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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기록화(독립기념관)
 3.1운동 기록화(독립기념관)
ⓒ 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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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의 가장 큰 한 봉우리인 '3.1 운동 100주년'을 맞는다. 온 나라가 하나 된 기쁨과 축하의 마음이다. 거듭 옷깃과 마음을 여미고, 3.1 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새롭게 부각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1919년, 우리들 한국민들은 이 땅에서 최초로 주체적 시민이 돼 세계와 만났다. 100년 전 각성된 우리 선조들은 전통 왕조의 백성이나 일본 제국주의의 신민을 넘어 자유와 평등 그리고 주권과 평화를 위해 행동하는 세계시민이었다.

이처럼 스스로 깨우친 한 명 한 명 세계시민으로서의 행동의 거대한 집합이 3.1운동이었다. 그리하여 3.1운동은 다른 여러 곳들과 함께 세계의 한 곳에서 똑같은 인류로서 민주공화와 보편평화의 횃불을 높게 쳐든 숭고한 걸음이었다.

'항일' '민족' '독립' 너머

그동안 3.1운동은 주로 '항일'과 '민족'과 '독립'운동의 관점에서 접근됐다고 볼 수 있다. 관련 연구도 이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사회 전체적인 인식도 마찬가지였다.

3.1 운동은 강조할 필요도 없이 일본 제국주의 식민통치에 저항하는 '항일민족운동'의 성격을 필연적으로 갖는다. 일본의 가공할 침략주의와 참혹한 탄압에 대한 저항의식을 배제한다면 3.1운동을 논의할 수 없다. 

그런데 3.1운동은 비단 여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항일'과 '민족'운동을 안고 넘어 '민주공화' '보편평화' '세계시민'이라는 당당한 인류적 지구적 보편 가치의 실현을 위한 운동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계역사의 흐름과 어깨에 함께 올라선다. 

잠시 3.1운동이 발생했던 당시 세계의 역사적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우선 3.1운동은 개별 사건이 아니라, 1차 대전 직후부터 1920년대 초까지 이어진, 세계를 휩쓴 주권회복운동과 평화운동의 하나로 당당히 위치한다. 1918~1919년은 근대 이후 가장 넓게 열린, 이른바 '세계-가능의 순간'이자 '가능성의 시기'였다.

1918년 대전의 종식 전후 세계 곳곳의 보편시민들은 새로운 자유와 평등의 인간세상을 꿈꿨고, 그 새로운 세계의 실현을 위해 과감하게 돌진하고 행동했다. 이는 아일랜드에서 한반도까지 전 대륙과 온 세계를 넘쳐흘렀다. 한반도는 단연 세계적 분출의 선두이자 소우주의 하나였다. 

1차 대전 이후 실패한 '세계평화'
 
1916년 8월 오스트리아-헝가리와 이탈리아 사이 일어난 도베르도 전투를 묘사한 그림.
 1916년 8월 오스트리아-헝가리와 이탈리아 사이 일어난 도베르도 전투를 묘사한 그림.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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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차 대전 종전 전후의 이 광범한 몸부림들은 완전한 주권의 회복과 실질적 세계평화의 창출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세계적 대가능성에서 세계적 대실패로의 귀결이었다. 그리하여 세계시민들의 세계 곳곳에서의 대분출의 실패는 참혹한 결과로 이어졌다.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는 더 나쁘게 계속됐고 최악의 전체주의와 군국주의 그리고 세계대전이 이어졌다. 한 세대를 더 잔인하고 더 참혹하게 할퀴고 간 전체주의와 2차 대전의 참극을 말한다. 그러나 제국주의-식민주의의 억압과 모순을 극복하고 자유, 독립, 평등, 평화의 가치를 바라는 열망들이 모여 마침내 2차 대전 이후에는 전후 질서라는 새로운 국제협력체계를 만드는 데 일단은 성공했다.

3.1운동 직전 천명된, 세계평화를 향한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호소는, 제도적으로는 실패로 끝난 베르사이유 조약과 국제연맹에서 실현된 것이 아니라 전세계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민주공화운동에 의해 꽃을 피웠다.

민주공화의 물결은 결코 단선적 위계적이지 않았다. 즉 이른바 '세계시공간'의 동시 분출이었다. 유럽은 물론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중동, 중앙아시아가 동시 다발적 움직임을 통해 모두 자기가 선 곳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했던 것이다.

세계시민적 행동으로서의 3.1운동

세계시민적 행동으로서 3.1운동과 1919년의 전세계적 평화운동은 인간 공동체의 본질적인 자기결정권(Self-determination)을 확고하게 증명한다. 제국주의는 식민지배를 문명국이 비문명국을 발전시킨다는 문명화의 임무(mission civilisatrice)라는 개념으로 정당화했다. 16세기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대상으로 시작된 이 문명화 논리의 전통은 자유와 평등을 기초로 성립된 인간 공동체의 본질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인간은 정치적 대화적 존재로서 다른 인간들과 토의하고 논쟁하면서 공동체의 일을 함께 결정해 나간다. 그리스를 이어받은 고대 로마는 정치를 공공의 것(res publica)이라는 이름으로 물려받았다. 이는 현대에도 공화국(republic)이란 명칭으로 살아남아 인간의 참여와 대화 욕구를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공공성으로서의 정치와 정치문제에 대한 참여와 공동결정의 열망은 고대 사회에서도,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에서도, 1919년의 식민지 곳곳에서도, 그리고 오늘날의 세계에서도 변함없이 인간을 정치적 시민적 존재로 살아가게 하는 특징이다. 인간의 본질적 속성인 정치와 주권, 자유를 회복하려는 열망이 1919년의 세계 민주공화운동을 만들어낸 근본 동력이었다.

따라서 3.1운동은 세계적 보편흐름 속에 위치한 세계시민들의 행동이었다. 시간적으로 3.1운동은 '이전 한국 100년'의 사상적 정치적 흐름이 응축돼 터져 나온 귀결이었으며, '이후 한국 100년'의 정신과 제도의 뿌리를 이루는 일대 분수령이었다.

3.1운동은 공간적으로는 제1차 세계대전 전후부터 분출한 세계 곳곳의 민주주의 · 공화주의·주권평등·평화운동과 직결돼 발생했다. 이러한 시간과 공간의 교직을 통해 3.1운동은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모순을 제거하고 자유와 평등, 독립과 선린, 민주와 공화, 평화와 공존의 가치를 제기하는, 이후 한국과 세계의 민주공화주의와 국제평화흐름의 한 토대를 제공하는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보다 자유롭고 좀 더 평등한 인간적 세계를 향한 인류의 소망은 오늘날 너무도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가치가 아닌 물질이, 인간성(humanity)이 아닌 상품이 인간의 삶과 인류공동체의 향방을 좌우하는 심각한 상황이 세게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물질주의, 환경파괴, 장벽쌓기, 인종주의, 각종 차별의 전지구적 범람을 맞아 세계는 인간 공동체의 근본 가치와 윤리를 복원해야 할 중대 과제를 안고 있다. 이 어려운 문제들에 둘러싸인 지금의 세계현실이 바로 우리가 출발해야 할 새 시작점인 것이다.

우리는 오늘의 세계를 성찰하고 미래를 모색하기 위해 100년 전 한반도의 세계시민들의 외침과 모습을 다시 불러내려 한다. 100년 전의 '3.1'을 세계시민들의 보편적 민주공화와 평화운동으로 해석하는 것에서 오늘의 한반도와 세계를 위한 변혁의 실마리를 찾고자 하는 것이다.

지배와 억압이 아닌 평화와 공존을 추구했던 '3.1'은 제국주의·식민주의와 오리엔탈리즘·옥시덴탈리즘의 이원론마저 넘어서려 했다. 100년 전의 열망, 100년 전의 행동은 100년 후의 우리를 여전히 숙연하게 한다. 

3.1운동이 지향했던 골간
 
광화문 기념비각앞 만세를 외치고 있는 민중들.
 광화문 기념비각앞 만세를 외치고 있는 민중들.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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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지난 100년에는 식민 상태로부터의 주권회복과 정부수립, 산업화, 민주화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들이 존재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때로, 서구와 일본의 제국주의를 통해 이식된 사회진화론, 적자생존론, 승자독식주의 등에 경도됐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100년과 그 이후는 무한경쟁과 우열승패가 아닌 화해와 연대, 화합과 공존, 소통과 합의가 우리 사회와 세계를 이끄는 원리요, 원칙이 돼야 한다.

획일적 기준에의 억압과 복종이 아니라 자유와 인간존엄의 가치가 존중받아야 한다는 바람은 민주와 공화의 3.1운동이 지향했던 골간이었다. 1919년 이 땅의 사람들이 세계시민으로서 외쳤던 것은 민족적 우월감도, 배타적 민족주의도 아닌 다양한 세계 사람들, 민족들, 시민들, 즉 모든 자유인들이 함께 공존하는 보편평화였다.

자유로운 시민들 각자의 의견이 공론장에서 함께 존중받을 때 인간사회에서 개인, 가족, 민족, 전통은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타자, 이웃, 세계와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기반이 구축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항일·독립·민족의 좁은 자아를 넘어, 널리 세계의 보편을 품는 일대 시각 전환을 이뤄야 한다. 3.1운동은 한반도에 국한된 항일·독립·민족운동을 넘어, 세계보편적 지평을 갖는 민주공화·세계시민·보편평화의 한 봉우리로 조망될 필요성이 있다.

그리하여 100년 동안 반쪽에 매몰돼 온 기존의 잠자는 3.1운동 담론을 오늘에 되살려, 세계가 함께 나아가야 할 인류 보편의 가치와 지향으로 새롭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이는 '민족주의 3.1'을 넘어 '보편주의 3.1'을 다시 살려내는 일이다. 이는 우리 스스로를 좁은 테두리에 가둬온 '옛 3.1'을 넘을 '새 3.1 패러다임'이 필요함을, 그리고 '옛 3.1'을 버리고 '새 3.1'을 세워야 함을 의미한다.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의미한 3.1운동의 정신

이와 같은 '3.1'에 대한 재인식은 실천적 관점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침략적 제국주의와 배타적 민족주의를 모두 넘어서려 했던 3.1운동의 정신과 유산은 오늘날의 동아시아와 세계에 여전히 큰 울림을 갖는다.

더 나아가 우리가 처한 내외적 여건을 볼 때 3.1운동의 정신은 절실한 의미를 갖는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지금 모든 인간의 동등한 자유와 평화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한국민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내부 대립, 남북대치, 역내 갈등, 전쟁위기를 극복하여 세계의 보편평화에 기여해야 하는 세기적 소명과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한반도는 아직도 세계평화보다는 세계갈등에 기여하고 있다는 냉철한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3.1' 정신에 대한 재인식을 재차 강조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3.1'은 민주공화, 세계시민, 보편평화가 유래했고, 또다시 발원할 대해(大海)로 존재한다. 3.1운동의 기억이 민족주의라는 좁은 틀을 벗어난 세계의 보편 속에서 이해될 때, 현재의 우리 역시 더 넓은 미래를 상상하고 세계와 만나고, 또 이끄는 역동성을 얻게 될 것이다.

그래서 3.1운동을 한국에 갇혀진 사건이 아니라, 세계보편적 의미를 지니는 민주공화와 세계평화운동의 한 범형으로 조명할 필요가 있다. 현대 한국 정신의 뿌리인 '3.1'에 대한 새 시각을 열지 못한다면, 빈부격차, 이념갈등, 남북대치, 인간차별을 뛰어넘을 보편한국, 인간한국의 건설은 오랫동안 지난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박명림 '김대중도서관' 관장 겸 인간평화와 치유연구센터 센터장.
 박명림 "김대중도서관" 관장 겸 인간평화와 치유연구센터 센터장.
ⓒ 김대중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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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 3.1운동을 새롭게 바라보는 학술회의, 오는 25~26일

오는 25일, 26일 이틀간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미래융합연구원 인간평화와 치유연구센터가 주최하는 <3.1 운동 100주년 기념 특별 국제학술회의 - '민주공화 100년, 세계시민 100년 : 보편평화를 향하여'>가 열린다(장소 : JW 메리어트 호텔 서울).

필립 페팃(프린스턴 대학교), 슬라보예 지젝(류블라냐 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위르겐 몰트만(튀빙겐 대학교), 볼프강 호이어(베를린 자유대학교) 등 세계 정상급 석학과 중견학자 13명이 참여하는 이번 특별 학술대회는 5개의 주제발표 세션과 1개의 특별 세션으로 구성된다.


 

  
3.1 운동 100주년 기념 특별 국제학술회의 '민주공화 100년, 세계시민 100년 : 보편평화를 향하여'에 참석하는 석학들. 왼쪽부터 필립 페팃(프린스턴 대학교), 슬라보예 지젝(류블라냐 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위르겐 몰트만(튀빙겐 대학교), 볼프강 호이어(베를린 자유대학교).
 3.1 운동 100주년 기념 특별 국제학술회의 "민주공화 100년, 세계시민 100년 : 보편평화를 향하여"에 참석하는 석학들. 왼쪽부터 필립 페팃(프린스턴 대학교), 슬라보예 지젝(류블라냐 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위르겐 몰트만(튀빙겐 대학교), 볼프강 호이어(베를린 자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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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박명림씨는 연세대학교 교수로 현 김대중도서관장, 인간평화와 치유연구센터 소장입니다.


태그:#3.1운동, #김대중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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