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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 만난 KAL 858기 가족지원단의 총괄팀장 신성국 신부가 테러범 김현희씨 고소 취하서를 보여주고 있다.
 18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 만난 KAL 858기 가족지원단의 총괄팀장 신성국 신부가 테러범 김현희씨 고소 취하서를 보여주고 있다.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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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1m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던 쇳덩어리가 발견된 18일 그를 만났다. 이날 2년 전 남대서양에서 침몰한 스텔라데이지호의 이른바 '블랙박스'인 항해기록저장장치(VDR)가 회수됐다. 그가 32년째 찾고 있는 것도 깜깜한 바다 밑에 있다. 1987년 11월 29일, 미얀마 안다만 해역에서 사라진 KAL 858기 승무원과 탑승객 115명의 유해와 유품이다.

KAL858기 참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승무원과 탑승객 115명의 유가족은 아직도 거리에서 '유해를 찾아달라'고 소리치고 있다. 유가족 곁에서 그도 32년째 온몸으로 진실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KAL 858기 가족지원단의 총괄팀장을 맡고 있는 신성국 신부다.

서울 마포구 합정역 인근 한 카페에서 신성국 신부를 만났다. 그는 요즘 이 근처에서 아주 특별한 계획을 준비 중이다. 바로 '희망'을 찾아 나서는 일이다. 그는 악수를 청하며 머나먼 이국땅에서 들려온 스텔라데이지호 소식부터 꺼냈다.

"얘기 들었어요. 스텔라데이지호 블랙박스 찾았다는 거. 이거 봐, 정부가 의지가 있으면 금방 찾는다니까. 근데 KAL(858)기는 여태 바닷속에 있으니..."

스텔라데이지호의 블랙박스와 선체를 회수했다는 소식에 그는 기뻐하면서도 부러운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반대로 'KAL 858기'란 단어를 입에 담을 때마다 목에 핏대를 세웠다. 우리 정부가 "부끄러워할 사건"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스텔라데이지호를 봐라, 정부가 마음 먹으면 된다"

- 스텔라데이지호의 블랙박스와 선체가 발견됐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스텔라데이지호 수색상황을 지켜보면서 희망이 엿보이기도 하고, 반대로 씁쓸한 기분도 들었다. 이번에 스텔라데이지호의 블랙박스(VDR 항해기록저장장치)가 발견된 곳은 육지에서 약 1860노티컬마일(nautical-mile 해리) 정도 떨어진 지점으로 수심은 3461m라고 한다. 한마디로 육지에서 아주 먼 바다, 깊은 바닷물 속에서 찾았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미얀마 앞바다에서 32년째 잠자고 있는 KAL 858기가 떠올랐다. KAL 858기 잔해물이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지점은 육지에서 30km, 수심은 대략 40m이다. 스텔라데이지호와 비교하면 육지에서 가깝고 수심도 얕다. 하지만 KAL 858기 잔해물은 5%만 회수됐을 뿐이다.

이제라도 정부가 마음을 먹으면 된다. 스텔라데이지호를 봐라. 수색하러 출항한 지 며칠 만에 '블랙박스'와 선체를 발견했다. KAL 858기 수색도 마찬가지다. 해양기술 문제가 아니라 의지만 있으면 유해나 유품을 발견할 가능성이 높다.

현지상황도 나쁘지 않다. 미얀마에는 포스코 패밀리에 편입된 대우인터내셔널이 있다. 거기서 석유 시추를 하고 있는데 수색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갖고 있다. 이 장비를 이용한다면 지금이라도 KAL 858기 잔해를 찾을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이제라도 정부가 의지를 갖고 수색을 해야 한다."

- 사고가 발생한 지 32년이 지났다. KAL858기 잔해물이 녹슬거나 부패했을 수 있다.
"아니다. 비행기는 주로 합금이다. 바닷속에 가라앉아도 녹슬거나 부패할 가능성이 적다. 유품도 온전히 보존됐을 것이다. 비행기에 실은 화물은 컨테이너에 보관한다. 아주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유품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진 않았을 것이다. 플라스틱 제품도 많이 있었다.

오래 전에 바다에 가라앉은 비행기 동체가 발견되는 일은 많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바다에 추락한 비행기 잔해가 지금도 발견된다. (잔해물이 가라앉은) 그대로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수색만 하면 찾을 수 있다."

- 사고 당시 정부가 수색팀을 꾸려 현장 조사를 하지 않았나?
"1987년 전두환 정부 때 꾸려진 사고조사팀은 태국에 본부를 마련했다. 사고는 미얀마 앞 해역에서 발생했는데 엉뚱한 나라로 날아간 것이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것이다.

수색작업은 더 가관이다. (KAL 858기와) 교신이 끊긴 지점은 해상이었으나 수색팀은 엉뚱한 밀림에서 가서 수색작업을 했다. 이렇게 일주일간 시간 낭비만 하고 돌아왔다. 이건 국정원 (과거사) 진실위원회 보고서에도 나와 있는 사실이다."

지난 2007년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이 펴낸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국정원 진실위 보고서 총론'에 기록된 사고 현장 조사내용은 이렇다.
 
"11.29 밤부터 칸차나부리 지역 추락 풍문이 돌고, 11.30 아침 지역주민으로부터 추락 목격 신고가 들어와, 同(동) 내용이 외신과 태국 정부를 통해 한국에 알려짐

정부 조사단은 당시 추락 신고가 들어온 칸차나부리 지역을 집중 수색했으나 발견에 실패. 수색이 장기화됨에 따라 정부 조사단은 현지 대사관과 대한항공에 수색작업을 인계한 뒤 12.10 철수

*당시 추락 목격 제보는 모두 사실이 아니었으며, 동 허위제보들은 해당 지역이 천둥, 번개를 동반한 스콜 현상과 태국군의 사격 연습으로 인해 포성이 자주 울리던 지역으로서, 주민들의 착각에 의한 제보였던 것으로 추정됨"

"진실위마저 국정원 말 듣고 엉뚱한 곳 수색" 
 
2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열린 ‘KAL858기 사고 제31주년 진상규명과 추모제’에서 유가족이 KAL858기로 추정되는 잔해를 공개하고 있다.
▲ KAL858 유가족, 사고지역에서 발견한 기체 추정 잔해 공개 2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열린 ‘KAL858기 사고 제31주년 진상규명과 추모제’에서 유가족이 KAL858기로 추정되는 잔해를 공개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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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8 서울올림픽 마크가 새겨진 항공기 동체를 회수해 오지 않았나?
"(당시) 교통부가 수색해서 발견한 게 아니다. 대한항공이 회수한 동체다. 엄밀히 말하면 수색작업으로 찾은 것도 아니다. 바다 위에 둥둥 떠다니는 것을 가져온 것이다. 수색했다면 바다 밑바닥까지 해서 블랙박스와 동체를 찾아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는 한번도 KAL 858기 수색작업을 제대로 한 적이 없다."

- 2006년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사고해역에 가서 현장 조사를 하지 않았나?
"당시 국정원 직원과 잠수부 등이 팀을 꾸려 (미얀마) 사고현장에 갔다. 이때도 엉뚱한 곳을 조사했다. 당시 수색에 참여했던 잠수부가 말하길, 국정원 직원 알려준 대로 수색작업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사고해역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ICAO(국제민간항공기구)에 제출해야 하는 사고조사 보고서도 국정원에서 작성해 제출했다.

항공기 사고는 ICAO 규정에 따라 사고발생국인 미얀마에서 수색작업을 하고 그에 따라 조사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미얀마 정부는 우리 국정원이 쓴 보고서를 제출했다. 항공기 등록 국가인 한국에서 조사보고서를 낸 것이다. 이것도 규정에 어긋나는 일이다."

- 최근 캐나다 몬트리올에 있는 ICAO를 방문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유는?
"지난 1월 다녀왔다. 시카고협약이라 불리는 ICAO 부속서 13에 의하면 항공기 사고의 경우 새로운 또는 중요한 증거가 발견되면 재조사를 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이걸 확인하러 갔다. 1990년 3월 대한항공은 올림픽 마크가 찍힌 (KAL 858기) 동체를 수거해 국내로 가져왔다. ICAO 규정에 따라 재조사를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정부도 수색에 나서지 않았다. 대한항공이 물에 둥둥 떠다니는 동체를 발견해 가져왔으면 정부는 재조사팀을 꾸려 사고 현장조사를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이게 다가 아니다. 최근 JTBC가 미얀마 사고 현장에 가서 동체로 추정되는 쇳덩어리를 발견했다. ICAO 규정에 따르면 재조사를 해야 하는데 정부도 대한항공도 묵묵부답이다. 이제라도 32년째 가족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유해나 유품이라도 찾아줘야 하는데 모른 척하고 있다.

ICAO 관계자도 황당해 했다. 정부가 나서야 할 일을 왜 개인이 뛰어다니느냐며 고개를 저었다. 보통 다른 나라는 ICAO 규정에 따라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면 재조사하거나 수색을 재개하는데 왜 한국 정부는 이걸 지키지 않는지 반대로 나한테 물어봤다."

"이번 정부에서 꼭 찾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
 
서울 서대문구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열린 ‘KAL858기 사고 제31주년 진상규명과 추모제’에서 유가족이 항의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전 전 대통령 자택으로 이동하자 경찰이 이를 저지하고 있다. 2018.11.29
▲ KAL858 유가족 항의서한 전달 가로막는 경찰 서울 서대문구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열린 ‘KAL858기 사고 제31주년 진상규명과 추모제’에서 유가족이 항의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전 전 대통령 자택으로 이동하자 경찰이 이를 저지하고 있다. 2018.11.29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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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에 변화의 움직임은 없나?
"국무총리실을 세 차례 찾아가 면담을 했다. 유가족들의 의견과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32년째 돌아오지 않는 가족의 유품이나 유해라도 이번 정부에서 꼭 찾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 국무총리실에서 국가가 국민의 유해를 찾아주는 일은 당연하다고 했다. 여러 정부 부처와 함께 KAL 858기 유해와 유품을 수색하기 위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1987년 사고가 발생하고 당시 전두환 정부는 약속했다. 유가족들에게 유해를 반드시 돌려주겠다고. 하지만 이 약속은 그동안 수많은 정권을 거쳤으나 지금까지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 KAL858기 폭파범인 김현희씨를 고소했는데 이걸 취하한다고 들었다.
"유가족들의 최종 목표는 유해나 유품이 가족들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김현희를 고소하면서 정치적으로, 이념적으로 유가족들에게 힘든 상황이 닥쳐 왔다. 유해를 찾아달라는 요구사항은 뒷전이고, 김현희만 또 한 번 스타가 되는 꼴이 됐다. 본질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 논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 (김현희) 고소를 취하하기로 했다."

- 대한항공에 책임을 촉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한한공은 지금까지 KAL 858기 사고에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자사의 항공기를 이용한 115명의 사람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데 사고 현장에 가서 물 위에 떠다니는 잔해만 수거해 돌아왔다.

그날 KAL 858기에 탄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대한항공사가 항공 보안 규정을 제대로 이행했다면 대형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고 당시 조중훈(전 대한항공 회장)이 항공 순찰에 나섰으나 이것도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게다가 수색 성과가 전혀 없는데도 방송과 언론을 동원해 "폭파 사고"라고 단정짓는 인터뷰만 했다.

지금이라도 대한항공은 자사 항공기를 이용하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 115명 탑승자의 유해를 찾는 데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KAL 858기 수색작업을 더는 늦출 수 없다. 세월이 흐르면서 유가족들도 세상을 떠나고 있다. 나이가 많아 요양원에 있는 가족들도 많다. 하루라도 빨리 수색에 나서 유가족들에게 유품이나 유해를 찾아줘야 한다. 그래야 이들이 지난 32년간 가슴에 품은 한을 조금이라도 풀 수 있다.

100년 전 사망한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발굴한다고 하고, 6.25 때 전사한 사람들을 찾겠다고 하고, 스텔라데이지호 수색에 나서기도 하면서 왜 KAL 858기만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나.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스텔라데이지호 다음은 KAL 858기를 수색해야 한다. 정부가 KAL858기 수색에 나서야 한다."

김현희씨 고소 취하한 이유 

KAL858기 수색과 관련해 국무총리실 남평오 민정실장은 "작년 12월에 (KAL858기) 유가족이 면담을 신청해와 지금까지 세 차례 만났다, 수색 작업을 요구했는데 정부 부처 간에 조율이 필요한 일이라 논의하고 있다"라며 "지난 2006년 국정원 과거사진실위원회 보고서에서도 미흡한 부분에 대한 추가 조사를 권고한 적이 있어 (수색 가능성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라고 했다.

이어 남 실장은 "정부는 유해와 유품을 발굴해 달라는 유족들의 요구에 눈 감고 있으면 안 된다는 입장"이라며 "국민적인 입장에서 이 문제에 접근할 것"이라고 말했다.

19일 서울 중구에 있는 대한한공 서소문 사옥 앞에서 신성국 신부를 다시 만났다. 이날 그는 유가족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에 KAL 858기의 수색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또 대한항공에도 책임을 촉구하며 수색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을 요구하고 김현희씨에 대한 고소 취하 의사도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KAL 858기 고 박명규 기장의 자녀 박은경씨는 32년째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115명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이들을 기억했다. 
 

태그:#KAL858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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