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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현행 최대 3개월에서 최대 6개월로 연장하는 방안에 합의한 19일 서울 경사노위에서 이철수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합의내용을 발표하고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왼쪽 두번째부터 이재갑 고용노동부장관,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 이 위원장,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2019.2.19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현행 최대 3개월에서 최대 6개월로 연장하는 방안에 합의한 19일 서울 경사노위에서 이철수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합의내용을 발표하고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왼쪽 두번째부터 이재갑 고용노동부장관,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 이 위원장,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2019.2.19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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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청와대는 김의겸 대변인 이름으로 논평을 하나 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아래 경사노위)가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로 탄생한 지 채 석 달도 되지 않아 중요한 현안이자 난제를 해결한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다."

이 '뜻깊은 일'은 이날 경사노위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가 발표한 탄력근로제 합의안을 말한다.

탄력근로제는 일감이 많을 때는 법정 노동시간을 넘겨도 일감이 적으면 노동시간을 줄여 단위기간 동안 평균 노동시간을 최대 주 52시간(주 40시간 + 연장근로 12시간)에 맞추는 제도다. 노동계와 재계, 정부, 공익위원은 지난해 12월 20일 첫 회의를 연 뒤 모두 8차례 만나 논의를 이어갔지만 좀처럼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날 합의안도 1박 2일 마라톤 협상 끝에 어렵게 나온 결과였다.

합의 내용을 좀더 상세히 들여다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현행법상 2주 이내 또는 3개월 이내였던 탄력근로제의 단위 기간을 최대 6개월로 정하였다. 둘째, 3개월을 초과하여 탄력근로제를 실시할 경우, 근로일간 11시간 연속 휴식시간을 의무화했다. 다만 불가피한 경우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 합의가 있는 경우에는 그렇지 않을 수 있도록 했다.

셋째, 탄력근로제는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합의를 통해 도입하도록 하고, 3개월을 초과할 경우, 근로 시간은 주별로 정하여 최소 2주전에 근로일별 근로시간을 노동자에게 통보하도록 했다. 넷째, 사용자는 임금저하 방지를 위한 보전수당, 할증 등 임금보전방안을 마련하여 이를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신고하고 이행하지 않는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다.

64와 52, 그리고 40

하지만 정부는 정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장 노동시간 국가'라는 불명예를 탈피하려는 것인가? 노동시간을 줄여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것인가?

이번 합의는 이런 의심을 하게 만든다. 정부는 지난해 갑작스레 주 40시간 노동제를 '52시간제'로 탈바꿈시키더니 이제는 탄력근로제 합의로 '주당 최대 52시간'이라는 것조차 무력화하려는 듯하다.

가장 큰 문제는 이번 합의안이 노동자들의 과로사를 유발할 가능성을 키웠다는 점이다. 노동자들은 현 제도에서도 6주 동안 주 64시간(52시간 + 연장시간 12시간) 동안 일할 수 있다. 이는 지금도 과로로 이어지고 있다.

경사노위가 제대로 된 사회적 합의를 하려면, 현재 탄력근로제를 개편하여 주당 최대로 노동할 수 있는 시간을 줄이는 개선안을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이번 개정은 오히려 주당 64시간씩 3개월까지 연달아 일해도 문제가 없게 만들었다. 현재 4주 동안 주당 64시간, 12주 동안 주당 60시간을 초과하여 일한 뒤 발생한 뇌심혈관질환은 과로사로 판단하여 산재로 승인되고 있는데, 정부가 나서서 과로사를 조장하는 길을 열어준 셈이다.
 
민주노총이 20일 오후 광화문 광장 인근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 쟁취, 친재벌 정책 강행 저지를 위한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 19일 경사노위의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 합의는 개악이라며 내달 파업을 예고했다. 2019.2.20
 민주노총이 20일 오후 광화문 광장 인근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 쟁취, 친재벌 정책 강행 저지를 위한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 19일 경사노위의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 합의는 개악이라며 내달 파업을 예고했다. 2019.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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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이라는 상한선도 무력화했다. 주당 노동시간 상한제는 노동자들의 건강과 삶의 질을 위해 주당 최대 노동시간을 정해 놓은 것이다. 즉 평균적으로 52시간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많은 노동을 하더라도 주당 52시간을 넘지 말라는 의미다.

설령 탄력근로제를 시행하더라도 주 40시간 노동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아무리 일이 많더라도 주 52시간을 넘지 말고, 6개월 평균 노동시간이 주당 40시간이어야 한다는 것이 제대로 된 노동시간 '상한제'다. 하지만 이제 '주 52시간'은 최대치가 아니라 평균으로 둔갑했고, '주 64시간'이 상한선이 돼 버렸다.

노동자 사이의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다. 노조가 없는 사업장, 노조가 있더라도 힘이 약한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임금 감소와 장시간 노동에 더욱 노출될 가능성이 커졌다.

건강 문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 이번 합의안은 사측이 노동일 간 11시간 연속 휴식을 보장하고,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임금보전 방안을 신고하도록 했다. 하지만 근로자 대표와 서면합의가 있다면 회피할 수 있다. 노조 조직률이 겨우 10%를 넘는 한국의 현실에서 노동자들이 11시간 연속 휴식을 지켜낼 수 있을까. 어려운 일이다.

사람은 하루 단위로 일하고 휴식을 취한다. 그래야 우리의 몸과 마음을 회복할 수 있다. 수많은 연구가 하루 노동시간이 증가하면 수면의 질이 나빠지고, 집중력이 떨어지며, 산재 사고 위험을 높인다고 밝히고 있다.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쉬어야 한다

지난해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시간센터도 국내 자료를 분석한 결과, 하루 10시간 이상 근무하는 날이 많으면, 주당 노동시간과 관계없이 우울이나 불안증상, 불면증이나 수면장애, 피로 등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을 발표했다. 주당 노동시간 제한 외에도, 하루 노동시간 규제도 필요한 이유다. 실제로 야간 노동이 포함된 경우 하루 노동시간이 8시간을 넘지 않도록 하는 나라도 많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이미 법으로 무제한 장시간 노동이 합법적으로 용인되는 경우가 상당수다. 정부와 경영계는 지속적으로 '노동시간 유연화'를 주장하지만, 특례업종과 감시단속, 농림·어업 등 1차 산업, 사업장 밖 간주노동자,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노동시간과 휴게시간에 대해 전혀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경사노위는 '사회적 합의'를 하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은 극도의 장시간 노동에 내몰려 있고, 거기에 기대어 생활임금을 유지하고 있다. 이 현실을 합의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노동시간 상한제를 무력화시키고, 노동자들을 과로로 몰아가는 합의를, 영세한 사업장의 노동자들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을 사회적 합의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재계를 대변하는 답을 정해 놓고, 이를 동의해 줄 합의의 주체를 모아서 미리 정해 놓은 답을 이끌어내는 것을 사회적 합의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그들은 단지 그들만의 합의를 내놨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시간센터에서 작성하였습니다.


태그:#탄력근로제, #장시간노동, #문재인, #과로사, #경사노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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