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부가 지난 13일 발간한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

여가부가 지난 13일 발간한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 ⓒ 여성가족부

 
"음악방송 출연자들의 외모획일성은 심각합니다. 대부분의 출연자들이 아이돌 그룹으로, 음악적 다양성뿐만 아니라 출연자들의 외모 또한 다양하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아이돌 그룹의 외모는 마른 몸매, 하얀 피부, 비슷한 헤어스타일, 몸매가 드러나는 복장과 비슷한 메이크업을 하고 있습니다. 외모의 획일성은 남녀 모두 같이 나타납니다."
 
지난 13일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가 배포한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이하 '성평등 제작 안내서') 중 일부 내용이다. 이 안내서의 부록으로 실린 위 내용은 '방송 프로그램의 다양한 외모 재현을 위한 가이드라인' 부분에 '음악방송 출연자들은 모두 쌍둥이?'라는 예시로 게재됐다.
 
이 '가이드 라인'은 유형별 제작원칙을 제시하는 와중에 '획일적인 외모 기준을 제시하는 연출 및 표현'의 사례로 음악방송 출연자들의 예를 들면서, '비슷한 외모의 출연자가 과도한 비율로 출연하지 않도록 합니다'라는 원칙을 제시한 것이다. 하나 더 예를 들어 보자. 여가부는 '성평등 제작 안내서'에서 '획일적인 외모 기준을 제시하는 연출 및 표현'의 사례 중 하나라며 "작고 갸름한 얼굴, 큰 눈, 흰 피부만이 바람직한 외모?"라고 묻고는 아래와 같이 지적했다.
 
"어린이 애니메이션에서도, 성인 화장품 광고에서도 획일적 외모기준이 무분별하게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를 포함, 13일 이후 이 안내서의 '가이드 라인' 중 몇몇 내용이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전파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요는 여가부가 '아이돌 (걸)그룹'의 외모를 왜 규제하려하는가, 여가부의 '가이드 라인' 제시 자체가 적절한 것인가, 이러한 여가부의 가이드 라인이 과도한 규제나 검열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의문과 우려들이었다. 
 
 하태경 의원 페이스북

하태경 의원 페이스북 ⓒ 화면캡처


특히 지난 16일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은 페이스북에 "여가부 장관은 여자 전두환입니까?"라며 "군사독재 시대 때 두발 단속, 스커트 단속과 뭐가 다릅니까? 왜 외모에 대해 여가부 기준으로 단속합니까? 외모에 객관적인 기준이 있습니까?"라며 강한 비판을 제기했다. 장능인 자유한국당 대변인도 18일 논평을 통해 "국민 외모까지 간섭하는 국가주의 망령을 규탄한다. 최근 인터넷 사이트 접속 검열, 방송 장악 시도에 이어 이제는 외모 통제냐"고 지적했다.
 
이후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여러 매체가 비판적인 기사와 사설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논란을 키운 형국이 됐다. 논란이 커지자 18일 KBS <뉴스9>도 <연예인 외모도 규제?..여가부 '성평등 가이드라인' 논란>란 '뉴스줌인' 코너를 통해 아래와 같이 이 문제를 짚었다.
 
"('성평등 제작 안내서'의) 그 취지는 요즘 이상적인 외모의 기준을 제시를 하고 획일화하고 있다, 그래서 성형이나 다이어트를 조장하고, 결국 건강권까지 해치고 있다는 이유이지만, 아이돌그룹이 거론되다보니까 논란이 확 커진 거죠."
 
더군다나 최근 정부의 'https(보안접속)에 대한 통제' 논란까지 덧씌워지면서 정부의 '검열'과 '단속' 프레임이 강화됐다. 19일자 <중앙일보>는 <어처구니없는 여가부의 '걸그룹 외모 규제'>라는 제목의 사설까지 내놨다.
 
"성 평등을 위한 미디어의 압도적인 영향력과 아이돌의 외모로 상징되는 '외모 지상주의'의 폐해를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국가가 외모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하는 현 상황은 시대착오적이다. 개인의 자율을 중시하는 진보 정부 일반과도 반대다. 강제성 없는 가이드라인이라 해서 넘어갈 문제는 아니다. 국가가 국민을, 정부가 미디어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드러내 준 단면이기 때문이다."
 
여성가족부의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 과연 이럴 일인가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30조 양성평등 조항을 반영하여 프로그램을 기획·제안·편성하는 과정에서 고려할 사항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방송사, 제작진들이 방송현장에서 자율적으로 반영하는 것으로 규제나 통제라는 일부의 비판은 사실과 다릅니다."
 
지난 17일 여가부가 같은 날 <헤럴드경제>가 보도한 <'文정부, 인터넷‧방송 통제 가속...연예인 외모까지 규제>의 기사에 대해 내놓은 해명자료 중 일부다. 해당 기사에서 <헤럴드경제>는 여가부의 이번 '성평등 제작 안내서'와 정부의 'https에 대한 통제'를 묶어, 중국과 북한 공산당체제의 획일성과 비교하며 강도 높게 비판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가 연이어 인터넷과 방송에 대한 강력한 규제 방안을 내놓았다. 국민의 주관적 선호도는 무시한 채 연예인의 외모까지 규제한다. 정부는 국민을 '위험한 미디어 콘텐츠'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규제를 한다고 하지만, 지금의 방법이 정말 국민 보호를 위한 것인지 국민 통제인지에 대해서는 오히려 많은 국민이 후자로 평가한다. 중국이 했던 미디어를 이용한 국민통제와 닮았기 때문이다."
 
과연 그 정도일까. 지난 7일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가 발표한 '미디어에 의한 성차별 실태조사 결과' 역시 뉴스 및 시사교양, 예능, 드라마 등 방송 전 분야에 점철된 성불균형과 성차별적 실태를 점검하고 이에 대한 변화를 촉구하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었다(관련 기사 : 방송 뉴스는 물론 예능까지 심각... 인권위의 뼈아픈 '호통' http://omn.kr/1h8t3).
 
차이점이 있다면, 인권위가 여타 보고서와 다를 바 없이 실태조사를 딱딱하게 다뤘다면, 여가부는 실태 조사를 넘어 해당 프로그램을 적시하는 한편 '가이드 라인'을 통해 좀 더 적극적이고 쉬운 언어로 권고 사항을 포함시킨 것이랄까. 아래와 같은 큰 주제 아래 말이다.
 
"주제 선정에서부터 성평등이 적극 반영되어야 합니다."
"남성과 여성 모두를 균형 있게 대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역할 고정관념을 깨고 다양한 삶을 보여줘야 합니다."
"성폭력·가정폭력을 정당화하거나 선정적으로 다루어서는 안 됩니다."
"성차별적 언어 사용에 대한 민감성을 가져야 합니다."

 
'성평등 제작 안내서' 전체를 살펴보면, 이렇게 납득할 만한 수준의 기준('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30조(양성평등))에 의거, "방송에서 지켜야 할 성평등한 관점이란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나가는 한편 현재 TV 프로그램에 만연한 성차별적 사례들을 고루 살피는데 치중하고 있다.
 
다만, 통계나 실태 조사보다는 기준과 주장, 이어지는 실제 프로그램 사례가 나열되면서 적절치 못한 예나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사례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아이돌 (여)그룹'의 외모 획일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외모 지침'으로 번진 것처럼. 또 판단 근거가 빈약하거나 없다는 반론을 불러일으킬 여지도 없지 않아 보인다.
 
이에 대해 해당 연구를 담당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이수연 선임연구위원은 19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내의 외모 지상주의가 심각한데 그런 현실을 외면하고, (가이드라인의)맥락도 다 무시하고 그 부분만 딱 잘라서 그런 이야기를 하다니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우리가 외모지상주의에 매몰돼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며 "여가부에서 발주를 받아 실제 미디어의 외모 지상주의를 분석해보니 정말 심각한 결과가 나왔다"고도 했다. 이 연구위원은 "방송 자막 하나만 봐도 외모 지상주의를 심하게 부추긴다. 여성 출연자가 나왔다 하면 '미모, 동안' 주입시킨다"며 "(이번 가이드라인은)무심히 보고 지나갈 것도 제작할 때 한번 더 확인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담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TV조선 <미스 트롯>이 가리키는 것
 

"여가부가 반성을 안 합니다. 여가부는 외모지상주의 심각한 문제라면서 외모검열주의 하겠다는 겁니다. 적폐 청산하겠다며 검열독재 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죠."
 
19일 하태경 의원은 여가부를 향한 비판을 이어나갔다. '외모검열주의'라는 기묘한 표현까지 등장시켰다. 아무래도 남성이자 국회의원인 하 의원은 외모지상주의를 넘어 대중문화 속에 깊숙이 침투한 성차별적인 문화를 감지하지 못하는 걸까. 
 
그간 여타 정책이나 홍보에 있어 비판을 받아왔던 여가부가 다시금 된서리를 맞는 분위기다. 하지만 말꼬리를 잡기보다 우선 교육용 안내서의 전체 내용을 훑어 본 후 비판을 해도 늦지는 않을 듯 싶다.

또 하나, 과연 이러한 정부 부처의 안내서가 얼마나 '현장'에서 실효성을 거둬왔는지도 되돌아 볼일이다. 이 정도 보고서 하나에 중국, 북한 공산당과 같은 체제 획일화 운운은, 그야말로 침소봉대 아니겠는가.

무엇보다, 이 '성평등 제작 안내서'의 주요 내용들 모두가 새삼스러울 것 없지만 우리가 그간 너무나 그 양과 수가 너무 많아 지적하기에도 지쳐버렸던 사례들이 대부분이란 사실이다. 이를 놔둔 채 그저 '걸그룹 규제' 운운하며 여가부 비판에 열을 올리는 일은 적절하지 않다. 
 
 TV조선 <미스트롯>

TV조선 <미스트롯> ⓒ TV조선


그리고 지난 14일, 이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를 제작하고 이에 공감하는 이들이라면 기겁할 만한 프로그램이 티저 예고편을 공개했다. 오는 28일 방송을 앞둔 TV조선의 <미스트롯>이었다.
 
"대한민국 트로트의 맛. 그 맛의 신세계가 바로 지금 열립니다. 국내 최초 트로트 오디션. 500대 1의 경쟁률을 뚫은 100인의 참가자. 10대부터 30대까지 트롯의 맛을 아는 여자들. 장윤정 홍진영의 뒤를 이을 미스트롯을 찾아라. 100억 트롯걸을 향한 100인의 트로트 전쟁"
 
이러한 홍보 문구와 함께 영상에 등장하는 이들은 빨간색 초미니 원피스를 입은 100여명의 젊은 여성들이었다. 영상 속 여성들은 마치 '미스코리아 대회' 출전자들을 연상시키는 띠를 두른 채 각자 춤을 추고 있었고, 카메라는 이들의 얼굴과 몸을 훑기에 바빴다.
 
다른 티저 동영상에서도 이러한 자극적인 영상 연출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외모, 의상, 몸매 등이 강조되는 화면 위로 간간이 노출이 심한 의상도 없지 않았고, 그 위로 '여자들의 전쟁'이란 자막이 올라왔다. 
 
재차 묻자. 지금 같은 시대에 '외모 검열'이 가능키나 한가. 그걸 정부가 규제하는 것이 가능키나 할까. 도리어 대한민국의 대중문화와 방송사는 끊임없이 외모와 선정성을 시청률과 화제성의 자양분으로 삼아오지 않았는가.
 
20세기 이전과 같은 과도한 규제도 문제지만, 이보다 이제는 만연해 경각심도 희박해져버린 외모를 향한 추구와 이를 토대로 한 선정성이 더 문제 아닌가. 그러한 토양이 뒷받침 됐기에 <미스 트롯>과 같이 방송 전부터 선정성을 과도하게 내세우는 프로그램도 등장할 수 있지 않았을까.
여가부
댓글29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