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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조합원 400명이 교사의 정치기본권 보장을 촉구하는 행진을 하고 있다.(청와대 사랑채 앞)
▲ 정치기본권 보장을 촉구하는 전교조 시위장면(2018. 3. 24) 전교조 조합원 400명이 교사의 정치기본권 보장을 촉구하는 행진을 하고 있다.(청와대 사랑채 앞)
ⓒ 전국교직원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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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은 국가공무원법 65조(정치 운동의 금지)에 명시돼 있다. 그것도 다른 조항들과 달리 구체적으로 명문화돼 있다. 특정 정당 또는 특정인을 지지하거나 반대, 투표 권유, 서명운동, 기부금 모집 관련 일체를 금지한다. 정치적 행위의 금지에 관한 한계는 대통령령 등으로 정한다고 2015년 개정했다.

그러나 공무원도 공무원 이전에 국민이고 시민이다. 기본권을 법률로 제한하더라도 그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는 것이 헌법 37조에 명문화되어 있다. 과거 역대 정부는 공무원의 정치 기본권을 보장하려는 노력보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앞세워 기본권을 억압해 왔다. 다시 말해 권위와 명령으로 공무원들이 스스로 친정부적인 태도를 보이도록 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박근혜 정부의 한국사 국정교과서제 강행이다. 우리는 언론 보도를 통해 적지 않은 공무원들이 원치 않았음에도, 교과서 홍보를 지시받고 국정제 강행에 동원된 사실을 알 수 있다. 박근혜 정부뿐 아니다. 과거 이승만 정부는 경찰, 교사, 공무원을 부정선거에 동원했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조항은 과거 잘못된 관행과 단절하고자 박정희 정부 때 명문화된 조항이다. 그러나 군사 독재정권 역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남용했다. 군사 독재정권을 비판하는 목소리에 재갈을 물리려는 방편으로 사용되었다.
 
2012년 9월 12일 오후 여의도 새누리당사앞에서 열린 '인혁당재건위사건 '사법살인' 부정하는 박근혜 규탄 기자회견'에서 유가족들이 들고 나온 희생자 8명(여정남, 하재완, 이수병, 송상진, 김용원, 우홍선, 서도원, 도예종)의 영정사진.
 2012년 9월 12일 오후 여의도 새누리당사앞에서 열린 "인혁당재건위사건 "사법살인" 부정하는 박근혜 규탄 기자회견"에서 유가족들이 들고 나온 희생자 8명(여정남, 하재완, 이수병, 송상진, 김용원, 우홍선, 서도원, 도예종)의 영정사진.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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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사례가 전국의 학교가 동원됐던 '유신체제 홍보'와 '제2차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이다. 인혁당 사건은 지난 1975년 박정희 정권이 유신체제 유지를 위해 간첩을 조작, 8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사형에 처하고 15명을 무기징역 등 투옥한 사건이다. 당시 경기여고 김용원 교사는 유신독재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사형 선고를 받은 지 18시간 만에 서대문 형무소에서 사형됐다. 현직 공무원을 고문, 조작하고 처형한 것이다. 사형 선고통지서가 구치소에 도착하기도 전에 사형을 집행했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1987년 민주화 이후 20년이 지난 2008년에도 현직 교사들이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과 선거법 위반으로 형사 처벌받았다. 사건의 발단은 당시 교육감 선거 역사상 서울 시민이 최초로 교육감을 직접 뽑는 선거에서 비롯되었다.
 
2008년 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공정택 후보와 주경복 후보
 2008년 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공정택 후보와 주경복 후보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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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주경복 후보와 보수진영의 공정택 후보가 교육감 선거에 출마해 치열한 경쟁을 치렀다. 보수진영은 이 선거를 진보 대 보수의 구조를 넘어 전교조 대 반전교조의 갈등으로 몰아갔고, '리틀 이명박'으로 불리던 공정택 후보는 '전교조에 휘둘리면 학교가 망한다'는 현수막을 거리 곳곳에 내걸며 유세 운동을 했다.

성동구 등 17개 선거구에서 진보진영이 이겼음에도 강남 3구의 몰표가 쏟아지면서, 선거는 보수진영의 승리로 끝났다. 교육감 선거의 후폭풍은 참담했다. 

초·중등 일제고사 전면 시행과 자사고 허용 등 학교선택제 시행을 앞두고 이에 반대하는, 전교조 서울지부장이었던 송원재 선생님과 전교조 간부인 이을재, 김민석 선생님 그리고 지회 활동가 수십 명이 기소됐다. 특정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활동했다는 이유였다.

전교조는 국가공무원법 65조 정치 행위 금지 조항을 잘 알고 있었다. 선거법에 저촉되는지 일일이 선관위에 확인해가며, 뜻이 같은 진보진영 후보의 당선을 위해 노력했다. 학교 현장이 좀 더 교육적으로 변화하고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하지만 보수진영은 교육감 선거에서 마치 전교조 교사들이 정치에 깊숙이 개입한 것인 양 여론몰이를 했다. 이 결과 법원은 송원재, 김민석, 이을재 선생님에게 징역형과 집행유예를, 4명에게 교직 박탈에 해당하는 벌금 150만 원, 나머지 13명에게 8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하였다.

이 중 4명의 교사들은 공무담임권이 회복돼 2019년 1월 교단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송원재, 이을재, 김민석 선생님 세 사람은 징역형을 선고받아 10년 동안 공무담임권이 박탈됐다. 이들은 정년을 코앞에 두고 있지만, 2022년까지 학교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다.
 
전교조 교사들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를 위한 전국교사대회를 열어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 전국교사대회 장면(2014. 5. 21) 전교조 교사들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를 위한 전국교사대회를 열어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 전국교직원 노동조합(안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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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공정택 교육감은 선거법 위반으로 중도 하차했다. 교육감 재직 시절 1억 4천만 원이 넘는 뇌물을 받고 교원승진 및 인사에 관여한 혐의로 징역 4년형과 추징금을 선고받았다. 장학사, 장학관, 교장 등 50명이 넘는 교육 관료들이 연루된 교육계 치부를 드러낸 사건이다. 

그런데 검찰은 공 전 교육감에 이어 당선된 곽노현 교육감을 <사후매수죄>라는 법리를 동원해 기소했다. 선거 전 진보진영 후보들 간 사전 밀약이 없었음에도 당선 후 도움을 주었다는 이유로 오래전 사문화된 사후매수죄를 적용한 것이었다.
 
박근혜 정권의 전교조 법외노조와 전교조 교사 탄압에 항의하는 1박 2일 집중 투쟁 중 광화문 세월호 천막 앞에서 거리 시위하는 전교조 조합원 교사들(광화문 광장)
▲ 법외노조 철회와 정치기본권 보장을 촉구하는 시위 장면(2017. 3. 15) 박근혜 정권의 전교조 법외노조와 전교조 교사 탄압에 항의하는 1박 2일 집중 투쟁 중 광화문 세월호 천막 앞에서 거리 시위하는 전교조 조합원 교사들(광화문 광장)
ⓒ 전국교직원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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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개혁을 위해서라도 교사들의 정치기본권을 최소한 보장해야 한다. 교사들이 교육개혁의 전문가인 만큼 정치권에 진입할 수 있도록 정치적 기본 권리를 보호하고 신장시켜야 한다.

교사의 정치기본권을 보장하고 있는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선진국에선 이들의 정당 가입을 허용하고 있다. 좋은 교육정책이 나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당 가입뿐만 아니라 당비, 후원금도 낼 수 있다. 정당 가입은 정치적 의사 표현과 결사의 자유로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인 참정권의 본질에 해당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도 교사의 정당 가입 정도는 어느 정도 허용하고 있다. 과거 진보적인 교사노동조합인 일본 교직원 조합의 조합원 다수가 급진적인 사회당 당원이었다. 일부는 공산당 지지자였다. 우리가 그들을 선진국이라 부르는 이유는 단순히 GDP(국내총생산)만 높아서가 아니다. 

심지어 프랑스는 정당 가입뿐 아니라 공무원직을 사퇴하지 않고도 정당 후보로 출마할 수 있다. 의원직을 사임하는 등 정치 활동을 그만둘 시 복직이 가능하며, 승진과 함께 국가를 위해 일한 경력도 인정해 준다. 그것이 국민의 기본권인 참정권을 보장하는 헌법의 정신이다. 우리나라와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크다.

해직교사가 노동조합에 가입돼 있다고 노조로 인정하지 않는 국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박근혜 정부 때 벌어진 일로, 세계의 웃음거리가 아닐 수 없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국제노동기구(ILO) 전문가위원회는 지난 8일 한국 정부에 국가공무원법 65조가, 차별을 금지하는 'ILO 111호 협약'에 어긋난다며 한국 정부에 관계 법령 개정과 피해교사가 받은 불이익을 해소하도록 권고했다.
 
진보 정당을 후원했던 교사를 이명박 정권에서 대량 징계하자 1500명 전교조 교사들이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서울 종각)
▲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퇴진 집회(2010. 11. 7) 진보 정당을 후원했던 교사를 이명박 정권에서 대량 징계하자 1500명 전교조 교사들이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서울 종각)
ⓒ 전국교직원 노동조합(유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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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는 오랜 기간 노동 배제이자 노동 천시 사회였다. 노동자와 공무원은 촛불 정부가 들어선 오늘날에도 기본권조차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이젠 이념적 색깔을 덧씌우며 전교조를 공격하는 시절은 지났다. 낡은 사고에 갇힌 자들은 가짜뉴스에 현혹돼 5.18을 '광주폭동'이라고 선동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가짜 뉴스에 현혹되지 않는다.

이젠 냉전질서와 과거 독재체제의 낡은 유물인 '정치적 중립성'에서 벗어나야 할 시점이다. '정치적 중립성'보다 '정치기본권'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것이 선진사회로 가는 길이자 헌법정신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악법 조항을 폐지해 공무원의 '정치기본권'을 보장해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가오는 3.1절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시민이 주인인 민주 공화제를 선포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현재 문재인 정부는 3.1절 특별사면을 위한 실무작업을 진행 중이다. '서민생계형 범죄사면'에 초점이 맞춰졌던 첫 사면과 달리, 이번에는 대상 범위가 더 넓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날 해직교사 이을재, 송원재, 김민석과 곽노현 전 교육감의 명예를 회복시켜야 한다. 3.1절 특별 사면 및 복권이 문재인 정부가 촛불 정부로서 교육계 적폐를 청산하고 제 역할을 다하는 첫걸음이라 믿는다.

덧붙이는 글 | 무상교육, 학교돌봄교실 운영 등 전교조가 내놓은 교육정책들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태그:#정치기본권, #전교조, #국가공무원법, #선거법, #정당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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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원으로 가입하게 된 동기는 일제강점기 시절 가족의 안위를 뒤로한 채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펼쳤던 항일투사들이 이념의 굴레에 갇혀 망각되거나 왜곡돼 제대로 후손들에게 전해지지 않은 점이 적지 않아 근현대 인물연구를 통해 역사의 진실을 복원해 내고 이를 공유하고자 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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