FC축구팀 홈구장인 FCB구장으로 가서 아는 길로 찾아갔다. 민박집이 그 구장 옆에 있었다는 것은 기억하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벌써 치매기가 있는지, 길이 전혀 기억이 안 난다. 큰일이다. 아내가 민박집 앞에 짐을 꺼내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쉽지만 바르셀로나를 떠나 안도라로 이동했다. 바르셀로나는 일주일쯤 머물러도 사랑스러운 도시다. FCB구장에 가서, 메시의 축구 솜씨도 한번 보고. 장기 여행은 이게 약점이다. 한 도시에 오래 머물기가 힘들다. 전체 일전이 잡혀 있기 때문에 한 도시에 더 머물면, 어디에선가는 일정을 줄여야 한다. 은퇴 후에는 정말 시간에 쫓기지 않고, RV차량으로 한량처럼 서너서나 돌아다닐 예정이다. 이번에 자동차로 100일 동안 서유럽을 경험해보니까, 동유럽과 그리스 터키 포함해서 1년이면 가능할 거 같다.
 
안도라로 가는 길 왼쪽으로 멀리 기괴한 바위산이 하나 있고, 그 중턱에 수도원이 보인다. 몬세라뜨수도원이다. 내가 '여행과 문명' 강의시간에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성가가 바로 이 수도원의 소년합창단이 부른 노래다. 이곳은 까딸루냐 사람들의 성지로 인식되어 있지만, 우리는 몬세라뜨를 포기하기로 했다. 시간도 맞지 않았고, 몬세라뜨 수도원의 명물, 검은 성모상과 검은 아기 예수상은 이미 산티아고성당과 파밀리아성당에서도 보았기 때문에 꼭 봐야 하는 건 아니었다.
 
바르셀로나로부터 북쪽으로 안도라는 19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사실 안도라는 우리 이동 경로에서는 벗어나 있으나, 관광산업으로 먹고사는 나라의 한 사례로 중요한 나라이기 때문에 방문하기로 했다. 거리는 그리 멀지 않으나, 전체 주행의 반 이상이 산길이라 길이 꼬불꼬불하여, 2시간 반이나 걸렸다. 가는 도중에 주유소 옆 휴게소에서 설산을 보면서, 크로아상 2개로 점심을 해결했다. 안도라는 신기하게도 폭이 1킬로도(?) 안 되는 비좁은 협곡 사이에 도시가 발달되어 있다. 도시가 거의 쇼핑센터나 호텔, 카페, 레스토랑, 주유소 등 서비스산업으로 먹고 살고 있다.
 
안도라는 면세이기 때문에 물건 가격이 싼 곳으로 인식되어 있어서, 인근 국가들로부터 쇼핑객이 많이 몰리는 곳이다. 국경 통과도 자유롭다. 디젤이 1.17유로다. 유럽에서 가장 비싼 곳이 2.0유로이니까 엄청 싼 셈이다. 아내가 직전 주유소에서 조금만 넣을 걸 하고 후회한다. 주차장에 파킹을 하고 한 시간 정도 시내를 둘러보았다. 나머지 물건은 그리 싼 편이 아니다. 아내가 말보루 담배 가격을 기준으로 내린 결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근 국가에서 쇼핑객들이 많이 몰린다. 내가 간 날도 돌아올 때, 교통체증이 일어날 정도였다. 물론 시내는 온 종일 교통체증이 엄청나다. 관광산업만으로 한 국가가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은 큰 복이고 행운이다.
 
자고 가려고 호텔을 몇 군데 알아보았으나 가격이 너무 비싸서 포기했다. 나는 여기서 자면서 밤 문화를 좀 둘러보려고 했으나, 아내가 비싸다고 반대한다. 역시 여행은 혼자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또 든다. 관광 전공자가 하룻밤 머물면서 이 나라 관광산업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반드시 둘러보아야 사정을 아내는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우기고 싶지만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내가 양보했다.
 
가는 길 오는 길이 눈길 가는 곳마다 절경이다. 정말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과 마을이 산자락 여기저기에 널려 있다. 눈에 덮인 피레네산맥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인다. 아내가 '저 푸른 초원 위에----'를 개사해서 노래를 부른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소똥을 치웁시다."
 
프랑스 뻬르피그낭으로 향하다가 너무 피곤하여, 산속 마을 길가에 있는 벨라비스타호텔에 투숙했다. 60유로에 아침 포함, 주차장 무료. 인터넷은 안 된다. 아주 싼 편이다. 외관은 별로였으나 새로 리모델링을 했는지, 침대 욕실 등 내부 시설이 매우 깨끗하다. 베란다 경치도 절경이다. 피레네산맥의 눈 덮인 산이 눈앞에 보이고, 시냇물이 흐르는 앞마을이 길 너머로 보인다. 역시 이 마을도 교회가 제일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사발면과 삶은 계란으로 저녁식사를 마쳤다. 이제 사발면에 중독된 거 같다. 밥하고 김치만 있으면 금상첨화인데....
 
*주행 및 숙박 내역
 
주행 경로: C16/E9-N260
주행코스: 바르셀로나- 안도라-퓌그시르다
주행거리: 200km
주행시간: 3
도로유형: 고속/유료, 국도/무료
숙박(유로): Bellavista(60)
주차장(유로): 지상/무료
아침식사: 포함
인터넷: 불가
 
 

태그:#안도라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