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1년에 시작돼 지구상에서 개최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축구대회인 잉글리시 FA컵은 오랜 전통 만큼이나 축구팬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대회다. FA컵 우승팀은 상금과 함께 유로파리그 자동 진출권을 얻게 된다. 따라서 리그 상위권 진입이 쉽지 않은 중·하위권 구단들에게 FA컵은 다음 시즌 유럽대항전 진출 여부가 결정되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대회다. 

하지만 유로파 리그보다 챔피언스 리그가 더 가까운 상위권 팀들은 사실 FA컵에 그렇게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FA컵에서 힘을 쏟다가 주력 선수가 부상을 당하거나 체력이 떨어지면 자칫 리그나 유럽 대항전 같은 더 중요한 경기들을 그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리그 상위권의 강 팀들은 라이벌 팀을 만나거나 4강 이상으로 올라가기 전까지는 로테이션 멤버들을 활용하면서 유망주들에게 기회를 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19일(이하 한국시각) 첼시FC는 FA컵 16강전에서 총력전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체스터 유나이티드였기 때문이다. 첼시는 지난 11일 같은 맨체스터를 연고로 하고 있는 맨체스터 시티 FC와의 리그 경기에서 0-6으로 참패했기 때문에 홈팬들 앞에서 맨유를 제물로 명예회복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첼시는 맨유전에서 주전 선수들을 대거 출전시켰지만 결과는 0-2 완패였고 리그 6위로 떨어진 첼시는 앞으로 더욱 험난한 일정을 앞두게 됐다.

모리뉴 감독 떠난 후 전성기 지나 '감독들의 무덤'된 첼시

60년대와 70년대 초까지 중흥기를 보내던 첼시는 2000년대에 접어 들어 심각한 재정난에 허덕였다. 그러던 2003년 첼시는 러시아의 석유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구단을 인수하고 2004년 조세 모리뉴 감독이 팀을 맡으면서 운명이 바뀌게 됐다. 가끔씩 강 팀을 위협하던 다크호스에 불과했던 첼시가 구단주의 '오일머니'를 등에 업고 엄청난 부자구단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첼시는 디디에 드록바, 마이클 에시앙, 페트르 체흐(아스날FC), 히카르두 카르발류 같은 선수들을 차례로 영입하며 전력을 강화시켰다. 프랭크 램파드(더비 카운티FC 감독)와 존 테리(아스톤 빌라FC 수석코치)가 이끌던 팀에 부족한 부분을 요소요소에 채워 넣은 것이다. 그 결과 첼시는 2004-2005 시즌과 2005-2006 시즌 2연속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프리미어리그의 새로운 강자로 발돋움했다.

2006-2007 시즌에는 로만 구단주의 '스타 모으기'가 본격화되면서 바이에른 뮌헨에서 미하엘 발락을, AC 밀란에서 안드리 셰브첸코를 영입했다(물론 발락과 셰브첸코는 첼시에서 기대 만큼의 활약을 해주지 못했다). 하지만 첼시는 2007-2008 시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유벤투스FC)와 웨인 루니(DC 유나이티드), 카를로스 테베스(보카 주니어스)로 이어지는 삼각편대가 이끄는 맨유에 밀려 모리뉴 감독이 경질되고 말았다.

모리뉴 감독 경질 후 이스라엘 출신의 아브람 그랜트 감독을 선임한 첼시는 2007-2008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결승에 진출하며 선전했지만 결승에서 맨유에 승부차기 끝에 패했다.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실패한 첼시는 곧바로 감독을 루이스 스콜라리(SE 파우메이라스)로 교체했고 레이 윌킨스 감독 대행과 거스 히딩크 감독(중국U-21 대표팀)을 거쳐 카를로스 안첼로티 감독(SS나폴리)까지 넘어왔다.
 
 조세 모리뉴 감독

조세 모리뉴 감독 ⓒ 로이터/연합뉴스

 
안첼로티는 첼시를 맡은 두 시즌 동안 우승 한 번과 준우승 한 번을 달성했지만 연속우승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경질됐다. 첼시는 모리뉴 감독 경질 후 8년 동안 7명의 감독이 거쳐 가는 '감독들의 무덤'이 됐다. 2016년에 부임한 안토니오 콘테 감독이 2016-2017 시즌 첼시의 6번째 리그 우승을 이끌었지만 2017-2018 시즌 5위에 그치고 말았다. 첼시가 지난 시즌 챔피언스 리그 티켓을 따내지 못하자 콘테 감독 역시 두 시즌 만에 경질의 칼날을 맞았다.

리그 6위 추락-FA컵 탈락, 그리고 카라바오컵 결승 상대는 맨시티

첼시는 작년 7월 세리에A의 SSC나폴리를 이끌던 마우리치오 사리 감독을 34대 감독으로 선임했다. 사리 감독은 나폴리 시절 강력한 공격 축구를 통해 팀을 상위권으로 끌어올린 지도자로 지난 시즌 리그 62골(6위)에 그쳤던 첼시의 공격력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지 주목됐다. 첼시는 여름 이적 시장에서 사리 감독과 한솥밥을 먹었던 조르지뉴를 비롯해 케파 아리사발라가 골키퍼, 중앙 미드필더 마테오 코바치치를 영입했다.
 
 첼시 선수들

첼시 선수들 ⓒ AP/연합뉴스

 
첼시는 13라운드에서 토트넘 핫스퍼FC를 만나 1-3으로 패할 때(손흥민이 엄청난 단독 돌파로 리그 1호골을 넣었던 그 경기)까지 8승4무를 기록하며 지난 시즌 부진을 씻어내는 듯했다. 하지만 첼시는 23라운드 아스널전 0-2 패에 이어 24라운드 AFC 본머스전에서 0-4로 무너지면서 4강 자리가 위태로워졌다. 그리고 첼시는 지난 11일부터 열흘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맨체스터 형제(?)를 만나 그야말로 '험한 꼴'을 당하고 말았다.

11일 26라운드 경기에서 맨체스터로 원정을 떠난 첼시는 세르히오 아구에로에게 해트트릭을 선사하면서 맨시티에 0-6으로 참패를 당했다. 전반 24분 만에 맨시티에게 무려 4골을 허용했을 정도로 상대가 되지 않는 경기였다. 마침 26라운드에서 맨유, 아스날 등 4위 경쟁을 펼치는 팀들이 모두 승점 3점을 따내면서 첼시는 순식간에 6위까지 떨어졌다. 최근 4번의 리그 경기에서 1승3패에 그친 첼시가 6위로 추락한 것은 이번 시즌 개막 후 처음이었다.

19일에는 맨유를 홈구장 스탬포드 브릿지로 불러 FA컵 16강전을 치렀다. 맨유는 올레 군나르 솔샤르 감독 부임 후 12경기 무패 행진을 달렸지만 13일에 열린 챔피언스 리그에서 파리 생제르맹에 0-2로 패하며 상승 분위기가 한풀 꺾였다. 하지만 첼시는 분위기 반전의 기회에서 맨유에 0-2로 패하며 FA컵에서 허무하게 탈락했다. 첼시는 2012년 10월 이후 6년 4개월 만에 안방에서 맨유에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올레 군나르 솔샤르 맨유 감독대행과 마우리치오 사리 첼시 감독

올레 군나르 솔샤르 맨유 감독대행과 마우리치오 사리 첼시 감독 ⓒ AFP/연합뉴스

 
오는 25일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맨시티와 카라바오컵 결승을 치르는 첼시는 2월의 마지막 날 토트넘을 상대로 28라운드 리그 경기를 가질 예정이다(참고로 토트넘의 주전 스트라이커 해리 케인은 첼시와의 원정 경기 일정에 맞춰 컨디션을 끌어 올리는 중이다). 만약 첼시가 토트넘과의 홈경기에서도 승점을 챙기지 못한다면 사리 감독의 입지가 불안해짐은 물론 다음 시즌에도 챔피언스 리그가 아닌 유로파 리그에서 뛰게 될 확률이 더욱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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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2018-2019 프리미어리그 첼시 FC 로만 아브라모비치 마우리치오 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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