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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10대 청소년들이 스위스 제네바 UN을 찾아갔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가 학생들을 초청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학생들이 3년간 설문조사와 토론을 거쳐 작성한 '한국아동보고서'를 보고 충격과 경악을 금치 못했고 그 실상을 학생들에게 직접 듣고 싶어 했다고 한다.

며칠 전 뉴스를 통해 알려졌으나 일회성 뉴스로 소비되고 말았다. 이 사안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자세와 태도가 너무도 안일하다. 기성세대로서 커다란 책임을 통감하고 처절한 반성과 성찰이 전제되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그저 침묵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과연 청소년의 삶에 대한 정상성과 균형감을 유지하고 있는가.

"하루 10시간 학원에 갇혀"라는 보도를 보면 숨이 막힌다. 십 대 청소년들의 절규와 신음을 부모세대가 외면하고 있다. 과연 이것이 정상적인 사회란 말인가. 학교에서도 여덟 시간 가깝게 지내는 청소년들이다. 이들에게 다시 학원에서 그 많은 시간 '공부'만 하라고 하는 것은 '교육'이 아니라 '학대'에 가깝다.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학생들의 주당 평균 학습시간은 OECD 국가 평균의 최대 두 배에 이른다. 성인에겐 하루 8시간 노동을 권장한다. 청소년에겐 하루 16시간 가깝게 '공부'를 강요하는 사회가 과연 건강한 사회일까. 정말 이를 악물고 살인적 경쟁교육에 순응하며 참고 견뎌내면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성'이 길러지는 걸까.

사실 '창의성'은 습득한 지식을 곱씹고 여유롭게 성찰하며 사색하는 과정에서 길러지는 것이다. 빽빽한 일정에 일방적 주입으로 길러지는 역량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창의성을 길러주기 위해서는 '쉼'이 있는 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 아이들은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교육계 모두가 나서야 한다. 청소년에게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자유와 자신의 삶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이 사치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자신의 존재 이유와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고 배려하는 것은 기성세대가 청소년들에게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자 의무에 해당한다.

부모세대가 이 의무를 외면하거나 망각해선 안 된다. 대학 들어갈 때까지만 참으라며 아이들 행복을 유예 시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왜냐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면 그땐 좋은 학점과 스펙을 위해 다시 참아야 한다. 또 남들이 선망하는 직장을 구하기 위해 참아야 한다.

결혼 준비를 위해 참아야 한다. 독신으로 살고자 하는 경우엔 은퇴 이후 시기를 대비하기 위해 참아야 한다. 결혼을 선택했다면 육아 단계에 들어서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다시 참아야 한다. 출산을 선택하지 않더라도 노후 대비를 위해 참아야 한다. 승진하기 위해 참아야 한다. 탈 없이 퇴직하기 위해 참아야 한다. 퇴직 후엔 큰 병 없이 은퇴 이후 시간을 편안히 즐기며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참아야 한다.

이것이 삶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여기, 당장의 행복을 유예 시키는 삶은 죽는 순간까지 진정한 행복을 경험할 수 없게 된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는 묘비명을 남긴 버나드 쇼의 통찰은 남 이야기가 아니다.

저명한 사회학자로 널리 알려진 영국 옥스퍼드대학 사회학과 조너던 거슈니(Jonathan Gershuny) 교수가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교육압박(Educational Pressure)이 청소년 일상에 미치는 영향과 결과"를 언급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한국의 교육열은 냉전 시대 끝없는 '군비 경쟁'을 떠올리게 한다"라고 지적했다. 

"상대가 전함을 만들 것이라는 두려움에 우리도 전함을 만드는 거다. 상대는 우리 전함을 보고 실제로 전함을 만들고, 그러면 우리는 추가로 전함을 만들어야 하고 결국 경쟁이 가속화된다. 한국 부모들은 '다른 집 아이가 사교육으로 더 앞서 나갈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만 뒤처질지 모른다'라고 생각하며 사교육에 돈과 시간을 투자한다. 이를 본 다른 부모들도 교육에 투자하고, 다들 지지 않으려 점점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첫 번째 문제점이다."

다른 문제는 없는지 사회학자의 관점이 궁금했다.

"좀 더 심각한 문제는 그다음에 온다. 서로 경쟁하다 보면 결국 더는 버틸 수 없는 시점이 온다. 상대가 겨우 좀 더 버텨서 이기면 자신을 패배자로 여긴다. 자신이나 부모가 충분한 능력(Merit)을 쌓지 못했다며 원망을 하고 자기에 대한 혐오(Self-Loathing)에 빠질 개연성이 높다. 능력에 대한 판단 기준이 선망하는 대학에 들어갔느냐에 달려있어서 입시에 실패하면 곧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다."

우리 사회의 모습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는 저명한 사회학자의 통찰력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런 현실에서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그는 우리 사회에 다음과 같은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공정한 입시 제도를 만드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소수만이 거머쥘 수 있는 학벌 성취에 모두가 자원을 쏟아붓지 않도록 사회적 보상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 대학 서열의 다각화(Multidimensional Status Ordering)를 비롯해 사회적 성취에 이를 수 있는 학벌 외의 다양한 길을 만들어가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다."


말하자면 다양한 기준과 조건으로 보상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 그것이 꼭 '학벌'이 아니라 다양한 기준으로 보상 체계가 이루어지면 교육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노동'을 통해서도 사회적 보상과 성취에 이를 수 있어야 한다. '창업'을 통해서도 이룰 수 있어야 한다. 개인의 '창의적 역량'으로 성취에 이를 수 있어야 한다.

대학진학을 선택하지 않고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사회적 보상과 성취에 도달할 수 있다면 상당수가 대학진학에 목을 매지 않을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포용적 복지가 구현되는 사회가 되어야만 교육문제도 해결되고 개인의 행복도 실현 가능한 사회가 된다는 말이다.

무상교육, 무상의료, 무상복지, 시간당 최저임금 현실화, 기본소득 보장제 등이 실현되면 모든 문제는 깔끔하게 해결된다. 그래서 우리는 포용적 복지국가를 지향해야 한다. 이쯤 되면 '포퓰리즘'이니 '인기영합주의'니 '대중주의' 등의 용어가 난무할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나서 우리에게 부과된, 교육의 의무, 국방의 의무, 납세의 의무, 선거의 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하고 있는 선량한 국민이자 주권자가 자신이 부리는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머슴들에게 이 정도를 요구하는 것이 과도하거나 불합리한가.

절대 그렇지 않다. 주권자로서 우리 명령을 대신 수행하는 머슴들에게 그 정도를 지시한다고 '포퓰리즘'이라거나 '포퓰리스트'라고 비판하거나 비아냥댄다면 그것은 주권자인 국민을 섬기는 자세가 그릇되었기에 탄핵을 당해야 마땅한 머슴이다. 그야말로 버르장머리 없는 머슴들이 주인을 농락하는 셈이다.

다시 청소년의 일상으로 돌아와 마무리 짓고자 한다. 이제 우리 사회는 청소년의 절규와 신음에 주목해야 한다. 그들의 절규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교육계와 기성세대는 분명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틀에 가둬놓고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한다, 혹은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압박하는 경향이 굉장히 강하기 때문에 이런 인식들을 개선하는 데 이번 UN 발표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라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의 인터뷰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UN 아동권리위원회는 오는 9월 본 회의에 참석할 우리 정부에 권고 사항을 전달하고, 5년 뒤 이행 보고서 제출을 요구한다고 한다. 부끄럽기 짝이 없다. 한참 늦었으나 우리 교육계에 '쉼'이 있는 교육을 제안한다. 살인적 경쟁교육, 이제는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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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 하나고 교사 / 전교조 참교육연구소장 / 청렴사회 민관실무협의회 실무위원 /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 공익신고센터장 / 내부제보실천운동 운영위원 / 국민재산되찾기운동본부 공익내부제보지원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