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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민족 전통복장 해맑은 미소가 인상적인 전통복장의 소수민족 소녀 ⓒ 변재성

하노이에서는 북부 산악 지역의 소수민족 거주 지역을 둘러보는 트레킹 코스가 외국인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부 라오까이성의 해발 1560미터의 고지. 프랑스 식민지시대에 개발된 작은 휴양도시 '사파'(Sapa)에서는 주말마다 주변 산악지역에 흩어져 사는 소수민족들의 주말시장이 열리는 곳으로 특히 유명하다.

소수민족의 생활터전이었던 곳

사파지역은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로 이루어진 인도차이나 반도의 최고봉 판시판(Phan Xi Păng)산이 그 깊고 깊은 산허리에 품어 온 베트남 소수민족의 오랜 생활 터전이었다.

사파에서 남서쪽으로 9킬로미터를 더 가면 해발 3143미터 높이의 판시판산의 정상에도 오를 수 있다. 사파는 판시판산을 정점으로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호앙리엔산맥의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하노이에서 이곳까지는 대략 350킬로미터 노정으로 홍강을 따라 나있은 1번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자동차를 타고 10여 시간을 달리면 중국과의 국경도시 라오까이(Lào Cai)에 도착하고 다시 이곳에서 산악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29킬로미터를 더 가면 사파에 도착할 수 있다. 
 
베트남 소수민족 자오족의 머리장식 은방울 장식이 돋보이는 자오족의 붉은 모자 ⓒ 변재성
  
베트남의 문명과 역사를 잉태하고 키워낸 홍강은 국경도시 라오까이를 지나 그 발원지인 중국 옌안까지 뻗어있다. 라오까지에서는 지난 세기 79년 베중 국경전쟁으로 중단된 국경무역이 93년부터 재개되어 활기를 띄고 있다. 베트남과 중국의 국경무역에 흥미가 있다면 한번쯤 둘러볼 만한 곳이도 하다. 

다수 비엣족을 포함 54개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국가 베트남

베트남이 다양한 소수민족들로 구성된 다민족국가라는 사실은 세상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프랑스 식민지시대나 베트남 전쟁기간을 통해 국가적 독립과 통일이라는 전민족적 숙원이 보다 더 강조돼 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베트남 참족 예술가 참족의 역사와 종교 등 독특한 소수민족의 세계를 반영하는 작품을 내놓고 있다. ⓒ 변재성
 
베트남은 대개 베트남인으로 불리는 다수족인 비엣족(87%)을 포함, 모두 54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다민족 국가다. 각 민족은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 베트남 사람들의 주민등록증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각각 자신들이 속한 민족 이름이 명기되어 있다. 대부분은 다수 비엣족의 다른 이름인 '낀'(Kinh)이라고 쓰여져 있을 것이지만 호치민시에서 간혹 '참'(Cham)이라고 쓰여진 주민등록증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참족은 베트남 중남부 해안지역이나 사이공 등지에 퍼져 살고 있는 말라요 폴리네시안어족에 속한다. 이처럼 베트남의 모든 민족들은 자기 민족의 정체성을 공식적으로 확인받고 있다.

문화인류학의 보고 소수민족의 나라 베트남

다수 비엣족을 제외한 53개 소수민족들 가운데 일부는 일반 베트남족에 동화되어 도시지역에 살기도 하지만, 주로 베트남 중서부 고원지대나 북부의 산악지역에 분포해 자신들의 고유 언어와 풍습 등 전통문화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항불전쟁과 베트남전 등을 거치며 부침을 거듭해오던 소수민들족이지만 자신들의 전통과 생활양식의 원형을 잘 간직하며 살아왔다.

이 때문에 베트남 소수민족들은 베트남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차원에서도 보존해야할 문화인류학적인 소중한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고 이들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베트남 정부도 소수민족 보호정책을 펴며 각별한 관심을 쏟고 있다.

저지대의 일반 베트남 사람들은 이들을 '산족'으로 불러왔는데 산악지역을 여행하다보면 지역마다 고유의 전통의상을 입은 여러 '산족'들이 거주하고 있어 별세계처럼 느껴진다.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게 베트콩으로 오인되어 사살된 양민들 중에 이들 '산족', 즉 소수민족들도 끼어 있었다는 증언도 있다.

새 활로 찿는 소수민족

안개가 자욱한 토요일 이른 새벽. 사파 한가운데 있는 시장터에 주말장이 서고 한주일 내내 고요하기만 했던 이곳이 갑자기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시장의 판매대에서는 부근에서 생산된 신선한 채소와 과일 등이 활발하게 거래된다. 막잡은 돼지고기에서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푸줏간 풍경은 우리의 옛 시골장터에서 보던 낯익은 풍경이다. 그 밖의 옷이나 신발 등 생필품을 파는 가게들도 제법 풍성하고 넉넉한 느낌을 준다. 

소수민족들은 저마다 고유한 전통복장으로 나타나고 시장은 어느덧 북새통을 이룬다. 짙푸른 원색 천으로 지은 전통복장의 허몽(H'mong)족과  붉은 색 모자에 은방울 장식으로 멋을 낸 자오(Dao)족 여인들이 특히 눈에 많이 띤다. 
 
베트남 소수민족 장날 베트남 북부 고원 도시 사파(Sapa)의 소수민족 주말시장 풍경. 신선한 야채와 각종 생활필수품들이 활발히 거래되고 있다. ⓒ 변재성
 

소수민족 젊은이들의 풋풋한 사랑이 영글다

사파의 주말 장날은 특히 소수민족 젊은이들을 설레게 하는 날이기도 하다. 모처럼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같은 종족의 젊은이들이 서로 만나서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사파의 주말시장은 그래서 '사랑의 장날'이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산중의 해가 뒤엇뉘엇 서둘러 저물고 파장이 되면 물건이 쌓여 있던 좌판은 텅텅비어 버리고 그 대신 소수민족 젊은 남녀들이 모여 앉아 그들 방식의 독특한 사교모임을 갖는 '사랑의 좌판'으로 바뀐다. 

이들에게 특별하고 굉장한 오락거리는 없어 보인다. 손을 맞잡고 원을 그리며 함께 노래를 부르거나 구식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즐긴다. 필수품처럼 저마다 허리춤에 지니고 다니는 랜턴은 무엇에 쓰는 물건일까? 원색으로 물들인 옷감에 개개의 소수인종마다 독특한 디자인의 장신구로 멋스럽게 치장한 선남선녀들은 깜깜한 어둠속에서 오직 랜턴 불빛에 의지한채 서로를 탐색한다. 그들은 다음날 새벽까지도 시장터를 떠날 줄 모른다. 소수민족 젊은이들의 풋풋한 사랑이 영그는 '사랑의 장날'은 모두의 아쉬움속에 찰나처럼 흘러간다.
 
사랑의 시장 자오족의 두 남자가 경쟁하듯 한 여성의 장신구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소수민족식 사랑에 열중하고 있다. ⓒ 변재성
 
프랑스 식민역사와 중국과의 국경전쟁 상흔 고스란히 남아

이 지역이 처음 유럽에 알려진 것은 과거 프랑스가 지배하던 1918년 당시 예수회 선교사들이 다녀간 후부터라고 전해진다. 사파의 기후와 풍경에 매력을 느낀 프랑스인들은 1932년경 부터 본격적인 개발을 시작했다. 사파의 연평균 기온은 섭씨 15도로 베트남의 아열대 더위를 피해 휴식을 취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다. 사파는 프랑스식민지 당시 2백여채의 호화로운 빌라와 호텔을 짓고 테니스장까지 갖추어 '통킹의 알프스'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제국주의 국가 프랑스가 1954년 베트남 북서부 라오스 국경 근처의 요새 디엔 비엔 푸 (Điện Biên Phủ)에서 보 응우엔 지압(Võ Nguyên Giáp)장군이 이끄는 베트남군과 벌인 마지막 전투에서 대패하고 본국으로 퇴각한 뒤 사파는 씁쓸한 식민지의 유산으로 남게 됐다. 지난 1979년 중국과의 국경전쟁 때는 중국군의 폭격으로 10여채의 건물만 남고 거의 폐허로 변해버렸다.

사파에서 가까운 주변의 마을에는 허물어진 프링스 식민지시대의 별장터가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다. 베트남 통일 후 남아 있던 건물들을 중심으로 기존의 호텔 등 숙박시설과 시장터가 되살아 났다. 지금의 사파는 옛모습을 찿아보기 힘들 정도로 개발되고 날로 번창하고 있다.

소박한 소수민족 생활상 경험해보는 트레킹코스 인기

사파를 벗어나 도보로 산길을 걸으며 소수민족 마을을 답사하는 트레킹에 나서는 것도 흥미롭다. 소수민족들은 같은 종족들끼리만 마을을 이루고 살아가며 결혼도 같은 종족들 사이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소수민족 마을 어귀에는 작은 물레방아가 저 혼자 방아를 찧고 있는 한가로운 풍경도 눈에 들어온다. 꾸밈없고 친절한 소수민족 마을 사람들의 사는 모양새를 살펴보면 소박하기 이를 데 없다.

집 안팎을 이리 저리 둘러 보아도 쌓아둔 식량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닭이나 돼지 등의 가축들을 기르는 것 말고는 어린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키가 왜소하고 마른 편이다. 이곳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은 소수민족 고유의 생활방식을 존중하고 훼손하지 않으면서 때묻지 않은 순수한 소수민족 삶의 원형을 기억속에 간직하고 돌아갈 수 있도록 전문 관광안내인의 세심한 가이드를 받는다.   

문명생활과 거리를 두고 전통적인 방식의 삶을 지켜나가는 이 지역의 소수민족들에게도 베트남의 정치 경제가 안정되면서 새로운 희망이 싹트고 있다. 휴양도시 사파의 좋은 기후와 때묻지 않은 소수민족 생활상을 보고싶어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또 매주 사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활발한 경제활동과 함께 소수민족 젊은이들의 풋풋한 사랑이 사파를 더욱 활기있게 만들고 있다. 지명의 유래는 알 수 없지만 '사파'는 한자어로 '모래의 도시'. 영원할 것같은 프랑스 식민통치의 유산은 마치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고 대신 이곳의 본래 원주민인 소수민족들의 평화와 행복이 넘는 '사파'로 되돌아간 것일지도 모르겠다.
태그:#베트남, #하노이, #사파, #라오까이, #소수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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